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亞신춘문예 영화평론]김소영/「언어 연금사」기대

  • 입력 1997년 11월 25일 19시 46분


이 겨울, 새봄처럼 신선한 재능을 찾아내는 동아일보 신춘문예가 영화비평을 보듬어 안는다는 소식은 경쾌하고 반갑다. 영화가 문화예술의 주변부로 밀려나 홀대받던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70년대 유신정권으로부터 외국영화 수입권을 얻기 위해 만들어지던 「문예 영화」들. 문예의 향기를 피우기는커녕 대부분 창고로 직행했던 그 수상쩍은 영화와 호스티스영화들 때문에 한국영화는 예술과 문화의 서자로 내려앉았는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일변도의 수입영화도 이에 단단히 한 몫을 했다.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사정이 달라졌다. 예술영화전용관이 생기고 국제영화제가 줄을 잇고 또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문학이나 철학과 같은 「도도한 장르」의 전문가들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사유를 펴는가 하면 「영화 평론가」라 적힌 명함을 건네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뿐인가. PC통신에 들어가면 사이버 영화평론가를 수없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한쪽에선 우려의 소리가 높다. 『영화평론가는 아무나 하나?』 물론 아무나 될 수는 없다. 영화평론가협회가 있고 영화 전문잡지에서도 몇차례 신인 영화평론가를 탄생시킨 예가 있다. 그러나 그 소식이 영화동네 담밖을 넘어가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이같은 비판은 나를 포함한 엇비슷한 세대의 평론가들이 공식적 승인도 받지않고 영화평을 쓰기 시작한 때문인 듯 싶다. 그래서 보다 다양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간지 신춘문예에서, 그것도 가장 오랜 역사와 권위를 지닌 동아일보에서 영화평론을 포함시킨 것은 공인된 영화평론가를 등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축할 만하다. 독자에게는 그 신인 평론가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즐거움이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다만 여기서 태어난 영화평론이 영화가 다른 고급 문예물의 서자로 맴돌면서 얻어낸 「역설적 미덕」을 축소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화평론가들의 평문은 좀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고저가 다른 장르만큼 심하지 않아 읽기 쉽고 쓰기도 어렵지 않다. 예술영화와 대중영화의 틈이 문학이나 미술 음악처럼 크지 않은 것도 영화매체의 장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영화가 다른 장르와 나란히 경선을 벌이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예술이 걸친 무거운 옷을 빌려입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도 생긴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주시를 받으며 탄생한 평론가는 아마도 그런 권위보다는 사회적 책임감을 더 깊이 느끼며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이 커졌다는 의견은 이제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통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고민하는 비평가가 나오길 바란다. 고급과 저급을 횡단하는 영화의 재미를 정확한 말로 바꾸어 낼 수 있는 언어의 연금사(鍊金師)이면 더욱 좋겠다. 김소영<영화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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