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지적한 감리사 교체 당해…2시간 철근검사 10분에 끝내”[히어로콘텐츠/누락④-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7일 03시 00분


<4-상> 감리 10명이 말하는 부실 현장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감리는 부실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레드팀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시공사, 시행사의 압박에 철근 누락을 못 본 척 넘긴다. 어쩌다 문제를 제기한 감리는 해고되고, 때론 감리사 전체가 교체되기도 한다. 완공된 아파트에 부실 시공 논란이 불거지면 모든 화살은 감리에게 돌아온다. 제 역할을 못 하는 감리와 그로 인한 부실의 실체를 파헤쳤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동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경력 30년차 감리. 그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감리가 부실 문제를 제기하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역설적 구조”라고 설명했다.


“황 씨 말은 알겠어요. 그런데 책임질 수 있어요?”

2023년 9월 황우진(가명) 씨가 LH 아파트 A건설현장 감리단장으로 일할 때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담당자가 “철근 누락 사실을 절대 입 밖에 꺼내선 안 된다”며 경고 섞인 당부를 했다.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진 게 불과 5개월 전 일이었다. 사건을 들은 황 씨는 자신이 감리를 맡은 A아파트 외벽 철근 시공 상태를 다시 조사했다. 한쪽 벽에 철근이 70%나 빠져 있었다.

●‘철근 70% 누락’ 지적, 돌아온 건 ‘해고’

공사중단 권한, 소송 우려에 못쓰고
시공사는 문제 생기면 “감리 탓”
인건비 아끼려 인원 기준도 안지켜
“3개동에 주차장까지 혼자 감독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구조”
황 씨는 LH에 알렸다. 하지만 LH는 공사를 강행하려 했고 황 씨는 “안 된다. 이러다 무너진다”고 버텼다. 시공사는 ‘재시공’ 대신 ‘일부 보강’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비용 때문이었다. LH 담당자는 “당신이 재시공 비용을 낼 거냐. LH 아파트가 또 문제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황 씨는 이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고 그 여파로 공사가 중단됐다. 황 씨는 소속 건축사무소에서 잘렸다. 업계에서는 ‘내부 고발자’로 낙인찍혔다. 황 씨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을 만나 “그때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감리는 부실 시공을 막을 ‘최후의 보루’다. 공사 기간 내내 문제점을 찾아내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건설 현장의 감독관이자 레드팀이다. 설계 도면에 따라 철근이 제대로 설치됐는지, 콘크리트 강도가 적정한지 확인하고 문제점을 찾아 지적해야 한다. 감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아파트는 ‘제멋대로’ 지어진다. 감리가 시행사, 시공사 등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다.

서울의 한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 감리가 건물 벽체의 위치가 올바르게 시공됐는지 점검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아파트 완공 전에는 시공사, 시행사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부실을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완공 뒤 문제가 불거지면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소송, 수사에 직면하는 경우도 있다. 히어로팀이 인터뷰를 시도한 감리들 대부분은 “부정적인 말을 하면 업계에 금방 소문이 퍼져 일하기 어렵다”며 고사했다.

그럼에도 오랜 설득 끝에 히어로팀은 30년 차 베테랑 감리부터 업계 4년 차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여성 감리까지 총 10명의 감리를 만났다. 그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감리가 소신대로, 원칙대로 일할 수 없는 현장 시스템과 그 결과가 어떤 부실을 낳는지 들을 수 있었다.

