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회사들에도 피치 못할 사정은 있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통째 흔들렸다. 2021년 보복 수요가 살아나자 공급망 위기로 인한 생산 차질은 더 크게 부각됐다.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소비자들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일각에선 자동차 회사들이 공급난 위기를 명분으로 이른바 ‘배짱 영업’을 한다는 의심도 있었다. 차 가격을 슬금슬금 올려도 “빨리만 받게 해 달라”는 고객들은 별다른 저항조차 못 했으니 말이다. 차량 인도가 늦어지는 건 다른 나라 전쟁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었다.
소비자들은 시장이 정상화되는 게 당연히 반갑다. 기업들로서는 바이러스나 전쟁을 출고 지연의 핑계로 삼기가 어려워졌다. 오롯이 생산경쟁력으로 승부해야 그나마 남은 신차 대기자들을 지켜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 자동차 기업, 더 정확히 한국 내 자동차 공장은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노사 단체협약에 따라 시간당 자동차 생산량을 늘리려면 노조 허락부터 구해야 한다. 잘 안 팔리는 차량의 생산을 줄이고 일부 근로자를 인기 모델 생산라인으로 전환 배치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생산 과정 일부를 떼어내 용역을 줬다고 불법 파견 판단을 받기도 한다. 경직된 노동환경은 낮은 생산성과 직결된다.
자동차 얘기를 했지만 이는 한국 경제 전체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1시간 근로당 국내총생산(GDP) 창출가치는 42.9달러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미국(74.8달러), 독일(68.3달러), 프랑스(66.7달러) 등의 노동생산성은 모두 한국의 1.5배가 넘는다. ‘11개월 연속 무역적자’와 ‘8개월 연속 수출 역성장’이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바닥까지 떨어진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해 당장 한 부위를 치료해야 한다면 그건 노동시장이 돼야 하는 이유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