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名盤,비자나무 최상품 2억 『집한채 값』

  • 입력 1997년 8월 15일 20시 22분


바둑 애호가라면 한번쯤 갖고 싶고 두고 싶은 명반(名盤)의 조건은 무엇일까. 「8백년 묵은 비자나무」 「억대를 호가하는 바둑판」 등 다분히 값으로 명반을 흥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문가들은 재질이나 가격 외에 명반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매우 다양하다고 지적한다. 명반의 첫번째 조건은 어떤 나무를 사용했느냐는 것. 돌을 놓을 때의 감촉과 탄력성 그리고 윤기와 향기 색상 등 풍기는 「품위」가 나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비자나무는 최상품으로 꼽힌다. 한국기원 鄭東植(정동식)사무국장은 『30년전 부산의 한 인사가 비자나무 바둑판을 1백60만원에 구입한 적이 있다』면서 『당시 집 한채 가격이 1백만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비자나무 바둑판은 엄청나게 비싼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비자나무 최상품이 2억여원에 정찰 판매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3천만원 이하만 정찰 판매되고 그 이상은 「상담」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실정. 한일바둑상사 文麟桓(문인환·64)사장이 94년 비자나무로 제작한 순반(舜盤)은 억대에 팔려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비자나무 외에 최근에는 북미산인 옐로시더와 스프러스 수종이 고급 바둑판의 새 주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두번째 조건은 탄력성과 내구성을 결정짓는 나뭇결. 전문가들은 바둑판의 상하좌우 네방향에 고르게 결이 난 사방정(四方柾)과 천지정(天地柾)을 최상품으로 꼽는다. 건조 등 제조과정의 정성도 명반 선정의 조건이다. 나무 두께에 따라 최소 5년이상 건조해야 하고 극상품은 10년이상 건조한다는 것. 재질뿐 아니라 「역사성」도 중요한 조건이다. 金玉均(김옥균)이 1894년 암살되기 3일전까지 일본에서 사용했던 바둑판은 중등(中等)품 비자나무로 제작됐지만 역사적 가치 때문에 명반대열에 올라 있다. 이 바둑판은 1백년이 지난 뒤 한국기원에 기증됐으며 여전히 상태가 좋다. 40년대 「살아있는 기성」으로 추앙받던 吳淸源(오청원)9단과 기다니(木谷實)9단이 한국에서 바둑을 둔 뒤 친필휘호를 남겼다는 바둑판도 소장자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명반으로 회자되고 있다. 현재 명반으로 분류되는 바둑판은 그러나 모두 일본식이다. 전래의 순장바둑판은 내구성 보다는 풍류를 중시해 오랫동안 보관된 것이 많지 않다. 오동나무로 제작된 순장바둑판은 돌을 때릴 때 소리가 울리도록 바둑판 내부를 비어둔 것이 특징이었다. 문사장은 『1백만원 이하의 바둑판도 평생 사용할 수 있고 멋이 있다』며 『값으로만 명반을 결정하는 문화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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