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오른다. 길 떠나는 마음은 들떠 있다. 기차는 경적을 울리며 출발한다. 산과 들도 기차의 리듬에 맞춰 흔들거리는 것만 같다.
그러나 다시 둘러본다. 주위 풍경은 왜 이리 적막하기만 한가. 노을은 왜 저렇게도 붉게 물들어 있나.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영국의 현대작곡가 마이클 니만이 자신의 지휘로 세곡의 협주곡 음반(EMI)을 내놓았다. 그의 협주곡에서 느껴지는 심상(心象)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올해 53세인 니만은 필립 글래스 등과 더불어 현대 작곡계를 들썩거리게 만든 「미니멀리즘(극소주의)」의 대표주자중 한사람.
그의 이름이 낯설다면 영화 「피아노」를 떠올리면 된다. 벙어리 여주인공 아다가 영화속에서 연주하던 알듯말듯한 음악이 바로 니만의 작품. 니만은 『19세기말 식민지에서 유행하던 음악스타일을 본떴다』고 말했지만 영화속의 피아노선율에는 그만의 고유한 색깔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가 새 음반에 올린 세 협주곡은 「색소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하프시코드 협주곡」과 「트롬본 협주곡」.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트롬본주자 크리스천 린드버그의 의뢰로 쓴 「트롬본 협주곡」이다. 니만은 『17세기 영국의 「거친음악」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거친음악」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을 쫓아내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물통 냄비 등을 두드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전통을 뜻하는 말. 그러나 작품 자체가 듣는 이를 「쫓아낼」정도로 거칠지는 않다.
독주자인 트롬본은 요샛말로 「이지메」를 당하는 주인공이 되고 다른 금관악기와 현악기는 그에게 동정을 보내는 반면 목관악기와 타악기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이웃들로 표현된다. 협주곡의 원어인 「콘체르토」가 조화와 대립을 함께 상징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니만이 선택한 「거친음악」은 협주곡의 특성을 표현하는데 꼭 맞는 줄거리인 셈.
작품은 전형적인 「미니멀리즘」수법으로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미니멀리즘이란 단순한 동기나 주제를 몇차례고 반복하며 변화를 주는 기법. 그러나 니만의 작품은 다른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이 흔히 보여주던 딱딱하고 「즉물적」인 세계에서 한걸음 벗어나 있다. 화음의 미묘한 연결과 음빛깔의 변화를 중시하는 그의 작품은 19세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펼쳐냈던 세계와 작지만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