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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길진균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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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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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길진균]해마다 수백억… ‘먹튀’ 논란 끊이지 않는 정당보조금

    《2012년 대선 직후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선 후보는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그가 투표일을 사흘 남겨 놓고 갑자기 사퇴하면서 선거보조금 27억여 원을 한 푼도 반납하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갔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지만 ‘먹튀’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와 더불어민주연합을 만들고, ‘의원 꿔주기’ 꼼수로 각각 28억여 원의 선거보조금을 배분받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정당을 보호·육성한다는 취지로 많게는 한 해 1000억 원 넘게 지급되는 정당 국고보조금. 유용, 먹튀 논란이 일 때마다 정치권은 “감시를 강화하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아예 없애자는 선거 공약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국고보조금 제도가 생긴 지 44년 되도록 제도 개선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개점휴업’인데 4년간 40억 원 넘게 지원 선거 때마다 세금으로 지원하는 돈, 선거보조금이다. 중앙선관위는 4·10총선을 위한 선거보조금 501억9700만 원을 25일 각 당에 배분했다. 돈을 받은 정당은 11곳.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188억 원과 177억 원으로 가장 많이 받았고, 원외 정당인 기후민생당(민생당의 후신)도 10억400만 원을 받았다. 기후민생당은 현재 의석은 없지만 정치자금법에 따라 21대 총선 당시 2% 이상(2.08%)의 표를 받았기 때문에 보조금 총액의 2%를 배분받았다. 기후민생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1명씩 후보를 냈다. 그런데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 출마한 김정기 전 민생당 대표의 주소지는 경기 부천이다. 출마한 지역구로 주소지도 옮기지 않은 것이다. “선거보조금을 받기 위해 후보를 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전 대표에게 공약 등 출마의 변을 들으려 했으나 민생당 사무처는 “연락처를 주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민생당은 2022년 지방선거 때도 단 1명의 후보를 내고 9억3000만 원의 선거보조금을 받아갔다. 당시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A 씨가 받은 최종 득표 수는 386표. A 씨는 통화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출마였다”고 했다. 당의 선거지원금 수령도 염두에 둔 출마였다는 점을 내비친 것. 그는 “유세차량이 있어야 하고 싶은 말을 유권자에게 충분히 할 수가 있는데 그런 것을 전혀 못 했다”며 “사비로 2500만 원 가까이 썼다”고 했다. 그럼 민생당이 받은 9억3000만 원의 선거보조금은 어디로 간 걸까. A 씨는 선거가 끝난 뒤 당으로부터 150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나머지 선거보조금의 용처에 대해서는 “당이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라며 “모른다”고 말했다. 복수의 민생당 관계자들도 통화에서 “답변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현역 의원 20명, 제3교섭단체로 출발한 민생당은 2020년 총선 참패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고 주요 인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단 한 명의 국회의원 광역의원 기초의원도 없고, 이렇다 할 의정활동도 찾기 힘든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지만 지난 4년간 받은 정당보조금은 40억 원을 훌쩍 넘는다.●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정당보조금 민생당의 계속된 국고보조금 수령은 제도상의 허점과 감시의 허술함이 동시에 드러난 극단적 사례지만, 기존 원내 정당의 국고보조금 사용 역시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2013년 국고보조금 6668만 원을 당직자들에게 상여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회계 처리를 했다. 그리고 이를 차명계좌로 반환받아 불법 선거 자금으로 썼다가 적발됐다.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역시 2012년 정책개발비로 6500만 원을 썼다고 회계 신고를 했는데, 몇 건의 짜깁기한 보고서가 전부였던 것으로 드러나 선관위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국고보조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하는 건 선관위 역할이다.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 집행을 치밀하게 감시하기는 쉽지 않다. 동아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검찰이나 경찰에 고발이나 수사의뢰를 한 경우는 6건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관위는 위법 사항을 발견하고 조치를 취한 뒤에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나마 당내 갈등 끝에 한 번씩 외부로 비위 사실이 알려지는 정도다. 유권자의 감시의 눈에서 벗어난 이런 ‘깜깜이 회계 감사’는 드러나지 않은 보조금의 유용이나 위법 행위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의심을 키우고 있다.● 1980년 국보위가 도입한 정당보조금 이 같은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는 언제 왜 도입됐을까. 전두환 군사정권의 산물이다. 1980년 5월에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가 추진한 5공화국 개헌에 보조금 관련 규정이 헌법에 들어갔다. 당시 헌법 제7조 제3항엔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정당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라고 명시됐다. 이에 따라 그해 12월 정치자금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보조금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당시 속기록에 나타난 개정안에 대한 제안 설명이다. “보조금의 지급 대상과 배분 비율 등을 건전한 정당의 보호 육성이라는 차원에서 새로 정하고…정치자금을 양성화함으로써 정치활동의 공명화를 촉진하고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광복 이후 우리 정당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에 의존해 운영돼 왔고, 그렇다 보니 정치 자금을 둘러싼 부정부패가 극심했다. 검은돈의 정치권 유통과 정당 정치의 보호를 위해 정당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보조’하기 위해 정당 국고보조금이 도입됐지만, 수차례의 법 개정을 거쳐 규모가 막대해진 정당 보조금은 이제 각 당의 주요 수입원으로 변질된 것이 사실이다. 민생당 같은 ‘개점휴업’ 정당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정부는 정치자금법상 선거보조금과 별개로,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 비용도 보전해주고 있다. 선거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 비용을 줄이고 공명선거를 실현한다는 선거공영제에 따른 것이다. 정치자금법상 선거보조금은 정당으로, 공직선거법상 선거 비용 보전금은 후보자에게로 각각 지급된다. 이렇게 보면 선거와 관련해 ‘이중으로’ 지원되는 셈이다.● “투명한 감시 필요”…정치권 개정 논의는 뒷전 정치권 일각에선 폐지론도 일고 있지만 헌법에 명시된 정당 국고보조금을 아예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입법권을 쥔 각 정당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고보조금에 대한 감시 기능 강화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당의 보조금 사용 내역을 일반인이 확인하려면 항목 총액 정도만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고, 세부 증빙 자료는 선관위를 찾아가 열람해야 한다. 그나마 3년 전까지는 자료 열람 가능 기간이 3개월로 제한됐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2021년 유권자의 평가에 필요한 자료에 대한 접근 제한은 최소한이어야 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고서야 올해 2월 겨우 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렇지만 자료 열람 가능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된 것이 전부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등에선 보조금 사용 내역의 투명한 공개를 위한 법 개정을 꾸준하게 요구하고 있다. 선관위도 2021년을 비롯해 세 차례에 걸쳐 정당의 수입·지출 내역을 인터넷에 상시 공개하도록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치권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20대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또 자동 폐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오유진 간사는 “정당이 어떤 장난을 해도 알 수 없는 시스템”이라며 “유권자들의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감시를 피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당보조금이 필요하다면 회계감사 규정 강화 등 제도적 개선을 통해 정당보조금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당보조금이 많다고 더 좋은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감시받지 않은 거액의 보조금 지급은 정당에 대한 국민 불신만 높일 뿐만 아니라 정당 스스로의 자생력마저 잃게 만들 수 있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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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권의 강경 질주, 희미해진 중도확장론 [오늘과 내일/길진균]

    ‘중도층’은 과거 거의 모든 정당의 타깃이었다. 적어도 양당제 국가에선 그렇다. 양쪽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에 큰 차이가 없다면 승패는 중도층의 손에 맡겨진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중도 확장’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강조하며 ‘중도 개혁’을 설파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등 최근 야권의 태도는 다르다. 강경 일변도로 비친다. ‘2찍’ ‘집에서 쉬라’ 등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발언은 당 대표의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속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다. 혐오와 증오의 발언에 환호하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아예 “윤석열 정권 조기 종식”을 당의 목표로 제시했다. 2년 전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출범한 정부를 향해 사실상 ‘탄핵’을 공개 거론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 대표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엔 중도층의 표심을 의식해 의원들도 극단적인 언행은 자제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은 마치 중도 확장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듯 행동한다. 왜 그럴까. 한동안 민주당은 위기였다. 핵심 지지층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화 조사를 하건, ARS 조사를 하건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율은 부동층의 증감에 따라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지지 정당 없음’ 답변이 많은 조사에선 민주당의 지지율이 더 낮게 나타나는 식이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에 반감을 느끼는 일부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부동층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이 대표의 독선적인 행태 그리고 종북세력인 통진당 후신인 진보당 인사들을 대거 당선권에 배치한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반감은 조국혁신당 지지율로 옮겨 갔다. 조국혁신당의 지지층은 뚜렷하다. 진보 성향, 4050세대, 수도권과 호남에서 20% 안팎의 견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제3신당의 지지율은 크게 통상 무당파를 흡수하는 확장과 기존 정당 지지자들이 옮겨 오는 이동으로 나뉘는데, 조국혁신당의 경우 현재까지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이동이 크게 나타난다. 조국혁신당이 부동층으로 이동했던 민주당 지지층의 야권 이탈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야권은 복원되기 시작한 전통적 지지층을 더욱 단단히 결속시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진보 결집론자들은 야권의 단결이 이번 총선 승리의 핵심 과제라고 본다. 이들은 네거티브 공세를 중시한다. 믿는 구석은 오직 하나, 정권 견제 심리다. 야권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팬덤’에 휘둘린다는 비판에도 이재명·조국 대표가 직접 강성 지지층이 듣고 싶어하는 이른바 ‘사이다’ 발언과 행동, 공약을 쏟아내는 이유다. 정권심판론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괜찮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셈법이다. 야권 전반에 강경 목소리가 득세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도 표심을 외면하는 선거가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민주당은 선거 판세를 이끌 만한 새 인물도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권심판론에 의지하는 반사이익만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3, 4%의 격차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 선거를 생각하면 더욱 의문이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갈라치기’의 ‘플랜 A’로 계속 갈 것인지, 중도층 끌어안기를 위한 ‘플랜 B’로 전략을 틀 것인지 민주당이 결단해야 할 때다. 강경으로 질주하는 민주당의 전략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판명 나기까지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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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길진균]끊임없는 대통령들의 ‘선거 개입’ 논란

