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길진균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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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02-21~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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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석방’에 與野 조기 대선 준비 ‘일단 멈춤’

    윤석열 대통령 석방 후폭풍이 거세다. 당초 3월 14일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 아래 물밑에서 경선 준비에 한창이던 여야는 ‘윤 대통령 석방’이라는 돌발 변수를 만났다. 탄핵 찬반 집회와 정치권 대립이 격화되고, 조기 대선 분위기가 주춤하면서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들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렸다.與野, 헌재 시간표에 촉각원내 정당 가운데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개혁신당이다. 3월 7일 ‘경선 레이스’에 돌입한다고 밝힌 개혁신당은 이준석 의원을 대선 후보로 정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3월 12일까지 예비경선 후보 등록 신청을 마감한 결과 이 의원이 단독으로 접수했고, 개혁신당은 전 당원 찬반 투표를 통해 이 의원을 당 대선 후보로 결정하기로 했다. 3월 16~17일 이틀에 걸쳐 투표를 실시해 과반 이상 찬성을 얻으면 이 의원은 3월 18일 개혁신당 대선 후보로 최종 확정된다. 함익병 개혁신당 선거관리위원장은 “큰 선거를 치른 적이 없는 정당이라 서두른다는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적절한 시점이 되면 탄핵 인용이 불가피하다는 게 개혁신당 입장”이라고 말했다.‌개혁신당을 제외한 나머지 원내 정당들의 조기 대선 준비는 ‘일단 멈춤’ 모드로 전환했다.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던 진보 진영 야당들은 윤 대통령 석방으로 정국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인식 아래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는 공동 전선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조국혁신당 등 군소 야당이 군불 때기에 나섰던 범야권 대선 후보 통합 경선론(오픈프라이머리) 역시 윤 대통령 석방과 동시에 수면 아래로 내려간 모양새다.‌‌‌중도·보수층 소구 전략을 펴며 사실상 조기 대선 행보에 속도를 내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대선을 겨냥한 공개 일정을 줄였다. 이 대표는 월·수·금요일 열리는 정례 최고위원회의나 자신의 재판 일정에 참석하는 정도의 일정만 소화하고 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상식적으로는 3월 21일 전에는 헌재 결정이 나올 것이라 보지만 누구도 일정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헌재 결정 때까지는 대선이나 경선과 관련된 언급은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고 말했다.‌국민의힘 주자들 역시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우파 성향 지지층이 윤 대통령 중심으로 다시 결집하며 여권 내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의식한 듯 당내 주자들은 윤 대통령 석방 후 공개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신중 모드’로 전환했다. 전국에서 북콘서트를 열기로 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3월 5일 서울, 10일 부산 북콘서트 이후 추가 일정을 잡지 않았다. 탄핵심판 전까지 잠정 중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개헌 관련 토론회를 주최하는 등 활발하게 정치 메시지를 내온 오세훈 서울시장도 공개 일정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조기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던 홍준표 시장도 최근 예정된 기자간담회 일정을 연기하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섰다.탄핵 결정 시 순식간에 대선 국면으로수도권의 국민의힘 한 의원은 “대선 주자들로서는 섣불리 대권 행보로 비치는 모습을 보였다가 향후 경선 승패의 키를 쥔 강성 지지층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우려가 클 것”이라며 “헌재의 탄핵 결정이 나올 때까지 윤 대통령과 강성 지지층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게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그럼에도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인용해 윤 대통령을 파면하면 지금의 ‘탄핵정국’은 순식간에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된다. 헌재가 3월 중순까지 탄핵심판을 인용하면 60일 이내인 5월 중순까지 대선을 치러야 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조기 대선은 선거일까지 일정이 워낙 촉박하기 때문에 선거 캠페인이 최대한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경선도 속성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19대 대선은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 결정으로 파면된 이후 두 달 만인 같은 해 5월 9일 치렀고, 각 당 대선 후보는 대선일 한 달 전에 모두 결정됐다.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4월 3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3월 31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4월 4일,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3월 28일 확정됐다. 3월 중 조기 대선이 확정된다면 이번 21대 대선에서도 2017년과 비슷한 시기에 각 당 대선 후보가 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202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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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조기 대선’ 가능성…법조계 “대선 전에 이재명 선거법 확정 어려워”

