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난생 처음 바다를 보았다. 때마침 만난 조개에게 묻는다. 『바다의 비밀을 말해봐』닭이 조개를 쪼아대며 다그치지만 입이 꽉 닫힌 조개는 말이 없다. 『어서 바다의 비밀을 말하라니까』 계속 쪼아대며 고문하지만 조개는 묵묵부답이다.
포기하고 가던 닭은 입이 벌어진 조개를 만났다. 『바다의 비밀을 말해봐』 말없는 조개를 쪼으려니 조개의 혀가 없다. 다른 조개들도 마찬가지. 텅 빈채 모두 혀가 없다. 닭이 혼자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입벌린 놈들은 죄다 혀가 없고 혀 있는 놈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걸 보면 바다의 비밀이 엄청나긴 엄청난 모양이야』
「대설주의보」의 시인 최승호가 한보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단숨에 써내려간 우화시(寓話詩) 「바다의 비밀」. 번개처럼 스치는 비수의 감촉 뒤에 서늘하게 남는 풍자와 해학.
최근 시작(詩作)에서 우화의 세계에 깊이 맛들인 최승호. 그가 마음먹고 쓴 우화집이다. 「황금털 사자」(해냄).
시인이 쓰는 우화. 언뜻 승천(昇天)을 머뭇거리는 이무기의 몸짓을 연상시킨다. 생략의 문법인 시(詩)가 확산의 문법인 산문을 「기웃거리는」 우화는 그래서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는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비상하는 이무기의 부력(浮力)은 세속의 진흙탕에 발을 담근 몸무게가 너무 버겁다.
이같은 해석에 그는 사뭇 우의적(寓意的)인 웃음을 흘린다.『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우화의 얼개가 어리석음으로 싸여있다면 뇌관에서 폭발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웃음이다. 그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날 때 나오는 웃음은 모든 것을 무화시키면서 초월하는 순간 빈자리가 따스하게 채워지는 안도감』이라고 설명한다.
봄날, 무덤 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할미꽃에게 햇살이 묻는다. 『할매, 할매는 왜 무덤만 보고 있습니까』 할미꽃의 대답. 『무덤 속의 망자도 봄이 되면 꽃을 보고 싶은데 모두 망자를 외면한 채 하늘만 보고 있다오』봄볕처럼 따뜻하게 가슴을 간질이는 웃음.
패션쇼를 하듯 공작새가 화려한 날개를 펼치고 있을 때 공작새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여기서는 똥구멍이 잘 보이는구나』명주가 「찢기는」 듯한 야유다.
짓궂은 동화(童話)도 있다. 거대한 몸집의 황소개구리에게 놀란 도마뱀들이 바위 그늘에 모여서 콩알만한 심장을 할딱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네 조상님은 공룡이시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