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시민정신 현장]환경미화원의 고달픈 새벽

  • 입력 1997년 10월 16일 19시 50분


16일 0시반.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2동 주택가 골목. 쌀쌀해진 날씨속에 3명의 환경미화원이 소형 손수레로 쓰레기봉투를 가득 담아 큰길가로 옮겼다. 『차를 이렇게 대놓으니 리어카를 끌고 들어갈 수도 없고…』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는 이곳은 도시계획법상 「소방도로」가 나 있는 곳이나 길 양옆으로 빽빽히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는커녕 리어카 한대도 지나갈 수 없다. 미화원 송영설(宋榮卨·44)씨는 전날 밤10시부터 나와서 일을 시작했다. 쓰레기 압축수거차량(2t)을 골목으로 들여보낼 수 있으면 한번에 끝낼 일을 바퀴 하나가 달린 소형 손수레로 일일이 끌어내는 「이중작업」을 하느라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 각 가정에서 내놓은 쓰레기 봉투에는 대부분 뻘건 음식 국물이 담겨 있었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수도권매립지에서 물기있는 음식물쓰레기에 대한 반입을 철저히 막고 있는데도 쓰레기봉투의 내용물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쓰레기봉투에 재활용품과 산업쓰레기 등이 여전히 섞여 나오는 것. 이 때문에 미화원들은 쓰레기 수거작업보다 분리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뺏긴다. 수도권매립지의 주민감시위원은 미화원들에게 「무시무시한 존재」. 갈고리를 들고 일일이 쓰레기 내용물을 검사하는 이들은 쓰레기속에 재활용품이나 조각조각 자른 천 구두밑창 등 가내공업쓰레기가 섞여 있을 경우 사흘간 트럭반입을 금지시킨다. 청소작업반장 이재두(李載斗·54)씨는 『트럭반입 정지조치를 당하면 해당 쓰레기를 수거한 미화원이 징계를 받아 3일간의 일당을 날리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쓰레기가 마구 뒤섞인 불량 봉투를 수거하지 않을 때는 「왜 골목길을 이렇게 지저분하게 놔두느냐」는 항의가 쇄도해 울며겨자먹기로 청소를 한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청소원들이 골목에 들어간 사이 청소차량에 불법쓰레기를 몰래 던져 넣고 가는 「얌체 시민」도 있다. 이들은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무단투기를 하면서 세금고지서 쪼가리 등 신분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는 넣지 않기때문에 적발하기도 힘들다. 수거작업이 밤을 꼬박 새워 오전 7시경까지 진행되는 가운데 6시경부터 출근하려는 차량들이 몰려 나왔다. 『이렇게 골목을 꽉 막고 있으면 어떡하느냐』 출근길이 바쁜 시민들은 좁은 골목길에 서있는 쓰레기 수거차량에 욕설과 항의를 해댔고 이 때문에 수거작업은 더욱 늦어졌다. 〈전승훈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