    윤석열 대통령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재판이 모두 종결됐다. 선고 일정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수 있는 만큼 헌재와 사법부의 시간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대법 상고·송달 등 절차에만 한 달 이상 걸려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 날짜가 정해졌다. 서울고법 형사 6-2부(재판장 최은정)는 3월 26일을 선고 기일로 잡았다. 이제 정치권 관심은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가를 대법원 확정 판결이 대선 전에 내려질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여야 정치권은 헌재의 대통령 탄핵소추 인용을 전제로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2월 25일 변론 절차가 마무리된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은 3월 중하순쯤 내려질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전망이다. 탄핵소추가 인용되면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 후임자를 선거한다”는 헌법 제68조에 따라 5월 중하순 21대 대선을 치러야 한다. 정확한 대선 날짜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재 결정 열흘 안에 공고한다.‌공교롭게도 예상되는 조기 대선 시점과 이 대표의 대법원 확정 판결 시점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표 참조). 이 대표는 1심에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도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형량을 선고받고 상고심 형이 조기 대선일 전에 확정된다면 이 대표는 차기 대선을 포함해 향후 10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그렇지만 법조계에선 최종 판단 결과를 떠나 “5월에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그 전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법 절차를 따져볼 때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선거법 사건 1심은 6개월 이내에,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3개월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이른바 ‘6·3·3’ 원칙이다. 재판부가 이 원칙을 지킨다 해도 이 대표에 대한 확정 판결은 6월 말 내려진다.‌현실은 이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1월 15일 1심이 선고된 점을 고려할 때 2심은 2월 25일 이전에 선고가 내려졌어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 개시 후 기일을 미리 지정하고 매주 재판을 여는 등 속도감 있게 심리를 진행했지만, 그래도 강행규정보다 한 달이 더 걸렸다.‌우선 피고인이 상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한은 항소심 선고일로부터 일주일 이내다. 일주일을 채워 상고장을 제출하면 고등법원은 그때부터 14일 이내에 소송기록과 증거물을 대법원에 송부해야 한다. 그 뒤 대법원은 피고인과 검찰에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송달하고, 이를 수령한 양측은 20일 이내 상고이유서를 낸다.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상고심 시작이다. 통상의 경우 상고심 개시에만 길게는 한 달 반 가까이 걸리는 것이다. 이후 대법원은 주심 대법관을 배당하고 이와 함께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의 기록 검토가 시작된다.4월 후보 선출 및 공식 선거운동 시작대법원 근무 경력이 있는 한 중견 변호사는 “과거 사례를 봐도 선거법 사건의 경우 3개월 안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진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소송법과 법원 절차상 물리적으로 6·3·3 원칙을 지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각 당의 대선 후보 선출 시기도 한 이유로 거론된다. 5월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 각 당은 3월 중순부터 내부 경선에 돌입하고, 늦어도 4월 초중순이면 모든 당의 대선 후보가 확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른 2017년 5·9 대선 당시 민주당은 4월 3일 문재인 전 대표를 후보로 선출했다. 이후 각 당 대선 후보는 선거일 24일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로 등록한다. 5월 중순 대선을 치른다면 4월 말이 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관위에 후보 등록을 했는데 만약 그 후 대법원이 후보 자격을 박탈하면 민주당은 새로운 후보를 낼 수 없다. 사실상 국민의힘 후보가 무투표 당선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이 무리해서 선고 일정을 앞당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다만 상고심 재판은 서류 재판으로 진행되는 만큼, 신속한 결론을 내야 한다는 여론의 압박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대법원으로서는 부담이다. 수도권 한 부장판사는 “정치 상황과 상관없이 결론을 내겠다는 대법원 의지만 있다면 대선 전 판결 확정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라며 “대선 과정에서 벌어질 논란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이 대선 전 유무죄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이 기사는 1478호에 실렸습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202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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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탄핵 정국에도 ‘정권 교체’보다 더 높은 ‘정권 연장’ 여론

    민심의 이동일까, 아니면 보수층 결집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까.‌12·3 비상계엄 사태 전후로 정당 지지율 변화가 극심하다. 계엄 사태 직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크게 올랐지만, 해가 바뀐 뒤에는 국민의힘 추격세가 거세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구속 국면에서도 국민의힘의 재집권이 가능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2배 앞섰던 ‘교체론’ 한 달 새 뒤집혀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48.6%)이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46.2%)를 역전한 여론조사 결과가 1월 20일 처음 나왔다(그래프 참조).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월 16~1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인 지난해 12월 26~27일 실시된 같은 조사에선 정권 교체론(60.4%)이 정권 연장론(32.3%)을 2배 가까이 앞섰는데, 이후 격차가 23.7%p(1월 2~3일)에서 11.7%p(1월 9~10일)로 좁혀졌다. 그리고 오차범위 안이지만, 이번 조사에선 순위가 뒤집혔다. 정당 지지율도 국민의힘이 46.5%로 더불어민주당(39.0%)을 오차범위 밖인 7.5%p 앞질렀다. 위헌·위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이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 비춰보면 정권 연장론이 이처럼 높게 나타난 것은 이례적이다.‌여론조사상 나타나는 이 같은 보수 결집 현상은 조사 방법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갤럽, NBS 등 주요 여론조사 전문업체에서도 최근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모두 높게 집계됐다.‌정기남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 탄핵소추 의결부터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3개월간 찬반 여론이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과 확연히 다른 양상”이라며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는 보수 지지층이 ‘샤이 보수’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선 이들이 ‘샤우팅 보수’로 바뀌어 여론조사에 적극 응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1위로 독주하고 있지만 30%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보수 진영에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권주자로 깜짝 부상했다.