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삐걱대는 동맹, ‘동행’은 고단하고 ‘홀로’는 끔찍하다

  • 동아일보

한미, ‘동맹 현대화’ 제가끔 속도전
전작권-유연성은 ‘맞물린 톱니바퀴’
속도-방향 따로 가면 이탈 부를 것
‘뜨거운 감자들’ 정교하게 조율해야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작년 초 한국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비유할 때만 해도 주한미군의 존재 가치를 강조하려는, 워싱턴을 향한 인정투쟁쯤으로 여겼다. 당장 한국을 대중국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위험한 발상 아니냐는 논란을 불렀지만, 트럼프 2기 들어 다시 고개를 드는 주한미군 감축론에 맞설 유용한 이슈 제기로 볼 만도 했다.

한데 브런슨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11월 이른바 ‘뒤집힌 지도(east-up map)’와 함께 ‘인도태평양의 숨겨진 전략적 이점’이란 글을 보도자료 형태로 주한미군 홈페이지에 올렸다. 한미 간 통상·안보 합의(조인트팩트시트)가 발표된 지 이틀 뒤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부 교육용으로 사용하던 자료를 공개하며 한국 내 여론전에 나선 것이다.

북쪽이 위인 표준지도와 달리 동쪽을 위로 뒤집은 이 지도의 중심에는 한반도가 있고 위로는 일본, 오른쪽으로는 대만·필리핀, 아래로는 중국, 왼쪽으로는 러시아가 위치한다. 평택 미군기지와 각국 수도를 직선으로 그어 각각의 거리도 표시했다. 브런슨은 ‘한국-일본-필리핀을 연결하는 전략적 삼각형’을 강조하며 북한-중국-러시아 3각에 맞설 최전선으로서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부각했다.

브런슨에게 한미 간 ‘동맹 현대화’ 합의는 곧 주한미군의 유연성 확대, 즉 붙박이군대가 아닌 신속기동군으로의 변신이었다. 특히 올해 1월 발표된 미국 국가방위전략(NDS) 보고서가 한국에 ‘북한을 억제하는 일차적 책임’을, 미국에 ‘결정적이나 더 제한적인 지원’을 명시하자 주한미군 역할 조정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2월 주한미군 전투기가 서해 상공으로 발진해 중국 측과 군사적 충돌을 빚을 뻔한 사건은 대중국 견제 임무를 본격화하겠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화들짝 놀란 건 우리 정부였다. 브런슨에게 항의하면서 주한미군이 서해 훈련 계획을 사전에 알렸느니 아니니, 나중에 브런슨이 사과를 했느니 아니니 논쟁까지 벌어졌고 갈등의 골은 깊게 파였다. 이후 정보 누설 논란 같은 불협화음이 잇달아 터져 나온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 가운데 브런슨만큼 논란을 몰고 다닌 경우는 드물다. 갈등이 있더라도 물밑에서 조율하거나 퇴임 후 털어놓는 게 관례였다. 그렇다고 브런슨이 유별난 것만은 아니다. 제복 입은 4성 사령관들을 외교 협상에까지 투입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브런슨의 행보는 그리 튀는 것도 아니다. 그는 백악관과 펜타곤 기조에 충실한 군인일 뿐이다.

브런슨은 이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둘러싼 갈등의 중심에 섰다. 그는 지난달 미 의회에 출석해 ‘정치적 편의주의’를 경계하며 전작권 전환의 조건 달성 시기를 2029년 1분기(1∼3월)까지로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 임기(2030년 6월)까지 1년 넘게 여유가 있는 시한이지만, 늦어도 2028년까지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한국 정부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최근 워싱턴을 다급히 찾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 장관은 미국 측의 ‘약간 다른 생각’만 확인하고선 브런슨의 시간표에 대해 “그건 군사 당국자의 얘기”라고 폄하했다. 물론 최종 결정은 양국 대통령 간 ‘정치적 결심’에 따라 내려진다. 그렇다고 현장 최고지휘관의 발언권을 무시할 순 없다. 이제 브런슨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일을 하도록 떠밀릴 가능성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고 말한다.

동맹 현대화는 전작권 전환과 미군 유연화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지 어느 한쪽만 먼저 갈 수 없는 구조다. 한미가 정교한 조율 없이 각기 유리한 방향으로 속도를 내려 할 경우 동맹은 궤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전작권 전환은 조건 충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군 4성 장군이 연합사령관을 맡으면 미군 부사령관은 4성을 유지하는지, 유엔군사령관의 지위는 어떻게 되는지 그간 묻어둔 ‘뜨거운 감자’가 한둘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유연성을 존중하되 한국이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문제는 어떤가. 한국의 발진기지화는 막을 수 있을지, 두 개의 동시 전쟁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전략적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

윈스턴 처칠은 일찍이 “동맹과 함께 싸우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딱 하나인데, 그것은 동맹 없이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동맹과 같이 가는 길은 꽤나 불편하고 고단하다. 하지만 동맹 없이 홀로 가는 길은 끔찍하다. 물론 한국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동맹에 일방적 청구서를 내밀고 비용을 강요하는 미국의 갑질 보스식 태도 또한 바뀌어야 한다.

#주한미군#제이비어 브런슨#동맹 현대화#전작권 전환#인도태평양#한미 관계#대중국 견제#군사 전략#서해 충돌#주한미군 유연성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