●시공-시행사, 마음에 안 드는 감리사 통째로 교체

현재 경기 지역에서 건설 중인 대규모 오피스텔 현장 관리 감독을 맡은 김모 감리는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했다가 교체당했다. 김 감리는 지반(땅) 공사에 사용된 콘크리트 말뚝 강도, 말뚝이 지하에 묻히는 깊이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히어로팀이 접촉한 이 건설 현장의 다른 시공 관계자들도 똑같이 우려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시공사는 감리의 문제 제기 때문에 공사가 지체되자 감리사 전체를 교체했다. 아파트 감리 선정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지만 오피스텔 등은 시행사(발주처)가 선정하기 때문에 맘대로 바꿔버린 것. 히어로팀은 해당 지자체에 제출된 김 감리의 교체 사유 문건을 확보했다. 주 교체 사유는 ‘권한 남용’, ‘월권행위 빈번’이라 적혀 있었다. “설계자와 발주자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검측을 중단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경기 지역의 대형 오피스텔 건설 관리 감독을 맡은 김모 감리의 교체 사유가 적힌 문건. ‘발주처와 설계자 의견을 무시했다’는 등의 사유가 적혀 있다. 김 감리는 이 오피스텔의 지반 공사 단계에서 콘크리트 말뚝 강도 등 부실 문제를 제기했다가 직장에서 잘렸다.
경기 지역의 대형 오피스텔 건설 관리 감독을 맡은 김모 감리의 교체 사유가 적힌 문건. ‘발주처와 설계자 의견을 무시했다’는 등의 사유가 적혀 있다. 김 감리는 이 오피스텔의 지반 공사 단계에서 콘크리트 말뚝 강도 등 부실 문제를 제기했다가 직장에서 잘렸다.

같은 현장에서 부실시공 문제를 제기한 시공 관계자 박명훈(가명) 씨는 “감리원 교체는 건설 현장에서 자주 봤던 일이지만 공사 중 감리사를 통째로 바꾸는 건 이례적”이라며 “감리가 완강히 버티며 두 달 넘게 공사가 지체되자 마음이 급해진 시공사가 ‘트집’을 잡아 조치를 취한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히어로팀이 6개월간 살펴본 건설 현장에서는 이같이 감리가 소신대로 제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다. 감리들은 스스로를 ‘심부름꾼’, ‘귀찮은 존재’, ‘부실공사의 총알받이’라며 자조했다. 30년 차 임모 감리는 “열심히 일한 감리는 다음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거수기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털어놨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너무 깐깐하다’ ‘횡포를 부린다’며 다음 일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역설적인 구조가 숨어 있었다.

●‘공사 중단’ 권한 있어도 소송 우려에 행사 어려워


감리에게는 ‘공사 중단’ 권한이 있다. 하지만 공사를 중단했다가는 송사에까지 휘말릴 수 있다. 예정보다 공사가 늦어지면 시공사는 입주 예정자에게 입주가 늦어진 만큼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하는데, 감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장모 감리는 “시공사에서 ‘감리가 공사 진행을 방해한다, 사업적으로 큰 손해를 봤다’며 민사 소송을 건 적이 있었다”고 했다. 30년 경력 유모 감리는 “문제를 발견해 공사 중단을 요구하면 시공사로부터 손해배상 등 민사 소송이 들어온다. 이를 피하려 문제를 눈감고 넘어가서 붕괴 사고라도 나면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한테 자폭 버튼을 준 셈”이라고 말했다.

감리는 ‘돈’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감리사는 발주처 용역을 수행해 받은 돈으로 소속 감리에게 월급을 준다. 공사 발주처는 근본적으로 아파트나 건물을 빨리 올려 이익을 남기는 게 목적인데, 감리가 자꾸 문제를 제기하면 ‘눈엣가시’로 여긴다. 25년 경력의 이모 감리는 “발주처가 감리사를 선정할 때 소속 감리가 검사를 깐깐하게 했다는 평을 들으면 용역 계약을 안 하려 한다”며 “용역을 못 딴 감리사는 업체 유지가 어려워지고 감리도 월급을 못 받게 된다”고 말했다.

시공사는 감리사를 선정하고 나서도 감리들이 까다로운지 ‘뒷조사’에 나선다. 과거 시공사와 갈등을 빚은 감리는 다음번 같은 시공사 현장에 선임되기 어렵다. 유 감리는 “감리사에서 (시공사가 원하지 않아) 해당 감리를 현장에 배치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시켜 월급을 절반만 주거나 눈치를 줘서 쫓아내기도 한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급여를 제대로 못 받거나 일자리를 잃을 우려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시간 걸릴 철근 검사, 10분에 마쳐

30년차 유모 감리가 서울의 한 아파트 바닥 (슬라브) 철근 배근 상태를 검사하고 있다.
감리 투입 인원은 건설기술진흥법상 공사비, 공사 종류 등에 따라 기준이 정해진다. 기준 인원을 지키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할 수 없고, 계획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2000만 원을 부과한다.

