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창업자, 새 창업자를 이끈다… VC 혁신 일군 전설[이준일의 세상을 바꾼 금융인들]

  • 동아일보

폴 그레이엄
폴 그레이엄
이준일 경희대 회계학과 교수
이준일 경희대 회계학과 교수
정부는 2026년 ‘국가 창업 시대’를 선포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닌 만드는 것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창업 인재 5000명을 발굴해 사업화를 지원하는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자본과 기술이 결합해 새로운 기업이 나타나 성장하고, 그 결과물이 다시 창업으로 흘러드는 선순환 구조는 성공적인 경제 체제의 모습이다. 특히 성공한 창업자가 자금을 투자하고 멘토가 돼 새로운 창업자를 이끌어주는 구조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세계를 이끄는 비결이다. 그중 ‘와이 컴비네이터(YC)’를 설립한 폴 그레이엄(62)은 혁신적인 스타트업 투자안을 마련해 에어비앤비, 코인베이스, 드롭박스, 레딧, 스트라이프 등 수많은 기업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레이엄은 영국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로 이주했다. 중학생 때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을 접했지만 전공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철학 전공으로 코넬대에 입학했는데 곧 지루함을 느끼고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다. 이후 하버드대 컴퓨터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리스프(Lisp)’라는 프로그래밍 언어에 집중했다. 동시에 영속적인 것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컸다. 그는 박사과정 당시 미술 수업을 듣고, 졸업 후 25세에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 편입해 그림을 그렸다. 이탈리아 미술학교를 다녀오는 등 열정을 보였으나, 학교의 가르침과 결이 맞지 않아 1993년 자퇴하고 뉴욕에서 화가로 살고자 했다.

그레이엄은 당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웹상에서 쇼핑몰을 개설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 중 하나인 ‘비아웹’이 됐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고, 1998년 야후가 인수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는 다시 그림으로 돌아왔지만 새 아이디어를 떠올려 리스프에 매진했고, 콘퍼런스 참여는 물론이고 꾸준히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며 개발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훗날 아내가 된 제시카 리빙스턴이 벤처캐피털(VC) 회사로 이직을 모색할 당시 기존 VC의 문제점과 대안을 떠올렸다. 이어 2005년 이를 직접 실행하겠다는 결심으로 투자회사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YC의 시작이다.

YC는 기존 VC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스타트업 투자를 진행한다. 전통적으로 투자자와 창업자는 기업 가치와 조건을 놓고 고통스럽고 복잡한 협상을 벌인다. YC는 2013년부터 ‘SAFE’라는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협상 과정 없이 초기 투자가 며칠 안에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소수의 기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밀착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1년에 네 차례(2025년 이전에는 두 차례), 기수별로 수백 개의 극초기 기업을 동시에 선발해 각 50만 달러(약 7억3000만 원)를 투자한다. 선발자들은 3개월 동안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고민을 공유한다. 투자에 머물지 않고 교육과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것이다. 액셀러레이터, 표준화된 투자, 배치 모델, 데모데이, 창업자 중심 철학 등 VC 산업의 혁신은 YC가 이끈 것이다.

오늘날 YC는 5000곳 이상에 투자했고, 포트폴리오 합산 기업 가치는 8000억 달러에 이른다.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 이것이 실리콘밸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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