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김화영]청년 죽음 불러온 공무원 면접… 비극 되풀이 말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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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부울경 취재본부
김화영·부울경 취재본부
“불합리한 공무원 면접전형을 취재해주세요.”

2021년 7월 28일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아들인 이모 군(당시 19세)이 부산시교육청 건축직 임용시험에 탈락한 뒤 면접전형의 불합리함을 토로하다 전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그는 “아들은 ‘시험을 다시 치러도 면접에서 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며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이 군의 직렬에서는 최종 합격자가 3명 나왔다. 필기시험을 3위로 통과한 그는 면접에서 3위 밖으로 밀려나 탈락했다. 교육청을 찾아 자초지종을 물은 이 군은 필기 5위 응시자가 최종 합격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군이 탈락한 이유는 경찰 수사와 법원의 판결로 밝혀졌다.

보통 면접에서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필기 성적순으로 합격자가 가려진다. 하지만 이 군이 탈락했던 해에는 교육청 직원 A 씨의 주도로 의외의 합격자가 나왔던 것이다. 특히 면접관의 과반수가 5개 항목에서 모두 ‘상’을 주면 ‘우수’로 평가돼 합격시키는 기준이 문제였다. 이 군이 속한 15조에서는 복수의 ‘우수’ 합격자가 나왔지만, 1∼14조에는 한 명도 없었다. 이 군은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부산지법 형사10단독(부장판사 김병진)은 지난달 30일 공무상비밀누설과 공무집행방해, 부정청탁금지법, 지방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교육청 사무관 A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면접관 A 씨가 특정인의 ‘우수 합격’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난다. A 씨는 필기 합격 발표 후인 2021년 7월 8일 공무원 임용 동기에게서 “기술직 친목모임 회원 B 씨의 처조카 C 씨가 건축직에 응시했으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동료가 “면접관으로 위촉됐느냐”고 물었고 A 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A 씨는 B 씨에게 전화해 응시생 C 씨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A 씨는 6일 교육청에서 면접관 참여 제안을 받고 수락한 상태였다.

A 씨는 응시자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게 돼 있음에도 질문지에 없는 문제를 C 씨에게 물었다. 법원은 “A 씨가 예상문제를 B 씨를 통해 C 씨에게 알려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 씨는 휴게시간 다른 면접관에게 “C 씨는 우수해 당장 투입해도 되겠다”고 ‘바람’까지 잡았다고 한다.

C 씨는 ‘우수’를 받아 최종 합격했다. 판결문에 이 군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이 군은 이런 ‘짬짜미 면접’의 불합리함에 회의를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C 씨는 임용 등록은 하지 않았다.

서울 노량진과 부산 서면 학원가에는 ‘공무원 등용문’의 바늘구멍을 통과하려는 ‘공시생’이 넘친다. ‘낙하산 채용’ 논란이 수시로 벌어지는 사기업 채용보다 공무원 시험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수험생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 임용 과정에서 반칙이 공공연하게 이뤄진 사실이 드러났다. 공정사회를 염원하는 청년의 분노는 들끓을 수밖에 없다.

A 씨와 짬짜미 면접에 함께한 가담자의 재판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 군 같은 피해자가 더 나오지 않으려면 모든 진실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관련자의 따끔한 처벌은 물론이고 공무원 채용 전반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김화영·부울경 취재본부 run@donga.com
#공무원 면접#청년 죽음#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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