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사태 홍역 치른 유럽, 밀려드는 아프간 난민에 빗장

파리=김윤종 특파원 , 김민 기자 입력 2021-08-28 03:00수정 2021-08-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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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6년만에 또 불거진 난민 갈등
“우리 가족 구해달라”… 하염없는 기다림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이란과 파키스탄을 비롯해 터키, 그리스 등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 국가들이 잇따라 아프간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파리에서는 아프간인들이 “우리 가족을 구해주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난민 구조를 호소했다(위쪽 사진). 25일 아프간 카불의 국제공항 인근에는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땅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파리·카불=AP 뉴시스
“아프가니스탄을 도와주세요. 사람들을 살려야 합니다.”

2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가 레퓌블리크 광장. 아프간계 프랑스인과 난민들이 모여 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검정 빨강 녹색으로 된 아프간 국기를 흔들며 무장단체 탈레반이 장악한 자국을 탈출하지 못한 이들과 세계 곳곳의 아프간 난민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지켜보는 시민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도와야 하지만, 자칫 이주민 증가로 사회적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자영업자 호베흐 씨는 “이미 시리아, 알제리, 모로코 등에서 온 이주민이 많아 분란이 크다. 아프간 난민까지 유입되면 더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시리아 난민이 전 유럽에 몰려든 2015년 당시 혼란이 재연될 것을 특히 우려했다.

당시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유럽 각국은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 이 와중에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가 발생하고 극우 정치인까지 득세하자 사회 혼란이 가중됐다. 시리아 난민 사태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집권 등을 야기한 요인이 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당시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 오스트리아, 그리스 등은 벌써부터 아프간 난민에 대한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주요기사
○ 세계 3위 난민 발생국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4일까지 55만 명의 아프간 난민이 발생했다. 이 중 약 절반인 25만 명은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아프간 철군 계획을 발표한 5월 이후 아프간을 탈출했다. 미군 없는 아프간이 탈레반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으로 보고 서둘러 고국을 등진 것이다.

유독 올해만의 현상도 아니다. 소련의 침공(1979∼1989년), 사실상 내전이나 다름없었던 군벌 간 대립, 탈레반 첫 집권(1996∼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따른 20년 전쟁 등으로 오랫동안 중앙집권 체계가 붕괴된 아프간은 세계 3위 난민 배출국이란 오명을 갖고 있다. UNHCR에 따르면 아프간의 누적 난민은 260만 명으로 시리아(670만 명), 베네수엘라(400만 명) 다음으로 많다.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포함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후에는 주 평균 3만 명의 아프간인이 고국을 떠나고 있다. 대부분 이란,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 접경지대에서 텐트 생활을 하면서 최종 이주국을 물색하고 있다.

아내와 쌍둥이 자녀를 데리고 터키에 당도한 나지불라 씨(30)는 미 뉴욕타임스(NYT)에 아프간 난민의 고달픈 현실을 소개했다. 그는 이란을 거쳐 터키 동부 도시 완까지 무려 2300km를 이동했다. 터키 정부는 그를 포함한 아프간 난민을 추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나지불라 씨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피신을 왔지만 쫓겨나게 됐다. 차라리 아프간에 머물다가 죽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 아프간 난민에 빗장 거는 각국
아프간 시리아 등 중동 난민 대부분은 유럽과 국경을 맞댄 터키 북서부의 육로, 터키 남부와 그리스 사이에 있는 에게해(海)를 통과해 유럽으로 들어간다.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후 터키는 아프간 난민을 막기 위해 이란과의 국경에 군 병력을 대거 파견했다. 241km의 방벽과 200개의 감시탑도 설치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2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의 통화에서 “아프간 난민 창고가 되지 않겠다”며 강경 대처를 천명했다.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이란 또한 아프간 상황이 호전되면 자국 내 아프간인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역시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은 현재도 사실상 국경을 봉쇄했고 조만간 국경을 완전히 봉쇄할 뜻을 밝혔다.

유럽 주요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터키와 국경을 맞댄 그리스, 중부 유럽의 오스트리아는 일찌감치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도적 차원의 난민 수용’ 의사를 밝힌 서유럽국과 미국도 속사정은 다르지 않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아프간 난민을 돕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메르켈의 후임자’로 유력한 집권 기독민주당의 아르민 라셰트 대표는 트위터에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 안 된다. 시리아 난민 사태 당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또한 “유럽 혼자 현 상황을 책임질 수 없다”고 가세했다.

