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편리해서 위험한 ‘李 실용주의’
尹 주변 ‘집권 대박, 아니면 말고’ 식, ‘참을 수 없는 보수의 가벼움’

윤 후보와 국민의힘 잘못만은 아니다. 상대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보여주는 신공(神功)이 놀랍다. 역대 유력 대선후보 가운데 이렇게 숱한 허물과 전비(前非)를 지닌 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잘못에 대처하는 이 후보의 방식이 너무도 신속 태연하며, 심지어 당당하다. 그러니 보는 사람이 더 헷갈린다.
그 과정에서 아전인수와 적반하장, 남 탓과 궤변 등 많은 ‘기술’이 동원되지만, 아들 문제에서 보듯 필요하다면 사과도 빠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 안 하고, 뒤늦게 사과하면서도 남 얘기 하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복장을 터지게 했다면 이재명은 대응의 타이밍을 놓치는 법이 거의 없다.
너무 편리한, 그래서 위험한 이재명식 실용주의다. 국가 정책의 제1 요건인 일관성을 흔들 뿐 아니라, 막상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준다. 문 대통령과 친문 세력도 이 후보가 집권하면 토사구팽(토死狗烹)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윤석열 후보는 그 반대다. 가까운 사람은 끝까지 지키려 한다. 시중에 돌아가는 민심도 모르고, 본인 표현대로 ‘제 처’ 김건희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이쯤 되면 김건희 씨가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속죄의 봉사 활동이라도 꾸준히 해야 하건만, ‘요양’ 운운하며 아내의 건강을 걱정한다. 좋은 남편이겠으나 훌륭한 지도자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김종인과 ‘윤핵관’들을 내치고 선거대책위를 슬림화한다면서 중용하는 사람이 또 권영세 원희룡 같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다. 너무 쉽게 가려 한다. 아직도 ‘검사스러운’ 골목대장 리더십을 버리지 못했다. 이번 개편 때 윤희숙 전 의원 같은 사람을 선대본부장으로 전격 중용했다면 뭔가 달라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이런 윤석열의 결점을 보완하기는커녕 도리어 대량 실점을 유발하는 게 그의 주변에 몰려든 ‘대선 한탕주의자’들이다. 대표 선수는 역시 김종인. 긴 말이 필요 없다. 그쯤 했으면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만족함을 알고 멈추기를 바람)’하고 말을 줄이시라. 보수는 품격인데,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윤 후보 주변 사람들이 웰빙 보수 특유의 ‘집권하면 대박, 아니면 말고’ 식 기회주의 속성을 드러내 피로감을 준다. ‘참을 수 없는 보수의 가벼움’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을 보고 윤석열을 지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를 구현할 도구로 그가 가장 적합해 보였기에 그 당에 올라탄 윤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가 대다수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선거에 생존을 걸고, 대선 때만 되면 집 나갔던 사람들도 돌아와 뭉치는 진보좌파 진영, 그런 생리에 힘입어 연일 정책 행보를 펼치는 이재명 후보 측과 너무 대비된다. ‘김건희 리스크’만 해도 버거운 터에 주변도 그 모양이니, 정권교체 도구로서 윤석열의 매력지수는 떨어졌다. 아울러 정권교체의 대의마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있다. 이번 대선에선 사상 처음 누굴 뽑느냐가 아니라 누굴 안 뽑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이다. 동맹을 흔들며 북-중(北中)과 밀착해 안보를 위협하고, 내일이 없는 포퓰리즘 돈 풀기로 나라와 청년의 미래에 암운(暗雲)을 드리우며, 무엇보다 법치와 상식은 물론 언어까지 파괴한 문 정권의 시즌2를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라를 걱정하는 유권자들은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이런 대의와 견주면 윤석열이나 그 주변의 문제는 어쩌면 사소하다. 그리하여 윤석열이 됐든 안철수가 됐든, 야당 대선후보 이름은 바로 이 네 글자다. 정권교체.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