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이창동/시나리오 심사평

  • 입력 1998년 1월 13일 08시 11분


영화는 연극과 달리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확실히 영화는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상상력과 테크놀러지만 결합된다면 어떤 공간도 재현해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있어서도 엄격한 경제성의 원칙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사건전개, 현란한 장면전환만이 능사가 아니라 최소한의 절제된 표현 속에서 최대한의 의미와 느낌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응모작 중 대다수의 작품들은 사건과 장면들을 낭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를 매개로 하여 우리사회의 세태를 풍자한 ‘부기우기 차차차(車車車)’는 안정된 구성력 위에 재치와 해학을 드러내고 있지만 보다 심도있고 날카로운 풍자정신 대신 감상적이고 흔한 인간승리담으로 마무리 짓는 바람에 설득력이 반감되고 말았다. ‘면도칼과 풍선’은 면도칼로 상징되는 폭력의 이미지와 풍선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위험스러운 순수함의 이미지가 교직되어 있으나 전반적으로 의욕과잉처럼 보인다. 보다 쉽고 단순한 구성, 절제된 표현방식을 탐색해야 할 것 같다. ‘옐로우 서브마린’은 풍부한 감성과 세련된 영상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들이 왕가위 영화들을 너무 쉽게 연상시킨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작품 속의 인물들과 사건이 과연 한국의 일상적 삶에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당선작으로 뽑은 ‘그녀들의 저녁식탁’은 매일 저녁의 작은 식탁을 중심으로 두 자매의 갈등과 욕망, 화해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두 자매의 격렬한 갈등의 원인을 단순히 부모에 의한 성장기의 차별 때문으로 보고 있는 시각의 단순함, 지나치게 평면적인 두 자매의 성격 등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쉽고도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통해 가학성과 피학성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가족관계의 인간내면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가능성과 저력을 느낀다. 정진을 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