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딱 한번 나오는 인생 이야기 찾아다녀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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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 문학동네 에세이 편집자
굵직한 에세이 잇달아 엮어내 출판계 ‘미다스 손’으로 인정
15년간의 경험 모은 책 출간 “편집 후배들에게 도움됐으면”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자는 “친분이 두터운 작가들이 말을 놓으라고 해도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 게 철칙 중 하나다. 편집자가 작가를 대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작가를 대우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자는 “친분이 두터운 작가들이 말을 놓으라고 해도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 게 철칙 중 하나다. 편집자가 작가를 대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작가를 대우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김이나의 ‘김이나의 작사법’….

문학동네의 15년 차 에세이 편집자 이연실 씨(37)가 내민 명함 앞면엔 서점 매대에서 한 번쯤은 본 책들의 제목이 빼곡했다. 뒤집어보니 원고지 양식의 빨간색 칸에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기며 보호할 수 있기를’이라는 일본 만화책 ‘중쇄를 찍자!’의 대사가 쓰여 있었다. 이 씨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나누며 자꾸만 되새기고 싶은 문구라 이런 명함을 만들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최근 ‘에세이 만드는 법’(유유출판사)을 출간한 이 씨를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굵직한 에세이들을 엮어내 출판계에선 ‘미다스의 손’으로 유명하지만, 본인이 직접 책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씨는 15년간 ‘맨땅에 헤딩’하며 얻은 모든 지혜를 이 책에 담았다.

“그 사람이 쓸 수 있는 단 하나의 에세이를 찾아내는 것, 그게 에세이 편집자의 역할이에요.”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에세이는 무궁무진하다. 일기도 에세이다. 하지만 이 씨가 찾아 헤매는 건 그 사람이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이야기다. 희귀질환으로 키가 110cm까지만 자란 이지영 씨의 취직 분투기(‘불편하지만 불가능은 아니다’), 데뷔 10년을 맞는 인기 작사가의 첫 에세이(‘김이나의 작사법’)가 그런 글이다. 본인의 이번 책 역시 마찬가지다.

“제가 15년 차 편집자로서 내놓는 에세이 편집법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요. 열정을 갖고 출판사에 들어온 신입 편집자들이 금세 지치는 걸 많이 봤어요. 그 후배들한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진솔하게 썼습니다.”

책에는 저자 섭외부터 보도자료 배포에 이르는 모든 출간 과정에서 편집자가 해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이슬아 작가 에세이의 제목을 지으며 어떤 고뇌를 했는지, 김이나 작사가 책에 두를 띠지의 문구를 두고 작가와 어떤 실랑이를 벌였는지 등 인기 에세이의 탄생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묘미다.

이 씨가 엮은 책들 중에도 초판본을 소진하지 못한 에세이가 많다. 그는 이런 책들을 경기 파주시에 있는 문학동네 사무실 한곳에 모아두고 ‘1쇄의 전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끔씩 책을 만들다 지치는 순간이 오면 이 씨는 고개를 들어 ‘1쇄의 전당’에 꽂힌 채 먼지가 쌓여 가는 좋은 책들을 올려다본다고 한다.

“저 책들을 출판사가 잊고 독자가 잊고 심지어 작가마저 잊더라도 저만은 잊어선 안 된다는 마음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이랍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이연실#에세이#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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