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정책금융 상품… “대출조건 엄격, 이자혜택 적어”[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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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라 실패하는 정책금융 상품
25조 규모 안심전환대출… 집값 6억 이하로 제한 두고
실제 금리 인하 효과 크지않아… 목표치의 38% 마감 인기 시들
자영업자 대출정책 중복설계로 채무조정 새출발기금도 외면


김도형 경제부 기자
김도형 경제부 기자
《“25조 원 안심전환대출로 금리 고정, 행복 고정하세요.”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고금리 대출 상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을 도입합니다.”

지난해 초 1.2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연말에 3.25%를 찍고 올 초 3.5%까지 치솟았다. 금융당국은 잇따라 정책금융 상품을 내놓았다. 급격한 금리 인상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저금리·고정금리 상품을 제공해 이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목표에서였다.

하지만 많게는 수십조 원을 목표로 시작한 이들 정책금융 상품의 흥행 실적은 초라하다. 흥행 실패의 이유로는 엄격한 자격 조건과 기대에 못 미치는 혜택 등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도움이 꼭 필요한 지원 대상을 명확히 한 다음 확실한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높은 문턱과 체감 힘든 혜택에 인기 ‘시들’
대표적인 흥행 실패 사례는 총 25조 원 규모로 설계한 안심전환대출이다. 안심전환대출은 1주택자가 집을 살 때 빌린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연 3.7∼4.0%의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정책금융 상품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접수를 시작한 안심전환대출은 연말 총 9조4787억 원(7만4931건)의 신청액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출연한 인기 배우 박은빈 씨까지 광고 모델로 내세웠지만 총 모집 규모의 37.9%에 그쳤다.

안심전환대출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로는 주택 가격 등의 기준은 엄격한 반면 실제 금리 인하 효과는 크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안심전환대출 출시 당시 금융위원회는 변동금리 주담대로 주택을 구입한 서민과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 경감을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주택 가격 4억 원 이하, 부부 합산 소득 연 7000만 원 이하의 1주택자로 안심전환대출 대상자를 한정했다.

또 보유한 주택의 변동금리 주담대를 대환(갈아타기)하는 용도로 한정하면서 대출 한도 역시 2억5000만 원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신청이 저조하자 엄격한 주택 가격 및 소득 기준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주택 가격 6억 원 이하, 연 소득 1억 원으로 기준을 완화했다.

이렇게 기준을 완화했음에도 안심전환대출이 결국 흥행에 실패한 또 다른 이유로는 금리 문제가 지적된다. 안심전환대출은 최저 연 3.7% 금리로 홍보됐지만 일반적인 만기 30년 상품을 선택할 경우의 적용 금리는 4.0% 수준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를 감안하면 금리 측면에서 1%포인트가량 유리할 수 있지만 수십 년 동안 4% 안팎의 금리가 고정된다는 점 때문에 대출자들은 선택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둔 정책금융 상품 대부분은 안심전환대출처럼 조건은 까다로운데 혜택은 크지 않은 구조”라며 “결국 확실하게 유리한 금리 혜택을 주도록 설계해야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 시장 상황 반영 못 하거나 정책 중복돼 외면 받기도

안심전환대출과는 반대로 시장 금리에 비해 지나치게 큰 혜택을 내세우면서 흥행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9월 말부터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공급한 ‘소상공인 저금리 대환 위탁보증’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연 7% 이상의 사업자 대출을 최대 5000만 원(법인기업은 1억 원)까지 최고 6.5% 금리의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90%의 보증을 제공하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올해까지 8조5000억 원 지원을 목표로 내건 이 프로그램 역시 지난해 말까지의 실적은 신청 5772억 원(1만7160건)에 실행 2458억 원(6750건)에 불과하다.

금융권에서는 이 프로그램도 금리 설정 때문에 흥행에 실패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소상공인 저금리 대환 위탁보증은 대출 부실이 발생했을 때 신용보증기금이 90%의 보증을 제공하지만 신보가 가져가는 보증료 1%를 제외하면 최고금리가 5.5%에 불과하다. 시중금리가 낮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작년에 기준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은행의 조달 비용이 높아졌고, 이런 상황에서 최고 5%대 금리로 대출을 내줄 경우 은행이 역마진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5%대인 고정금리 신용대출로 바꿔주면 은행이 손해를 봐야 한다”면서 “이런 상품을 은행이 적극적으로 판매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따로 요청하지 않을 경우 영업점에서 먼저 권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30조 원 규모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새출발기금도 예상외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새출발기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빚이 3개월 이상 연체됐거나 장기 연체에 빠질 위험이 큰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원금 감면 등 채무를 조정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도덕적 해이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면서 지난해 10월 초 공식 출범했지만 지난해 11월 말까지의 새출발기금 신청액은 1조7489억 원에 그쳤다.

흥행 실패의 주된 이유는 정책이 중복 설계됐기 때문이다. 당초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해서는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가 새출발기금과 별도로 시행되고 있었다. 새출발기금은 이 조치가 조기 종료될 것을 예상하고 준비했는데, 당국은 이를 더 연장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대출자들 입장에선 대출 상환이 더 미뤄진 만큼 굳이 새출발기금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을 이유가 사라졌다. 또 자칫 채무조정을 받게 되면 빚은 줄일 순 있을망정 자신의 신용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시장의 외면을 받는 요인이 됐다.
● “꼭 필요한 사람에게 확실한 효과 제공해야”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정책금융 상품의 흥행 실패는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이나 소상공인 등을 돕기 위해 마련한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원 목표층을 좀 더 확실하게 설정하고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정책금융 상품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책금융 상품은 복지정책과 경제정책의 중간지대에서 애매하게 설계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원 대상을 정확하게 선별하고 확실한 금리 인하 효과를 제공해야 지원 목표가 충실히 달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심 요소인 금리 설정이 지금보다 유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 금리가 출렁이는 시기에 정책금융 상품의 금리 설정이 너무 경직돼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환 대출 상품의 이용자는 결국 금리 차이를 보고 정책금융 상품을 선택한다”며 “시장 금리가 급변동할 때는 정책금융 상품을 내놓은 이후에도 금리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상품으로서의 매력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금융 상품이 ‘금융 포퓰리즘’에 활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체 규모나 대상자의 범위를 늘리는 데 집착하지 말고 꼭 필요한 사람을 집중 지원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금리 시기에는 안심전환대출처럼 유주택자를 위한 정책금융 상품에 힘을 쏟기보다는 빚 때문에 사채로 내몰리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며 “정책금융 상품의 지원 원칙과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그 기조에 맞춰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도형 경제부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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