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완성은 없다. 미술이건 인생이건 언제나 새로움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 시대가 요구하는 절실한 새로움을 위해 한길을 내달아온 서양화가이자 전위예술가 김구림(金丘林·61)씨.
유화 판화 액션페인팅 퍼포먼스 비디오아트 일렉트릭아트 무용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40여년을 달려온 그에게 딱히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일지도 모른다. 새로움을 향해 부단히 떠나고 돌아와 또 떠날 채비를 차리는 「방랑과 편력」의 예술가.
그가 올초 일본 미국편력을 마치고 서울 정착에 들어갔다. 그리곤 얼마전 경기도 장흥 토탈미술관에 대형설치작품 「뮤지움 카페」를 만들었다. 폐차 앞으로 그어진 노란 타이어자국, 줄줄이 매달린 중고TV, 철판으로 만든 보트, 녹슨 드럼통…. 환경을 다룬 이번 작품은 그에게 무슨 의미일까.
『미술이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절실한 것을 찾아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고 그 새로움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절실한 것은 환경이 아닐까요』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58년 대구. 그의 첫 전시회는 평범했다. 그러나 사물을 늘 새롭게 보려했던 그에게 전통기법은 불만스러웠다. 삶과 예술의 본질을 들여다볼수 있는 새 기법을 찾아나섰다. 베니어판에 그림을 그린 뒤 불태우기도 하고 벗은 몸으로 「선(禪)」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파격의 연속. 70년 봄, 드디어 한강변에서 장대한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강둑 여러곳을 삼각형모양으로 불태우고 검은 흔적을 남기는 전위예술의 극치.
그무렵 생활은 필름 한통 살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하지만 정작 힘든 것은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특히 69년 만든 전위예술모임 「제4그룹」이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고 다음해 해체된 것은 큰 시련이었다.
『내가 과연 올바른 미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주변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냉정한 평가를 받고 내가 미친 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숨을 돌려 자신을 돌아보곤 73년 열정 하나만 믿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그는 설치미술을 통해 일본 화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귀국후 81년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화단에 현대식 판화를 소개하고 판화공방을 열었다. 그러나 주변의 질시 속에서 빚더미만 끌어안은채 공방은 망해버렸다.
절망할 틈도 없이 85년 다시 미국으로 갔다. 뉴욕, 그 엄청난 빌딩숲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자연을 깨달았다. 90년대 들어 자연스럽게 동양적 세계관에 눈을 떠 「음양」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서로 무관해보이는 것을 한 화면, 한 공간에 배치해 그것들이 서로 한 뿌리임을 말하려 했다. 인간의 욕망, 전쟁과 폭력 등 인간사의 명암을 한데 끌어안으려는 것이다.
지금도 팔리는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 「돈을 위해 미술을 해선 안된다」는 생각만큼은 옛것 그대로이다.
뇌출혈로 인한 반신불수의 시련을 딛고 일어서 또다른 새로움을 찾아나서는 영원한 자유인 김구림. 오늘도 저 남해안 이름없는 바위섬에 설치미술 한점 멋드러지게 세워보고 싶은 꿈으로 살아간다.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