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진제도 악용 실태]의사 바꿔치기,의료계 신뢰도 먹칠

  • 입력 1997년 10월 22일 20시 36분


서울 경희의료원과 상계백병원 등 유명 종합병원의 일부 전문의가 특진환자를 받은 뒤 실제 수술은 다른 의사가 집도하도록 한 사실(본보 22일자 39면 보도)이 검찰수사에서 밝혀져 전체 의사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키고 있다. 환자가 마취상태에 빠진 뒤 특진의사가 수술실에서 빠져나오고 다른 의사가 대리수술을 하는 「바꿔치기 특진」은 병원측의 수입증가 수단으로 이용돼오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 주변의 지적. 실제로 이번에 적발된 전 경희의료원장 유명철(兪明哲·54)씨는 한달에 특진비로만 평균 7억여원을 병원측에 벌어 준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정형외과의 국내 권위자인 유씨에게서 어깨 특진수술을 받았던 장세동(張世東)전 청와대경호실장도 실제로는 수술팀의 다른 의사에게서 수술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서울지검 북부지청 관계자는 말했다. 바꿔치기 특진을 한 의사들은 검찰에서 『이는 오랜 관행으로 대부분의 종합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수술에 참여하지 못했을 경우에도 수술의 가장 중요한 사항에 대해 지시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특히 유씨는 이 문제를 놓고 담당 검사와 설전을 벌이다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다른 화가에게 그림의 개요를 설명하고 그림을 그리게 했다면 그 화가의 그림이 되느냐』는 추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어디까지를 특진행위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특진(지정진료)에 관한 지도사항 등에 따르면 임상실험을 위해 수련의에게 보조 수술을 맡기는 것은 무방하나 수술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는 것은 특진 행위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수술을 맡기더라도 최소한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수술만큼은 특진의사가 직접 시술해야 한다는 것. 이번 사건은 유명 의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병원 관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각 분야의 권위자일수록 집중되는 수술 요청, 외래환자 진료, 학생 실습강의 등 때문에 수술실에서 잠깐 지시를 내리고 실제 수술은 다른 의사에게 맡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 의료전문가들은 『무턱대고 특진을 선호하는 환자들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며 『이같은 특진 인플레가 결국 특진 비리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경희의료원과 상계백병원을 포함해 인근의 5개 종합병원을 조사, 대부분의 병원에서 바꿔치기 특진혐의를 포착했으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에 대해서는 입건을 유예했다. 〈이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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