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의 김과장. 집에서 오는 전화나 호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내용도 확인하기 전에 기분부터 나빠진다. 아내가 자기를 찾아서 좋은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잔소리 아니면 당신 부모는 왜 그 모양이냐는 원망, 아이들이 속을 썩이고 있으니 들어와 혼내주라는 부탁, 돈 좀 달라는 요구 등등. 한번도 위로나 칭찬의 말은 없고 끝없는 요구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아내 쪽에서도 할 말은 있다.
『그럼 누구와 상의하느냐. 돈 벌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해결해줘야지 지나가는 남자 붙들고 하라는 말이냐. 직장 일이 힘든 것은 알지만 매일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는 남편에게 말할 시간이라곤 없으니 낮에 전화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처럼 서로에게 끝없이 요구하지만 채워지지 않는데 따른 분노와 미움이 쌓이기 때문이다.
결혼생활 시작 때 흔히 범하는 잘못이 한가지 있다. 배우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채워줄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다.환상이 깨어지는 순간 싸움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부모가 완벽한 인간이기를 기대하다가 그렇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더구나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채워주고 내가 바라는 만큼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부부든 부모든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불완전을 메워주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고 발전시키려 노력할 때 비로소 상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서로를 이해하기만 하면 진지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도 어떻게든 도우려 애쓰는 법이다.
양창순(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