‌한국갤럽이 1월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을 대상으로 “장래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범보수권에서는 김 장관이 7%를 얻어 지난주(8%)에 이어 연속으로 보수 후보군 중 1위를 지켰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이 각각 6%, 오세훈 서울시장 4% 순이었다. 1위는 이재명 대표(31%)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 김 장관 1위는 비단 한국갤럽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 다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탄핵 정국서 조기 대선 국면으로이 대표는 다자 구도에서 큰 격차를 두고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권 후보와의 일대일 대결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시사저널이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1월 18~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6명에게 조기 대선이 열린다는 전제로 ‘이재명 대표 대 김문수 장관 양자 대결 투표 의향’을 물은 결과 김 장관은 46.4% 지지율로 이 대표(41.8%)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의 격차는 4.6%p로 오차범위 내(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다. 이 조사에선 이 대표(43.0%)와 홍준표 대구시장(43.7%), 이 대표(42.7%)와 오세훈 서울시장(41.1%)의 양자 대결 역시 오차범위 내 초박빙 구도를 보였다.‌이에 대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보수 지지자들이 ‘이 대표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막자’는 생각으로 여론조사에 적극 응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 등으로 보수층이 결집했지만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으면서도 속내는 복잡하다. 이 같은 민심이 이어진다면 정권 교체를 노리는 민주당엔 적신호가 켜진 것이나 다름없어서다.‌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민주당이 능력이 없어 보이고, 무책임하고, 혹은 (상대를) 거칠게 조롱하는 과정에서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이동하게 만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보수 지지층이 결집한 효과”라면서 “윤 대통령 탄핵 정국이 다음 단계인 조기 대선 국면으로 진입한 것”이라는 의견에 대체로 공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지난해까지 국민의 심판 대상이 윤 대통령이었다면, 이제는 이 대표에게 눈길이 돌아간 것”이라며 “국민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이 대표를 향해 ‘대통령 자격이 있느냐, 잘할 수 있느냐’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이 기사는 1474호에 실렸습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202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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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 고향 합천에서 체포… 박근혜·이명박, 구속되며 수감

    법원이 내란 우두머리와 직권남용 권리행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12월 31일발부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부터 체포영장 발부까지, 모두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전례가 있다. 과거 대통령들이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순간을 되짚어봤다.● 全 “내가 누군데 깡통에 오줌을…”1995년 12월 3일 새벽. 군 형법상 반란수괴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안양교도소로 향하는 검찰의 호송용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교도소까지는 300여㎞에 이르는 먼 길이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상 수갑을 채우진 않았지만 육중한 체격의 검찰 수사관들이 양 옆에서 그의 팔짱을 꼈다. 전 전 대통령은 호송차 뒷좌석에 끼여 앉은 채 교도소로 압송됐다. 그 해 1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앞세워 5·18 특별법 제정을 주도했고, 12·12 쿠데타에 대한 단죄에 나섰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던 검찰은 특별법에 따라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전 전 대통령의 사저인 서울 연희동으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특수본이 보낸 소환장이 도착했다. 검찰 조사에 반발하던 전 전 대통령은 2일 오전 9시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측근들과 연희동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한 뒤 고향 합천으로 내려갔다. 고향의 선영에 성묘를 간다는 게 이유였다. 검찰의 추적 또한 만만치 않았다. 2일 밤 전격적으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 받은 검찰은 영장집행을 위해 서울지검 1차장과 수사관들을 합천으로 급파했다. 실탄을 갖고 있는 전 전 대통령 경호원들은 경찰이 무장해제를 시키기로 했다.전 전 대통령은 고향 마을 5촌 조카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집 앞을 막아선 지지자들은 욕설과 함께 수사관들의 진입을 막았다. 경찰이 확성기를 통해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범법행위”라며 협조를 당부했고, 수사관들은 가까스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3일 오전 6시. 체념한 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집 밖으로 나온 전 전 대통령은 수사관들과 함께 호송차에 올랐다. 검찰은 일반 호송차로 사용하던 소형차 대신 중형차를 준비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였다. 장거리 압송에 대비한 소변용 깡통도 준비했다. 검찰 차량을 뒤따르는 취재진의 보도경쟁, 혹시 모를 지지자들과의 충돌 등을 우려해 휴게소에 멈추지 않고 교도소까지 직행하기로 한 계획 때문이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들르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전 전 대통령에게 수사관들이 미리 준비한 깡통을 내밀자 그는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줌을 쌀 수 있느냐”고 거절했다고 한다. 4시간 넘게 쉬지 않고 달린 호송차는 오전 10시 반경 안양교도소에 도착했고, 그는 구속 수감됐다.● 영장실질 거부한 李, 눈물 흘린 朴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최근 사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 10여 가지 혐의로 2018년 3월 23일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 영장실질심사 출석을 거부한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서류 검토만으로 구속 결정을 내렸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대기하던 이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동부구치소로 이송수감됐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되기 1년쯤 전인 2017년 3월 31일 구속됐다. 