    《2000년대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은 모두 선거개입 시비에 휘말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에 소추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크고 작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말’로 인해 탄핵 사건에 휘말린 후,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여권의 전략이 바뀌었다. 일부 접전 지역구 방문에 머물렀던 대통령의 ‘선거 지원성’ 행보가 문 전 대통령의 재난지원금 지급, 윤석열 대통령의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 등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는 차이도 있다. “정당한 국정 운영”이라는 여당과 “선거 개입”이라는 야당. 선거 앞 대통령과 정부의 ‘선거 중립 의무’ 논란을 짚어봤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2004년 5월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한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7대 4·15총선을 앞두고 각종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특히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나온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정말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습니다”라는 발언은 큰 논란이 됐다. 야당은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위한 불법적 사전 선거운동을 계속해 왔다”며 탄핵을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헌재는 탄핵소추안을 기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은 인정했다. 탄핵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위반’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게 헌재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이후 대통령들은 선거 중립을 지켜 왔을까.● 尹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 논란 윤 대통령은 올 들어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지역 민심을 겨냥한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1월 4일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겸해 시작된 민생토론회는 2월부터 지방으로 무대가 옮겨갔다. 윤 대통령은 설 연휴 직후인 13일 부산을 찾았다. 총선을 57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16일 대전, 21일 울산, 22일 경남, 25일 충남에서 민생토론회를 연이어 열었다. 수도권에서도 10차례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해당 지역 전통시장도 5번 방문했다. 부산에서 윤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을 차례로 언급하며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또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직야구장 재건축, 센텀2지구 도심융합특구 조성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여야 후보들의 반응은 바로 엇갈렸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통령께서 우리 부산을 서울과 함께 양대 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발전의 열쇠라고 보고 계신다”며 ‘대통령님의 부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반면 야당에서는 “승부처를 찾아다니며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건 노골적으로 총선에 영향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말’은 자제하되 ‘행동’은 더 강하게 공직선거법 9조 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선거법 9조의 ‘공무원’에는 대통령 등 선출직 공무원은 물론이고 국무총리 등 정무직 공무원도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대통령은 대상이 누구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 이후에도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은 계속 불거졌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이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을 지칭한 부분을 헌재가 명시적으로 ‘선거법 위반’으로 적시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6년 4·13 20대 총선을 28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붉은 옷을 입고 부산을 방문한 것이 한 예다. 그는 총선 격전지인 부산을 찾아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둘러봤다. 이보다 6일 전에는 역시 붉은 옷을 입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방문했다. 당시 청와대는 경제 행보일 뿐 정치적 의미는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으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상징색인 붉은 옷을 입고 지방을 연이어 방문했다는 점에서 ‘노골적 선거 지원’이란 논란에 휩싸였다. 박 전 대통령은 붉은 옷을 입고 투표소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말보다 행동’ 전략은 지지층에게 명확한 메시지는 전하면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 위한 노림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이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한 헌재 결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선거 보름 前 재난지원금 지급 발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2월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부지를 직접 찾아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가덕도를 찾은 시점은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40여 일 전이었다. 문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2020년 4·15총선을 약 보름 앞두고 ‘100만 원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을 내렸을 때도 선거 개입 논란이 거셌다. 당시 청와대는 “야당 논리대로라면 대통령과 정부는 선거 기간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고 반박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발표를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정치권 인사도 동의한다. 전직 선관위 고위 간부는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다분했다”며 “선거 중립 의무를 좀 더 엄격하게 고려했다면 선거가 끝난 뒤 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는 게 옳았다”고 말했다. ● 국정 운영? 선거 개입? 모호한 선거법 전문가들은 여권이 헌재의 결정을 애써 축소 해석하고 있다는 점과 공직선거법 자체가 모호한 것을 문제점으로 들고 있다. “선거 때라 하여 국정 운영을 중단할 수는 없으나 선거가 임박한 시기(통상 투표일 3개월 전부터)에 ○○○한 행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므로 공명선거를 위해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선거 이후에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정책 발표 또는 지방 행보로 인해 선거 개입 논란이 일 때 선관위는 종종 이 같은 협조 공문을 청와대로 보냈다. 선관위에 따르면 대통령 또는 정부의 정당한 정책 집행이라고 해도 반드시 총선 전에 시행해야 할 만큼 시급하지 않거나, 선거 홍보성 성격이 짙은 행사일 경우 자제해 줄 것으로 요청했다. 헌재 역시 “대통령은 평소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선거에 임박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노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대통령의 지방 행보나 정책 발표에 대해 논란이 일 때마다 “특정 정당이나 선거 관련 발언이 없었기 때문에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선관위의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주문하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선거법 위반 소지’라는 선관위의 판단 자체가 선거 민심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여당도 선거 개입 논란을 빚을 수 있는 행보를 자제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전례로 볼 때 선관위가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많다. 그렇지만 민생토론회를 놓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 취지와 충돌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매번 논란이 반복되는 대통령의 선거 중립 논란에 대해 공직선거법 개정 또는 대통령의 당적 이탈 의무 명시 등을 통해 명확히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헌재는 탄핵소추사건 결정문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선거 중립으로 인해 얻게 될 ‘선거의 공정성’은 매우 크고 중요한 반면에 대통령이 감수해야 할 ‘표현의 자유 제한’은 상당히 한정적”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스스로 선거개입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행보를 자제하는 게 공명선거의 첫걸음일 것이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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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난무하는 ‘심판론’, 누구를 심판할 것인가

    집권 중반기에 치러지는 총선은 대개 정권 심판이냐 아니냐의 싸움, 즉 중간평가의 프레임(구도) 속에 치러졌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전통적 프레임인 야당의 정권 심판론(창)과 여당의 국정 안정론(방패)의 대결은 없다. 모두 ‘창 대 창’의 충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심판’, ‘검찰 독재 심판’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윤석열 정권의 독단과 무능”을 강조하는 것은 그 연장선상이다. 국민의힘은 ‘야당 심판론’을 외친다. 더 구체적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기득권 386 청산”을 주장한다. 운동권 심판론도 야당을 운동권이란 틀에 가둬 고립시키겠다는 프레임 전략의 일환이다. ‘정권 대 운동권’, 쌍심판론으로 선거 구도가 굳어지면 정권 심판론이 희석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여기에 설 연휴 시작과 동시에 이낙연, 이준석 공동대표 체제의 ‘개혁신당’이 출범했다. 신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잠시 접어두자. 주목할 점은 개혁신당의 출현으로 쌍심판론에 더해 ‘양당 심판론’이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신당은 신당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기득권 양당 체제를 그대로 방치해선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밝혔다. 나라를 위해 양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다. 얽히고설킨 3당 3색의 ‘심판론’이 난무하면서, 각 당이 꼬리를 물며 서로를 심판해 달라고 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앞다퉈 상대의 패배를 위해 투표해 달라는 ‘부정적 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총선에선 한동훈 이재명 이준석 등 여야의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대부분 전면에 섰다. 패배한 쪽은 치명상을 입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승리에 도움이 되는 전략이라면 뭐라도 쓸 태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당은 대의보다는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며 끊임없이 주판알을 튕긴다. 대다수 후보들도 그에 맞춰 줄서기와 이합집산만 고민한다. 1년 전에 끝냈어야 할 선거구 획정이 감감무소식인 것도 이들의 손익계산 탓이다. 선거판이 “저쪽을 심판해야 한다”는 외침으로 가득 차면서 청년, 여성,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참신한 인사들의 목소리는 공명을 일으킬 공간을 잃고 있다. 거기다 복잡한 프레임 속에 유권자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놓고 또 고민해야 한다. 누구나 총선 때가 되면 멋지게 선의의 경쟁을 하는 정당과 후보들 가운데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황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희망은 이뤄지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누가 더 비호감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선거가 펼쳐지고 있다. 설 연휴 기간 발표된 한 언론의 패널조사에 따르면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79%, ‘정치 이야기가 피곤하고 피하고 싶다’ 61% 등으로 나타났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가 깊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총선 결과에 따라 ‘내 삶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내 가정의 경제, 내 아이에게 물려줄 나라의 앞날이 달려 있다. 선택의 기준은 간단할 수 있다. 먼저 정치를 잘한 정당이 있다고 판단하면 두 표 다 행사하면 된다. 다음으로 정치를 못했거나 못할 것같이 생각되는 정당이 있다면 그 당을 뺀 정당에 두 표를 찍거나 한 표씩 나눠 찍으면 된다. 잘 못하는 정당을 키워주는 것만큼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에 해가 되는 선택은 없다. 정치혐오에 빠지는 대신 유권자 한 명이 던지는 표가 얼마나 아픈지 알려줘야 할 때다. 아울러 최악의 정치를 만든 장본인들은 상대 심판을 유권자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반성하는 모습부터 보이는 것이 옳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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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길진균]“초선도 예외 없다” 역대급 물갈이 경쟁, ‘새 얼굴’이 관건

    《총선을 앞두고 이뤄지는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는 통계로만 따져 봐도 어느 정도 선거 승리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최근 20년간 치러진 5차례의 총선을 살펴보면, 신생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2004년 17대 총선을 제외하고 18대부터 21대까지 4번의 총선 중 3번의 총선에서 물갈이 비율이 높은 정당이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현역 의원들이 더 많이 물러나고, ‘새 얼굴’을 더 많이 내세운 정당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이번 4월 총선에선 여야 내부 상황과 맞물려 ‘역대급 물갈이’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점점 짧아지는 현역 의원 ‘유통기한’ 총선 공천 때가 되면 여야 정치권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화두가 있다. ‘현역 의원 교체론’이다. 기득권의 상징으로 비치는 현역들을 대거 교체해야 혁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얻은 여론의 지지가 총선 승리의 동력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경기, 인천 모두 4월 총선 지역구 선거에서 “현역 의원을 뽑겠다”는 응답보다 “다른 인물을 뽑겠다”는 응답이 더 높게 나타난 것(동아일보사 신년 여론조사) 등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현역 의원에 대한 비토가 높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총선 앞 인적쇄신은 이제 전략의 차원을 넘어 상수가 되고 있다. 실제 현역 의원 교체율, 즉 초선 비율도 18대 44.8%, 19대 49.3%, 20대 42.3%였는데, 21대에는 50.3%로 높아지는 추세다. 국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1차적인 원인이다. 그렇지만 의원 개개인의 의정 활동을 유권자들이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된 미디어 환경의 변화, 다양해진 유권자의 요구 등 과거와 달라진 정치환경도 현역 의원들의 ‘유통기한’을 짧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의도의 한 인사는 “현역들의 교체 주기가 빨라지고 폭이 넓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며 “10년 전만 해도 ‘물갈이’라고 하면 중진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초·재선 의원들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도 당과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면 언제든 교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번 총선에선 각 당의 내부 상황도 큰 폭의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의 신뢰 구축을 공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중심 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한 현역 의원 교체가 필요하다. 이에 ‘세대교체론’을 앞세운 국민의힘은 789세대(70·80·90년대생)를 중심으로 새 얼굴을 대거 영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친명과 비명 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에서도 결과적으로 절반에 가까운 현역 의원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유권자들은 기득권의 상징처럼 비치는 현역 의원들에 대한 물갈이를 혁신으로 보는 성향이 있다”며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 각 당의 내부 사정에 양당의 쇄신 경쟁까지 더해지면 이번 총선에선 물갈이 폭이 역대급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與, 15·17대 총선 공천 주목 여권 내부에선 15대(1996년)와 17대(2004년) 총선 공천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대대적인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세대교체’(15대), ‘중진 20여 명의 불출마 선언을 통한 당의 기사회생’(17대)을 이뤄낸 당시 전략을 참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권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켜 반전을 이뤄냈다. 김영삼 정부 집권 4년 차, 직전 지방선거 패배로 인한 지방정치의 여소야대 상황 등으로 정권 심판론이 확산됐을 때다. 이춘구 당시 당 대표를 비롯한 중진들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데 이어 이회창 전 총리, 박찬종 전 의원의 입당으로 당의 구심점이 바뀌었다. 공천에선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등 당시로선 개혁 성향의 신인들을 대거 영입해 쇄신 분위기를 조성했다. 신한국당은 과반에 육박하는 140석을 얻었다. 예상을 넘어선 선전이었다.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 때도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대대적 물갈이 공천으로 ‘기사회생’했다는 평가다. 최병렬 오세훈 전 의원 등 불출마자 20여 명과 공천 탈락자까지 합쳐 148명 현역 의원 중 총 60명이 교체됐다. 40.5%에 이르는 현역 의원 교체율은 121석 확보라는 최악의 위기를 면하는 데 한몫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희생론’에 이어진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총선 불출마’는 대대적 물갈이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며 “현역 의원들의 2선 후퇴와 세대교체가 이번 공천 전략의 주요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野, 집안싸움 속 물갈이 ‘기준’ 고심 민주당도 인적쇄신에 시동을 걸었지만 당내 사정이 복잡하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21석이 달린 수도권에서만 103석을 얻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사실상 정치신인이 노려볼 만한 적지(敵地)가 거의 없다 보니 같은 당 안에서 현역 의원의 ‘수성’과 원외 인사의 ‘도전’ 경쟁이 치열하다. 그간 민주당은 하위 20%에 든 현역 의원의 경선 득표를 일괄적으로 20% 감산했지만 총선기획단은 이번 총선에서는 하위 10% 이하 의원들에 대해선 감산 비율을 30%로 강화했다. 경선 과정에서 여성, 청년일 경우 25% 가산점을 받는데 하위 20% 이하 현역의원에게 득표 감산 비율 20∼30%를 적용하면 사실상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최소 30명 이상의 현역 의원들이 교체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친명계 원외 모임으로 불리는 더민주전국혁신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가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현역 의원 50% 물갈이’를 제도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당내 중진들에 대한 ‘용퇴론’도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 안에서는 이미 대표적 ‘86세대’ 정치인들과 전임 정부에서 장관, 청와대 핵심 참모 등 주요 직위를 맡았던 인사들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쇄신 대상으로 거론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비명 진영에 속한다. 치열한 계파갈등 속에서 인적쇄신이 자칫 ‘공천학살’로 비치거나 비주류 신당 출현이라는 적전분열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역 교체율보다 내용이 중요” 그렇다면 대대적인 물갈이는 우리나라의 정치와 각 정당을 더 나아지게 했을까. 21대 국회에선 300명의 국회의원 중 절반이 넘는 151명의 초선 의원이 원내에 입성했다. 재·보궐선거와 비례대표 승계를 거치면서 그 수가 더 늘어 현재는 155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를 개혁하는 동력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21대 국회를 부끄럽게 만드는 데 일조한 면이 크다.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나 실세들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정치인’ ‘생계형 정치인’ ‘홍위병’ 등의 비판도 이어졌다. 물론 서로가 극단적으로 맞서는 양극화된 진영정치가 구조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초선 홍성국 의원은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제로섬 법칙이 지배하는 정치현실에 한계를 느꼈다”며 “객관적인 주장마저도 당리당략을 이유로 폄하받기도 했다”고 말한 것도 현역 의원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직 양당의 공천이 가시화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까진 여야 모두 유권자 기대에는 못 미치는 상황이라는 평을 내놓는다. 국민의힘에선 한 비대위원장이 등판한 이후 오히려 ‘찐윤핵관’만 대거 공천받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민주당에서도 중진이 다수 포진한 친명 그룹 및 지도부 내에서 희생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친명계 후보들의 ‘자객 출마’ 논란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이 목표’인 선거에서 각 당은 정치공학적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에서라도 현역 의원 물갈이 과정이 보다 투명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단순한 교체비율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심과 동떨어진 계파의 이익을 우선시한 사천(私薦)의 결과는 정치의 후퇴라는 것을 역대 선거가 보여줬다. 물갈이가 시대의 흐름이라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을 적극 발굴하고 발탁하는 것이 공당의 의무다. 그것이 당과 정치가 사는 길일 것이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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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들쑥날쑥 여론조사와 ‘하우스 이펙트’

