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소년은 꿈이 없었다.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힘든 세상에 ‘꿈’은 사치였다. 그에게 가장 큰 꿈은 소시지 한 조각과 세발자전거 한대였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국의 후원자가 매달 15달러씩을 보냈다. 보낼 때 마다 편지를 써서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얘야 너의 꿈은 뭐니?”
소년은 15달러를 계속 받기 위해 뭐라도 답해야 했다. “야구선수”라고 답했다가 “소방관”, 또 어느 날은 “축구선수”라고 적어 보냈다. 답장을 할 때마다 꿈은 계속 바뀌었지만 후원자의 답장은 늘 같았다.
“너는 최고의 야구선수가 될 거야.” “너는 최고의 소방관이 될 거야.”
그 질문은 결국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꿨다. 꿈을 생각해 본 적 없던 소년은 어느 순간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설계하고 있었다.
해외 여행도 쉽지 않던 시절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면역학과 에이즈(AIDS)연구분야에서 아시아 최고의 권위자가 됐다.
그 소년이 이제는 전 세계 아이들을 돕는 조직의 수장이 됐다. 바로 세계 최대 국제구호개발 NGO 중 하나인 월드비전 한국법인의 조명환 회장이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이 1995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세인트폴에 있는 에드나 여사의 집을 40년 만에 방문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후원 아동에서 세계적 면역학 권위자로
조 회장의 인생은 마치 누군가 “넌 남을 위해 살아가야 돼”라고 이끌어주는 듯 흘러갔다.
언어의 장벽 속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그는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결국 대학에서 1년 만에 제적당했다.
차마 주변에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공원 벤치로 향했다.
그때 손을 내민 사람이 있었다. 애리조나대의 한 교수였다. 교수가 제안한 건 당시 이름도 생소하고 취업도 보장되지 않던 학문, 바로 ‘에이즈 연구’였다. 에이즈라는 병이 세상에 이제 막 알려진 시기였다.
이끌리듯 시작한 이 연구는 훗날 전 세계적인 에이즈 팬데믹과 맞물려 그를 아시아 최고의 면역학 전문가이자 ‘아시아 에이즈학회 회장’의 자리로 이끌었다.
● 50만원이 없어 아이의 삶 포기
에이즈를 연구하던 시절 그는 방콕의 한 적십자사에서 에이즈 무료검진을 하다가 30대 남자를 만났다.
에이즈 양성으로 나온 이 남자는 임신중인 아내가 있다고 했다. 부인과 아이도 양성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남자는 가족 검사는 안하겠다고 거절했다.
이유를 묻자 “검사 해봐야 가난해서 치료를 못 받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 태어난 아기는 실제 양성이었다.
조 회장은 무료로 아이 치료에 나섰다. 당시 최초로 개발됐던 에이즈 치료약을 투여해 아이를 완치하는데 성공했다. 그때 들었던 비용이 50만원 이었다.
“50만원만 있으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조 회장은 그때부터 모금 활동을 통해 에이즈 퇴출 운동에 나섰다. 세계적 자산가들과 UN 기구를 찾아다니며 빈곤 국가들을 에이즈의 공포에서 구해내는 일에 앞장섰다.
에드나 넬슨이 조명환 회장에게 보낸 편지. ● 고집스러운 후원금…이유 있었다
조 회장이 미국에서 박사가 되고, 에이즈와 면역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교수가 될 때 까지도 어린 시절 그를 도왔던 미국의 후원자 에드나 넬슨(Edna Nelson) 여사는 매달 15달러씩을 보냈다. 고집스러운 후원금은 무려 45년 동안 이어졌다.
솔직히 귀찮았다. 이미 경제적 여유가 생긴 그에게 15달러는 큰돈이 아니었다. 수표로 오는 후원금은 매번 은행에 가서 바꿔야 했고, 사용처를 적어 답장도 해야 했다.
“도대체 왜 계속 보내시는 걸까?” 처음엔 몰랐다.
조 회장은 교수 시절 네브라스카의 작은 시골 마을로 후원자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넬슨 여사는 평생 비행기 한번 타본 적 없고, 은퇴 후 편의점 청소를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백발의 할머니였다.
그제야 15달러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건 위대한 ‘가스라이팅’이었다.
“명환아 너는 후원 아동 출신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마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흘려보내지 말고, 너도 언젠간 내가 한 것처럼 베풀어라”
이 메시지를 45년 동안 무의식에 새겨 넣기 위해 15달러의 후원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라고 조 회장은 회상했다.
조명환 회장이 2022년 케냐 오실리기 마을을 방문해 현지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다. ● “후원 필요 없는 세상 만드는 게 목표”
조 회장의 명함 뒷면에는 월드비전의 철학이 적혀 있다.
‘후원을 멈추는 후원단체’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 더 이상 외부의 도움과 후원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월드비전 직업학교에서 사진 기술을 배워 팔레스타인 최고의 사진 작가가 된 인물, 미용 기술을 배워 미국의 유명 미용사가 된 인물이 있다. 이들은 2층 집을 지어 조 회장을 초대했다.
조 회장은 월드비전에 온 후로 “피니쉬 더 잡”(Finish the Job)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끝내자. 우리가 실업자가 돼도, 월드비전 문 닫아도 이 세상이 후원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된다면 그게 우리가 추구하는 바 아니겠어요?”
미국 월드비전은 르완다에서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360억원을 들여 더 이상 그 나라에 우물을 파줄 필요가 없는 수준으로 식수 문제를 해결해 버렸다. 다음으로 한국 월드비전과 함께 잠비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 ● 자신의 삶과 온몸으로 ‘희망’ 증명
이달 초 바티칸 교황청에서 세계적인 석학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컨퍼런스가 열렸다. 주제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것인가”였다. 조 회장은 이 자리에 기조연설(Keynote Speech)자로 초청받았다. 조명환이라는 사람의 인생은 그 자체로 주제에 답이 되었고, 모든 참석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도움이 필요한 후원 아동에서 세상을 치유하는 면역학자로, 그리고 다시 전 세계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조명환 회장.
누군가의 조건 없는 사랑과 ‘선한 집착’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내는지, 조 회장은 자신의 삶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함께미래 리더스’는 공익 현장의 리더들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왔는지, 그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통해 미래를 묻는 인터뷰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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