영국은 17일 “아프간인 2만 명을 수용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올해 안으로는 5000명의 입국만 허용하겠다고 했다. 영국 언론은 나머지 1만5000명을 내년에 수용할지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또한 아프간 난민 등 이주민을 위해 5억 달러(약 5840억 원) 지원을 약속했지만, 미국 입국 허용 난민 수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호주, 캐나다 역시 각각 3000명, 2만 명 수용을 약속했지만 그 이상의 수용은 어렵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 시리아 난민 사태 ‘학습 효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이런 현상이 2015년 시리아 난민의 대규모 유입에서 얻은 ‘학습 효과’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시리아는 세계 최대 난민 배출국으로 전락했다. 내전 초기만 해도 고령화에 시달리던 유럽은 자국 내 인구 감소 해결, 인도주의 등을 이유로 시리아 난민을 수용했다. 하지만 2015년 한꺼번에 100만 명 넘는 시리아 난민이 유럽으로 몰린 후 전 유럽이 혼란에 빠지면서 ‘난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라가 적지 않다.

2015년 8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의 고속도로 갓길에서 방치된 냉동트럭이 발견됐다. 짐칸을 열자 시리아 난민 시신 71구가 발견됐다. 비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차 질식사한 것이다. 끔찍한 죽음에 전 유럽이 비탄에 빠졌다. 며칠 후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가장 먼저 “난민 100만 명 수용”을 외쳤다. 그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몰려든 난민은 곳곳에서 주민들과 충돌했다.

무슬림이 저지른 강력범죄 또한 반난민 정서를 한껏 증폭시켰다. 2015년 12월 독일 쾰른에서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2016년 12월에는 튀니지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독일 베를린에서 운전자를 살해하고 트럭을 탈취했다. 그가 시장으로 트럭을 몰고 돌진하는 바람에 12명이 숨지고 약 70명이 부상을 입었다. 두 사건의 범인은 모두 시리아 내전으로 유입된 난민이 아니라 기존에 거주하던 무슬림 범죄조직원이었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겐 ‘난민=범죄자’란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 여파로 2017년 9월 독일 총선에서는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이전까지 총선에서 단 1석도 보유하지 못했던 AfD가 반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집권 기독민주당,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3당이 된 것이다. 당시 AfD를 이끌던 프라우케 페트리 전 대표는 “이슬람은 독일의 일부가 아니다. 필요하면 난민에게 발포하겠다”는 초강경 반난민 정책을 표방한 인물이었다.

이웃 나라에서도 극우 정당이 속속 득세했다. 프랑스의 국민연합(RN), 이탈리아의 동맹(Lega)과 이탈리아형제들(Fdl),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네덜란드의 자유당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동맹은 2018년 3월 총선 후 6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연정을 구성하면서 EU 주요국 중 사상 최초로 극우 정당이 포함된 연정도 탄생시켰다.

○ “아프간 난민 결사반대” 외치는 유럽 극우
이 때문에 유럽의 주요 극우 정치인은 벌써부터 ‘아프간 난민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는 트위터 등을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공격이 강해지고, 난민들이 물결처럼 밀려올 수 있는데도 정부는 대책이 없다”며 연일 마크롱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은 내년 4월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맞붙을 가능성이 큰 르펜 대표가 아프간 사태로 지지율 상승 계기를 마련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 겸 전 이탈리아 부총리 역시 트위터에 “난민 중 잠재적 테러범이 포함될 수 있다. 절대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아프간 사태가 9월 독일 총선, 내년 프랑스 대선 등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프간 난민 사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 위험 증가 등은 극우 정당이 재도약할 환경을 마련해준다”며 “유럽 각국이 아프간 난민 수용을 꺼리는 이유도 자칫 2015년 사태가 반복돼 극우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가 발현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서유럽 선진국이 무작정 아프간 난민의 유입을 차단하면 2015년 냉동트럭 내 집단 질식사처럼 대규모 참사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밀입국 알선, 인신매매, 성폭력 등 참혹한 인권 유린 또한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1988년부터 아프간을 지원해 온 구호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의 이모젠 서드베리 이사는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아프간 사태를 난민 유입 문제로만 보는 것은 극우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며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고 촉구했다.

EU는 아직 난민 분산 수용 방안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 사태 때는 2016년 터키에 현금을 지원하며 겨우 유럽 유입을 막았지만 최근 터키는 “그때와 달리 아프간 난민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EU가 주는 얼마 안 되는 돈만으로는 수백만 명의 난민을 자국 땅에 둘 수 없다는 것이다.

EU는 2019년부터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을 27개 회원국에 자동으로 분배하는 ‘쿼터제’ 도입을 추진해 왔다. 2년이 지났지만 자금 마련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간 사태가 터진 지금이라도 결론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또한 이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장은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불과 수백 명의 아프간 난민이 입국 후 잠시 체류하는 상황에도 거부감을 보인다”며 선진국에 걸맞은 자세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정말 중요한 것은 몇 명의 난민을 수용하느냐가 아니라 이들이 도착한 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다”라며 “정책적 준비 외에도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포용 등 사회 전반의 심리적 준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아프가니스탄#아프간#난민#시리아#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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