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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빚투 그리고 대폭락… 월가에서 본 ‘미친’ 금융시장[책의 향기]

입력 2022-08-06 03:00업데이트 2022-08-0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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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더 콜린 씨의 일일/콜린 랭커스터 지음·최기원 옮김/396쪽·1만8800원·해의시간
미국 헤지펀드 트레이더인 저자는 2019, 2020년 미 주식 시장을 지켜보며 “3000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실업자가 된 반면에 빅테크 기업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제 세계는 새로운 부익부 빈익빈 시대에 진입했다”고 경고했다. 해의시간 제공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휩쓴 2020년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비롯해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최악의 한 해였다. 미국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만 명에 육박했던 2020년 4월 초엔 7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업수당을 신청했다는 고용지표가 발표됐다. 전형적인 불경기 때라도 2∼3년에 걸쳐야 나올 만한 실직자 규모다.

반면 미 월스트리트에서 헤지펀드 트레이더로 일하는 저자에게는 최고의 시절이었다.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트레이더로서 주어진 룰을 최대한 이용해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순간”이라고 자백한다.

이 책은 시타델과 숀펠드 등 세계적인 헤지펀드 회사에서 2000년부터 일한 저자가 2019년 10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쓴 일기를 재구성했다. 경제 불황에 직면한 각국 정부가 초저금리로 양적완화를 하는 임시방편을 내놓은 결과 한꺼번에 풀린 돈이 주식 시장으로 몰렸다. “돈이 복사된다”는 말이 유행하던 시기. 저자의 일기에는 내부자 시선으로 본 날카롭고 솔직한 분석이 담겼다.

2000년부터 미국 월가에서 경력을 쌓은 헤지펀드 트레이더 콜린 랭커스터. 해의시간 제공
저자는 빚으로 쌓아올린 주식 호황기에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들에 속한다. 실제 그는 2020년 가장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거나 정부 정책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적으로 50조 달러의 적자가 날 것 같다. 부채 거품을 더 키워나가는 꼴”이라며 양적완화 정책을 비판한다.

정부가 금리를 인하해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고, 더 많은 기업이 빚으로 빚을 막는 상황도 마찬가지. “지금 같은 경기에서 은행의 실적 보고를 듣는 건 마치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는 것 같다. 결국 사고가 날 것을 알면서도 최대한 속도를 줄이면서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보고만 있는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저자의 일터는 당시 호황의 최전선이자 불황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호황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지만, 언젠가는 이 거품이 꺼질 거라는 걸 모두가 예감했기 때문이다. 대폭락이라는 운명의 날이 다가올수록 저자 주변에는 정리해고자가 늘어났다. 저자는 2020년 4월 5일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에게 직접 해고 통보를 하기도 한다. 마치 상대의 사정은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우리 이제 각자의 길을 가자”고 말하던 스스로에 대해 “나는 그냥 로봇이고 명령을 실행할 뿐”이라고 되뇐다.

감정 없는 로봇처럼 미 경제를 진단한 저자는 매우 냉소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독자를 기만하진 않는다. 저자는 ‘최악은 지났다’는 헤드라인을 뽑으며 경제를 낙관하던 미 언론에 대해서도 “그들이 틀렸다. 새로운 부익부 빈익빈 시대에 진입했다”고 반박한다.

결과론적이지만 저자의 진단은 맞았다. 빚으로 쌓아올린 거품이 꺼지고 있다. 그게 미국뿐인가. 초저금리 시대에 ‘빚투(빚내 투자)’에 나섰던 개미들은 주식시장이 차갑게 식으면서 막대한 빚을 떠안고 있다.

책에는 부를 창출할 비법 같은 건 마지막까지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에서 들려오는 각종 마이너스 경제 지표는 저자의 예측을 뒷받침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여전히 잘나가는 헤지펀드 트레이더.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에도 여전히 어디선가 VIP 고객과 샴페인 파티라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냉정한 선구안을 전달하지만 읽은 뒤 밀려오는 씁쓸함을 피하기 어렵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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