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선희]유별난 한국인 명품 사랑… 오명 대신 K패션 전조 되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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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박선희 산업2부 차장
블랙핑크 제니나 방탄소년단(BTS) 지민 등 K팝 스타들이 샤넬, 디올 같은 명품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약하는 것은 이제 뉴노멀이다. 이런 현상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는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커지면서 한국 셀러브리티의 영향력이 더 이상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시장인 동남아 시장에서의 효과가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자체가 명품 시장에서 그만큼 중요해졌단 뜻이다. 한국은 명품업계에서 가장 성장성이 높은 시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지난해 명품 구입액은 168억 달러(약 20조9000억 원)에 달했다. 1인당 구매 금액은 325달러(약 40만 원)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미국, 중국이 각각 280달러와 50달러인 것과 대비된다. 이탈리아의 한 일간지는 최근 “한국은 세계 명품 시장의 별”이라며 “한국은 패션을 선도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작은 브랜드들도 찾는다”고 보도했다.

세계의 시선이 한국의 명품 시장에 쏠리지만, 사실 한국인의 유난한 명품 사랑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똑 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과시나 체면 문화는 가장 쉬운 답이지만 불충분하다.

사실 한국인은 특별함, 구별됨, 탁월함에 대한 갈망이 예외적으로 높다. 교육열도 높고 부에 대한 욕망도 크다. 예술, 운동도 평범한 수준에선 만족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스타일이라고 해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의 말처럼 패션은 옷 자체가 아니라 변화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좋은 시나 시퀀스를 골라내는 안목과 디자인의 고유한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긴 힘들다. 자기 파괴적 수준의 지출이 아니라면 명품 사랑 자체를 실용적 잣대로 비판하는 건 무의미하다. 패션도 결국은 미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단지 한 가지 아쉬운 건 아직 우리에게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패션 브랜드가 없다는 점이다. 소비산업은 결국 문화적 영향력을 기반으로 하는데, 문화란 게 단시간에 뚝딱 만들어지진 않는다. 1800∼1900년대부터 수공업 공방의 유산에서 오늘에 이른 유럽 명품 브랜드를 따라잡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K자가 붙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K패션 역시 이미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달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개최된 파리 패션위크에서 한섬의 시스템 등 국내 브랜드에 대한 현지 반응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모던한 디자인에 독창적 감성을 더한 한국 패션에 이례적으로 유럽 등지의 바이어들이 몰리며 관심을 보였다.

국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는 ‘K컨템(컨템퍼러리)’으로 불리며 국내 젊은 소비자들을 몰고 다닐 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의 명품 소비국이 오명이 아니라 새로운 K웨이브의 전조였다는 걸 K패션이 확인시켜 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한국#명품#사랑#k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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