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환경-배당금 공약 걸고 ‘한 표’ 호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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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총선 여의도 입성 기대하는 이색정당들

4·15총선을 60여 일 앞두고 이색 정당들이 쏟아지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첫 선거인 만큼 국회 진입 문턱이 이전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6일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 총 39개다. 창당을 목표로 등록된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도 22개다. 이들이 모두 창당을 완료할 경우 총 61개의 정당이 21대 총선을 준비하게 된다. 4년 전 20대 총선에서는 등록 정당 27개 가운데 21개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냈다. 이번에도 등록 정당 모두가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있다. 다만 61개 정당이 모두 후보를 낼 경우 투표용지 길이만 88.7cm에 이르게 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개표를 위한 투표지 분류기에 들어갈 수 있는 투표용지 최대 길이가 34.9cm다. 24개 정당이 넘으면 투표용지를 나누거나 수(手)개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외 군소 정당들의 ‘무기’는 기성 정당과 차별화된 이색 선거 공약. 이를 앞세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기 위한 정당 득표율 마지노선 3%를 돌파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기상천외한 공약들이 자극성에만 초점을 뒀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70만 표 수준의 정당 득표율 3%를 넘기 위한 현실 정치의 벽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정치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군소 정당 “4·15총선은 천재일우의 기회”

선거를 준비 중인 원외 군소 정당 대표들은 이번 총선을 “군소 정당, 이색 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선거법 개정에 따라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을 정당이 확보한 득표율과 지역구 의석수를 연계해 배분하는 탓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구 의석수가 많은 기성 정당들이 할당받는 비례대표 의석수는 적어진다. 반대로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하기 힘든 군소 정당들은 정당 득표율을 최대한 끌어올려 국회 입성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여론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군소 정당들은 이색 공약을 앞세운다. 특히 복지 예산 배분은 ‘단골’ 창당 목표다. 결혼정보회사 선우를 설립한 이웅진 대표가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결혼미래당’은 3000만 원의 결혼장려금 지원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낮은 결혼율과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창당 이유를 밝혔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허경영 씨는 ‘국민배당금 지급’ 공약을 앞세워 국가혁명배당금당(배당금당)을 창당했다. 20세 이상 국민에게 1인당 월 150만 원,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추가로 월 220만 원 지급 등을 공약한 것.

환경·이념·종교 등 특정 가치를 내세워 표를 호소하는 정치 세력도 있다. 페트병살리기운동본부 대표로 활동해온 ‘가자환경보호당’ 창준위 권기재 대표는 ‘탈이념·친환경’을 내세웠다. 권 대표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국회의원을 대거 진출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브랜드뉴파티’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를 거치며 ‘부패한 진보’와 ‘뻔뻔한 보수’에 환멸과 염증을 느낀 2040 청년 모임으로 출발했다. 조성은 뉴파티 창준위 대표는 “이념 지향적인 기성 정당을 대체해 세대통합형 정책 정당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라고 밝혔다.

이 밖에 한국의 규제환경에 지친 정보기술(IT)벤처·스타트업인들이 주축이 된 ‘규제개혁 비례당(가칭)’,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통해 핵무기를 제조하겠다는 ‘핵나라당’ 등도 창당을 준비 중이다.


○현실 정치의 벽, ‘정당 득표율 3%’ 그리고 ‘돈’

창당 열풍이 거세지만 군소 정당의 국회의원 배출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특히 ‘정당 득표율 3% 이상 득표 시 의석 배분’이라는 공직선거법상 ‘봉쇄 조항’은 넘어서기 힘든 벽이다. 충청의 맹주였던 김종필 전 총리(JP)의 10선을 막아선 것도 이 조항이다. 17대 총선에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정당득표율은 2.82%에 그쳤다.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던 JP는 선거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전국 조직 기반을 갖췄던 정당들의 비례대표 의석 확보 실패 사례도 많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노회찬 전 의원을 주축으로 창당했던 진보신당은 18대 총선에서 득표율 2.94%를 기록했다. 20대 총선에서 대형 교회들의 지지를 받았던 기독자유당도 득표율은 2.63%에 머물렀다.

돈도 문제다. 군소 정당 창당 과정에 여러 차례 관여한 국회 보좌진 출신 A 씨는 “결국 돈이 문제다. 돈만 있으면 각종 지역 내 ‘○○ 모임’ 등 조직 명부를 살 수 있다”며 “명부만 있으면 당원을 모아 창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부 속 한 사람이 이 당 저 당에 당원으로 등록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중 당적 문제에 대해서는 “수사 대상이 되지 않는 한 검증하는 절차는 겪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관위도 관련 사실을 알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창당 과정에서 당원 명부 중복 여부가 확인될 경우 등록 취소요건이 된다. 다만 관련 제보가 있어 수사가 진행될 때 확인한다”고 밝혔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명멸을 거듭한 원외 군소 정당은 수도 없이 많다. 선관위는 매년 등록된 정당들이 등록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최근 4년간 선거에 참여하지 않거나 시·도당 5개(당원 1000명씩) 미만이 될 경우 등에 해당하면 등록을 취소한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정치학) 교수는 “정당 득표율 3%를 얻으려면 70만 명 이상의 표를 얻어야 하는데 ‘정당의 파편화’가 특징인 이번 총선에서 세력이 없는 신규 정당들이 원내로 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군소 정당이 약진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다는 평가도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유권자들의 ‘사표 심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다양한 정당이 경쟁하면서 국회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윤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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