    총선을 약 4개월 앞두고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조사 기관에 따라 정당 지지율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12월 2주 차 여론조사(전화면접)에서 여야 지지율은 국민의힘 35%, 더불어민주당 34%로 오차범위 내에서 비등한 구도를 보였다. 양당의 지지율이 최근 몇 달간 30%대 초중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엇비슷하게 이어진 것이 갤럽의 결과다. 전화면접으로 진행되는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정당 지지율 흐름도 유사하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민주당 지지를 천명해 온 한 유튜버가 만든 여론조사 업체의 12월 2주 차 조사(ARS)에선 민주당 지지율 51.6%, 국민의힘 37.0%로 그 격차가 오차범위 밖인 14.6%포인트로 벌어졌다. 이 업체가 최근 6개월간 실시한 27번의 정례 지지율 조사(ARS)에서 민주당은 21차례나 50%가 넘는 지지율을 얻었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은 단 한 차례(40.1%)를 제외하곤 줄곧 30%대를 유지했다. 격차가 18.7%포인트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대체 왜 이런 현격한 차이가 나는 걸까.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라는 말이 있다. 여론조사를 의뢰·수행하는 기관의 성향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편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질문 문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유튜버가 만든 여론조사 업체가 정당 지지율 조사 때 함께 물어보는 질문 내용을 들여다봤더니 편향적으로 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검찰은 헌정사상 최초로 야당 대표의 3번 연속 검찰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차기 대권 주자를 제거하려는 표적 수사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2월 12, 13일 조사)라고 질문하는 식이다. 질문에 ‘헌정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들어갔다. 여론조사 설문에 ‘이례적’ ‘반드시’ ‘꼭’과 같은 부사를 집어넣으면, 그것은 응답자들이 부정적으로 응답하기를 기대하고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거’ ‘표적 수사’ 등 가치 판단이 포함된 단어도 응답자의 답변을 한쪽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설문 작성 과정에서 피해야 할 표현들이다. 이런 질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응답자들은 중간에 전화를 끊거나 이 같은 질문을 한 여론조사 기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이런 질문에 우호적인 응답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 지도부의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고, 의원총회에서 자료로 배포되기도 한다. 민주당이 자당에 우호적인 여론조사에 의지하거나 정세 판단 근거로 삼고 총선 전략을 짜는 것은 그들 몫이다. 이 업체는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고 자신들이 맞다고 주장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조사가 전체 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다수의 의견에 편승하는 ‘밴드왜건 효과’다. 총선에 임박할수록 각종 여론조사가 난무할 것이다.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문항을 설계한 뒤 편향된 여론조사 결과를 SNS 등을 통해 대거 유포하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려는 시도가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의 객관성을 단번에 따져볼 수 있는 인공지능(AI)이라도 개발돼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조사 샘플과 설문 문항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엄격한 사전 사후 관리, 조사기관 운영자의 자격 요건 강화가 필요하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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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총선 ‘게임의 룰’ 수싸움 본격화… 위성정당 봉쇄가 핵심[수요논점/길진균]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 ‘게임의 룰’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예비후보 등록일인 12월 12일 전까지도 관련 법안 처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최대 쟁점인 비례대표제 논의에서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출현을 막기 위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국민의힘은 전국 단위의 병립형 비례제를 최우선으로 하되, 야당이 3개 권역별(수도권·중부·남부) 병립형 비례제를 들고 나올 경우 논의를 해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동형 유지를 주장해 온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당내에서 위성정당 창당을 막기 위해 병립형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권역별 ‘병립형 vs 연동형’ 막판 쟁점 선거제도를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마지막 회의는 7월 13일이었다. 이후 4개월간 ‘2+2협의체’(국민의힘·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정개특위 간사)의 물밑 협상이 이어졌다. 이들은 소선거구제 유지와 3개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제에 대해선 큰 틀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를 병립형으로 선출할지, 연동형으로 선출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를 따로 한 뒤 과거처럼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먼저 정한 뒤 지역구 당선자가 정해진 의석수에 미치지 못하면 비례대표로 이를 일정 부분 채우는 연동형을 공식 주장한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선 그간 반대해 온 병립형에 대한 기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위성정당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병립형으로 돌아가더라도 타협할 수 있는 안을 만들자는 방안이 내부에서 거론 중”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등 소수정당은 병립형 회귀는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비례대표제 뭐가 문제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253개 지역구에서 1명씩 253명, 비례대표로 47명을 선출해 모두 300명이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현행 선거제가 표심을 정확하게 의석수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정당의 득표율이 10%이면 원칙적으로 300석의 10%인 30석의 의석을 얻어야 하는데 현실은 다르다. 지역구 의석 대부분을 휩쓰는 거대 양당은 표심에 비해 과다 대표되는 반면, 소수정당은 과소 대표되는 ‘불공정한’ 의석 배분이 발생한다. 위성정당 창당으로 선거제 개편의 취지와 다른 결과가 나왔던 21대 총선이 아닌, 2016년 20대 총선 결과를 보자. 의석 점유는 민주당 123석(41.0%),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122석(40.67%), 국민의당 38석(12.67%), 정의당 6석(2.0%)이었다. 그러나 후보가 아닌 지지 정당에 투표하는 정당득표율로만 계산했을 때 산출되는 의석수는 민주당 25.54%(76석), 새누리당 33.5%(100석), 국민의당 26.74%(80석), 정의당 7.23%(21석)다. 지역구 따로, 정당 따로인 ‘교차 투표’ 변수를 제쳐놓고 산술적으로만 보면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각 47석, 22석이 과다 대표된 반면, 소수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과소 대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야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선거제 개편에 착수했다. 하지만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의석수를 배분하게 되면 거대 양당이 기존보다 의석을 잃기 때문에 양당은 연동형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2020년 총선을 4개월 남짓 앞두고 여야는 의원 정수를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유지하면서, 이 가운데 30석은 ‘준연동형’, 나머지 17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 방식의 선거제를 도입했다. ● 위성정당이 망친 선거제 개편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연동형의 절반(연동률 50%)만 적용하기 때문에 ‘준’자를 붙였다. 지역구 253석 중 특정 정당이 얻은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에 이르지 못하면 비례대표에서 부족한 의석 중 50%를 채워주는 제도다. 준연동형 비례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른 비례성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에 반대했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민주당도 이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더불어시민당을 만들면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무력화했다. 결과는 민주당(163석)이 더불어시민당(17석)을 포함해 180석, 미래통합당(84석)과 미래한국당(19석)은 103석, 정의당은 6석 등으로 나타났다.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다면 선거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정치학회가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은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비례대표 후보를 직접 낸 것으로 가정한 선거 결과를 시뮬레이션했다. 결과는 민주당 169석(실제 의석수 180석), 미래통합당 99석(103석), 정의당 13석(6석), 국민의당 8석(3석), 열린민주당 6석(3석)으로 나왔다. 기존 제도보다 비례성이 개선되는 결과가 나왔다. ‘꼼수 위성정당’ 효과로 양당(더불어시민당 +11석, 미래한국당 +4석)이 소수정당(정의당 ―7석, 국민의당 ―5석, 열린민주당 ―3석)에 돌아갈 비례 의석이자, 준연동형 배분 의석 30석 중 절반인 15석을 가져간 셈이다.● “현실적으로 위성정당 막기 어려워”정치권에서는 이대로라면 21대 총선처럼 ‘위성정당 꼼수’가 또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 속에 ‘위성정당방지법’이 여러 건 발의된 상황이다. 그러나 이 법들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정개특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제 개혁은 양당의 합의하에 추진하는 게 관행이었지만, 준연동형 비례제의 경우 민주당, 정의당, 바른미래당, 평화당 등 4당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을 배제하고 통과시킨 법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애초부터 연동형을 찬성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또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럼 민주당도 맞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도 결국 병립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권역별 비례대표 자체도 개선”여야는 일단 권역별 비례제라는 절충안엔 도달했다.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선출할 경우 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당선자를 배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자체로 정치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4월 국회 전원위에 오른 여야의 개선안에도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당시 민주당은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준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국회의장도 6개 권역을 제안했지만 이를 현실화하려면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의석수를 늘리기 어렵기 때문에 권역을 3개로 줄이는 안이 나왔다”며 “전국을 수도권·중부·남부의 3개 권역으로 나눈 것은 지난 3번의 총선 결과를 시뮬레이션했을 때 특정 당에 유리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권역별 비례제를 병립형으로 운영할 경우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측면은 있지만 지금처럼 양당제가 유지되고 소수정당의 국회 진입이 어려워지는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병립형을 도입하되 거대 양당이 차지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에 제한을 두는 방법으로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의 기회를 보장하는 안을 검토 중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여야 간 협상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양당제의 폐해를 줄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연동형제하에선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을 막기 어렵다. 양당이 공식적으로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더라도, ‘태극기 부대’와 ‘개딸’(개혁의 딸) 등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친국민의힘 호소 정당’ ‘친민주당 호소 정당’ 등 ‘참칭정당’ ‘자매정당’이 선거 전 급조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선거제에는 장단점이 있다. 이번 선거제 개편의 최우선 과제는 위성정당 창당 봉쇄다. 정치와 선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 키우는 일은 막아야 한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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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알아서 줄 잘 서는 게 생존법인 ‘늘공 정당’

