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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3월 25일 0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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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젊은 날의 배삼룡을 연기하는 정규수를 지켜보던 배삼룡,“어이,나보다 더 진짜같애”한 마디 하자 연습장에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삼성영상사업단이 27일부터 4월12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대중가극 ‘눈물의 여왕’ 연습 현장.
1953년 가을 지리산, 빨치산은 무릎을 꿇은 채 그리고 토벌대는 그들에게 총을 겨눈 채 함께 웃고 울었다는 백조가극단의 ‘전설적 공연’을 되살려내기 위해 출연진 50여명이 6개월째 강훈련중이다.
“농부들에게는 흙과 바람이 사상이요, 우리네 광대들은 발닿는 세상이 무대요. 사람끼리 금그어 놓고 못 만날 사상이 어디 있단 말이오.”
전옥역을 맡은 이혜영이 차일혁총경역을 맡은 조민기의 품에 안기려 하는데 연출가 이윤택이 눈짓을 한다.
“늘 해오던 키스신을 오늘은 왜 하지 말라는 거야?”
샐쭉해지는 이혜영. 알고보니 연습광경을 보러 나온 차일혁총경의 부인 때문이었다. 오래전에 사별한, 더욱이 극중에 대역으로 등장하는 남편이라도 ‘스캔들’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여심인가. 할머니가 된 그의 친구들은 속도 모르고 극중 백조가극단이 벌이는 쇼와 가극이 “어쩜 그렇게 옛날 그대로냐”고 입을 다물줄 모른다.
‘눈물의 여왕’의 또다른 묘미는 실존인물의 파란만장한 인생유전이 실타래같이 얽히며 사실과 픽션을 넘나드는 데 있다.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총경(1920∼1958)이나 백조가극단장 전옥(1911∼1974)은 모두 실존인물. 당시 백조가극단에는 김승호 허장강 배삼룡 황금심 고복수 최남현 등 쟁쟁한 연예계 1세대들이 망라돼 있었다.
전옥의 수양딸로 아역 연기를 도맡았던 원희옥(61)은 악극가수로 특별출연, 자신의 소녀 시절을 연기하는 임선애를 같은 무대에서 지켜본다. 연극배우겸 탤런트 이호성은 성격연기의 대명사 허장강을, 뮤지컬배우 이윤표는 황금심을 무대에 되살려낸다.
‘눈물의 여왕’은 빛바랜 추억의 사진첩에서 찾아낸 50년대의 풍경화다. 전란 직후의 치열한 사상대립, 피란살이의 애환, 모든 설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던 가극공연, 전쟁터에서도 죽지 않는 예술혼과 인간애가 어우러져 펼쳐진다. 신파악극 ‘눈 내리는 밤’이며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가 낭송되는 목로주점, 미군을 따라 들어온 캉캉춤을 구경하던 극장이 재현된다.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는 ‘애수의 소야곡’ ‘알뜰한 당신’ 등 당시 시대정서를 간직한 유행가와 만담도 한몫을 한다.
화 수 토 일 오후3시 7시반, 목 금 오후7시반, 월요일 공연없음. 02―278―4490(컬티즌)
〈김세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