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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박제균 칼럼]文, 임기 말까지도 속 보이는 ‘정치 사면’

입력 2021-12-27 03:00업데이트 2021-12-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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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盧 두 배 넘는 수형, 心身 망가진 朴
文, ‘네 편’ 아픔엔 공감능력 없는 듯
한명숙 이석기 끼워 넣고 MB는 제외
‘통합’을 말해도 ‘편 가르기’로 들려
박제균 논설주간
23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사실이 동아일보 취재진에 포착된 날이. 공교롭게도 그 날짜 신문들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사진이 실렸다. 대지 800평에 신축 중인 사저가 내년 4월 준공되면 5월 퇴임하는 대통령이 내려가 살게 된다.

바로 그 대지를 두고 ‘9개월 만에 농지→대지’ 형질 변경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대지를 두고 형질 변경 논란을 벌인 것은 문 대통령 표현대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다만 대통령 자신이 분을 못 참고 기어이 그런 논평을 한 것 자체가 더 민망하다. 어쨌거나 공사 가림막 뒤로 보이는 파스텔 톤의 사저 외관은 꽤 아늑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31일 풀려날 박 전 대통령은 돌아갈 사저가 없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들어가 살 집이야 동생 지만 씨가 여유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4년 9개월 수형 생활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70세 여성 전직 대통령이 돌아갈 사저조차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문 대통령의 박근혜 사면은 안 한 것보다는 낫다. 다만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 발표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박근혜 수형 기간에 맞먹는 4년 7개월여 임기 내내 과거에 매몰돼 ‘적폐청산’ 친일몰이 역사바꾸기 등을 밀어붙이고, 통합과 화합은커녕 민주화 이후 최악의 편 가르기를 한 정권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었다.

청와대는 박근혜 사면을 대통령의 결단처럼 포장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일이라면 왜 진작 못 했나. 박 전 대통령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챙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두 배도 넘는 기간을 감방에 놔둔 건 도무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국격(國格)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문 대통령을 두고 내 편에는 한없이 따뜻해도 ‘네 편’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공감능력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사면 배경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 건강이 심각해 자칫 수감 중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가 그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대통령이 결심을 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만 사면했다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나도 박수를 쳤을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 이석기 가석방 끼워 넣기는 뭔가. 더구나 제주 해군기지와 성주 사드기지 반대 시위, 불법 노동 집회를 주도한 민노총 지도부와 시민단체 관련자들도 대거 사면·복권해 줬다.

이러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환심을 사고, 진보좌파를 결집시키며, 박근혜 사면 카드로 보수우파를 흔들려는 선거용 정치 사면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이번 사면의 정신을 ‘통합과 화합’이라고 말해도 많은 국민에겐 ‘편 가르기와 내 편 봐주기’로 들리는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상에서도 빠졌다. 그의 사면 제외를 보고 문 대통령의 ‘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은 2018년 1월 자신을 향한 사법의 올가미가 조여 오자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을 입에 올렸다. 이에 문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답지 않게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개인감정을 드러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군사반란죄 내란죄를 범하고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챙긴 전·노 씨보다 오래 형을 살고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든, 국격 차원에서든 풀어줘야 마땅하다. 4개월여 남은 대통령의 임기, 국민은 주시할 것이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할지, 이명박 사면을 김경수 사면의 물타기용으로 쓸지, 이명박만 사면할지를.

닷새 뒤면 임인(壬寅)년 새해가 밝는다. 그 67일 뒤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다. 그 선거를 앞두고 이 나라가 얼마나 두 동강 나 분열의 굿판을 벌일지 벌써부터 아스라하다. 그러니 이재명 윤석열 후보 진영은 치열하게 경쟁하되, 모질게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문 정권의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의 약속을 마지막에라도 지키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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