    4년 전 이맘때인 2019년 11월. 총선을 앞둔 자유한국당은 지금의 국민의힘만큼이나 궁지에 몰렸다. 국민 지지가 흔들리는데 당 지도부와 중진들은 뚜렷한 대책이 없었다. 그때 당내 최연소 3선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한국당은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며 당의 창조적 파괴를 주장했다. 선거 때면 당의 쇄신을 외치며 먼저 불출마를 선언하는 의원들이 등장한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이 있었고,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원희룡 홍정욱 의원 등이 나섰다. 21대 총선이 6개월 남짓 남았을 때 김 의원에 앞서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철희 의원이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며 86의원들에게 동반퇴진을 주문했다. 이들의 불출마는 무기력한 당에 새 피를 수혈하기 위한 자기희생으로 평가받았다. 국민의힘이 위태로운 모습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로 싸늘한 민심을 확인했지만 아직까지 불출마를 내걸고 쇄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다선 의원이 없다. 초선 의원들의 집단행동도 없다. 하태경 의원 1명이 서울로 지역구를 옮기겠다고 했지만 다른 중진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대통령과 지도부를 향한 고언도 극소수 비주류 의원들의 비판이 전부다. 다른 목소리를 허락하지 않는 당 분위기와 자신의 공천에만 관심을 둔 보신주의가 결합한 결과다. 국민의힘은 어쩌다 이런 정당이 됐을까. 의원 구성도 한 원인일 것이다. 비례대표를 제외하고,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 89명 중 절반에 가까운 39명(44%)이 ‘늘공(직업공무원)’ 출신이다. 판검사, 고위 행정관료, 경찰, 군인 출신이다. 행정고시(15명), 사법시험(14명)에 합격하고, 고위직을 거친 최고 스펙을 갖춘 엘리트들이다. 당 지도부만 봐도 김기현 대표가 판사, 윤재옥 원내대표와 이만희 사무총장은 경찰 고위직 출신이다. 직전 사무총장이었던 이철규 의원도 경찰 고위직을 지냈다. 대구는 12명 의원 중 9명(75%)이 ‘늘공’ 출신이다. 국민의힘에는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에도 ‘이건 아닙니다’라고 막아서는 정치인이 없다. 수직적 공무원 문화, 기득권 유지, 자존감에만 익숙한 전직 ‘늘공’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고 불평 없이 지시에 따르는 것이 가장 편하고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여기에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는 대통령의 질타까지 더해졌다. 이제는 “대통령은 대입 사건을 수사하는 등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든가,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후 열린 의총에서 “정권 교체를 이뤄낸 대통령은 우리의 은인”이라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게 어색하지 않은 당이 됐다. 다양한 국민을 대표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당 소속 의원 대다수가 ‘늘공’의 집단사고에 사로잡혀 공천과 자리만 바라보는 집권여당이 된 것이다. 새로운 인재들을 대거 충원해 당 분위기를 확 바꿔야 하는데, 지금의 여당이 용산의 의중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물갈이를 외치면서 미운털을 일부 솎아내고 손 씻는 것 아닐까. 그마저도 지금까지 새롭게 수혈될 것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상당수는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검사, 고위 행정관료 등 또 다른 ‘늘공’들이다. 김 의원의 쇄신 요구에 당시 황교안 대표는 “총선에서 평가받지 못하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며 변화를 거부했다. 주류 의원들은 당이 어려울수록 단결해야 한다고 외쳤다. “총선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김 대표, 현재 국민의힘 분위기와 판박이다. 결과는 모두 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한국당의 후신)은 100석을 간신히 넘기며 당시 범여권에 참패했다. 국민의힘은 더 절박해져야 한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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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실-법무부는 몰랐나? 눈감았나?… 부실 인사검증 논란[수요논점/길진균]

    《이번 정부에서도 어김없다. 윤석열 정부의 ‘부실 인사검증’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주식 파킹, 배임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국회 인사청문회가 파행했다. 2월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 하루 만에 낙마했다. 인사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내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법무부 산하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한 윤석열 정부의 검증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걸까. 대통령실과 인사정보관리단은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눈감았을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인사검증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봤다.》 ● 사전 질문서만 제대로 작성했다면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비속이 비상장회사의 주식 또는 지분을 보유했거나 현재 보유하고 있습니까’(21번) ‘비상장회사 주식의 취득 또는 매도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 논란이 될 소지는 없었는지 소명해 주시기 바랍니다’(21-4번) 고위공직자 후보에 이름이 올라 검증 대상이 되면 해당 인사는 위 질문들을 포함한 59쪽 분량에 169개 질문 항목으로 구성된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를 받게 된다. 이때부터 3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사전 질문서 답변 작성을 통한 자기 검증,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각종 자료 검증,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검증보고서 작성 및 대통령의 판단 순이다. 김 후보자는 2013년 박근혜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을 때 자신이 공동 창업한 위키트리의 운영사인 소셜뉴스 주식(비상장)을 시누이에게 매각했다가 되사들였다. 지금은 이 회사의 최대 주주다. 이 때문에 백지신탁 제도를 회피하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김 후보자가 21번과 21-4번 질문에 대해 어떤 답변을 기재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큰 논란으로 부상했다. 사전 질문서에는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 소송이 있습니까’(6번)라는 항목도 있다. 김 후보자는 2019년 공동창업자였던 공 모 씨로부터 소셜홀딩스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민사소송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이 재판 판결문을 근거로 “김 후보자가 회삿돈으로 인수자금을 충당했다”며 배임 의혹을 제기했고, 김 후보자는 “배임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전문성’이 강점이라는데… 사전 질문서 답변의 진위 및 법률적 쟁점을 따지는 일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몫이다. 국세청과 금감원, 경찰, 검찰, 병무청 등 각 기관의 전산망을 조회한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법원 판결문도 검색한다. 의문이 있을 경우엔 검증 대상자에게 추가 소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이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담당하던 인사검증 기능을 없앤 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그 권한을 넘겨준 명분은 ‘전문성’이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7월 국회 법사위에서 “법무부가 사실 확인과 법적 쟁점을 파악하는 데 특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법적 쟁점 파악과 해석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김 후보자의 주식 파킹이나 배임 의혹을 ‘놓쳤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사전 질문서는 ‘자기 검증서’역대 정부는 조각이나 개각 때마다 크고 작은 ‘부실 검증’ 논란에 휘말렸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인사 검증 시스템 전반을 손봤다. 2010년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검증 질문 200개를 던져 꼼꼼하게 점검토록 하는 사전 질문서를 만들었다. 정부마다 질문 항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질문서를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실이 공개한 질문서는 기본 인적사항(7개), 국적·출입국 및 주민등록(12개), 병역의무(7개), 범죄경력 및 징계(10개), 재산관계(32개), 납세의무 이행(35개), 학력·경력(5개), 연구 윤리(16개), 직무 윤리(32개), 사생활 및 기타(12개), 기타(1개)로 구성됐다. 윤석열 정부는 또 가상자산(가상화폐) 관련 질의도 추가해 소유자와 가상자산명, 상장 여부, 보유 수량, 총평가금액, 매입 경위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사전 질문서는 일종의 자기 검증서다. 과거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200개 안팎의 질문 항목을 만들고, 이에 대해 본인에게 먼저 답하게 하는 것은 기초 자료 확보의 의미도 있지만 고위공직자를 맡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도록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며 “실제 많은 검증 대상들이 답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못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하곤 했다”고 말했다.● 늘 인사권자의 ‘정무적 판단’이 논란 그런데도 인사검증 파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자료 검증과 평판 검증 등이 마무리되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검증보고서를 작성한다. 확보한 ‘팩트’와 함께 적격 여부에 대한 판단도 함께 적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3∼5단계로 적격 여부를 명시한다. 문제없음 - 다소 부담 - 부담 - 문제 있음 - 부적격 등의 형식이다. 여기까지 마무리되면 최종 판단만 남는다. 여기서부터는 ‘정무적 판단’의 영역이다. 부담을 안고 후보자로 지명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문제는 논란이 예상되는 대도 무리하게 강행하는 경우다. 전직 청와대 인사 담당자는 “실무진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도 대통령이 ‘이 사람을 꼭 써야겠다’고 낙점하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회고다. “인사검증팀이 심각한 문제를 발견해 ‘부적격’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자 대통령은 인사검증팀원을 교체했고, 새로운 보고서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최종 판단은 결국 대통령의 몫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7대 비리’ 기준에 따라 고위공직자 인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검증 논란은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위장 전입 논란으로 야당 반대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이낙연 총리 인준안만 국회를 통과했고, 문 대통령은 야당 동의 없이 강 장관과 김 위원장을 임명했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두 아들의 병역특례, 연구비 횡령 의혹까지 겹쳐 지명이 철회되기도 했다.● 검증 과정의 법적 근거부터 확립해야 행정부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정치적 가치와 신념을 함께하는 고위공직자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 나가야 하지만, 이들은 반드시 공직자로서의 자격과 능력, 도덕성을 갖춘 것으로 검증된 인사여야 한다. 대통령실이 사전 질문서를 만들고, 이를 다시 검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인사검증 첫 단계인 사전 질문서 작성부터 법적 근거가 없다. 이를 허위로 작성했을 때 처벌 규정도 없다. 사전 질문서 표지에 ‘답변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될 경우 향후 공직 임용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대통령실은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건 때 ‘아들 학교폭력’ 문제가 사전 검증 때 걸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대통령실은 질문 항목 중 하나인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습니까’라는 문항에 정 변호사가 ‘아니요’라고 답해 이를 알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후 시민단체가 정 변호사를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했지만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고위공직자 후보 질문서인 130여 페이지 분량의 ‘국가안보 지위를 위한 질문지(SF86)’에는 의도적으로 사실을 위조·은폐할 경우 형법에 따라 벌금형이나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 변호사 낙마 이후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인사검증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이나 인사검증 과정에 대해선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검증 절차와 내용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바뀌지도 않는 것이다. 막연히 대통령 중심제의 문제로만 치부하면 인사 실패, 부실 검증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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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길진균]직설-감성 연설, 선택은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라는 생경한 표현을 6번 등장시켰다. 직설적이고 공세적인 언어가 나열됐다. 과거와 사뭇 다른 대통령의 연설문을 두고 작성 과정과 의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대통령 연설문에는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다. 국정의 이정표이고 곧 역사다. 대통령부터 각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 대통령실이 역량을 총결집하는 이유다. 연설기록비서관이 초안을 잡는다지만 연설문 작성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뜻을 대통령의 언어로 옮기는 작업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논리 전개 방식과 고유의 표현 방식, 어투, 즐겨 쓰는 용어와 농담까지 염두에 두고 연설문을 작성한다. 김대중 노무현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했던 강원국 작가는 “김 대통령의 연설문은 호남 출신 행정관이, 노 대통령의 연설문은 부산 출신 행정관이 어투까지 흉내 내면서 몇 번씩 읽어보며 독회(讀會)를 했다”고 했다. 길게는 수개월에 걸쳐 한 자 한 자 고쳐지고 다듬어지는 대통령 연설문은 누가 쓰고, 어떻게 완성되는지 살펴봤다.》● ‘대통령의 그림자’ 연설비서관 서울 관악구 남태령 언덕에 위치한 수도방위사령부 지하에는 전시지휘소 벙커(B1 문서고)가 있다. 또 경기 성남 지하엔 한미연합사가 관리하는 ‘CP 탱고’라는 전시지휘소가 있다. 여기엔 모두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바로 옆자리 지정석의 주인공은 연설비서관이다. 전쟁 중 대통령의 메시지를 즉각 군과 국민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게 대통령을 밀착 보좌하는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말과 메시지를 책임진다. 용산 대통령실에선 김동조 비서관이 대선 후보 때부터 그 일을 맡아 왔다. 금융·투자 전문가로는 이례적 발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정치·사회 현안 비평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글 잘 쓰는’ 연설비서관이라고 혼자 쓸 수는 없다. 정치 경제 사회 안보 수석실에서 분야별 초안을 올리면 연설비서관이 취합한다. 올 초 한일 관계 개선이나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처럼 민감한 비공개 안보 구상이 진행될 때는 대통령실(청와대) 내 국가안보실이 초안을 작성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안보 관련 부분은 교수 출신인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이 쓴다고 전해진다. 대통령의 의중이 중요하기에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사담(私談)까지 메모해야 하고, 간간이 들리는 에피소드도 귀를 세우고 들어야 한다. 연설문을 준비하면서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묻고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간 큰’ 참모이기도 하다.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에게 들은 내용 중 다른 수석실이나 정부 부처에서 알아야 할 것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도 한다. 청와대 출신 한 인사는 “연설비서관은 비서관(1급) 직급이지만 대통령의 생각과 심기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서관 이상’의 역할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최종 독회 방식도 제각각 대통령 취임사나 8·15 경축사처럼 중요 연설은 길게는 몇 달 전부터 준비가 시작된다. 따로 TF팀을 꾸리기도 한다. TF는 정부 부처에서 보고를 받고, 교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원고를 작성한다. 대통령이 직접 대통령실 밖 외부 전문가에게 연설문 원고를 통째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외부 전문가와 대통령실 참모들이 만든 결과물 여러 판본을 놓고 메시지와 문장력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참모들의 손을 거친 초안은 독회를 반복해 가며 최종 확정된다. 일종의 집단지성을 모으는 과정이다. 독회 방식은 역대 대통령마다 스타일이 드러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 등 중요 연설에 국한해 독회를 가동했다. 참석자도 비서관급 이상으로 제한했다. 참석자들은 의견을 냈고, 김 대통령은 일단 듣기만 했다. 그런 다음 대통령이 연설비서관의 초안을 원고 여백에 깨알 같은 정자체로 빽빽하게 써가며 고쳤다. 검은색 볼펜으로 쓰다가 빨간색 볼펜으로 덧쓰기도 했다. 토씨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아 ‘빨간 펜 선생님’ 같았다는 것이 참모들 기억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독회는 토론 방식이었다. 업무가 연관된 행정관까지 다 불렀다. 대통령은 토론을 주도하며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당시 한 참모는 “100% 구술이었다. 대통령이 머릿속 생각을 말로 불러줬고, 우리는 돌아와 글로 풀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회를 통한 연설문 업그레이드를 선호했다. 여러 곳에서 연설문 초안을 받았고, 청와대 밖 외부 전문가까지 초청해 함께 읽으며 글을 고쳤다. 독회가 20번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했다. 일단 참모들의 얘기를 들어본 뒤 본인의 생각과 주관을 초안의 여백에 펜으로 꼼꼼하게 적었다. 문 대통령은 연설비서관을 수시로 불러 의견을 나누곤 했다.● ‘레토릭 배제’ 尹 스타일 윤 대통령은 본인 생각을 참모들에게 말하는 것으로 연설문 작성을 시작한다. 독회는 소수로 진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중요 연설문의 경우 연설비서관이 초안을 만들면 비서실장, 수석 등과 2, 3차례 상의를 한 뒤 자신이 직접 원고를 쓰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5월 취임사 역시 취임사준비위원회가 약 20명의 전문가 의견을 종합한 버전과 함께 외부 전문가의 글 2, 3가지를 견줘본 뒤 대통령이 최종 정리한 것으로 파악된다. 윤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평소 생각하던 ‘자유의 정신’을 강조하기로 결심했고 본인이 상당 부분 직접 원고를 다시 쓴 것으로 이 과정을 아는 관계자가 설명했다.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자유”라는 표현처럼 16분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 썼다. 윤 대통령은 올 8·15 경축사에서도 ‘자유’를 27번 언급했다. 윤 대통령 연설의 특징은 레토릭(수사·修辭)의 배제다. 연설의 대부분이 직설적이다. 비유적이나 감정이 담긴 시적인 표현, 사자성어 등이 거의 없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말한 8·15 경축사도 마찬가지다. 미사여구가 없어 연설이 짧다는 점도 특징이다. 현안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방식도 선호하지 않는다. 초안에서 삭제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연설문 여백에 직접 펜으로 써서 지시한다. 대통령이 직접 비유와 예시 문장과 단락을 펜으로 죽죽 지워 나가면서 연설문이 과거 대통령보다 짧아졌다.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대통령의 메모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이 연설하면 이튿날 조간신문들은 초고에 있던 부분보다 대통령이 직접 메모하거나 고친 부분을 제목으로 뽑는 일이 많았다.” 대통령 본인이 추가한 곳에서 ‘연설자의 진심’이 더 잘 드러나지 않았겠느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런 연설 방식 때문에 “감동이 부족하다”거나 “공격적인 직설화법이 대통령의 언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검사 생활을 27년 한 윤 대통령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표현에 더 익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언어로 핵심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때로는 감성의 언어로 국민의 마음을 보듬고 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연설은 정치, 자신의 언어가 중요” 전임 문 대통령은 반대로 감성을 자극하는 표현을 자주 담았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취임사가 대표적이다. 일본과 다툴 땐 “이제 누구도 대한민국을 흔들 수 없습니다. 이제 누구도 국민 주권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라며 운율과 함께 감성에 호소하는 표현을 연설문에 담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화려한 문장이 늘 감동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지지자들에게는 갈채를 받았지만 “소통이 아닌 쇼통”이라는 비판도 공존했다. 정치는 말이고, 대통령의 연설은 통치행위의 한 부분이다. 대통령마다 자신의 색깔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주관과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국민에게 전달하는 게 대통령의 연설이다. 어떤 방식을 사용할지는 대통령이 선택할 몫이다. 관건은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다. 건조하고 때로 거칠지만 메시지는 분명한 윤 대통령의 연설 스타일에 대한 국민들의 호불호도 분명히 갈리고 있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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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일상화된 與野의 무책임 정치가 낳은 문제들

