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는 좌절 끝에 찾은 ‘희망의 빛’… 영예의 9인 “삶을 성찰하는 글 쓰겠다”

박선희 기자 입력 2021-01-01 03:00수정 2021-01-0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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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2021
“‘신춘문예의 상징’인 동아일보의 벽을 넘은게 믿기지 않는다!” 2021년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유난히 힘들었던 한 해 끝에 받게 된 당선 통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기뻐했다. “전통에 누가 되지 않는 작품으로 성실히 활동해 나가는 것”이 작가로서 첫걸음을 뗀 이들의 새해 소망이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임형섭 이근석 이서안 김은아 신윤주 이소정 씨.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매년 신춘문예 응모자들 사이에선 ‘당선되려면 이래야 한다’는 수많은 풍문이 떠돌지만, 모두 틀렸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이후 독학으로 시를 공부해 등단한 청년부터 베트남 국제학교의 영어교사, 전방에서 복무 중인 군인에 이르기까지 올해 당선자들의 면면은 어느 때보다 다채롭다.

2021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중편소설, 단편소설, 시, 시조, 희곡, 시나리오, 동화(가작), 문학평론 영화평론 등 9개 부문에서 이서안(본명 이태순·58) 이소정(43) 이근석(본명 전영재·27) 이윤훈(61), 신윤주(23) 임형섭(39) 김은아(44) 진기환(29) 김명진 씨(24)를 당선자로 배출했다. 연령대도 20대부터 60대까지 고루 분포한 데다 재학 중인 대학생부터 영화감독까지 지내 온 이력, 활동 반경도 각양각색이었다. 개성 넘치는 당선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군복무 중인 진기환 씨, 베트남에서 근무하는 이윤훈 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구에 거주 중인 김명진 씨도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했다.

○ 해외에서 군부대에까지 걸친 ‘신춘문예 어벤저스’


문학평론 당선자인 진기환 씨의 휴대전화는 이틀 내내 꺼져 있었다. 인터넷 글을 단서로 수소문해 학과 사무실에 연락하니 답이 왔다. “군복무로 휴학 중이시네요.” 위병소 근무를 끝내고 전화기를 켰을 때 그에겐 ‘아주 중요한 소식이 있어. 바로 전화 줘’라는 문자가 몇 개씩 와 있었다. 막사 복도에서 극적으로 당선 소식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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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생각보다 덤덤했어요. 같이 복무하는 용사들이 ‘신춘문예가 뭔데?’ ‘왜 좋아하는 거야?’란 반응이었거든요. 하지만 소식을 전해준 선배의 축하를 받자 점점 실감이 났고 소리 지르며 계단에서 마구 뛰었어요.”

하노이 국제학교 교사인 이윤훈 씨(시조)는 “차 한잔 하면서 쉬던 중”에 한국에 있던 아들로부터 ‘동아일보에서 전화가 왔다’는 연락을 전해 받았고 김명진 씨(영화평론)는 “넷플릭스를 보고 있던 중” 뜻밖의 희소식을 접했다. ‘아들 셋’이란 극한 직업 덕에 10년 넘게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던 이소정 씨(단편소설)는 “이삿짐을 꾸린다고 정신이 없던 와중”에 전화를 받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머무는 위치, 상황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당선 통보를 받은 이들은 이렇게 차례대로 ‘신춘문예 어벤저스’에 합류했다.

○ 묵묵히, 하지만 치열했던 습작


“이맘때 신춘문예 응모하러 마을의 작은 우체국에 가면 택배로 부칠 절임 배추가 가득 쌓여 있어요. 저 배추는 수취인이 분명한데, 올해 내 소설은 수취인에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이소정 씨)

기간이나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당선자들은 각자의 절실함으로 치열한 습작기를 보내왔다. 올해 최연장자인 이윤훈 씨는 오랜 습작기를 거친 만큼 최종심에서 아깝게 떨어진 적도 많았다. 그는 “행운의 여신은 늘 입질만 하고 달아나는 물고기였다”며 “그래도 미련이 남아 올해를 마지막이라 여기고 투고했는데 행운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김은아 씨는 식품회사에서 근무하던 영양사였지만 2년여 전 동화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도 관뒀다. 진기환 씨는 군대에서 야간 근무를 서면서 글감을 고민했고, 이소정 씨는 ‘바늘로 우물을 파듯 써야 한다’는 오르한 파무크의 말을 되새기며 썼다.

이근석 씨(시 당선자)는 이력이 독특하다. 중학교 졸업 후 “자유롭고 싶어서”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치고 혼자 시를 써왔다. 그에게 강단 위 은사는 따로 없었다. 대신 책이 그 역할을 했다. 그는 “황현산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많이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 “전통에 누 되지 않는 작품 쓸 것”

작가로서의 첫발을 뗐다는 기쁨만큼 염려도 뒤따른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쟁쟁한 선배들, 심사위원들께 누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걱정과 책임감 때문이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소망에서는 설렘이 묻어났다. “명작을 남기겠다는 욕심보다 삶을 성찰하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이윤훈) “문학을 읽는 새로운 마음의 창을 열어주는 평론가가 되고 싶다”(진기환)는 저마다의 꿈에 온기가 어렸다. 이서안 씨(중편소설 당선자)는 “10대 때 일본에 가셔서 30년을 살다 광복 후 돌아오신 아버지 이야기를 장편으로 쓰고 싶다”며 “이번 당선에서 그 꿈을 이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최연소 당선자인 신윤주 씨(희곡)는 “다른 분야도 도전해봤지만 희곡을 쓸 때 해방감과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이 펼칠 꿈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다. 또 한 번 ‘다음’을 기약하게 된 낙선자들이다. 임형섭 씨(시나리오)는 가족 코미디로 데뷔를 앞둔 영화감독이다. 공모전에서 숱하게 떨어져 면역이 됐다는 그는 “떨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응모했다”고 말했다.

“탈고하려고 쭉 읽어보는데 재밌더라고요. 내 글이 스스로 재밌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거든요. 당선되든 안 되든 ‘지금까지 해온 게 맞았다’ ‘성실히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글에 자신감이 생겼고 재밌으니 됐다’는 마음으로 응모했어요.”(임형섭 씨)

올해도 신춘문예는 당선자보다 훨씬 많은 낙선자를 냈다. 하지만 “응모로도 충분했다”는 그의 대답은 신춘문예를 기꺼이 ‘모두의 축제’로 즐기는 방법을 일러주는 듯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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