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 패션거리. 승용차를 타고 압구정로를 따라서 갤러리아백화점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건물들의 호화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보그너 도나카렌 프라다 미소니 조르지오아르마니 에스카다 아쿠아스쿠텀 크리스티앙디오르…. 세계 최고급 브랜드의 패션매장 20여개가 길가에 늘어서 있다. 모던한 디자인의 건물에다 화려한 쇼윈도, 내부에는 은은한 조명에 쫀쫀한 카펫이 깔려 있어 이국풍을 더한다. 서쪽 끝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도 내부가 유럽과 미국의 웬만한 고급 백화점보다 더 화려하다. 이 백화점에는 최고급 외국 브랜드의 패션매장 50여개가 입점해 있다.》
최근 청담동에서 문을 연 매장은 이탈리아의 프라다. 방수천 소재의 핸드백과 배낭으로 유명하다. 프라다는 지난달 6일 아시아 최대 규모인 1백50여평의 2층짜리 독립매장을 열었다. 5월엔 이탈리아의 하우스 오브 플로렌스와 미국의 J크루가 독립매장을 열었고 갤러리아백화점에 프랑스의 샤넬, 마틴싯봉 등 15개 매장이 신규 입점했다. 크리스티앙디오르는 내년에 한국지사를 통해 직영점을 낼 예정이다.
외국 최고급 브랜드 업체가 잇따라 청담동에 매장을 내고 있다.
이 업체들은 그동안 한국 업체를 통해 상품이나 라이선스 브랜드를 수출해 왔으나 최근엔 한국 업체와의 관계를 끊고 지사를 설립, 직영점을 내거나 대규모 독립매장을 열고 있다. 이들 업체가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무엇보다 한국 여성들의 구매력에 반했기 때문. 파리 밀라노 등의 패션가를 누비며 「싹쓸이 쇼핑」을 하는 한국인들을 놓칠 수 없는 것. 한국 주부들은 국내에서도 지아니베르사체의 2백70만원짜리, 샤넬의 4백17만원짜리여름투피스를주저없이산다.
프랑스 패션계의 부흥운동과도 관계가 있다. 파리의 명품 브랜드들이 이탈리아 브랜드에 밀리자 라이선스 판매를 중단하고 직영점 운영을 통해 옛 명성을 회복하자는 것. 그래서 최근 직영점을 낸 브랜드 중엔 프랑스 것이 많다.
외국 업체들은 백화점에 입점할 경우 「특별 대우」를 요구하기도 한다.
샤넬은 3, 4개 백화점에 파격적인 요구를 했다. 1층 정문 바로 안쪽에 1백∼1백50평 규모로 매장을 마련할 것, 인테리어 비용은 백화점이 부담할 것, 임대료는 다른 입점업체보다 적게 받을 것 등.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이 80평 규모로 매장을 꾸며주는 조건에서 샤넬을 끌어안았다. 샤넬은 개장 첫날 중소백화점의 하루 총매출액과 비슷한 1억6천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두 달이 지난 지금도 하루 평균 2천5백만원의 매상을 올리고 있다.
독립매장은 세계 또는 아시아 최대 규모가 많다. 캘빈클라인과 조르지오아르마니 등의 독립매장은 본사의 임원진이 감탄할 정도의 호화매장이다. 이들 매장에선 인기 연예인과 부유층만 대접하는 「콧대 상술」을 쓰기도 한다. 프라다의 직원들은 웬만한 고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건국대 김시월교수(소비자학)는 『나라마다 각별히 선호되는 브랜드가 있으나 우리의 경우 거의 모든 해외 최고급 브랜드가 인기』라면서 『일부 불건전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과시용으로 최고급 브랜드를 사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성주·이나연기자〉
▼ 일부 주부의 「과시병」 ▼
주부 김모씨(36·서울 압구정동)는 요즘 샤넬부틱에 개근을 하다시피 찾아간다.
그는 지난달 이 매장에서 4백여만원짜리 투피스를 골랐다가 낭패를 봤다. 한 50대 여성이 자신이 먼저 고른 옷이라며 쏘아부쳤던 것. 며칠 전에 두 주부가 옷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드잡이까지 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한 벌밖에 남지 않은 그 옷을 포기했다. 그날 밤 그 투피스가 눈에 밟혀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매장 직원으로부터 투피스가 들어오면 전화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직접 확인하러 매일 들른다. 백화점측에 따르면 김씨처럼 매일 샤넬부틱에 오는 이가 20여명에 이른다.
서울 강남지역과 부산 대구의 일부 주부들 사이에 「명품 바람」이 일고 있다. 샤넬 지아니베르사체 질샌더 등의 옷, 에르메스나 살바토레페라가모 루이뷔통 등의 가방, 구치나 발리의 신발은 일부 주부들이 신분을 과시하는 보증수표로 자리잡고 있다. 선진국에서도 일반인은 염두에 두지 못하는 고가 브랜드 제품이 「천세나게」 팔리고 있는 것.
주부들의 최고급품에 대한 허상도 적지 않다. 올초 독일의 질샌더 옷이 인기를 끌자 외국에선 실패한 스타일의 블라우스마저 품귀현상을 빚어 본사에서 놀라기도 했다. 영국 B사의 옷과 잡화는 외국 패션계에선 최고급품의 반열에 넣어주지 않지만 유독 국내에서만 고가에 팔리고 있다. 스위스의 O시계도 마찬가지. 프랑스의 의류와 잡화가 본토에서 이탈리아 브랜드에 밀려 약세를 면하지 못하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강세를 보이는 것도 특이하다.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