    “결과적으로 국민께 피해를 끼쳐 송구스럽습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사과의 표현이다. ‘결과적’이라는 단서를 붙였다는 점에서 좋은 사과의 예시라고 할 순 없다. 면피성 의미가 엿보이지만 사과의 뜻이 분명하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도 국민의 질타를 인정했다는 뜻이고, 나아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책임의 의미까지 내포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에선 ‘결과적 책임’이라는 말 조차도 잊혀진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된 행복청장 인사 조치에 대해 보름째 묵묵부답이다. 메시지가 줄 의미는 명확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태원 참사 책임 논란과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면 정무직 자리에 대해서도 결과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 책임을 외면하는 모습은 야권에서도 볼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패배에 이어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지방선거까지 참패하고도 다시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쥐었다. 패배한 리더는 잠시라도 현실 정치를 떠났던 과거 사례와는 달랐다. 결과적 책임에 대해 측근들은 “책임감을 갖고 더 충실히 일하겠다”는 엉뚱한 해명을 내놨다. ‘결과적 책임’이 보여주는 정치의 책임성, 반응성의 구현 여부는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르는 핵심 내용들이다. 이제 여의도에선 잘못이 비교적 명확한 문제까지 한사코 부정하는 ‘몰염치’의 언행이 만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치의 퇴보다. 위기의 근원은 어디일까. 30년 넘게 누적돼 온 승자독식 구조 탓이 크다. 한 표라도 더 얻는 후보 또는 정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현실 속에서 가장 큰 명제는 ‘승리’다. 표의 득실을 따져볼 때 정치윤리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기보다는 상대를 문제를 야기한 거악(巨惡)으로 몰고 이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는 계산이다. 한 중진 의원은 “예전엔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절대적인 선이 있었다. 지금은 다른 목소리를 내면 ‘전쟁 중에 적을 돕는 배신자’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총선을 8개월 앞둔 여야는 격렬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실 건축물, 교권 침해,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난맥상 등 사회의 주요 사안이 모두 정쟁의 장이다. 반목과 책임 떠넘기기가 정치의 ABC가 됐다. 국제적 망신을 산 세계잼버리대회까지도 ‘내 책임’에 대해선 입을 꾹 닫고, ‘다른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만 따지는 정쟁이 됐다. 책임지지 않는 정치는 결국 다른 희생양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일부 공무원들과 관료 시스템이 타깃이 되는 모양새다. 관료는 본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선출된 정치인의 책임하에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능력을 평가받고, 정치인은 그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 결과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와 관료 시스템의 작동 원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책임질 공무원을 징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위 개념인 정치의 결과적 책임은 외면하고 있다. 정무직 고위 인사들에 대한 책임 면탈 속에 ‘적극 행정’과 동시에 엄중한 책임을 요구받고 있는 직업 공무원들은 허탈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책임질 일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것이 ‘적극 행정’이라는 ‘웃픈’ 얘기까지 공무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여야의 극단적 대립 구조가 낳은 책임지지 않는 정치가 결과적으로 관료 시스템까지 훼손하고 있다. 누구도 “내 탓이오”를 말하지 않는 실패한 정치가 민폐를 쌓고 있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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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불체포특권 폐지? 포기?… 美-獨-日 등 채택한 헌법적 권리 어찌 될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상정된 사람은 조봉암 의원이었다. 1949년의 일이다. 이승만 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 의원은 비료와 양곡 횡령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이는 이승만 정권에 맞선 것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해석됐고, 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부결됐다.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 ‘불체포특권’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대의 활동을 보장하고 국회의 독립성을 지키는 의미가 컸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불체포특권이 비리에 연루된 의원을 감싸는 보호막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생겨났고, 1990년대 후반엔 ‘방탄 국회’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체포특권 폐지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소속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을 연이어 부결시킨 게 발단이 됐다. 이에 당 혁신위원회는 1호 혁신안으로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제안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18일 의원총회에서 ‘서약’을 결의했지만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라는 단서를 달았다. 국민의힘은 이를 “꼼수”라고 비판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김진표 국회의장은 불체포특권의 ‘포기’가 아닌 ‘폐지’를 포함한 최소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불체포특권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는 이유다. 그러나 학계 일각에선 폐지 반대 의견도 나온다. ● 개헌 없이는 불가능한 특권 ‘폐지’ 방탄 국회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건 25년 전이다. 1998년 대선자금 불법 모금 혐의로 검찰이 이신행 서상목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회기 중’을 유지할 목적으로 임시국회를 연이어 열었다.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 요구만 있으면 임시국회를 소집할 수 있는 헌법 규정을 활용했다. ‘이신행 방탄 국회’는 네 번 이어졌고, 그 뒤를 이어 ‘서상목 방탄 국회’도 여섯 차례 문을 열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큰 선거 때마다 여러 대선후보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또는 포기, 특권 내려놓기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달라진 점은 별로 없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없던 일이 됐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는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했지만 집권 이후엔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 후보도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공약을 냈지만, 승리가 유력했던 2017년 대선에선 이 공약을 채택하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도 지난해 대선 때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신년 기자회견에선 “경찰이 적법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면 당연히 수용하겠지만 경찰복을 입고 강도 행각을 벌이고 있다면 판단은 다를 수 있다”며 사실상 입장을 바꿨다. 불체포특권 폐지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으며, 구금된 경우라도 국회의 요구로 석방될 수 있다는 것은 헌법 44조에서 보장하는 권리다. 1948년 제헌헌법이 이를 규정한 이래 75년간 이어져왔다. 이를 바꾸려면 헌법 개정, 즉 개헌을 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정치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민주주의가 확립됐다. 만약 권력이 국회의 권한을 침탈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것”이라며 “오남용되고 악용되는 특권은 폐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서구의 선진국들이 불체포특권의 문제점을 몰라서 존치시키는 것이 아니다”면서 “오남용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를 폐지했을 때 정부가 수사권을 오남용해 야당을 억압하고, 의회를 파행으로 몰아갈 경우 발생할 위험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폐지’가 아닌 ‘포기’를… 與野 온도 차김진표 의장이 불체포특권 폐지를 주장했지만, 현실적으로 개헌이 쉽지 않다는 것을 학자들도 의원들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논의는 ‘폐지’보다는 ‘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장 교수는 “헌법 해석상 개헌 없는 폐지는 불가능하지만 국회법 개정을 통해 불체포특권의 운용을 합리적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18일 현재 국회엔 불체포특권에 제한을 두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모두 6건 계류 중이다. 올해 들어서만 4건이 발의됐는데 모두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표 발의했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16일 국회의원이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스스로 영장실질심사에 응하고자 할 경우 다른 의원들에게 임시회를 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앞서 권성동, 정우택, 유의동,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발의 순)도 불체포특권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이들은 현행 ‘72시간 내’로 규정된 체포동의안 표결 기간 단축, 무기명인 투표 방식을 기명으로 변경, 기한 내 처리되지 않은 경우 가결된 것으로 간주 등의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민주당에서는 김승원 의원이 지난해 1월 관련 개정안을 발의했다.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되는 즉시 표결하고, 표결은 기명투표로 하는 내용을 명시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의원 101명과 민주당 비명계 의원 31명이 불체포특권 포기에 이미 서명했고, 민주당이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결의한 만큼 여야의 공감대는 충분히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며 “다만 여야가 처한 사법 리스크 차이로 인해 실제 국회법 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라고 말했다.● 해외 각국도 인정… 한국과 다른 운용불체포특권의 역사적 뿌리는 근대 의회제도를 가장 먼저 발달시켰던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1603년 영국 의회는 ‘의회 특권법’(Privilege of Parliament Act)을 처음 법제화했다. 이를 1789년 미국이 제정헌법에 수용했다. 이후 많은 나라가 이를 헌법적 기본 권리로 채택했다. 나치즘의 위험을 경험한 독일은 더 강력한 특권을 두고 있다. 회기 중에만 보장하는 우리와 달리 의원 임기 내내 특권을 인정한다. 삼권분립이라는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그 필요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미국은 연방 대법원 판례로 입법 활동과 관련이 있을 때만 불체포특권을 인정한다. 불체포특권 제도의 운용 결과는 나라별로 차이가 있다. 우리 국회에 따르면 제헌의회부터 현재까지 제출된 체포동의안 70건 가운데 가결된 것은 17건으로, 가결률이 24.3%에 불과하다. 특히 15·16대 국회(1996∼2004년) 때는 각각 12건과 15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는데, 단 한 건도 가결되지 않았다. 21대 국회만으로 한정하면 총 8건의 체포동의안 중 4건이 가결됐다. 일본과 독일은 다르다. 일본에서는 1947년 헌법 시행 이래 현재까지 ‘체포허락 청구’ 20건 중 16건(80%)이 가결됐다. 불체포특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독일 연방 의회가 낸 자료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1년까지 총 127건의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는데, 이 중 118건(92.9%)이 가결됐다. 다만 이 국가들은 검찰 수사나 체포동의안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는 신뢰가 정치권에 깔려 있다는 점이 한국과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불체포특권 폐지냐, 포기냐는 여야 공방 차원으로만 접근할 일은 아니다. 역사적 연원, 검찰 수사의 공정한 잣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민 눈높이에 맞춰 풀어갈 문제라는 얘기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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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포털뉴스 댓글 폐지·제한… ‘좌표 찍기’ ‘악플 테러’ 사라질까

