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이정은]북핵 협상대표의 이상한 인사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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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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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정책 의견차로 인사 불이익설
대미외교 균형 노력에 부정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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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잘 지내나요? 한국 외교부 인사 발표는 언제예요?”

봄 햇살 내리쬐던 워싱턴의 오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핵 협상에 깊이 관여했던 한 인사를 만났다. 커피가 테이블에 놓였을 때 그가 물은 것은 이도훈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안부였다. 인사 대기 상태인 이 전 본부장의 다음 행보가 불투명하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야 정권이 바뀌었으니 인사 물갈이가 전면적으로 진행된다지만 한국은 아니지 않느냐”며 이유를 물었다. 기자도 답을 갖고 있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가 들은 소문은 결국 들어맞았다. 최근 외교부가 내부적으로 공개한 춘계 공관장 인사에 이 전 본부장의 이름은 없었다. 북핵 협상을 책임졌던 고위 외교관이 해외 대사직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옷을 벗는 것은 이례적이다.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이 바뀐 뒤 외교부에까지 이른바 ‘적폐 청산’의 바람이 몰아쳤던 2017년 김홍균 전 본부장의 사례가 유일했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 전 본부장에 대한 미국 측 인사들의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 및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마다 두 북핵 협상대표가 나눈 교감의 뒷얘기가 흘러나왔다. 비건 팀은 임명 초기 이 전 본부장이 한국 측 과외교사 역할을 해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비건 전 부장관이 이 전 본부장을 ‘훈’이라고 부르며 사석에서 농담을 주고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 측 관계자는 까르르 웃기도 했다. 끈끈한 개인적 관계는 태평양을 건너는 물리적 거리와 시차를 뛰어넘는 협의를 가능케 해준 또 다른 힘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 전 본부장을 놓고 청와대에서 “친미주의자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논리라면 외교부 북미국이나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은 다 친미가 아닌가. 비핵화 진전 없는 섣부른 남북 경협을 경계하는 미국 측의 반발로 한미 관계가 삐거덕거리는 시기였다. 워싱턴의 기류를 가감 없이 전하며 내부적으로 균형을 잡는 역할을 누군가는, 특히 고위 당국자라면 마땅히 해야 했다.

외교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본부장 재직 시절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대북 접근법을 놓고 충돌했는데 인사권자가 된 정 외교부 장관의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특정인에 대한 신상필벌을 넘어 외교관들의 사기와 업무 자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군거림이다. 이런 인사가 반복되면 미국의 정책 방향을 제대로 전달하려는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게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측에도 부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북핵 협상대표의 노하우와 경험을 존중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새 대북정책을 짜고 있는 국무부와 백악관은 비건 전 부장관을 비롯한 전임 협상팀의 의견을 경청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최근 언론과의 전화 콘퍼런스에서 “전임 대북협상팀과 깊고 유용한 대화를 여러 차례 나눴고 그 내용들을 충분히 검토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벤트성 대북 협상을 비판했던 바이든 행정부였지만, 효과적인 정책 수립을 위해 전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과 기꺼이 손잡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인사가 입맛에 맞지 않는 고위 당국자에 대한 인사 보복이 아니기를 바란다. 선뜻 납득되지 않는 외교관의 인사를 놓고 워싱턴에서 곤혹스러운 질문이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북핵#협상대표#인사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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