박 전 대통령은 같은 달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고,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 전날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았다. 8시간 40분에 걸친 심문 과정에서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목숨 바쳐 지켜 오신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라며 결백을 호소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독방에 들어가기 직전 한참 동안 선채로 눈물을 쏟았고, 교도관들이 박 전 대통령을 설득해 방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 수갑 찬 朴, 안 찬 李이 전 대통령은 2018년 5월 23일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구속 62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전 대통령은 수갑과 포승줄 없이 호송차에서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의 첫 재판 날짜도 5월 23일로 똑같았다. 그러나 1년 전 박 전 대통령이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인 채 같은 법원, 같은 법정에 들어섰던 모습과는 달랐다. 수갑을 박 전 대통령은 차고 이 전 대통령은 안 찬 까닭은 무엇일까. 교정당국은 차별 대우가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의 법정 출석 직전인 2018년 4월 개정된 수용 관리 및 계호 업무 등에 관한 지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 여성 등은 구치소장의 허가 하에 법정 출석 시 수갑이나 포승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당시 77세 였던 이 전 대통령은 구치소장의 허가 하에 수갑과 포승줄을 하지 않고 출석했다는 것이다.[이 기사는 에 실렸습니다]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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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지역당’ 고착화돼 가는 與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고 “저의 부덕과 불찰로 이렇게 큰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했다. 당시 여당 대변인은 ‘사죄’ 표현과 함께 “오로지 국민 눈높이에서 환골탈태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로 헌정질서를 위협했다. 8년 전 탄핵과 비교할 때 사유가 더 엄중하고 명확하다. 그런데 당 분위기가 과거와 다르다. ‘1호 당원’ 대통령이 탄핵된 데 대한 사과나 반성의 메시지는 없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직후부터 국민의힘은 지금껏 당내 주도권 다툼에 몰두하고 있다. ‘배신자 프레임’이 그것이다. 3년 뒤 지역구 표심만 보는 정치인들 국민의힘 의원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엔 얼마 전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겨냥해 “민주당 부역자는 (당에서) 덜어내자”라거나, “90명이라도 똘똘 뭉치자”는 글이 올라왔다. 의원들의 개인 SNS엔 “쥐××” 같은 더 심한 말들이 넘쳐난다. 탄핵안 표결 직후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탄핵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을 향해 “의총장에서 나가라”는 고함이 쏟아졌고, 심지어 “한 명씩 일어나 찬반, 기권 등을 밝히자”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국민의힘이 왜 이럴까. 국민의힘에 속한 대다수 정치인들의 관심이 ‘국민의 민심’이 아닌 ‘3년 뒤 지역구 표심’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민 다수에게 비난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남이가’ 또는 ‘저 자는 배신자’라는 한마디가 지역에서 표를 얻는 데 더 유리하다고 믿는 것이다. 민심과의 괴리는 그래서 생긴다. 이는 영남·강원권에 의석이 집중된 국민의힘의 지역 기반과도 관계가 깊다. 지금 국민의힘 지역구 의원 90명 가운데 영남·강원 의원이 72.2%에 이른다.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수도권에서 122석 중 19석을 얻는 데 그친 반면, 영남·강원에선 73석 중 65석을 얻었다.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 안에선 영남 주류의 뜻에서 벗어나게 되면 당 대표나 지도부도 생존할 수 없게 됐다. 현 정부 출범 이래 2년 7개월여 동안 약 3개월에 한 번꼴로 당의 얼굴이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당의 혼란이 커질수록 주류 곁에 바짝 붙어 있어야 안전하다고 생각한다.‘지역 소수당’ 재집권-국정운영 어려워 2016년 총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당은 사실상 지역 소수 정당으로 그 위상이 떨어졌다. ‘배신자 프레임’이 등장하고, ‘진박 공천’이 당내 화두로 떠오른 시기다. 이후 보수 정당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전 국민을 향해 환골탈태를 외쳤지만 당의 미래, 쇄신이 달린 당 주도권 다툼에선 소수 강경 지지층의 목소리를 등에 업은 ‘배신자 프레임’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 결과가 총선 내리 3연패다. 2016년 새누리당의 수도권 의석은 37석이었지만 지금은 19석밖에 안 된다. 수도권에서 83석을 얻어 당내 지역구 당선자의 55%를 수도권이 차지했던 2008년과 비교하면 같은 정당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대로라면 국민의힘은 다수당이 되기 어렵다. 설령 대선에서 다시 승리하더라도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또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전국지표조사(NBS·12월 16∼18일 조사)를 보면, 78%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가 ‘잘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대해 ‘가급적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68%에 달했다. 거의 모든 국민이 느닷없는 계엄 선포에 놀랐고 대다수가 조속한 헌정질서 회복을 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안에선 여전히 “탄핵까지 갈 사안이 아니다”는 의원들이 대다수다. 국민의힘은 수도권과 중도를 아우르는 정상적인 수권 정당의 길을 포기한 것인가.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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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이대로면 정권 무너질 수도… ‘특단의 특단’도 부족”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연금, 의료 등 4대 개혁과 민생경제, 외교 안보 이슈 등을 조명할 시기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장외집회를 열고 여론 결집에 나선 야당은 “탄핵” “하야”를 외치고 있다. 대선 후보 단일화를 거쳐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4대 개혁 하나도 제대로 된 것 없다” ―윤석열 정부가 반환점에 왔다. 