    포털의 연예와 스포츠면 기사에는 댓글 기능이 없다. 2019년 배우 설리 씨, 2020년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 씨가 숨진 이후 생겨난 변화다. 대다수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그리고 팬들은 댓글 폐지를 반겼다. ‘악플러’들의 무차별적인 혐오와 악의를 오랫동안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와 사회, 특히 유명 사건·사고 관련자들을 겨냥한 악성 댓글 문제는 그대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는 방송에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악성 댓글이 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 답했다. ▷포털은 ‘인터넷의 양방향성’ 등을 앞세워 댓글 규제에 부정적이었다. 이는 수익과도 연관이 있다. 이용자들이 댓글을 쓰거나 읽게 되면 포털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는 다른 콘텐츠로의 유입과 새로운 광고 수익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댓글 폐지 여론에 따라 카카오가 연예·스포츠 기사에 이어 정치·사회 등 일반 뉴스 기사에서도 댓글 기능을 없앴다. 댓글 창을 만 하루가 지나면 내용이 사라지는 실시간 채팅 방식의 대화방으로 바꿨다. 네이버는 댓글 창 자체를 없애진 않고, 악플러들의 프로필에 ‘이용 제한’ 꼬리표를 붙여 다른 이용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포털의 댓글이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포털이 뉴스 전달의 주요 매개체가 되면서 각 언론사의 기사는 댓글과 함께 소비되기 시작했다. 댓글 창 상단에 노출된 ‘베스트 댓글’은 여론의 수렴을 거친 다수의 의견이며, 이 같은 댓글 시스템이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숙의의 장을 열었다는 섣부른 주장과 함께 ‘댓글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성균관대 이재국 교수팀이 2021년 8월 1일부터 2022년 3월 8일까지 대선 관련 뉴스 댓글 3639만 건을 분석한 결과, 댓글 80%를 유권자의 0.25%가 작성했다. 앞서 왜곡을 넘어 조작도 적발됐다. 조직적인 ‘좌표 찍기’도 공론의 장을 오염시켰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특정 세력들은 조직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은밀히 가동해 댓글 창 상단에 노출되는 ‘베스트 댓글’의 순위와 내용을 만들어냈다. 관련자들은 선거 이후 형사 처벌을 받았다. ▷BBC방송 등 글로벌 언론은 뉴스 댓글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용자가 올린 댓글을 바로 공개하지 않고 커뮤니티팀이 비방, 사적 공격, 비속어 등이 담긴 댓글을 걸러낸 뒤 게시한다. 구글은 아웃링크 방식을 통해 뉴스 댓글 관리를 각 언론사에 일임한다. 포털의 댓글이 무차별적인 혐오 확산과 정치 양극화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악성 댓글의 확산을 막는 더 높은 ‘방파제’가 필요한 때가 됐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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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통 ‘돈’ 의혹 巨野, 몰락 막을 역량 있을까[오늘과 내일/길진균]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 올 초까지 야권 인사들은 내년 총선 이후에도 민주당이 강한 제1야당의 위상을 굳건히 유지할 것이라 자신했다. 정상 궤도에서 번번이 이탈하는 민주당을 보면서도 많은 정치권 인사들은 “민주당이 과반에 가까운 총선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 위기, 혼란스러운 여권 등 주변 환경을 거론했다. 이념·세대·지역을 국민의힘과 양분하고 있는 민주당이 무너지기 힘든 구조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설득력을 더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만난 야권 인사들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근본 원인은 ‘민주당에 대한 신뢰’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그간 민주당이 보수당에 비해 실력은 몰라도 도덕성만큼은 우위에 있다고 여겼다. 2017년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박근혜 정부에 대한 혐오와 비판 속에 대안으로 탄생한 정권이 문재인 정부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을 둘러싼 문제는 온통 ‘돈’과 얽혀 있다.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사업 관련 의혹’, 송영길 전 대표의 ‘돈 봉투 전당대회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 등이 그렇다. 사실 여부를 떠나 과거 기득권층에서 벌어졌던 권력형 비리와 다를 게 없는 의혹들이다. 이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모습도 한몫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두 차례의 집권과 직전 5년 집권기를 거치면서 친민주당 인사들은 사회의 주류가 됐다. 공공기관, 학계, 미디어, 시민단체 등 사회 시스템 곳곳엔 지금도 친민주당 인사들이 상당수 자리 잡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스스로 ‘약자’라고 주장한다. 온갖 ‘돈’ 문제를 ‘야당 탄압’이라고 강변하며, 보수 진영을 싸잡아 무능한 기득권으로 몰아갔다. 민주당의 이 같은 이중적 태도가 젊은층과 중도층에 얼마나 경멸적으로 보이는지 민주당 인사들은 모르는 듯하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공식 의원총회 석상에서 제시되는 게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다. 여기에 강성 지지층은 반성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를 ‘수박’으로 비하하며 권력싸움에 집중한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당 지도부는 무기력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은 30∼40대, 화이트칼라, 진보, 호남이다. 불공정에 민감한 젊은 세대와 화이트칼라는 도덕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한국갤럽의 16∼18일 조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민주당에 줄곧 30∼40%대의 지지를 보냈던 30대의 지지율은 25%로 하락했다. 1월 첫 주 국민의힘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았던 지지율이 국민의힘(32%)에 오히려 7%포인트 뒤지는 하락 추세가 나타났다. 호남 역시 무당층 24%, ‘지지 정당 없음’ 22%로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당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힘을 쏟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게 해준다. 여론의 주문을 요약하면 민주당은 먼저 처절하게 반성하고, 집권 5년의 경험을 살려 정부 여당의 실책을 막는 제1야당의 제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매일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민주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의 요구와 엇나가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살피며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속내만 노출하고 있다. 세계 정당사를 연구한 정치학자들은 거대 정당이 몰락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뽑는다. 시대 변화에 대한 부적응과 내부 분열이다. 몰락을 앞둔 모든 조직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공멸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이 순간에도 앞다퉈 그 길로 달려가는 민주당이 놀랍기만 하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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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찮은 정권견제론… 중도층이 흔들리고 있다 [수요논점]

    《SBS가 8,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4·10총선에서 ‘국정안정을 위해 여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36.9%, ‘정권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49.9%로 나타났다. 정권견제론이 국정안정론에 비해 13.0%포인트 높게 나온 것이다. 특히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층에서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60.8%로, 여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 28.2%의 두 배 이상에 달했다. 정부 여당에 실망하는 중도층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0.8%, 국민의힘 28.0%였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무당층은 34.7%로 3분의 1에 달했다. 특히 20대 이하 청년층의 경우 국민의힘 10.1%, 민주당 24.0%에 그쳤다. 여권에 부정적이거나 비판적 침묵으로 돌아선 중도층이 정권견제론에 힘을 실으면서도, 제1야당인 민주당 지지로 바로 이동하진 않고 있는 것이다(넥스트리서치 조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중도층 민심이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약 1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되짚어 봤다.》● 53%→24%→31%…요동친 尹 지지도 취임 후 윤 대통령 지지율은 3, 4차례 변곡점을 겪었다. 그때마다 중도층이 무게추 역할을 했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13일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52%였다(이하 한국갤럽 조사). 중도층의 긍정평가 비율이 45%로 부정평가(39%)를 앞섰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6·1지방선거 직후 53%로 최고점을 찍었다. 연이은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에 보수 진영의 지지는 물론이고 중도층의 기대감이 결합된 ‘승자(챔피언) 효과’라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순항할 듯했던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지난해 8월 초와 9월 말 취임 후 최저점인 24%로 주저앉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퇴진을 둘러싼 당내 갈등과 미국 방문 때 벌어진 ‘비속어 발언’ 파문 때다. 강성 지지층은 결집했지만 중도층과 20대의 이반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9월 27∼29일 조사에서 나타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24%, 부정 65%였는데, 중도층에서는 18%, 73%로 그 격차가 벌어졌다. 20대의 긍정평가는 9%로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이슈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던 국정 지지도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과 건설 노조 등에 강경 대응하면서 반등하기 시작했고, 30% 중반대를 회복했다. 올해 고점인 37%를 기록한 2월 21∼23일 조사에서도 직무수행 긍정평가 이유로 ‘노조 대응’(24%)이 가장 많이 꼽혔다. 특히 중도층과 20대에서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에 대한 긍정평가가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중도층은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 이슈와 합리성에 민감하다”며 “정부의 원칙적 대응은 중도층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공정과 상식’이 반영된 결과로 인식됐고, 대통령 지지율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 이후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폭 논란,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안 혼선과 일본 강제징용 해법 논란 등이 겹치면서 중도층과 청년층 지지율이 빠지며 30∼31%까지 하락한 것이다. ● 전대 후 오히려 지지율 하락한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3·8전당대회 이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지지율 침체에 빠졌다. 한국갤럽의 4∼6일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는 민주당 33%, 국민의힘 32%로 집계됐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1%포인트 떨어졌지만, 민주당은 전주와 같은 지지도를 유지하면서 1, 2위가 뒤바뀌었다. 국민의힘 전대 3주 전인 2월 14∼16일 조사에서 중도층의 선택은 국민의힘 29%, 민주당 23%였지만 이번 조사에선 국민의힘은 23%로, 민주당 34%에 11%포인트 뒤졌다. 장윤진 한국갤럽 차장은 “어느 정당이나 지지율 상승은 중도층으로 지지세의 확장이 뚜렷할 때 나타난다”며 “최근 국민의힘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의 친윤 일색 지도부에 대해 보수층은 안도했지만 중도층은 앞으로 혁신이 가능한 정당으로 변모할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대 이하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22%로 민주당 25%에 뒤진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51%로 절반을 넘겨 전 연령대에서 무당층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배 소장은 “중도층은 이념적 색채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진보의 고정 지지층과 달리 언제든지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며 “진영 대결이 첨예해질수록 국민의힘으로선 2030세대와 중도층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도, 총선 승리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수층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권 초 여당의 지지도는 대통령과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 내년 총선이 ‘정권견제론’ 속에서 치러지느냐, 아니면 ‘국정안정론’ 속에서 치러지느냐는 결국 윤 대통령 지지율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도 중도층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원칙적인 대응은 중도층을 포함한 다수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개혁 달성의 전제 조건은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지지”라고 말했다.● 반사이익 얻지 못하는 민주당 대선 이후 좀처럼 반등의 모멘텀을 만들지 못했던 민주당은 최근 국민의힘을 앞선 여론조사 결과에 내심 고무된 분위기다. 3월 21∼23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35%, 국민의힘은 34%로 나타났다. 이어 4월 첫째 주 조사에서도 민주당이 1%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주목되는 건 여당 지지율이 빠지는 만큼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중도층이 포함된 무당층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진행한 최근 조사의 경우 무당층은 28%에 달했다. 지난해 6·1지방선거 직후 조사에선 국민의힘 45%, 민주당 32%, 무당층 18% 등이었다. 10개월 새 국민의힘 지지율은 10%포인트 이상 떨어졌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별 변동이 없고, 무당층은 10%포인트 늘어났다. ‘친윤’이 득세하고 ‘개딸’ 등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거대 양당이 중도층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뜻이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이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연이어 패배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밀어붙이기와 ‘검수완박’ 등 입법 폭주로 인한 중도층 이반 현상의 영향이 컸다. 고정 지지층만 붙잡고 반사이익에 기대는 정치는 국정 운영에서도, 선거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결국 누가 중도층의 신뢰를 다시 얻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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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영 전사’로 퇴보하는 비례 의원, 이대로 늘린들 뭐 하나[수요논점]

