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무리한 방위비 압박, 한미동맹 균열 불러 北-中만 이익”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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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2020 신년 글로벌 석학 인터뷰
<1> 리처드 하스 美 외교협회장

《2020년에는 한국 총선, 미국 대통령선거, 대만 총통선거 등 세계 곳곳에서 굵직한 정치 행사가 예정돼 있다. 지지부진한 북-미 비핵화 협상, 미중 무역전쟁, 각국 반정부 시위,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발호 등의 여파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69), 기 소르망 전 프랑스 파리정치대 교수(76),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미 뉴욕대 교수(65) 등 세계적 석학들과 올해 국제사회의 향방과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

“한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한 미국의 (5배 증액 요구) 접근 방식은 불합리하고 우려스럽습니다. 반미주의를 부추길 수 있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한미 양국 모두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중국과 북한 같은 나라들에만 이익이 될 것입니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한미 간 긴밀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미 간의 난제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대해 “이 문제는 공평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에 주문했다.

하스 회장은 미국의 대표적 외교안보 싱크탱크이자 이 분야의 국제적 권위지 ‘포린 어페어스’를 발간하는 CFR의 수장으로 17년째 재직해 온 국제정치학계의 거물급 인사다. 그는 새해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말 전화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미 동맹과 북핵 협상에서부터 향후 전 세계가 직면하게 될 ‘국제질서 2.0’의 도전까지 폭넓은 이슈들에 대한 전망을 풀어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멘토로 알려지기도 했던 그는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외교안보 정책 패턴에서 이탈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행정부 취임 이후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크게 바뀌면서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신이 평가하는 지금까지의 세계질서는 어떤 것이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기준으로 과거 75년을 평가하자면 ‘비범한(extraordinary)’ 시대였다. 냉전은 말 그대로 차가운 상태를 유지했고 강대국 간의 전쟁은 없었다. 충돌과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성장, 번영,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인류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성공한 75년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존의 전통적이고도 익숙한 도전들에 다시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강대국 간 파워 경쟁이 다시 거세질 것이고 기후변화와 핵 확산, 테러, 사이버 위협 같은 글로벌 도전이 몰려올 것이다. 이런 ‘국제질서 2.0’의 시대에 우리가 직면할 가장 큰 과제는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함께 대응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국제질서 2.0’은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가.

“국제질서 2.0은 각국이 주권국가로 인정받고 그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시대를 말한다. 이제 한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 국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브라질 같은 국가는 아마존 밀림을 파괴하지 않는 것을 넘어 이를 막기 위해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야말로 자국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지난 75년간 글로벌 질서를 주도, 유지함으로써 얻은 이익이 비용이나 부담에 비해 훨씬 더 컸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이와 다르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기존의 모든 대통령이 형성해 놓은 패턴에서 이탈하고 있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고,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것이 일시적인 것(temporary)에 그치기를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문제들에 대해 조언하지 않는가.

“대선 캠프에서 만났을 때 대화를 나눴고, 이후에도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견 차이가 있다. 내가 때로 그의 정책에 비판적이라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정보기관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들과는 지금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신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은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강세를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미국 경제는 잘하고 있다. 낮은 금리와 재정적인 부양책 등의 영향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에너지 자립을 실현했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기술)혁신도 이뤄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무역 정책이 아니었더라면 미국 경제가 이보다 더 좋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의 무역 정책은 상당 부분에서 불확실성을 갖고 있고, 이것이 무역의 흐름을 감소시키면서 미국 경제의 성장 속도를 예상보다 늦추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향후 글로벌 질서는 바뀔까. 그의 재선 여부는 미국의 대(對)동맹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그가 재선된다면 현재 정책과 기류가 상당 부분 지속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계속되고 무역 일방주의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에 맞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현재 각자 다른 외교 정책을 내세우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무엇을 하려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외교 정책 분야의 경험을 갖추지 못한 인물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들은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전통적인 시각에서 동맹 및 파트너와 함께 가겠다는 더 큰 의지를 갖고 있다.”

―당신은 각 주권국가들이 글로벌 현안 대응을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기여를 더 높이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가.

“한국은 자국의 국가안보와 이해관계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북한과 중국, 일본을 어떻게 다룰지를 판단해야 한다. 나는 한국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일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대(對)일본 정책이 현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다시 꺼내 든 (과거사) 이슈로 인해 벌어진 양국 충돌은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한미일 3국이 북한의 위협, 중국의 부상 같은 역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부상은 어떻게 전망하는가. 미래 중국의 영향력이 미국을 넘어설 것으로 보는가.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는 강대국으로 올라서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정치, 경제, 환경, 인구 등 많은 분야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또한 중국이 다른 국가들의 이익에 무디게 반응한다며 베트남 같은 국가들이 반발할 것이다. 미국이 지난 75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역동적인 활동을 해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중국의 부상에 대해 확언하기 어렵다.”

―북-미 관계는 어떤가.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하면서 2020년에는 북-미 관계가 다시 ‘화염과 분노’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미 관계를 잘못 다뤄 왔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비현실적인 협상을 했다. 나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가능하거나 현실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북한은 앞으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군사적 대응 강화를 포함해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한미일 동맹국들이 나눠야 하는 대화다. 나는 ‘화염과 분노’ 같은 경고나 공허한 말에는 관심이 없다.”

―당신은 과거 제재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외교적 관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생각이 바뀐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제재가 정책의 도구가 될 수는 있다. 이와 함께 외교적 시도를 지속해야 하며, 그 외교의 목표는 현실적인 것이 돼야 한다. 북한 핵 활동의 동결 혹은 한계를 씌우고(ceiling) 그 대가로 부분적인 제재 해제를 하는 것에 동의하는 방식이다. 북한 핵 능력의 제한은 의미심장한 수준에서 검증 가능하게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비현실적인 협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북한의 역량은 더 증강됐다. 이제는 우리의 정책을 이렇게 커지는 위협에 맞춰서 조정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의 외교는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한국은 지난 75년간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성공한 국가 사례 중 하나다. 번영하는 민주주의와 가장 큰 경제국가 중 하나가 됐다. 한국인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 진짜 도전은 앞으로 한국 혼자서가 아니라 미국, 일본,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 어떻게 함께 더 큰 성공을 이뤄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한미 동맹의 강화와 일본과의 관계 복원이 필요하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도 필요하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리처스 하스#방위비 분담금 협상#글로벌 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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