총평을 먼저 해달라. “한마디로 말하면 ‘안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대선 승리는 비상식적이고 불통인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을 내건 정권이니까 당연히 그런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4대 개혁’ 성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다. 성과가 거의 없다. 또 이미 개혁 동력을 많이 상실했다. 개혁 동력이라는 게 우군을 많이 확보하는 것 아닌가. 그 힘으로 개혁을 하는 것이다. 대통령 혼자 생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지난 대선 때 0.73%포인트 차로 겨우 승리했다. 선거연합에서 승리를 했으면, 집권연합을 더 두텁게 만드는 게 그다음 순서인데 오히려 더 쪼그라들어 버렸다.” ―대통령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신속히 추진하라고 당부했다는데…. “시행령 개정으로는 부족하다. 연금 개혁만 해도 법과 다르게 시행령을 만들 수 없다. 법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시행령 개정만으로 4대 개혁을 하겠다, 이거는 불가능하다.” ―개혁 방식은 뭐가 잘못됐다고 보나. “모두 숫자부터 던졌다. 교육 개혁 한다면서 ‘5세 입학’을 얘기하고, 실패했다. 과학기술 개혁을 얘기하면서 ‘연구개발비 감축’ 숫자부터 던졌다. 또 실패했다. 의료 개혁 추진하면서 또 ‘2000명 증원’이라고 숫자부터 던졌다. 이게 반복됐다.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선 문제점을 알리고, 해결 방법과 거기에 대해 정부가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예산에 대한 의지를 내세운 다음 가장 마지막에 숫자를 내야 한다. 그런데 왜 이걸 이만큼 줄이고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설득 없이 숫자부터 던졌다.” ―의정 갈등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25년 정원에 대해서도 조건을 걸지 말자”고 주장한 바 있다. 아직도 유효한가. “유효하다. 의정 갈등 이대로 안 끝난다. 내년 3월에 의대생들이 복학하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의료 시스템 붕괴와 입시 붕괴라는 이 커다란 두 가지 피해 중에 어느 것이 더 작은가를 보고 선택해야 한다. 그게 국가의 일이다. 수험생들의 혼란이 있겠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수시 전형은 그대로 하더라도, 정시 모집 정원을 줄여 해법을 찾아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의사 수 증원에 대해 찬성하고 있는데…. “2030세대는 이걸 공정 이슈로 본다. 그 어려운 경쟁을 뚫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50% 증원한다는 것을 불공정으로 본다. 분노가 굉장히 크다. 설득 작업도 전혀 없었다. 의료 시스템은 죽고 사는 문제이고, 교육 시스템은 먹고 사는 문제다.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은 둘 중에 하나다.” ―인수위 활동 이후 대통령에게 따로 조언한 적은 없나. “취임식과 당 연찬회 등 행사 때 몇 마디 나눈 적은 있지만 대통령을 개별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연락 온 것도 없었다.” ―대통령에게 만나자고 먼저 제안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권한의 크기와 책임의 크기는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문성 있는 과학기술, 의료, 연금 등에 대해선 아는 전문가도 많았고, 생각했던 정책 방향을 반영해 인수위 보고서에 담았다. 그런데 내가 추천한 사람보다는 다른 분들을 대통령이 선택하더라. 그런 과정을 보면서 ‘본인이 책임도 지겠다는 뜻이구나’ 그렇게 받아들였다.” ―인수위 때 윤 대통령의 모습은 어땠나. 대통령이 반대할 듯한 의견은 개진하기 힘들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때 회의를 많이 했다. 비서실을 통해 면담 요청을 하면 당선인을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당선인이 예고 없이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소통과 토론에 꽤 적극적이었다. 내가 용산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지금과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때는 비교적 자유로운 소통이 이뤄졌다.” ―지금과 그때는 무엇이, 왜 달라졌을까. “지금은 대통령이 먼저 결정하는 것 같다. 옛날에 어떤 왕은 참모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게 하고 왕은 커튼 뒤에서 듣기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들어와서 ‘이 방향으로 가자’ 하고 결정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대통령이 ‘이쪽으로 가자’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특단의 특단의 조치 필요, 다 바꿔야” ―윤 대통령 지지율이 19%로 떨어졌다.(인터뷰 도중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드디어 깨졌군요. 지금은 국민의 실망이 극도에 달했다라고 한마디로 말씀드릴 수 있겠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이건 회복하기 힘들고, 이게 끝이 아니고 더 떨어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심각한가. “이럴 때는 ‘특단’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족하다. 말의 한계 때문에 더 강한 표현을 쓰고 싶은데 떠오르지를 않는다. 특단을 넘는 특단, 정말 ‘뭐 빼놓고는 모두 바꿔라’ 이 정도의 결단을 해야 본인도 살고 국가도 산다고 본다.” ―어떤 조치가 있을 수 있을까. “진솔한 대국민 소통, 전면적인 개각을 포함한 인사 개편, 국정 기조의 대전환, 그다음에 야당과의 소통 내지는 협조, 노력들이 필요하다.” ―인수위원장 시절 김건희 여사 또는 소위 김 여사 라인에 대해 우려스럽다고 생각한 적 있나. “전혀 몰랐다. 왜냐하면 당시 인수위는 둘로 분리돼 있었다. 나는 정책만 했다. 비서실이 따로 있었다. 명태균 씨 이름이 나온 적도 없다.” ―명 씨가 안 의원과 찍은 사진을 SNS에 게재한 적이 있는데…. “나와 사진을 찍은 사람이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을 수 있다. 선거 때면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사진을 찍나. 그분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 않나.” ―김 여사 문제가 이렇게 커지기 전에 막을 순 없었을까. “이전부터 ‘김 여사의 진솔한 유감 표명 내지 사과가 필요하고, 제2부속실을 빨리 만들자.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자’고 인터뷰 등을 통해 계속 얘기했다. 그런데 시기가 지난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단계가 지나 버린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지금까지 문제를 막진 못했지만 앞으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에게 안심을 주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 그것도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 정국’ 수준의 위기가 여권에 밀려오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충분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그런 위기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야당은 벌써 시작했다. 11월 중으로 예정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선고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친윤(친윤석열) 그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건희 특검 찬성’ 의사를 공개적으로 피력한 배경은…. “여러 의혹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그냥 없던 걸로 넘어가기는 힘든 상황이 됐다. 