    《22대 총선(4월 10일)을 1년 남짓 남긴 여의도 정치권에서 각 당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한 이슈, 복잡하고 난해한 수많은 방정식으로 얽혀 있는 이슈가 선거제 개편이다. 개편의 핵심 명분은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균형을 해소해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정수 확대도 주요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를 위해 국회는 30일부터 2주간 5차례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고 새 선거제를 논의한다. 전원위는 국회의장을 제외한 의원 299명이 모두 참여해 특정 안건에 대해 토론하는 기구다. 여기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제시한 3개 안을 압축해 단일안을 도출하고 이 안을 다시 정개특위, 법사위, 본회의 순으로 의결해 최종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원위에서 의원들 다수가 지지하는 개편안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 직전까지 선거제를 둘러싼 혼란이 계속될 수도 있다.》●전원위서 ‘단일안’ 합의 처리하겠다지만 전원위에 상정된 안건은 ①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③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세 가지다. ①안은 서울 및 수도권 등 대도시에는 3∼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어촌에선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일부 지역구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해당 지역구 의원에겐 상대 당뿐 아니라 같은 당 의원 역시 경쟁자다. 특히 당 지도부 혹은 실세 의원과 인접한 의원들에겐 위협적이다. 국민의힘이 ①안을 제안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 121석 중 104석을 차지하는 등 득표율 대비 의석수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나머지 2개 안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제안했다. ②안은 한 선거구당 4∼7명을 뽑는 대선거구제로 지역구 선거를 치르고 개방형명부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③안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대선거구제를 채택한 ②안은 정의당 등 제3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준다. 다만 전체 지역구 253석 중 40%를 차지하는 수도권 의석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내부에선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득이란 의견이 많다. 민주당이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제만 손보는 ③안을 함께 낸 배경이다.●비례대표 확대가 답? 비례성 강화를 위한 비례대표 확대 여부도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왜곡 현상을 동반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민주화 후 12대부터 21대 총선까지 평균을 내보면 사표 비율이 무려 49.98%”라며 “50%의 의사는 투표 결과에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우리 진영만 잘 규합하면 이긴다’는 왜곡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의원의 비중을 늘리면 과다대표, 과소대표 현상을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다양성이 중시되면서 단순다수제에서 비례대표제로 전환 또는 혼합하는 추세를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22년도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00%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스웨덴·네덜란드 등 17개다. 한국, 일본, 독일 등 8개국은 다수대표·비례대표 혼합제를 실시하고 있다. 다수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는 영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5곳(하원 기준)이다. 비례대표 의원 수도 상대적으로 한국이 적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하고 있는 일본 참의원(하원)은 지역구(289명)와 비례대표(176명)의 비율이 1.64 대 1이다. 그러나 한국은 5.38 대 1이다. 독일 이탈리아 등의 하원은 비례대표 의원 수가 지역구보다 많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사표를 줄이고,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비례대표 확대”라며 “전원위에 제출된 3가지 안이 비례대표 확대를 명시적으로 담고 있지 않지만, 전원위 논의 과정에서 이를 포함한 대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정치 양극화 첨병 된 비례대표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그동안 공천헌금, 밀실거래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비례대표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최근 부각되는 논거 중 하나가 이른바 ‘진영 전사론’이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입법에 반영하기 위해 뽑은 비례대표 의원들이 반대로 양극화 정치를 부추기는 각 당의 첨병, 저격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인 2표 정당명부식의 현행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국회부터 비례대표 의원의 80%가량이 재선을 노리고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의 공천을 받은 의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21대 총선에서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에서 각각 10명이 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출사표를 냈지만 공천을 받은 의원은 각각 5명과 4명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지역구를 노리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더 정쟁에 앞장서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서울대 한규섭 교수는 “17∼20대 국회에서 처리된 약 300만 건의 표결 기록을 분석한 결과 각 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의원들에 비해 극단적인 표결 경향을 보였다”며 “비례대표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친위대’ 성격이 강한 것이 수치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역구 출마를 겨냥한 과한 의정 활동이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격한 언사 등으로 논란을 빚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도 충분히 전문성,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며 “직능을 대표한 입법 활동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낸 비례대표가 얼마나 되나. 비례대표는 결국 지역구 공천을 위한 발판일 뿐”이라고 말했다.●“공천 시스템 투명하게… 정당 개혁 선행돼야” 이번 전원위에서는 비례대표 정수 확대부터 비례대표제 폐지, 공천과 선출 방식을 둘러싼 갖가지 방안이 충돌할 것이다. 각 당별, 의원별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는 점에서 19년 만에 열린 전원위에서도 단일안이 도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정계와 학계에선 양극단의 혐오 정치를 바꿀 대안으로 비례대표 확대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비례성과 대표성을 기계적으로 높이기 위해 지금의 비례대표제를 그대로 확대한다면 ‘정책적 대표성’은 축소되고 ‘진영 전사’ 양성 루트만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 ‘폐쇄형 명부제’는 유권자는 지지하는 정당만 선택하고 당선 순번은 각 당이 정한다. 이를 유권자가 지지 후보까지 선택하고 득표순으로 비례대표를 뽑는 ‘개방형 명부제’로 바꾸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다.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공천 과정 투명화와 구체적인 공천 기준 및 방법 제시 등 정당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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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태 “상대 악마화로 거저먹으려 해… 6共 정치체제 수술해야”[파워인터뷰]

    《국민의힘이 대선 승리 1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 ‘직할 체제’를 완성했다. 당정 일체의 기치 아래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 이행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개혁 과제는 세대와 계층 그리고 여야 간에 첨예한 갈등이 불가피한 사안이 대부분이다. “관철하겠다”는 여당과 “막겠다”는 야당은 각각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며 세 싸움에 돌입했다. 대화와 타협, 협치에 대한 기대는 요원하다. 오히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 한 해 여야 관계는 더욱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해 온 유인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75)은 이 같은 극단적 대립 정치에 대해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며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의원들이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민주당 3선 의원을 지낸 유 전 의원을 만나 정치 양극화와 팬덤 정치의 문제점, 그리고 그가 구상하는 해법을 들었다.》●“대통령 일일이 개입하면 협치 멀어져”―국민의힘이 ‘윤석열 당’으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다. 여당 전대 어떻게 봤나. “21세기 들어와서 이런 전대는 처음 봤다. 대통령실이 나서서 경쟁 후보들 주저앉히고 억지 춘향으로 만든 당 대표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고 반대로 가는 여당은 없다. 여당은 당연히 자신들이 만든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대통령실이 국회와 당의 사안에 대해 일일이 판단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참모 중 누가 더 정치를 잘 알겠나. 여야가 합의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개입하는 순간 협치가 깨진다. 그럼 국회는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닌가.” ―국정 성과를 위해 당정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지 않나. “5년 임기 대통령제에서 집권 2년 반이 지나면 새로운 동력이 안 생긴다. 윤 대통령에게는 지금이 국정 성과를 내기 위한 황금기다. ‘3대 개혁’ 얘기하는데, 국회와 민심의 협조 없이는 하나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한 것이다. 설령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해 과반 의석을 가져간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민주당도 그랬다. 민심이라는 게 있다.”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을 얻을 수 있을까. “민주당은 윤 대통령만 믿고 있다. 지금처럼 하면 국민의힘은 어렵다. 강성 지지층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다양성이 보장되는 정당이 건강한 정당이다. 국민의힘이 잘되려면, 개혁보수도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 그들의 의견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얘기 하면 쫓아내고, 내부 총질로 규정하는 정당은 잘될 수 없다.”●“이재명 대표 리더십이 근본 문제”―민주당도 위기 아닌가.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나. “역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다. 대선 패배 직후 당 안팎의 만류에도 인천에서 출마하고, 불체포특권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뒤 말을 바꿨다. 리더십이 생길 수가 없다. 비명계도 검찰이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친명계가 ‘오랑캐가 쳐들어온다’며 모두가 단합해서 싸워야 한다고만 주장할 건 아니다. 유능한 검사들이 저렇게 오래 수사하고도 아직 기소를 못 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따져볼 만한 부분이 꽤 있다. (체포동의안이 또 들어오면)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다. 약간 모험을 하더라도 사법 리스크를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도 생기는 것 아니냐. 설령 구속되더라도 지금 처지보다는 명분이 있을 것이다.” ―개딸 등 극단적 지지층에 민주당이 지나치게 휘둘리는 것 아닌가. “강성 팬덤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 극단적 목소리에 당이 이끌려 가면 필패다. 국민의힘도 황교안 대표 때 태극기부대에 당이 끌려갔기 때문에 어려워졌다. 민주당이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등 소장파 의원 모임)를 수용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무서운 정당이 됐을 것이다.” ―친명과 비명 계파 갈등이 심각하다. 해법은 없을까. “개딸도, 수박으로 찍힌 그룹도 헤어질 결심하고 각자 깃발 들고 민심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각자 당을 하면 된다. 지금은 기호 1, 2번 공천을 받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우니까 공천받겠다고, 주도권 쥐겠다고 서로 싸우는 것 아닌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와 소위 태극기부대와 영합하는 사람들하고 같은 당 동지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유 전 의원, ‘조금박해’ 같은 의원들이 당을 달리해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이 안 돼도 당을 나가 독자세력을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어렵다고 본다. 지금은 당에서 벗어나는 순간 생존이 안 된다. 그래서 다당제로 갈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중도 친화적인 인사들과, 개딸로 통칭되는 강성 인사들과 각각 의석을 나눌 수 있다. 국민의힘의 개혁적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정치 생태계를 먼저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 없으면 나라 미래 없어”―다당제가 되면 정치 문화가 바뀐다는 근거가 있나. “1990년 3당 합당 이전 노태우 정부 때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합의 처리가 많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협치가 이뤄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이 정치적으로는 경합했지만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첨예한 국민적 갈등을 국회가 앞장서서 해결했다. 5공 청문회가 대표적인 예다. 국회에 대한 열화와 같은 국민의 지지가 있었다. 국민이 국회를 혐오하는 지금과는 달랐다. 의원들이 거리에 나가면 사인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같은 제도인데 왜 이렇게 달라졌나. “1987년 이후 36년이 지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윤 대통령까지 8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그사이에 소선거구제와 양당제의 폐해가 쌓였다. 정치 혐오가 낳은 포퓰리즘인 반(反)정치주의에 진보와 보수 모두 찌들어 있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아침마다 하는 회의 공개 발언도 거칠고 저질스럽기 그지없다. 각자 잘하기 경쟁을 해야 하는데 상대를 망가뜨리고 악마화해서 거저먹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비해 의원 개인들의 수준은 높아졌는데 정치 불신은 더 심해졌다. 국회는 국민의 갈등과 갈증을 풀어주고 해법을 도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경제가 잘되더라도 정치가 안 되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있겠나.” ―선거제도가 바뀌면 문제가 해결될까. “근본 원인은 선거제도다. 제도가 바뀌면 ‘정치 교체’가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됐는데, 정치는 여전히 4류다. 다당제가 대통령 중심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6공화국 정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온 거다. 윤 대통령도 현행 소선거구제는 답이 아니라고 했다. 국회를 다당제로 바꾸는 정치 개혁을 이뤄낸다면 윤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 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가 양당의 기득권을 고착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꼭 중대선거구제로 못 박을 필요는 없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로 들자면 서울을 4개 권역으로 나눠서 의석 일부는 중대선거구제로, 나머지는 소선거구제로 뽑자는 의견도 있다. 경우의 수는 수백 가지가 나올 수 있다. 다당제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지역구가 없어지는 의원들이 생긴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결국 국회의원들이 결심할 수밖에 없다.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제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가 구성되고 27일부터 전원위가 열린다. 다수가 선택한 안에 따르겠다는 선언을 하고, 최소공배수를 찾아야 한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가 왔다. 선거제도 개혁에 국회가 사활을 걸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의원들의 애국심이 필요하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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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역사상 최강 야당의 ‘정신 승리’ 정치

