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부적응자’ 독설만 가득… 누구를 위한 증오 정치인가[광화문에서/길진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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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마치 탄핵정국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2016년 말 여의도 정가는 여야의 극단적인 대결정치로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본회의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당시 서로를 겨눴던 증오와 반목의 언어들이 4년 만에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몰아내는 맨 앞자리에서 탄핵을 외쳤고,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대통령에 올랐다. 이 정부가 가고 있는 터널의 끝이 보인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14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소 온화한 언행이 돋보이는 정치인이다. 그답지 않은 원색적인 연설이었다. 주 원내대표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 ‘문재인’이라고 지칭했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모습이다.

앞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반문(반문재인) 연대를 언급하며 주 원내대표 등을 겨냥해 “분열, 증오의 정치를 선동하며 국격을 훼손하는 정치인은 시대의 부적응자”라고 했다. 협상 와중에 협상 파트너를 향해 “부적응자”라고 공개 비난한 것은 더 이상 협상할 생각이 없다는 뜻과 다름없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 여야의 감정싸움에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득실은 천양지차다. 민주당은 갈등 이슈를 확대하며 권력기관 개편부터 사회, 경제, 노동 등 각 분야로 전선을 한 걸음씩 넓혀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정치적 실마리를 못 찾고 ‘강 대 강’으로 맞받아치는 데 그치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이 연말 국회에서 힘으로 통과시킨 주요 법안들은 대부분이 사회적 갈등을 부채질하는 법안들이다. 정권 유지 목적과 민주당 지지층이 원하는 법안만 통과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은 물론이고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정보원법, ‘대북전단 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발전법 등이 대표적이다. 함께 통과시킨 노동조합법도 마찬가지다. 개정된 노조법에 따르면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고,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관의 노조 가입도 허용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이 소속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세력을 더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법이 개정될 때마다 관행적으로 총파업 계획을 발표했던 민노총이 잠잠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야당을 향해 “분열, 증오의 정치를 선동한다”고 몰아붙이고 있지만 민주당은 정치적 실리를 차곡차곡 쌓고 있는 셈이다.

증오의 언어를 쏟아내며 정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지지층을 결집시켜 이른바 ‘개혁’의 동력을 얻는 것은 친문(친문재인) 진영의 오랜 전술이다. 민주당은 “야당의 침대축구를 참을 만큼 참았다”며 억울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속하면 상실감에 빠진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더욱 똘똘 뭉치게 된다.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친 극단의 증오 정치는 극심한 사회 갈등을 불러오고, 이에 불안감을 느끼는 중도층은 집권세력에 등을 돌리게 된다. 민주당의 최종 목표인 2022년 차기 대선의 문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증오 정치는 자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내고 있는 양날의 검일지 모른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독설#증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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