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모습. 동아일보DB
인생의 마지막 순간, 누군가 “당신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몇 가지 꼽아보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출산 직후’를 넣을 것이다. 9개월 넘게 이어진 인고의 시간과 끔찍한 진통을 견디고 마침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그 짜릿한 해방감과 홀가분함, 벅찬 감동은 언어로 다 표현될 수 없다. 내 경우 셋째까지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말 그대로 ‘자연분만’을 했던 터라, 고통의 끝에 찾아온 그 기쁨은 더 각별했다.
출산 후 산모는 이른바 ‘조리원 천국’이라 불리는 특별한 휴식기를 갖는다. 나 역시 네 아이를 출산할 때 모두 산후조리원을 이용했다. 보건복지부 ‘산후조리 실태조사(2023)’에 따르면 산모의 79.8%가 산후조리원을 이용한다고 한다. 병원 입원이나 기타 사정으로 이용이 어려운 산모들을 감안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산모가 조리원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천국의 입장료’가 해마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병원비는 보험급여와 각종 지원 덕에 낮아진 데 반해,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는 산후조리원 비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출산 전후 준비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이 됐다.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신생아들이 누워 있다. 뉴스1● 1990년대 후반 출현… 전국 500여 곳으로
산후조리원은 말 그대로 산모가 마음껏 쉬고 회복하도록 돕는 공간이다. 전문 간호 인력과 조리사가 상주하며 산모의 회복을 돕고 신생아 돌봄, 모유수유 교육, 영양식 등을 제공한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시설은 1990년대 후반(1999년경 서울 강남 지역)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이후 전문 산후관리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와 ‘한국형 산후조리 문화’가 자리 잡으며 그 분위기를 타고 급격히 확산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산후조리원은 약 500곳(2023년 말 510곳)이다. 전국 산부인과가 1400여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산부인과 세 곳 중 한 곳꼴로 조리원이 있는 셈이다.
산모가 조리원에 머무는 기간은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2주’ 이용이 전체의 약 70%로 가장 많은 선택지로 알려져 있다. 보통 산모는 이 2주간 조리원이 제공하는 식사, 신생아 관리 서비스는 물론 산모 회복 프로그램, 산후 교육 등을 받는다. 아기는 대부분의 시간을 신생아실에서 전문 인력의 관리를 받으며 지낸다. 산모의 충분한 휴식을 돕기 위해서다. 모유도 유축해 보내면 조리사가 분유병에 담아 먹여주고, 분유를 원하면 분유도 제공한다. 목욕, 수유 간격 관리, 재우기 등 ‘육아 첫 2주’의 거의 모든 것을 조리원이 도맡는다.
그 사이 산모들은 각자의 방에서 쉬거나 조리원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청소·세탁도 모두 직원들이 해주니 정말이지 천국이 따로 없다.
한 유명 연예인이 SNS에 올려 화제가 된 산후조리원. 이곳 2주 이용료는 5000만 원이 넘는다. 인스타그램 캡처● 2주에 5000만 원까지… 병원비의 100배
문제는 이 ‘천국의 비용’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서울 지역 산후조리원 일반실(2주) 평균 비용은 490만 원에 달한다. 2023년 420만 원에서 불과 2년 만에 17% 가까이 오른 수치다. 최근 3년 동안 해마다 30만~40만 원씩 꾸준히 상승한 셈이다.
부산의 경우 상승률이 3년간 29%에 달했다. 2023년에는 평균 262만 원이었던 평균 산후조리원 2주 비용이 지난해 304만 원, 올해 상반이 336만 원으로 증가했다.
2주 금액을 하루 단가로 환산하면 30만~40만 원꼴이니 “호텔 같은 객실에 묵는 셈 치면 비싸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호텔을 연상시키는 깔끔한 방에 식사와 산후관리 서비스를 더하려면 금액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이 이제는 사실상 출산 과정의 필수 단계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결코 ‘괜찮다’고 말할 순 없을 듯하다. 자연분만 시 산모가 부담하는 병원비가 평균 30만~6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산후조리원 2주 비용은 병원비의 평균 8배에서 15배, 많게는 100배 이상에 달하는 셈이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산후조리원의 모습. 뉴스1● 초저출산 → 고급화 경쟁 → 비용 상승… 악순환의 고리
근래 조리원 비용이 급격히 상승한 배경에는 출생아 감소가 있다. 초저출산으로 고객이 줄어들자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고급화 경쟁에 뛰어들었고, 이 경쟁이 다시 가격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2주 이용료가 5000만 원이 넘는 초고가 조리원까지 등장했다. 한 유명 연예인이 이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사실 이곳은 최근뿐 아니라 과거에도 유명 연예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내가 첫째, 둘째를 낳았던 시절만 해도 2주 이용료가 3000만 원대였는데, 그새 가격이 더 뛴 것이다. 하루 200만 원이 넘는 셈이니 웬만한 특급호텔 스위트룸보다 비싸다.
이런 고가 조리원들은 고급 침구와 방별 공기질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신생아는 개별 신생아실에서 24시간 상주 간호사가 관리한다고 선전한다. 전담 산후관리사 1:1 배정, 산모 체질에 맞춘 한방 회복 프로그램, 랍스터·한우 등이 포함된 호텔식 코스 메뉴급 식사, 림프 관리, 물리치료 등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사실상 산모 버전의 ‘호캉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예인급이 아니지만 2주 500만~1000만 원대 조리원에도 예약자가 줄을 잇는다고 한다. 올 4월 기준 상용근로자 1인당 평균 임금 총액이 421만 원이니, 이용료만 직장인 한두 달 월급인 셈이다.
경기도 공공산후조리원 전경. 경기도 제공● 비용≠안전…공공산후조리원 등 저렴한 가격에 양질 서비스
지자체들은 산모들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공공산후조리원 설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대부분 2주 기준 200만 원대여서 민간보다 훨씬 저렴하고, 인력과 시설도 공공 시스템 안에서 운영되니 기본 신뢰도도 높다. 이용료가 민간의 절반 이하로 형성돼 있다는 사실은 공공의 지원 덕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간 조리원 가격이 그만큼 과도하게 높게 책정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비용이 높다고 만족도나 안전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출산하던 시기에는 공공 조리원이 없었지만, 여러 곳을 비교해보고 결국 100만~200만 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조리원을 선택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음식, 청결, 신생아실 관리 등 꼭 필요한 요소는 충분했고, 서비스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반면 2019년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조리원에서 로타바이러스 집단감염으로 신생아 수십 명이 확진되는 등 사건사고는 고급 조리원이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태아 사진을 들고 있는 임산부. 뉴시스● 필요한 건 ‘프리미엄 침구’가 아니라 ‘더 좋은 조리 환경’
산후조리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산모의 안전, 그리고 산모가 마음 편히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프리미엄 침구나 호텔급 어메니티, 각종 마사지처럼 산후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크지 않은 요소들이 비용을 과하게 끌어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출산지원금과 바우처가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산모 개인에게 지원금을 쥐여주는 방식보다, 시설을 잘 관리하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운영하는 조리원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지도 고민해 봐야겠다.
솔직히 말하면 조리원 비용을 많이 들이느니 그 돈을 아껴 퇴소 후 영양가 있는 식사와 산후 회복 한약, 필요한 산후도우미 서비스에 쓰라고 조언하고 싶다. 장기적으로 볼 때 산모의 회복과 모자 건강을 위해 무엇이 좋은 방향인지 산모들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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