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여성들 “내 하루가 달라지면 지구를 살리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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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구하기 실천, 나부터]〈上〉 친환경 적극적인 MZ여성들
산책중 쓰레기 줍기-텀블러 쓰기
‘녹색생활’ 3명중 1명은 2030 女

지난해 5월 대학생 연합 환경동아리 ‘에코로드’ 회원들이 손에 집게와 봉지를 들고 서울 광진구 건국대 캠퍼스에서 ‘플로깅’(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도 줍는 활동)을 하고 있다. 에코로드 제공
지난해 5월 대학생 연합 환경동아리 ‘에코로드’ 회원들이 손에 집게와 봉지를 들고 서울 광진구 건국대 캠퍼스에서 ‘플로깅’(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도 줍는 활동)을 하고 있다. 에코로드 제공
“나의 하루가 달라지면 지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집 근처를 산책하며 쓰레기를 줍고, 카페에서 개인용기(텀블러)를 쓰는 취업준비생 김민겸 씨(28)의 말이다. 김 씨와 같은 2030 여성들이 일상 속 친환경 실천에 가장 적극적인 코호트(Cohort·동일집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와 한국환경공단이 ‘세계 환경의 날’(매년 6월 5일)을 맞이해 탄소중립포인트제 ‘녹색생활’ 분야 참여자를 연령별 및 성별로 분석한 결과 3명 중 1명은 2030 여성이었다. 2022년 1월∼2023년 4월 탄소중립포인트제 녹색생활 실천 분야 참여자는 모두 49만5211명이었다. 여성(68%)이 남성(32%)보다 두 배 이상으로 참여율이 높았고 이를 다시 연령별로 나눠 보면 20대 여성이 12.7%, 30대 여성이 20.4%를 차지했다.

2030은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의 위기를 실감하며 자란 세대다. 게다가 출산과 육아를 앞둔 여성들은 더욱 환경에 민감한 것으로 분석된다. 2030 여성들은 달리기, 등산 등 운동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비롯해 채식 식단을 공유하는 등 일상 속에서 친환경 활동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친구들과 플로깅, 하루 한끼 채식… 2030女 “힙하게 지구 지켜요”


韓 MZ세대 기후변화에 큰 관심
커피는 텀블러, 음식 포장은 다회용기
친환경 제품 구입하고 리필 선호
환경단체 가입은 NO… 자발적 실천

녹색생활 분야 탄소중립포인트제는 일상 속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실천하고 이를 인센티브로 돌려받는 제도다. 샴푸, 화장품 등 리필 제품 쓰기, 일회용 컵 쓰지 않기, 폐휴대전화 반납, 전자영수증 발행 등이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주요 활동에 해당된다.

20, 30대 여성들의 참여율이 특히 높은 녹색생활 분야 탄소중립포인트제는 △리필 제품 이용(66.0%) △다회용기 이용(44.9%) △텀블러·다회용 컵 이용(36.6%) 순으로 나타났다. 즉, 리필 제품 이용자 10명 중 6명, 다회용기 이용자 10명 중 5명이 2030 여성이었다는 뜻이다.

● “나의 하루가 바뀌어야 지구를 구한다”

지난달 한국딜로이트그룹이 발표한 ‘딜로이트 2023 글로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조사’에 따르면 한국 MZ는 다른 나라 MZ세대보다 기후변화에 대해 더 우려하고 있었다. ‘지난 한 달간 기후변화에 대해 우려했는가’라는 질문에 한국 밀레니얼세대는 68%, Z세대는 64%가 동의했다.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43개국의 평균은 각각 57%, 60%였다. 탄소중립포인트제에 2030 여성의 참여 비율이 높은 배경 중 하나로 분석된다.

특히 여성이 친환경 활동에 적극적인 배경에 대해 오수길 고려사이버대 융합정보대학원 교수(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한국지부 사무총장)는 “신체적으로 여성이 기후위기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아무래도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는 여성들이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30 여성들은 “재미있고 알뜰한 불편함이라면 참을 수 있다”며 환경운동의 방법론도 바꾸고 있다. 반(反)정부·반기업 구호를 외치면서 인프라 건설에 반대하던 기존 환경운동이 생활 속에 스며든 환경운동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15개 대학 연합 동아리 ‘에코로드’는 한 달 동안 하루에 한 끼를 비건(Vegan·채식주의) 식사로 하거나 일상 속 친환경 실천 팁을 공유하는 ‘교환 일기 쓰기’ 등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활동을 주로 한다.