조건은 있다. 특검을 하더라도 저는 여야 합의 특검을 찬성하는 거지 지금 민주당 안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여야 합의 특검, 대통령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가능할까. “대통령이 동의해야 한다. 본인이 거부해서 지나갈 순 있다. 근데 그러다가는 둘 중에 하나다. 정권이 무너지거나 아니면 임기를 마치더라도 그다음 대통령이 특검을 할 거다.” ―정말 ‘특검이 없으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박근혜 대통령 시절처럼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국민이 설득되면 야당도 탄핵 꺼내기 어려워”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야당의 태도가 바뀔까. “국민들이 설득되면 야당이 아무리 다수라고 해도 무조건 반대하고, 탄핵하자고 나서기는 어렵다. 야당도 멈칫멈칫 하게 된다.” ―민주당의 지금 모습은 어떻게 평가하나. “국회의 전통이 무력화됐다. 예전에도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있었지만 소수당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 지금 민주당은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할 정도로 몰아붙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게 다수결로만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이 대표가 결국 민주당 대선 주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선거법 사건 선고는 1년 이내에 대법원까지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법은 성역이 없어야 한다. 그 원칙이 지켜졌으면 좋겠다. 무죄든 유죄든 결정이 나기를 기대한다. 재판을 받는 후보가 대선에 나가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야권 일각에선 ‘임기 단축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원론이지만 원래 개헌을 할 때 개헌을 한 대통령은 개정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 거다. 그게 원칙이다.” ―차기 대선 출마는 계획하고 있나. “대선을 한 번 치러 봤다. 총선은 자기가 결심해서 나갈 수 있지만, 대선은 시대정신이 받쳐줘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있고, 전 국민 사이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시대정신 아니겠나. 내가 잘 아는 과학기술 의료 교육개혁 분야 등에서 열심히 할 것이다. 국회 외교통상위 활동도 마찬가지다. 나를 필요로 하는 생각들이 모이면 나갈 수 있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거다.” ―우군이 많이 필요할 텐데, 적극적인 당내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적으로 친한 의원들이 꽤 있다. 일대일로 의원들을 만나서 의견을 나눠 보면 공감하는 의원이 많이 있다. 다만 그분들이 대외적인 목소리까지 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동훈 대표와는 따로 만난 적 있나. “여러 의원과 함께 만난 적은 있지만 따로 만난 적은 없다. 정치인 간 진정한 진솔한 대화를 하려면 일대일로 만나야 한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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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尹-韓 투샷 없는 80분… 차담 직후 원내대표 만찬 호출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회동했을 때 대통령실은 통상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거나 대화하는 모습을 담은 ‘투샷’ 사진을 배포한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여당 대표와 만날 때도 그랬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그제 오후 차담(茶談)은 과거와 다른 이례적인 장면으로 가득했다. 특히 대통령실이 배포한 사진들은 이번 면담이 얼마나 삭막하고 냉랭했는지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준다. ▷사진 중엔 단 한 장도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두 사람만 나온 온전한 ‘투샷’ 사진이 없었다. 사진 9장 중 7장은 산책 장면, 2장은 면담 장면이었는데, 그중 두 사람에게 포커스를 둔 ‘투샷’처럼 보이는 사진들도 모두 두 사람 사이 또는 뒤편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일부러 ‘둘만 나란히 있는 사진’을 외면한 것일까. 한 대표가 쇄신을 요구한 ‘김건희 라인’으로 알려진 비서관이 두 곳에나 등장한 것도 뒷말을 낳았다. ▷차담 사진도 마찬가지다. 한 대표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나란히 앉아있고, 윤 대통령은 긴 사각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두 팔을 쭉 펴고 있다. 윤 대통령 앞에는 면담 프로토콜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펜과 메모지조차 없다. 당초 한 대표 측은 원형 테이블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실이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자리 배치부터 표정, 몸짓까지 위와 아래를 명확히 구분하는 구도였다. 이러니 “검찰 취조실 같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 대표를 여당 대표로 인정하지 않고 부하 검사 대하듯 했다는 지적이다. ▷사실 이번 면담은 시작부터 끝까지 어색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면담은 20분 정도 늦게 시작했다. 영국 외교장관 접견 때문에 늦었다지만 한 대표는 야외정원에서 선 채로 대기했다고 한다. 오후 4시 55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면담 테이블엔 ‘우리 한 대표가 좋아한다’며 윤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다는 제로 콜라가 놓였다. 면담은 오후 6시 15분에 끝났다. 요청 한 달 만에 성사된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윤 대통령의 만찬 일정 때문이었다는데,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보낸 뒤 추경호 원내대표를 만찬 자리로 불렀다. ▷사진기자들은 대통령 행사마다 수백 장의 다양한 장면을 찍은 뒤 그날 행사의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은 몇 컷을 보도한다. 대통령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사진만 골라 배포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과연 누가 골랐고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대통령실이 선택한 9장의 사진은 ‘용산의 눈’으로 본 이번 면담의 ‘격’과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하대나 박대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면 충분히 전달됐다고 본다. 다만 그래서 뭘 얻었는지는 깊이 곱씹어볼 일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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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선거는 끝났지만 잊어선 안 될 재보선 유발 책임자들