    최근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헛발질로 계속 점수를 까먹고 있는데 민주당이 그걸 못 받아먹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둘러싼 친윤·반윤 논란,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윤 대통령의 잇단 설화 등을 보면 그의 말이 아주 터무니없게 들리진 않는다. ‘가마니 전략’을 쓰자는 민주당 내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만히 앉아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자는 주장이다. 이대로 쭉 가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에서도 쉽게 이겨서 정권을 탈환할 수 있다고 내심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인사들이 모이면 등장하는 화두가 “5년 금방 간다” “윤석열 정부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이른바 ‘윤 정부 필패론’이다. 여러 논리가 동원되지만 딱히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당위와 기대, 희망이 강하게 담겨 있을 뿐이다. 당 전체가 ‘우리는 결국 이길 것’이라는 정신승리론 또는 운명론에 빠진 듯하다. 지금 정치 현실은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초와 비슷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크게 흔들렸다. 민주당은 이를 계기로 강경 노선을 고집했다. 의원들은 한미 FTA를 반대한다며 해머를 들고 국회 본회의장으로 진입했다. 그것이 ‘야당의 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정부 여당에 대한 야당의 동반자 관계는 사라졌고, 여당은 일방통행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강경 노선을 통해 지지층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핵심 지지층을 강하게 결집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치러진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팍팍해진 살림살이” “여당의 무능과 독주” 등을 앞세워 ‘정권 심판론’을 외쳤다.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이런 세력에 국회를 맡길 수 없다”는 ‘야당 과반 견제론’을 주장했다. 친이·친박 갈등, 정권 말 피로감 등으로 인해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불리한 선거구도”라고 했다. 결과는 새누리당 152석 과반 의석, 민주당 127석이었다. 투쟁으로 일관한 야당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불신이 선거구도의 유리함보다 더 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108만여 표 차이로 패했다. 정부 여당 견제는 야당의 책무다. 야당에 대한 존중을 외면하는 집권 세력의 진영 정치도 문제다. 그렇지만 민주당에 더 중요한 것은 169석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먹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다.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민심이 민주당에 요구한 건 거여(巨與) 민주당에 대한 반성과 변화였다. 권한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던 전 정부 때 의정활동에 대한 결과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런데 대선에서 0.73%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졌다는 점에 안주한 민주당은 반성 모드를 어물쩍 건너뛰고 곧바로 ‘야당 스탠스’로 전환했다. 여당 시절 벌어진, 국민 상당수가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의혹들에 대해서도 일단 ‘야당 탄압’ ‘정치 보복’이라고 외치며 장외로 뛰어나갈 태세다. 올해는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는 해다. 노동, 연금, 교육개혁 등의 의제를 정치권이 함께 제시하고 고통스럽지만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하는 시기다. 민주당은 여전히 169석을 가진 제1당이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반대하면 대통령과 정부의 어떤 정책도 자리를 잡을 수 없다. 무조건 비토를 요구하는 극단적 지지층의 논리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거여에서 거야로 바뀐 민주당이 ‘믿고 나라를 맡길 수 있는 세력인지’ 국민에게 답할 때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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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 저마다 동상이몽[수요논점]

    《선거제도는 정치 지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거대 양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양분하는 정치 현실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3당과 4당에게도 당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생 정당,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높아지면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정치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거대 정당 중진들을 위한 제도로 전락할 것”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 등 반론도 적지 않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둘러싼 쟁점과 도입 가능성을 살펴본다.》● 민주화의 산물 소선거구제 현행 소선거구제는 198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그해 3월 ‘국회의원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지만 당시엔 반대로 중대선거구제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유신 시절부터 전두환 정권 때까지 9∼12대 총선에서 실시된 중대선거구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당의 안정적인 의석 확보를 위해 도입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87년 체제’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은 13대 총선부터 부활한 소선거구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30년 넘게 유지되면서 소선거구제도 폐해가 쌓였다. 승자독식으로 유권자의 표심이 국회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대표성 문제가 제기됐고, 지역감정과 진영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많다. 실제 2020년 21대 총선에 참여한 2874만여 명의 유권자 10명 중 4명(43.7%·1256만7432표)이 던진 표는 ‘사표’가 됐다. 국민의힘은 영남지역에서 55.9%를 득표하고도 영남 65석 가운데 56석(86.2%)을 차지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68.5% 득표율로 호남 28석 가운데 27석(96.4%)을 쓸어 담았다.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니면 당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 환경이 됐다. ‘공천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각 당에선 공천을 좌우하는 몇몇 실세나 극단적 지지층의 눈치만 살피는 기류가 확산됐다. 일각에선 그 근원적 요인으로 소선거구제를 지목하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두 거대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번 국회에선 95%까지 갔다. 정당이 양극화되면서 사회도 양극화됐다”며 “중대선거구제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양당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중대선거구제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가 모범답안? 2012년 19대 총선에서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정운천 후보는 35.8%를 얻고 민주통합당(민주당의 전신) 이상직 후보(47.0%)에게 밀려 낙선했다. 20대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지역주의에 부담을 느낀 그는 2020년 21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가정이지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현재 3개의 소선거구로 나눠져 있는 전주를 3인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했다면 민주당의 ‘텃밭’에서도 보수정당 의원이 다시 배출됐을 수 있다. 이처럼 중대선거구제는 △사표 방지 △지역주의 타파 △다양성 보장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중대선거구제가 선거제도의 ‘모범답안’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안착한 다수의 국가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1928년 중의원 선거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던 일본도 1996년 소선거구제로 전환했다. 거대 정당의 복수 공천으로 같은 당 후보자 사이에 경쟁이 과열되며 파벌정치, 계파정치, 정치권 부정부패 등의 원인 중 하나로 중대선거구제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또 현행 지역구 2∼5개를 하나로 합치게 되면 필연적으로 선거구 면적이 넓어지고, 유권자 수가 많아진다. 벽보, 공보물, 유세차량 등 더 많은 선거비용이 필요하다. 유권자들 입장에선 후보자 수가 크게 늘면서 후보들의 면면을 상세히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인지도가 높은 유명 정치인, 조직을 동원하고 유지할 역량이 있는 중진 또는 거대 양당 후보에게 더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선거구제로 치르는 기초의원 선거 결과를 봐도 지역 구도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실시된 6·1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 지역구 1030개 가운데 30개 선거구에서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다. 기존 2∼4인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가 다양성과 정치적 대표성 확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30개 구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국민의힘과 민주당 소속 당선자가 105명으로 96.3%를 차지했다. 소수 정당 소속은 4명에 불과했다. 복수 공천된 거대 양당 후보들을 향한 몰표 때문이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중대선거구제는 양당 독식 체제를 타파하기는커녕 양당의 동반 부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오히려 의회로 진입한 소수의 극단적 정치세력이 연정을 구실로 큰 정당을 좌지우지하면서 정국을 혼미에 빠뜨릴 수 있다”고 했다. 또 “지금 한국 정치의 당면 과제는 제도 개혁보다 인적 쇄신”이라고 말했다.● 與野 “선거제 개혁” 원론적 동의만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 초 “선거가 너무 치열해져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며 그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했지만 여당의 반응조차 미온적이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절감하고 있지만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며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여당 내에선 “중대선거구제 논의는 지금 시작하되 도입은 23대 총선부터 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촉발시킨 중대선거구제 논의에 대해 신중론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시스템이 바람직하고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22대 총선은 내년 4월 10일 실시된다. 현행법상 선거 1년 전인 4월 10일까지 선거구 획정 등 게임의 룰을 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 모두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와 선거제 개편에 따른 득실 계산이 엇갈리면서 논의는 “정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동의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선거제도를 크게 흔들 경우 자신의 선거구가 통합되거나 사라지는 현역 의원들이 대거 나오게 된다. 결국 핵심은 현 제도의 수혜자인 현역 의원들의 동의 여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다들 동상이몽이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위성정당 논란을 빚었던 대목을 수정하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양당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 개편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의 찬반 논란만 벌이는 것은 2차원적이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과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지방의 대표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행정구역과의 일치 문제는 어떻게 조정할지, 갈수록 심해지는 세대 및 계층 갈등 문제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수렴할지 등 보다 입체적이고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선거법에 규정된 선거구획정위원회처럼 선거제도 개편 작업을 의원들이 아닌 외부 위원회에 위임하자는 의견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의원들이 선거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에 대해 의원들은 찬반 표결권만 행사하게 하자는 것. 분명한 건 그 정도로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게 선거제도 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이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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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새 정치 아이콘→직장인으로 바뀐 초선들

    “요즘 초선들은 꼭 직장인 같다.” 최근 만난 한 원로 정치인의 탄식이다. 그는 “초선과 다선의 말과 역할이 뒤바뀐 지금 정당은 건강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 주류 또는 지도부에 대한 심기 경호와 공천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여야 초선 의원들의 행태를 생계에 목매어 승진만 바라보는 직장인에 비유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초선들은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희망이자 기대주였다. 초선 그룹은 각종 개혁 이슈를 주도하고 당내 쓴소리를 불사하면서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보수 정당의 경우 2000년 16대 국회의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을 시작으로 17대 수요모임, 18대 민본21 등이 초선 및 소장파 그룹의 명맥을 이어갔다. 민본21엔 권영진 권택기 김성식 김영우 신성범 정태근 주광덕 황영철 의원 등 친이·친박·중립 성향의 의원들이 골고루 참여했고,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여당 내 야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권의 한 인사는 “쟁점 사안에서 당이 보수적 노선을 선택하더라도 초선들이 건전한 비판과 개혁적 목소리를 냈고, 보수의 외연도 확장할 수 있었다”며 “언젠가부터 초선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들어 국민의힘 전체 의원 115명 중 절반이 넘는 63명(55%)이 초선으로 채워졌다. ‘초선이 최대 계파’로 등극하면서 초선들이 새로운 보수 정치를 이끌 아이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기대했던 존재감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상당수 초선들은 주류 세력의 호위대를 자처하고 있다. 지난달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장에서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퇴장시킨 이후 주 원내대표 면전에서 불만을 드러낸 것도 초선들이다. 두 수석은 이태원 참사로 158명의 국민과 외국인이 희생된 상황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농담 섞인 필담을 주고받았다. 주 원내대표는 두 수석의 동의를 받아 이들을 퇴장시켰다. 당연한 조치였다. 그렇지만 충성 경쟁에 몰입한 일부 초선들은 이를 문제 삼았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사실상 받들고 사는 여당 초선들 못지않게 야당 초선들은 극성 지지층과 당 지도부 눈치만 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지만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초선은 없다. 중진들이 간혹 쓴소리를 낼 뿐이다. 민주당이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은 물론이고 김민석 전 의원 등도 지금은 기득권이 됐지만 초선 땐 남다른 개혁성과 참신함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초선들은 말한다. “정치는 현실이다” “눈 밖에 나면 공천을 받을 수 없다” “쓴소리는 3선쯤 돼서 하면 된다” 등이다. 이해는 간다. 그러나 지독한 이기주의다. 새 정치인을 선택한 유권자의 기대와 달리 공천권자, 극성 지지층의 의중만 살피는 초선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더욱 키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내부에서 자정 기능을 담당했던 초선의 역할이 사라진 각 정당은 대화와 협치는커녕 확증 편향으로 상대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키워 간다. 양 진영 지지층의 충돌도 격화된다. 국회 본회의장에 처음 선 초선들은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한다”는 의원 선서와 함께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초선이 자기 목소리를 잃는 순간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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