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마스터…」를 보고]신경숙/신들린 노래 연기

  • 입력 1998년 3월 17일 08시 01분


마스터클래스는 일류 음악가들이 지도하는 실기 세미나를 가리킨다. 마리아 칼라스가 오나시스와 결별한 후, 그리고 그녀에겐 생명이었던 목소리를 다친 후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진행한 마스터클래스의 과정이 극화됐다.

작가인 테렌스 맥날리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거미여인의 키스’(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나는 대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를 쓴 사람이고 그는 열광적인 칼라스 숭배자(칼라스의 ‘노르마’ 데뷔티켓을 구하기 위해 3일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을 정도)로 직접 칼라스의 마스터클래스를 참관한 경험이 극작에 배어 있다.

칼라스와 윤석화. 침착해진 윤석화가 금세기 최고의 목소리를 상실한 칼라스를 통해 내지르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혼신의 말들.

“난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요. 모든 것을.”

윤석화는 세미나에 참석한 베르디의 맥베스 부인역을 맡은 샤론 그레이엄에게 도도하게 내지른다.

“당신은 백작부인 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백작 부인이 돼버려야 해요.”

왜 윤석화가 자신의 새로운 재기전으로 마스터클래스를 택했는지가 이해되는 순간이 있었다. “내 노래는 말이 아니라 느낌이 필요해. 나는 노래 안에서 눈물을 흘려요”라는 칼라스의 절규가 내 귀에는 윤석화의 고백으로 들렸다.

예술이란 “잔인성이 있어야 하는 선택”이다. 자기 예술에 스스로 느낌을 갖지 못하면 타자에게 또한 마찬가지다. 바꿔 말할 수 있다. 자신의 모럴이 있는 삶이란 잔인성이 있어야 하는 선택이다. 풍부한 감정과 불같은 기질의 칼라스가 늘 강조하는 단어는 ‘용기’였다.

그 용기로 인해 칼라스의 ‘내 노래는 나, 칼라스만이 할 수 있다’라는 오만함이 외려 품위를 지니는 것이다. 칼라스의 용기는 윤석화에게 전이되어 객석에 앉은 우리에게 다시 전달된다. 칼라스의 삶을 신화로서만 받아들이지 않는 용기를 우리는 갖자. 바로 나 개인이 예민함과 풍부한 감정을 지니고 살자는 얘기다.

칼라스와 윤석화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오페라가 없어도 태양은 떠오르겠죠. 세상은 우리 없이도 돌아갈 거예요. 하지만 우린 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없는 세상에 비해 훨씬 풍요롭고 현명한 세상을 말입니다.”

22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평일 오후7시반, 금 토요일 오후3시 7시반, 일요일 오후3시. 02―745―8498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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