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엔 이미 집채만한 파도…‘힌남노’ 직격 남부, 6일 오전 고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4일 21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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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점차 북상하는 4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 거대한 파도가 치고 있다. 뒤로는 폭풍우로 제주에 불시착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을 기념한 하멜상선전시관이 보인다. 2022.9.4 뉴스1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점차 북상하는 4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 거대한 파도가 치고 있다. 뒤로는 폭풍우로 제주에 불시착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을 기념한 하멜상선전시관이 보인다. 2022.9.4 뉴스1
4일 낮 12시 반, 제주 서귀포시 중문해수욕장. 제주도 전역이 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이날 중문 해변으로 가는 길목 노점상은 모두 철수한 상태였다. 해산물을 파는 ‘해녀의 집’의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관계자들은 비를 맞으며 도로 주변 공사현장 가림막과 입간판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그러나 이미 서귀포 바다는 3~4m의 높이의 집채만한 파도를 쏟아내며 대포주상절리 일대의 바위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30분 가량 지나자 한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며 일대 도로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인근 하수가 역류했고, 해안에서 사진을 찍던 관광객이 파도를 뒤집어쓰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간당 7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인근 대정읍 지역에선 30여 건의 침수 피해가 신고됐다. 서귀포 남원읍 농민 김모 씨(52)는 “한라봉 등 열매가 커지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다. 비닐하우스 등을 꼼꼼하게 점검했지만 어찌될지는 하늘만이 알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 중인 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상가 거리가 빗물이 
가득 고여 호수를 이루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은 오는 6일 새벽 제주를 지나 남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진 독자제공/서귀포=뉴시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 중인 4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상가 거리가 빗물이 가득 고여 호수를 이루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은 오는 6일 새벽 제주를 지나 남해안에 상륙할 것으로 전망됐다. 사진 독자제공/서귀포=뉴시스

● 남부지역 힌남노 직격…6일 오전 최대 고비

힌남노가 6일 오전 8시경 경남 통영과 거제 인근으로 상륙해 부산, 울산을 지날 것으로 전망되자 남부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6일 새벽~오전을 최대 고비로 보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기상청은 4~ 6일 부산 울산 경남 등 남해안에 많게는 400㎜ 이상, 시간당 100㎜의 폭우가 내릴 것으로 전망해 침수 피해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2016년 태풍 ‘차바’로 큰 피해를 봤던 부산 해운대구의 대처는 전시를 방불케 했다. 해운대구는 마린시티 등 바다와 가까운 상가 150여 곳에 대피를 권고했고, 업주들은 모래주머니를 가게 입구에 쌓아 올린 뒤 의자 등 집기를 줄로 단단히 묶는 등 자체 대응에 나섰다. 과거 태풍 때 해운대 초고층 밀집지역은 빌딩 사이로 강한 바람이 부는 ‘빌딩풍’으로 유리창이 대량 파손된 바 있어, 창틀을 테이프로 고정하는 주민도 많았다.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항에 어선들이 피항해 있다. 뉴시스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항에 어선들이 피항해 있다. 뉴시스
부산 해운대구 송정어촌계 어민들이 도로변으로 소형 어선들을 옮겨 놓고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부산 해운대구 송정어촌계 어민들이 도로변으로 소형 어선들을 옮겨 놓고 있다 부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부산 동구는 저지대에 사는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고, 30여 명이 생필품을 챙겨 인근 숙박시설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부산항만공사는 부산항의 컨테이너 반·출입 뿐 아니라 하역 작업도 모두 중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03년 태풍 ‘매미’의 악몽을 기억하는 경남도도 종일 대비에 분주했다. 태풍 상륙 지점으로 지목된 통영과 거제는 양식장 1500여 곳의 줄을 단단히 묶으며 강풍 피해에 대비했고, 어선 6000여 척을 대피시켰다.

호남 지역 농어민들도 대비에 나섰다. 이날 전남 나주에선 농민들이 미리 수확할 수 있는 배들을 서둘러 따고 있었다. 전남 강진과 진도의 전복 양식장 100여 곳은 수심 2~3m 바다에 있던 그물망을 5~6m까지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 어민 황종기 씨(57)는 “지난해 태풍이 동반한 폭우로 바다의 염도가 떨어져 전복 폐사피해를 입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대부분이 ‘강풍 반경’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난 달 기록적 폭우로 피해를 입은 강남 서초 지역도 선제적 대응을 취했다. 건물 앞에 차수벽을 세우거나 지하주차장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으며 침수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 중대본 최초로 두 단계 즉시 상향 대응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4시 반 비상근무 1단계를 3단계로, 태풍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심각’으로 각각 두 단계씩 상향했다. 중대본이 1단계에서 3단계로 두 단계를 즉시 상향해 재난 상황에 대응한 것은 힌남노가 처음이다.

남부 지역은 학교 상당수가 임시 휴업이나 원격 수업을 결정했다. 4일 교육부에 따르면 경남도 내 모든 학교는 6일 전면 원격수업을 하고, 제주도 내 유치원 및 초중고교 310곳 중 74%는 5일 휴업하거나 원격수업하기로 했다. 부산시교육청도 5일부터 학교장 재량에 따라 휴업, 원격수업 전환, 등하교 시간 조정 등을 검토해달라고 각급 학교에 전달했다. 교육부는 수도권 등 다른 지역도 태풍에 대한 경계를 높일 것을 당부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에서 태풍 대비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지난 집중호우의 상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태풍 힌남노가 북상하고 있어 국민 걱정이 더 크실 것”이라며 한덕수 국무총리와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정부가 한발 앞서 더 강하고 완벽하게 대응해달라”고 당부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서귀포=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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