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장정일,시인-소설가 비평「펄프에세이」 펴내

  • 입력 1997년 4월 29일 09시 03분


「형사피고인」 장정일씨(35). 음란문서제조 및 배포 혐의로 불구속기소. 지난해말 외설시비를 불러일으킨 책 「내게 거짓말을 해봐」 출간의 회오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84년 첫작품 발표 이후 매번 찬사와 비난을 한몸에 받아온 장씨. 중졸의 학력, 소년원 수감. 세상이 지옥 같고 부모가 악마 같아 한때 「여호와의 증인」에 경도되기도 했다. 라디오 FM을 유일한 벗 삼아 최고의 DJ를 꿈꾸었던 청년. 장씨의 요즘 하루하루는 살아온 서른다섯해 만큼이나 고단하다. 지난해말 프랑스에서 급거 귀국, 검찰 출두 이후 대구 고향집에 내려가 있는 장씨는 두문불출이다. 혼자 술과 음악으로 시간을 보낸다. 물론 창작활동도 중단했다. 그는 지금까지 두차례 공판을 받았다. 변호사 없이 스스로 검사의 공격을 방어한다. 마광수씨의 과거 법정 답변을 참고했다. 공판 전날이면 대구에서 올라와 서울형사지방법원이 있는 서울 서초동 여관방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공판이 끝나면 서둘러 내려간다. 세상과의 절연(絶緣)을 꾀하면서도 책 한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작가의 운명인가. 「펄프 에세이」(하늘연못 발행). 「펄프 에세이」는 문화현상에 대한 단상, 국내외 작가론 시인론을 담았다. 화제를 모았던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순발력 넘치는 단상 중심의 독후감이었다면 이 책은 완결미 있는 안정된 글쓰기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해석의 깊이, 왕성한 독서편력의 흔적도 드러난다. 문화에세이 부분에서는 신세대론, 록 아티스트와 마약의 관계 등 그동안의 「장정일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가론 시인론은 다르다. 이문재 최윤 신경숙 임철우 이인화 등 우리시대 대표적 시인 소설가들의 작품에 관해 나름의 적확(的確)한 처방을 내리고 있다. 외설 시비에 휘말리는 「장정일」은 또 누구인가 싶다. 그럼에도 그는 프랑스에 가 있는 부인(소설가 신이현씨)에게조차 이 책을 읽지 말라고 했다. 자의식의 발로인가, 외로움의 표현인가. 언제쯤이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까. 그는 내년엔 소설을 쓸거라고 말한다. 『작가는 써야 한다면 씁니다. 어떤 희생과 고난을 감수하고라도 써야 합니다. 사념의 자유죠』 〈이광표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