    구청장·군수 4명을 다시 뽑는 10·16 재·보선이 끝났다. 그중 전남 곡성군과 영광군은 현역 군수가 위법행위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는 바람에 선거를 다시 치른 곳이다.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자진 사퇴를 발표했는데, 내년에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모두 정치인들이 법을 잘 지켰거나, 사적 이익을 위해 그만두지 않았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선거’다.“잘못은 단체장이, 비용은 주민이” 선거법상 지자체장 선거는 해당 지자체 예산으로 치르게 돼 있다. 재·보선도 마찬가지다. 영광군은 이번 선거를 위해 14억6700만 원을 선관위에 관리 비용으로 냈다. 곡성군도 10억7800만 원을 썼다. 영광에선 전임 강종만 군수가 2022년 지방선거 때 금품을 건넨 탓에 재선거가 열렸다. 곡성 역시 이상철 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했다. 잘못은 정치인인 두 군수가 했는데, 25억 원이 넘는 선거 비용은 영광군, 곡성군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다. 선거 비용은 크게 선관위가 쓰는 투·개표 관리 비용과 후보들이 쓴 선거운동 비용을 나중에 돌려주는 보전금 등 두 가지로 구성된다. 15% 이상 득표한 후보자는 선거 비용 전액을 돌려받는데, 이 보전금은 지자체가 낸 예산에서 지급된다. 물론 선거법 위반으로 선거 결과가 무효가 되면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문제 후보는 받았던 보전금을 토해내야 한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4차례의 지방선거를 치르는 동안 정치인 261명이 보전금 반환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이 반환하지 않았는지, 안 했다면 미반환 금액은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을 이유로 선관위가 이를 공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버티는 정치인들이 꽤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반환 않는 ‘먹튀’ 정치인은 65명, 그 금액은 168억 원에 이른다. 선거범죄가 아니라 다른 사유로 지자체장이 직을 상실했을 때는 아예 보전금 반환 의무가 없다. 문헌일 전 구청장이 백지신탁을 거부하고 스스로 그만둔 구로구의 경우, 20억∼30억 원으로 예상되는 보궐선거 비용을 전액 구의 예산으로 메워야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28억 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그런데 2022년 지방선거 때 그곳에서 당선됐던 김태우 전 구청장은 2023년 물러나면서 한 푼의 보전금도 반환할 필요가 없었다. 당선 무효형은 선고됐지만, 그 사유가 선거범죄가 아니라 공무상 비밀누설죄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유죄 확정으로 생긴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다.“지자체장과 정당이 비용 부담해야” 그동안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보전금 반환 대상 범죄를 넓히라”거나 “문제를 일으킨 지자체장과 정당에 선거 비용을 부담시키라”는 요구를 해 왔다. 선관위도 선거법 개정 의견을 2021년 국회에 제출했다. 선관위 의견에는 선거 비용을 미반환한 정치인의 인적사항과 금액을 공개하고, 미반환 사실이 있는 정치인이 후보자로 다시 나설 땐 그 내용을 후보자 정보자료에 기재하도록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국회는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문제적 인물을 공천한 책임이 있는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자기 부담을 키울 리 없다. 선거 때 상대 정당이나 후보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뿐이다. 지자체장의 순직 등 부득이한 사유로 재·보선을 치르는 건 사정이 다르다. 그렇지만 선거법 위반뿐 아니라 부정부패, 기타 개인적인 이유로 다시 선거를 치르게 됐다면 ‘원인 제공자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10월 재·보궐선거는 끝났지만 ‘하지 않아도 될 선거’를 유발한 정치인과 정당의 책임을 잊어선 안 된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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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20년 전에 없어진 지구당, 뜬금없는 부활론의 허실

    20년 전 사라진 과거 정치문화인 지구당이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다. 22대 국회 첫날인 지난달 30일 여야에서 각각 지구당 부활과 관련한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주목할 점은 전현직 당 대표를 비롯해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이 논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불을 붙인 데 이어 나경원 안철수 윤상현 의원 등이 찬성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구당 부활을 거론하는 속내는 제각각이지만 주요 명분은 현역 의원과 원외 정치인 간 형평성 문제다. 현역과 달리 원외 인사들은 선거 기간이 아니면 사무실을 열고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이런 탓에 총선 때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명망가들이 낙하산 공천을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청년 정치,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등을 위해 원외 인사들에게도 활동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각 당엔 ‘당협위원장’(국민의힘) 또는 ‘지역위원장’(민주당)이라는 직책이 있다. 각 선거구를 관리하는 지역 책임자다. 변호사 자격이 있는 원외 위원장들은 변호사 사무실을 지구당 사무실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위원장들은 ○○연구소, ○○학교와 같은 간판을 내걸고 사무실을 운영하는 편법 사례가 있다. 이마저도 어려운 이들은 당협위원장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4년 동안 돌아다니며 유권자들을 만난다. 합법적인 사무소, 여기에 후원금과 중앙당의 인력·자금까지 받을 수 있다면 이들에겐 엄청난 힘이 된다. ▷지구당이 2004년 폐지된 이유는 불법 정치자금 때문이다. 사무실을 열면 임차료와 인건비 등으로 월 1000만 원 이상의 운영비가 든다고 한다. 연 1억2000만 원, 254개 지역구로 확대하면 연 300억 원이 넘는 돈이다. 이런 액수도 외부에 드러난 것일 뿐 실제로는 조직동원비 등으로 더 많은 금액이 소요된다는 것이 정가의 경험담이다. 그나마 현역의 경우엔 후원금이 있고, 국회 보좌진에게 사무실 운영을 맡겨 인건비를 아낄 수 있다. 그러나 원외 위원장은 사비를 털어야 한다. 이 때문에 시의원, 구의원들이 사무실 운영비를 갹출하거나 지역 내 사업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건네는 경우도 많았다. ▷현역과 원외 인사, 정치 신인 사이에 놓인 불공정한 장벽은 해소돼야 한다. 하지만 그 대안이 지구당 부활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지역 내 또 다른 정치 카르텔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원외 위원장에게만 사무실과 후원금을 허용한다면 당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정치 신인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아무런 논의도 없다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불쑥 던질 이슈는 아니란 얘기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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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4년 전보다 6석이나 더”… 제대로 된 與 총선백서 나올까

