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혹시 이거 유전되나요?” 진료실에서도, 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결혼이나 2세를 계획하는 분, 자녀의 진단을 처음 접한 부모들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어본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정신질환의 유전 가능성에 대해 이번 글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대표적인 정신질환들의 유전성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기억해야 할 점들이 있다. 정신질환을 ‘멘델의 유전 법칙’처럼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가장 흔한 오해다. 우성과 열성 유전자 한두 개의 조합으로 완두콩의 색이 결정되는 것과 정신질환의 발생은 전혀 다르다. 수천 개에 이르는 아주 미세한 유전자 변이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모여 만들어지는 경향성의 결과에 가깝다. 아이가 생기는 과정에서 부모 양쪽에 없던 변이가 우연히 툭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또한 유전자가 발병 원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유전기여도’와 실제 ‘자녀 발병률’은 서로 다르다는 점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정신질환은 수많은 유전자와 환경 요인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유전기여도는 30∼40% 정도다. 이는 우울증의 발생에 환경적 요인이 60∼70% 정도로 더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환자 자녀의 발병률은 20∼30%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애초에 전체 인구 집단의 유병률이 10%에 이르는 질환이기 때문에 유전의 영향이 세간의 인식만큼 크다고 볼 수 없다. ‘내가 우울하니까 내 아이도 분명 우울할 것’이라는 생각은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 오히려 부모가 치료를 통해 건강해지는 경험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유전적 자산이 된다. 우울증만큼 흔한 질환인 불안장애 역시 유전기여도와 자녀 발병률이 거의 비슷하다. 예민한 뇌를 타고나는 만큼 불안장애 발생 확률은 일반인보다 약 두 배 높지만, 살아가면서 익히는 ‘불안을 다루는 기술’의 숙련도가 유전적 요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전적 영향이 더 큰 질환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중독,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조현병이 그렇다. 중독의 유전기여도는 50% 정도이고, ADHD와 조현병은 70∼80%에 이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유전기여도와 실제 발생률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조현병은 질병 발생 원인 가운데 유전적 요인이 80% 이상을 차지하지만, 부모가 조현병일 때 자녀가 발병할 확률은 약 10%에 불과하다. 유전성이 가장 강한 조현병의 경우에도 자녀의 90%는 건강하게 성장한다.
후성유전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타고난 DNA의 설계도는 변치 않지만, 환경에 따라 유전자가 실제로 작동할지 여부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스위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어린 시절의 따뜻한 양육이다. 중독, ADHD, 조현병 모두 따뜻한 양육 환경에서는 질병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유전자 스위치가 작동하고, 차가운 환경에서는 반대로 작용한다.
유전자는 운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밑그림이기도 하다. 유전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조심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줄 뿐,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아이와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들이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7년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019년 1월부터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을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1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30.5만 명이다. 에세이 ‘빈틈의 위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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