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콘텐츠팀이 입수한 국토교통부의 2023년 전국 민간 무량판 아파트 288곳 전수조사 보고서. 1102쪽 분량이다.
288곳중 철근 1개 이상 누락 8곳 3곳은 콘크리트 강도 부적합 판정 전단보강근 ‘간격 미흡-누락’ 확인돼도 정부, 전문가 내세워 “그래도 안전” 조사방식도 ‘정밀→신속’으로 바꾸고 기둥 주철근 조사 빼 ‘답정너 진단’
2023년 10월 23일 국토교통부는 “입주민이 직접 입회한 가운데 투명하고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며 ‘민간 무량판 구조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부실시공은 없다’고 발표했다. 총 427곳(시공 중 139개, 준공 288개) 무량판 아파트를 전수 조사했는데 철근 누락 등 부실은 하나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히어로팀은 국토부 발표에 의문을 품고 준공을 마친 288곳의 국토부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국토부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보고서로 총 1102쪽 분량이다. 이를 건축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정밀 분석한 결과, 보고서에 담긴 아파트들 중 최소 11곳(3.8%)에서 부실이 발견됐다. 8곳은 ‘철근 누락’이 있었고, 3곳은 콘크리트 강도가 법적 최소 안전 기준(85%)보다 낮았다. 부실이 없다던 국토부 발표와 달랐다.
● 철근 빠졌는데 국토부는 “누락 0건” 발표
국토부의 G아파트 조사보고서에는 총 10곳의 철근 조사 구역 중 1곳에서 ‘전단보강근을 확인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었다. 전단보강근은 기둥이나 벽체가 천장, 바닥과 연결되는 부위를 잡아주는 철근이다. 당시 조사를 수행한 안전진단업체는 ‘도면에는 전단보강근이 표기돼 있지만, 현장조사에서는 철근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적어놨다. 도면에 있는 철근이 실제로는 없다는 뜻이다.
H아파트 국토부 보고서에는 철근 조사가 실시된 4개 구역 모두에 ‘부적정’ 판정이 적혀 있었다. 도면대로면 10cm 간격으로 설치해야 할 철근이 실제로는 20cm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다는 것. 철근 절반을 빼먹은 셈이다. 해당 조사 업체는 “전단보강근이 일부 누락됐거나 시공 간격이 미흡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남겼지만, 국토부의 공식 발표에 전혀 없었다. 그 대신 국토부는 보고서에 ‘그래도 안전하다’는 취지의 전문가 자문단 의견을 넣어놨다. 해당 자문단은 “천장(슬래브)이 충분한 강도를 확보하고 있어 전단보강근 시공이 더는 필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게재했다.
히어로팀은 위 보고서들을 전문가들에게 가져가 검증을 의뢰했다. 보고서를 살펴본 홍건호 호서대 건축공학부 교수(전 검단사고조사위원장)는 “철근을 설계와 달리 빠뜨렸다면 수분양자에 대한 계약 위반”이라며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보수, 보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아파트 안전진단 결과 조사 기둥 8개 중 4개의 콘크리트 강도는 85%에 못 미쳤다. 이는 시설물특별법 정밀안전진단 기준상 ‘부적합 구조물’에 해당한다. 2023년 4월 붕괴된 인천 검단 아파트 일부 구역의 콘크리트 강도는 70.4%였다.보고서에는 2023년 국토부가 조사한 아파트 288곳 중 16곳의 콘크리트 강도가 설계 기준(100%)에 미달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중 3곳은 시설물특별법 정밀안전진단 기준을 적용하면 ‘부적합 구조물’에 해당됐다. 콘크리트 설계 강도가 85% 미만인 경우가 부적합 구조물이다. 콘크리트 강도가 76.7%에 불과한 I아파트도 있었다. 참고로 2023년 붕괴된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경우 콘크리트 강도가 70.4%에 불과한 구역도 있었다. 김강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한국콘크리트학회 부회장)는 히어로팀에 “85% 미만인 구조체는 품질 저하로 구조적 보수나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국토부 보고서에는 전단보강근이 제대로 시공됐는지 불분명해 ‘보류’ 판정이 내려지거나, 조사 자체를 못 한 아파트도 16곳 있었다. 부실 여부 자체를 아예 파악하지 못한 곳들이다. J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11개 구역 중 7곳에서 ‘전단보강근이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어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판정 보류다.
히어로팀이 한국콘크리트학회에 이 같은 국토부 보고서 내용을 검증 의뢰한 결과 “전단보강근은 철근 탐사 장비로 탐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비파괴 철근 검사기로 겉면을 훑는 식으로는 제대로 검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전단보강근은 천장과 기둥의 철근을 엮어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전단보강근이 매립된 천장 부분을 비파괴 철근 검사기로 훑으면 철근이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아주 작은 ‘점’만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철근에 가려져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
히어로팀은 국토부 보고서에 ‘전단보강근이 설치됐다’고 적혀 있는 아파트 3곳의 조사 보고서를 전문가들에게 검증 의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히어로팀에 ‘판독 불가’라는 결론을 전달해 왔다. 안전진단업체인 황두엔지니어링 이우진 대표는 “(국토부가) 전단보강근이 설치됐다고 판정한 일부 보고서 내용을 살펴봤는데, 저라면 철근이 설치됐는지 안 됐는지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 데드라인을 미리 정한 뒤 기한에 맞추려 조사 방식을 축소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7월 31일 국토부에 조사를 지시했고, 일주일 뒤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은 한국시설안전협회와 회의를 열어 논의했다. 여기서 8가지 이상 방식으로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해 두 달 내 끝내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협회는 4개월가량 필요하다며 기한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협회 관계자는 “그러자 용산(대통령실)과 행정부(국토부)에서 두 달 안에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며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기본적인 것만 하면 (두 달 내) 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결국 국토부는 조사 기간을 두 달로 맞추려 조사 항목을 4개로 줄였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 기둥, 벽체의 주철근 조사 등은 생략됐다.
전문가들은 촉박한 조사 기간과 축소된 조사 방식이 부실 조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안전진단업체가 아파트 전수조사 현장에 인력을 실제 투입한 기간은 9월 1∼25일로 25일에 불과했다. 주영규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전 검단사고조사위원)는 히어로팀에 “안전진단업체가 제대로 조사하려면 한 단지에 ‘올인’해도 최소 3개월은 필요하다”며 “근본 원인들을 조사하지 않고 발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안전관리원에서 추가 검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문제없음’을 확인했다”면서도 “저희는 2개 항목(전단보강근 유무, 콘크리트 강도)만 안전점검을 했기 때문에 아파트 전체가 100% 자신 있게 부실시공이 없다고 말씀드릴 사항은 아니다”라고 했다. 조사 일정 축소에 대해선 “LH 아파트 조사와 동일하게 진행했으며 (축소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누락: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하신가요’는 2023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민간 아파트 조사 결과의 진실성, 이와 관련된 철근 등 부실 시공 문제를 7개월간 파헤쳤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콘크리트 속 감춰진 ‘누락’을 디지털로 구현한 ‘아파트 철근탐사 보고서’(https://original.donga.com/2025/APT)로 연결됩니다. 27일 오전 9시부터 4부작 다큐도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donga-ilbo)에서 순차 공개됩니다.
▽팀장: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취재: 김수현 이문수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윤서영 안태광 인턴 ▽영상: 김지희 안정용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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