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업이다”… 휠체어 탄 모습 보고 단박에 알아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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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씨 사기도피 3년만에 比서 체포… 호텔 투숙 첩보 들은 현지파견 경찰
오랜 도피생활로 사진과 달랐지만… 휠체어 이용 정보 미리 알아 검거

김대업 씨가 필리핀 이민청에서 영문 이름과 인적사항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경찰청 제공
김대업 씨가 필리핀 이민청에서 영문 이름과 인적사항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경찰청 제공
‘김대업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4시 30분(현지 시간). 필리핀 마닐라 말라테에 있는 한 호텔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한국 경찰 권효상 경감(33)은 호텔 로비에서 휠체어를 탄 남성을 발견했다. 권 경감이 6개월간 행방을 쫓아왔던 김대업 씨(57)였다. 2002년 대선 당시 ‘병풍(兵風) 사건’을 일으켰던 바로 그 김대업 씨다.

김 씨는 사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2016년 10월 필리핀으로 달아났다. 3년 가까이 이어진 도피생활 탓인지 검게 그을린 김 씨의 얼굴은 도피 전과 꽤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권 경감은 휠체어를 보고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현지 첩보활동을 통해 그가 허리는 약간 구부정해졌고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권 경감은 현장에 함께 있던 필리핀 이민청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호텔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던 김 씨를 붙잡았다. 김 씨와 휠체어를 밀어주던 한국인 남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급하게 택시를 잡는 등 도주하려는 낌새를 보였다고 한다.

경찰청 외사수사과는 2일 “말라테의 한 호텔에서 필리핀 이민청과 코리안데스크가 공조해 김 씨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해외로 도피한 한국인 범죄자 검거나 한국인이 피해자인 사건의 범인 검거를 지원하기 위해 외국의 경찰청으로 파견하는 경찰관이다. 필리핀에는 2012년 처음 파견됐다. 현재 필리핀에 6명의, 베트남에 4명의 코리안데스크가 있다.

김 씨는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이던 이회창 씨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수사팀이 은폐했다는 허위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다. 허위 제보로 김 씨는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김 씨는 또 강원랜드와 평창 겨울올림픽 경기 시설의 폐쇄회로(CC)TV 사업권을 따게 해주겠다며 한 업체로부터 2억500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2016년 검찰에 고소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김 씨는 2016년 10월 필리핀으로 달아났다. 검찰은 2017년 1월 경찰청 외사수사과와 필리핀 국제형사기구(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씨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1월 김 씨가 말라테에 자주 나타난다는 첩보가 권 경감의 귀에 들어온 것이다.

김 씨를 국내로 데려오기까지는 2, 3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2013년 불법 사행성 게임장을 운영한 혐의로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형의 집행유예는 김 씨가 해외로 도주하면서 취소돼 징역형으로 바뀌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씨가 국내로 송환되면 징역형 집행을 먼저 할지 법무부와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황성호 기자
#김대업#사기도피#필리핀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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