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성에 호응하고, 환경-죽음을 생각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10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열병의 나날들’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풍경이 ‘올해의 책’ 제목만으로 재구성되는 듯하다. 동아일보 출판팀이 외부 전문가 10명과 함께 선정한 ‘올해의 책’은 공정성, 여성 인권, 죽음과 환경 문제라는 키워드로 축약됐다. 계층 갈등과 불평등 등 공정성 이슈에 특히 민감했던 올해 분위기와 지도층 인사가 연루된 미투와 ‘N번방’ 사태 파장을 반영한 듯 세태를 직접적으로 다룬 사회과학서적이 강세를 보였다. 전염병 시대에 태동한 새로운 문화, 일상의 변화 속에 드리워진 죽음과 환경 문제 등 유례없던 한 해의 기억을 담은 책들도 주요 도서로 선정됐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지음·함규진 옮김


2010년 국내 번역 출간된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가 발표한 신간. 드라마 ‘스카이캐슬’ 내용과 흡사하게 최근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진 명문 대학의 입시부정 사건을 통해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 이면을 파헤쳤다. 인력 채용, 대학 입시, 지원금 등 특혜 논란이 빈번한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의 공정성을 지켜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 강양구 권경애 김경율 서민 진중권 지음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의 행적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가치관의 균열 문제를 비판적으로 짚었다. 미디어, 정치, 시사 분야의 이른바 ‘진보’ 논객들이 권력층의 여론 왜곡, 팬덤 정치 행태, 공정성 망각에 대해 대담 형식으로 분석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로 큰 주목을 받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단순히 ‘조국 흑서’로만 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깊은 환부를 여실히 드러낸 책”이라고 말했다.
 
 

세습 중산층 사회 / 조귀동 지음

현재의 20대는 19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다. 이 젊은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 곳곳의 여러 가지 ‘불평등’ 문제를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학번을 달았던 부모의 시선을 통해 들여다봤다. “계층 간의 차별이 어떤 식으로 대물림되고 고착되는가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설명”(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청년 세대가 절감하는 계층 문제를 사회경제학적 데이터로 분석했다”(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평을 받았다.
 
 

규칙 없음 /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지음·이경남 옮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영상 콘텐츠 소비 형태가 바뀌면서 한국에서도 가입자가 급증한 넷플릭스의 조직 문화를 분석했다. DVD 대여 업체로 출발한 작은 업체를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키워낸 창업자가 직접 쓴 첫 책이다. 넷플릭스에는 정해진 근무 시간과 휴가 규정이 없다. 철저한 성과주의를 추구하며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동력 삼아 조직을 키우는 독특한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지음

‘삶과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과 성찰이 절실해지는 시기다. 저자는 생애를 마무리한 사람이 남긴 흔적을 차근차근 정리하는 직업을 가진 ‘특수 청소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거나 자살을 택한 사람들의 흔적을 마주한 경험을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게 정리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독서 체험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김지은입니다 / 김지은 지음


“이 이야기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는 얼마나 미욱한 인간이었나.”(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고 안 전 지사가 최종 유죄 판결을 받기까지 544일간을 담았다. 어렵게 ‘미투’를 결심한 그녀는 비방과 모략, 손가락질의 후폭풍에 휘말렸다. 숨죽였던 그녀가 꾹꾹 써내려간 기록은 권력과 폭력의 구조를 생생하게 전한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추적단 불꽃 지음


“1년 이상 N번방을 추적했던 고된 역정의 결과물. 이 책에 대해선 고개 숙여 ‘고맙습니다’ 인사해야 한다.”(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단톡방 성희롱부터 지인 능욕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모두가 무심코 지나쳤던 불법촬영에서 ‘N번방’이라는 추악한 이면을 추적한 기록. ‘평범한 대학생’을 자처하는 이들은 평범한 당신에게 ‘우리’가 되자고 손짓했다.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지음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성폭력에 분노한 여성들은 소설 속 이 문구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연대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 정세랑의 최근작으로, 재능 있는 예술가였지만 ‘마녀’ 취급을 당한 심시선과 딸, 손녀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를 그린 장편 소설이다. 작가의 예리한 감각은 2030 여성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능성도 제시했다.
 
 

열병의 나날들 /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이수정 옮김


콜롬비아 소설가로 서울 이태원에 사는 저자가 코로나19 속 서울의 일상을 기록했다. 거대한 재난 상황과 맞물려 질병이나 바이러스에 관한 책이 쏟아졌지만 어떤 글도 확실한 해답을 주진 못했다. 인간의 민낯을 돌아보고 불안을 직시하는 서술이 진솔하게 다가온 이유다. 저자의 아내인 이수정 씨가 공들여 작업한 ‘영혼 번역’도 책의 매력을 한층 더했다.
 
 
 

2050 거주불능 지구 / 데이비드 윌러스 웰스 지음·김재경 옮김


우리는 이미 경고신호를 받았다. 수도권에서 54일간 이어진 이례적인 장마를 벌써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일상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변화가 어떻게 피부에 와 닿을 것인지를 생생한 언어로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최신 연구와 통계를 뒷받침해 신빙성을 더했다. 30년 뒤 거주할 수 없는 지구가 되기 전에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10명·가나다순)
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대표,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염승숙 소설가·문학평론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주일우 이음 대표, 표정훈 출판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