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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싱은 왜 홍콩서 발을 빼나[글로벌 이슈/하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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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싱은 왜 홍콩서 발을 빼나[글로벌 이슈/하정민]

하정민 국제부 차장 입력 2019-09-04 03:00수정 2019-10-0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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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국제부 차장
지난달 반중 시위대를 지지하는 듯한 광고로 큰 주목을 받은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 전 청쿵홀딩스 회장. 그는 1928년 광둥성 동부 차오저우(潮州)에서 태어났다. 인근 산터우(汕頭)와 함께 흔히 차오산으로 불린다. 차오산 사람들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화상(華商) 집단 ‘상방(商帮)’ 중에서도 불타는 성공욕, 단결력과 의리 등으로 유명하다.

이는 차오산의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 광둥성에 있지만 중심 도시 광저우와 꽤 멀어 주민들은 광둥어가 아닌 인근 푸젠성의 민난어를 쓴다. 다만 발음은 주류 민난어와 상당히 다른 방언이다. 즉 표준어, 광둥어, 민난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소수 언어를 쓰며 경계인으로 살다보니 절로 잡초 같은 생존력과 개척 정신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3월 포브스 기준 266억 달러(약 32조 원)의 재산으로 세계 28위 부자인 리 전 회장은 물론이고 마화텅 텐센트 창업주, 쑤쉬밍 태국 창맥주그룹 회장 등 세계적 거부들이 차오산 출신인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사업은 크게 부동산, 항만, 통신 분야로 나뉜다. 부동산과 항만업에는 중국과 홍콩의 근현대사가 짙게 녹아있다. 플라스틱 조화를 만들던 중소기업인이 거부로 도약한 시점은 1960년대 말. 문화대혁명 여파로 홍콩 부동산 값까지 급락하자 그는 알짜배기 부동산을 사들여 떼돈을 벌었다. 이후 1980년대 초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자 본토에서 거의 최초로 사업을 벌였다. 경제 성장에는 물류 인프라가 필수다. 그는 상하이 컨테이너 터미널, 광저우∼주하이 고속도로, 선전 매립지 개발 등 주요 사업에 모두 관여했다. 특히 1989년 톈안먼 사태로 서구 자본이 덩의 개혁 의지를 의심하자 자신의 화상 인맥을 동원해 대규모 투자도 이끌었다.

덩의 후임자 장쩌민과는 그야말로 ‘아삼륙’이었다. 장은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중국 최고 권력자 최초로 홍콩을 찾았다. 이후 수차례 홍콩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청쿵의 최고급 호텔 하버플라자에 묵었다. 리카싱 부자와 조찬을 즐겼고 두 살 어린 리 전 회장을 ‘친구’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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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르자 권력자와의 밀월이 끝났다. 둘은 오랜 악연이 있다. 시 주석은 1985∼2002년 푸젠성에서 근무했다. 당시 인프라 건설과 노후 지역 개발을 위해 청쿵 산하 회사와 계약도 맺었다. 하지만 새 국제공항 건설 예산이 과다 책정됐다는 비판에 계약이 틀어졌고 그의 경력에도 오점을 남겼다. 2012년 3월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도 시진핑은 중국이 내세운 렁춘잉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했지만 리 전 회장은 기업가 출신인 헨리 탕 후보를 밀었다. 2014년 9월 홍콩 민주화시위 ‘우산혁명’이 발발하자 시위대를 비판해 달라는 당국 요구도 거부하다 몇 달 후 마지못해 살짝 비판했다. 이 와중에 집권 후 내내 장쩌민의 상하이방 세력을 사실상 숙청해온 시 주석의 노선까지 겹쳐 둘의 사이는 알려진 이상으로 나쁘다는 것이 홍콩 및 중국 매체의 중론이다.

리 전 회장은 2010년대 들어 눈에 띄게 중화권 사업을 줄였다. 청쿵 본사를 조세피난처 케이맨제도로 옮겼고 과거 홍콩을 통치했던 영국 투자를 부쩍 늘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청쿵 전체 매출 중 홍콩의 비중은 10%에 그쳤다. 3년 전(16%)보다 꽤 줄었다. 본토도 9%에 불과했다. 그 자리를 유럽(47%), 호주·아시아(14%), 캐나다(12%) 등이 채웠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 이후 현재까지 영국 런던 증시에 상장된 청쿵 주가는 24% 하락했다. 같은 기간 홍콩 항셍지수는 23% 올랐다. 그런데도 지난달 영국 음식점 체인 그린킹을 또 33억 달러에 샀다. 돈보다 안정을 택한 셈이다.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91세 ‘재신(財神)’은 왜 탈(脫)홍콩에 여념이 없을까. 3년째 브렉시트 논란으로 아사리판인 영국이 사실상 독재 체제인 본토, 중국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양극화까지 심한 홍콩보다 훨씬 낫다고 본 때문이 아닐까. 중국과 홍콩 경제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평생 성공만 이어온 노(老)기업인의 촉이 또 맞을지 궁금해진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반중 시위대#리카싱#홍콩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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