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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박제균 칼럼]“신하 뒤에 숨었다”는 文, 유체이탈 國政의 끝은?

입력 2022-01-24 03:00업데이트 2022-01-2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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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盧는 진심, 文은 신하 뒤에…”
‘유체이탈 국정’의 끝은 관권선거
현실이 된 윤석열 ‘처가 리스크’
尹, 국민 인내 폭발 않도록 해야
박제균 논설주간
이러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민심을 누그러뜨리려 사과했을 때는 오히려 지지율이 급락하고, 치부(恥部)가 까발려진 듯한 녹취록 폭로엔 지지율이 반등하는 패러독스. 요 한 달 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가장 큰 변수는 부인 김건희 씨.

여러모로 희한한 대선이다. 역대 대선에서 부인 변수로 유력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락한 건 윤 후보가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건희의 사과에서 ‘예쁜 체하는 가식’을, 녹취록에선 ‘날것 그대로의 솔직함’을 읽었다고 했다. 특히 녹취록을 접한 사람들 중에는 ‘생각보다는 머리가 좋은 여자’라고 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건희 씨의 머리가 더 좋았다면 기자인지, 기사인지 모를 ‘듣도 보도 못한’ 인사와 50번 넘게 통화하며 8시간 가까운 녹취록을 남겼을까. 대선 후보도 아니면서 “내가 정권을 잡으면…” 운운한 건 가소롭기까지 하다. 분명한 건 이런 캐릭터의 김 씨가 진짜로 청와대에 입성하면 과연 뒷짐 지고 가만히 있을까, 하는 깊은 우려를 남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오는 대로 말해버린 김건희 녹취록에도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심이 있었고 희생하신 분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여기저기 신하 뒤에 숨은 분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國政) 5년을 시정(市井)의 언어로 잘 압축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40%를 넘나드는 국정 지지도는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뛰어넘는다. 대통령이 국정을 잘해서? 그게 아니라는 건 다 안다. 문 대통령처럼 임기가 끝나는 이 시점에 국정의 단 한 분야라도 잘한 걸 찾기 어려운 대통령이 있었을까. 아니, 문 대통령처럼 임기 내내 국정의 각 분야를 돌아가면서 망가뜨린 분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오늘의 문 대통령을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은 20%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본인의 이념 과잉 탓이 컸지만 내 편이 반대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밀어붙이면서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은 그래도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지도자로 남았다.

문 대통령은 어떤가. 그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비결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지지층이 싫어할 일은 안 한다 ②책임은 ‘신하’에게 미루고, 공은 자신에게 돌린다 ③잘못해도 사과 안 하고, 사과해도 남 얘기하듯 한다 ④누가 뭐래도 줄기차게 ‘국정 성과’를 주장한다. 이러니 지지자들에겐 잘못한 것 하나 없는 대통령이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유체이탈 국정’이다.

그런들 어떠랴. 북한이 남한 전역 타격을 상정한 가공할 미사일 도발 시리즈를 펼치고, 오미크론 위기가 닥쳤어도 대통령 부부는 임기 끝나기 전 밀린 숙제라도 하듯 ‘외유성 순방’을 멈추지 않는다. 문재인 5년은 우리 대통령사(史)에서 책임윤리를 저버린 국정이 먹힌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유체이탈 국정의 끝은 예상대로 관권선거다. 문 정권이 뒤집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5년 가까이 이룩한 좌파 생계공동체의 운명이, 심지어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위(安危)가 3·9대선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관리 부처인 법무 행정안전부 장관에다 중앙선거관리위원 8명 중 7명을 친여 일색으로 해놓고도 못 미더워 무리수를 두다 벌어진 중앙선관위 파동을 보라. 임기 말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대통령은 없었다.

이렇듯 정권 연장에 목숨을 건 여권과는 달리 야당 쪽을 돌아보면 여전히 한가하다. 선거 캠프 합류 여부를 가르는 첫 만남에서 공천권을 요구한 홍준표 의원이나 단둘이 나눈 밀담을 흘린 윤 후보 측이나 지질하긴 마찬가지다. 뭐라 명분을 갖다대든 속내는 웰빙 보수 특유의 지겨운 자리다툼이다.

무엇보다 최근 윤석열의 지지율 등락에서 보듯 ‘김건희 리스크’는 윤 후보에게 벌써 현실이 됐다. 더 우려되는 건 부인 말고 장모와 처남을 둘러싸고도 이런저런 구설이 나온다는 점이다. 윤석열의 대선 성패는 물론 설혹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의 정치적 명운(命運)이 처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염두에 둔 국민들은 그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참고 있다. 그 인내가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건 전적으로 윤석열의 몫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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