하지만 현실은 법과 다르다. 법적 기준대로 감리를 투입해도 인력이 충분치 않은데, 현장에서는 인건비와 공사비를 아끼려 이마저 지키지 않는다. 감리 기준 인원을 서류상으로만 충족시키기 위해 투입되지 않은 감리를 ‘가라(가짜)’로 명단에 넣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감리 10명이 필요한 현장에 절반이 투입되는 것도 쉽지 않다. 품질 관리에 집중해야 할 감리 1명이 안전, 공무, 자재 관리, 환경, 민원, 사무실 관리까지 겸임한다. 유 감리는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 34층 2개 동, 51층 1개 동, 지하주차장 1∼3층 건축 감리를 나 혼자서 했다”며 “아파트 1개 층 철근 간격을 제대로 검사하려면 최소 2시간은 봐야 하는데 10분만 봤다”고 말했다.

감리 구모 씨가 작성한 서울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의 실제 감리 일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총 4시간 동안 세 개 동의 철근 검사와 콘크리트 패널 작업 점검, 단열재 설치, 점검 벽돌 쌓기 점검, 분진 방지 등 환경 관리 쓰레기 반출 확인 등 작업을 모두 진행해야 했다. 감리들은 공사 기한 압박에 제대로 철근 등을 검사할 시간이 부족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감리 구모 씨가 작성한 서울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의 실제 감리 일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총 4시간 동안 세 개 동의 철근 검사와 콘크리트 패널 작업 점검, 단열재 설치, 점검 벽돌 쌓기 점검, 분진 방지 등 환경 관리 쓰레기 반출 확인 등 작업을 모두 진행해야 했다. 감리들은 공사 기한 압박에 제대로 철근 등을 검사할 시간이 부족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감리 업무가 너무 많다 보니 검측, 감독은 현장 관리자나 작업반장 보고에 의존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눈에 잘 띄는 주철근과 띠철근 간격 정도만 빠르게 훑고 넘어가는 식이다. 이 감리는 “감리 적정 인원은 아파트 180가구당 1명 정도지만 실제로는 1000가구에 2, 3명인 게 현실”이라며 “공사 마감 기한이 있으니 다른 현장 작업자들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완벽하게 설치됐다’고 보고한다는 걸 알지만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 생기면 ‘감리 탓’… “내가 업을 잘못 택했나”

시공사와 시행사는 부실시공 논란이 불거지면 많은 경우 감리에게 책임을 미룬다. 임모 감리는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는 ‘심부름꾼’, 책임질 일이 생기면 ‘총알받이’로 쓰인다”고 말했다. 장 감리는 “구조적 문제는 그대로인데 정부는 감리 책임을 늘리는 법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살기 위해 어떻게든 책임에서 빠져나가게끔만 점검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감리 고모 씨도 “감리가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14년차 최호민(가명)감리가 히어로콘텐츠팀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감리는 “감리가 건설 현장의 책임 회피용 직책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14년 차 최호민(가명) 감리는 여전히 회사에서 ‘막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감리는 이미 ‘리스크는 큰데 보상은 적고 욕은 욕대로 먹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신입이 들어오지 않는다.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동기 가운데 유일하게 감리를 지망했습니다. 안전을 지켜낸다는 자부심이 있었죠. 하지만 금세 깨달았습니다. 감리는 건설 현장의 책임 회피용 직책일 뿐이라는 걸요. 책임은 너무 큰데 권한은 없습니다. 자괴감이 듭니다. 제가 이 업을 선택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죠.”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https://original.donga.com/2025/APT)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donga-ilbo)에서 순차 공개됩니다.

▽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

#아파트 건설 현장#철근 누락#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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