동아리 회장 곽지은 씨(21·건국대)는 “육류만 덜 먹어도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한 끼라도 채식을 시도해 보면서 친환경 습관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등산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을 통해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이는 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뜻하는 북유럽 신조어로 스웨덴어 ‘줍다(plocka)’와 ‘뛰다(jogga)’를 합성한 말이다.

●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 대신 힙하게

탄소중립포인트제 사업 다수에 참여하거나 인센티브를 많이 받은 2030 여성들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는 오랜 기간, 전 지구적으로 일어난 변화인 만큼 작지만 꾸준한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실천을 위해서는 ‘재미’ ‘실용’ ‘탈(脫)정치’를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김민겸 씨(28)는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친환경 실천 하면서 정부 지원금도 받자’는 정보성 게시글을 보고 ‘재미있겠다’는 마음 반, ‘아껴야겠다’는 마음 반으로 탄소중립포인트제에 가입했다. 현재는 생활 속에서 자발적으로 친환경 실천을 하는 열성적인 활동가가 됐다. 김 씨는 집 근처를 산책할 때는 ‘플로깅’을 하고 근처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할 때는 집에서 그릇을 가져가 담아 온다.

플로깅이 힙(hip)한 친환경 실천이 되면서 최근 SNS상에선 김 씨와 같이 플로깅을 하고 남긴 인증샷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김 씨는 “이대로라면 기본적인 의식주도 위협받는 세상이 올 것 같아 나의 하루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텀블러 사용, 친환경 제품 구입, 전자영수증 발급 등을 골고루 실천 중인 장유림 씨(23) 역시 ‘재미’로 친환경 활동에 발을 들였다. 취미 활동으로 친환경 고체비누 만들기 수업을 들은 것이 계기였다. 그는 “직접 물건을 만들어 쓰는 것도 재밌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뿌듯했다”며 “기대보다 세정력도 좋아 요즘은 가급적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직무상 외근이 잦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조훈희 씨(38)는 하루에 커피를 네댓 잔씩 마신다. 다 마시지도 못할 커피와 함께 일회용 컵을 매번 사야 했는데 텀블러를 쓰고 이런 고민에서 해방됐다. 조 씨는 “쓰레기통을 찾지 않아도 되고, 절약도 할 수 있어 아주 실용적”이라고 했다. 올 2월 탄소중립포인트제에 가입했는데 석 달 만에 텀블러·다회용 컵을 106회 이용했다.

● 거창하지 않지만 지속가능한 실천

광주에서 5년간 베이커리를 운영한 이슬기 씨(35) 역시 포인트제 가입 전부터 손님들이 집에서 그릇을 가져오면 1000원씩 할인해줬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할 때 아침엔 일회용 컵 수백 개를 발주하고 저녁엔 가득 찬 100L짜리 쓰레기봉투를 버리면서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이 씨는 “(그릇에 담아 주니) 마음도 편하고, 쓰레기도 덜 나왔다. 포장 용기 사고 포장하는 데 드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할인 금액이 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환경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친환경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이 씨는 “단체 가입은 시간도 없고,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대학생 연합 동아리인 에코로드는 회원 가입을 받을 때 ‘우리는 외부의 정치적·경제적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소정의 회비를 받아 운영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곽 씨는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자는 취지”라며 “거대 담론이나 엄격한 실천을 강조하면 환경운동의 문턱이 높아지고 ‘그들만의 운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일상에서 작게 효능감을 쌓으며 보텀업(bottom-up·상향식) 형식으로 정책적 대안을 요구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바람직한 환경운동의 방향이라고 본다”고 했다. 반면 일상 속 환경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반론도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기업이 탄소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치와 기업이 해야 할 의무를 개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2030여성#지구#지구 구하기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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