    ‘총선 3연패 정당.’ 국민의힘 얼굴에 찍혀 있는 낙인이다. 20·21·22대 총선에서 연속 패배하면서 얻은 불명예다. 그사이 새누리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당명도 세 차례나 바뀌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원인을 살펴보겠다면서 ‘반성문’ 격인 총선 백서를 쓰기 위해 당 특별위원회까지 꾸렸지만 연일 삐그덕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당내에선 “백서가 나오기는 할까”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는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할 전당대회가 ‘6월 말 7월 초’ 열리는 방안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총선 참패의 주요 원인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과 불통,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의 전략 부재 중 어떤 것을 넣고 뺄지, 어디에 방점을 두고 기술할지 등을 두고 친윤계와 친한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어서다. 그 와중에 조정훈 백서특위 위원장이 당권 도전을 시사하자 친한계를 중심으로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논란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조 위원장이 자신의 전당대회 출마를 염두에 두고 ‘한동훈 공동 책임론’을 부각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현명하신 주권자 국민께서 21대 총선보다 6석을 더 주셨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영환 전 공관위원장이 백서특위 회의에서 한 말이다. 국민의힘이 지역구 기준으로 21대 총선(84석) 때보다 6석 더 많이 얻은 건 사실이다. 비례대표까지 포함하면 4년 전(103석)보다 5석을 더 얻었다. 그러나 4년 전은 코로나 정국 때 야당으로 치른 선거였고, 이번엔 수많은 정책 수단과 정보력을 갖춘 집권 여당으로 치른 선거라는 점이 다르다. 범야권에 192석을 내준 건 집권 여당으로선 헌정사에서 가장 큰 패배다. ‘수포당’(수도권을 포기한 정당)이라는 비판까지 받은 당이 ‘6석’ 운운하는 건 민심과는 동떨어진 초현실적 시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4년 전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그해 8월 208페이지에 달하는 총선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중도층 지지 회복 부족 △미래 비전 제시 미비 △효과적인 전략 부재 △불공정한 공천 논란 등을 주요 패인으로 꼽았다. 이번 총선에서도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요인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반성문을 쓰고도 또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는 데 있다. 혁신을 실천하지 않은 결과다. ▷국민의힘은 2년 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 일 년 후엔 대선도 치러야 한다. 국민의힘에 쇄신은 무슨 구호이거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냉철한 자기 반성은 어물쩍 지나치려 하면서, ‘대표 잿밥’으로만 눈길이 향하고 있다. 입으로만 하는 개혁을 넘어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혁신이 시급한데, 행동은 보이지 않고 어이없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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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표와 ‘1호 당론 법안’의 운명 [오늘과 내일/김승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반론의 여지 없이 ‘여의도 대통령’이 됐다. 국가 권력 서열 1.5위에 올라선 것 같은 기세다. 그런 이 대표가 1호 당론 법안으로 나눠주겠다는 이른바 ‘민생회복지원금’을 두고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일주일 전만 해도 6월 국회 처리를 장담하다가, 이젠 고소득층을 제외하거나 정부 예산편성권을 침해 않는 쪽으로 선회할 여지를 두기 시작했다. 이 법안은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을 지역화폐로 나눠주도록 정부에 강제한다는 것이다. 그 지역화폐는 연말까지 안 쓰면 소멸되는 만큼 저축할 수 없다. 정부가 쓴 나랏돈의 파급 효과는 연구가 대체로 끝난 상태다. 100원을 현금으로 주면 20원쯤,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쓸 때는 40원쯤 기여한다고 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금융위기나 코로나 등 극단적 위기가 아니면 현금성 복지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지역 자영업자에게 다 써야 하는 지역화폐는 현금 살포가 아니다. 승수(乘數) 효과가 크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공짜 마다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폭발력 큰 이 정책을 두고 이 대표는 왜 절충안을 찾아나선 걸까.‘전 국민 25만 원’ 갈지자 선회 이유 궁금 이 대표는 작전상일지라도 후퇴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대로 추진해 거대한 정책 논쟁을 주도했으면 좋겠다. 이 정책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국가 정책을 다룰 때 정치와 감정보다 숫자와 논리를 더 중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전제 조건이 있다. 이 대표는 세금 13조 원을 한번에 투입하는 이 정책이 왜 우리 경제에 좋은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경제전문가들이 다들 반대하는데 오랜 시간 굽힘 없이 주장했다면 그 근거가 있을 것이다. 비주류 정치인이 아니라 여의도의 대통령이 된 지금 그 근거를 내놓을 때가 됐다. 때마침 민주연구원은 25만 원씩 지급하면 국내총생산(GDP)을 0.2∼0.4%포인트 증가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이번 주에 발표했다. 지난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1.3%였다. 0.2∼0.4%포인트 추가 성장이면 꽤 큰 성장 기여인데 숫자 도출의 근거는 빠졌다. 실망스러운 것은 “연구자 개인 의견”이라면서 민주연구원은 빠져나간 사실이다. 대중의 뇌리에 ‘좋은 정책’이란 이미지는 심으면서도 사후 책임은 안 지겠다는 꼼수 아닌가. 만년 야당 시절엔 이런 게 이해 받았겠지만 이젠 곤란하다.“성장에 기여”라면서도 민주연구원은 발 빼 이 대표는 민주연구원에 지시해 당 이름을 걸고 GDP 증대 효과가 저렇게 큰 것이 맞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동시에 금리와 물가를 소폭 상승시켜 경제적 약자의 부담을 키울 것이란 비판에도 구체적 반론을 펴야 한다. 또 취약계층을 두텁게 돕는 게 낫다는 국민의힘의 주장보다 전 국민 지급이 더 낫다는 점도 납득시킨다면 이 대표 지지 여론도 더 커질 것이다. 이 대표는 이를 직접 발표하고, 2∼4년에 걸쳐 사후 검증을 받겠다고 약속하면 좋겠다. 역대 어느 정치 지도자보다 정책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이재명은 포퓰리즘 정치인”이란 비판을 뛰어넘을 기회도 된다. 이런 설명의 의무는 이 대표만 질 일은 아니다. 25만 원 지역화폐에 반대하는 정부와 국민의힘 역시 반대 논리를 숫자로 설득해 보길 바란다. 국회 제1당이 낸 정책을 두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것이 아니란 걸 입증시켜 줘야 한다. 재추진한다는 양곡관리법도 마찬가지다. 남는 쌀 매입에 매년 3조 원씩 투입해야 한다는데, 이 큰돈을 투입해야 하는 정책에 여건 야건 정교한 숫자 설명이 없었다. 이 대표에겐 지금 사법 리스크와 대통령 찬스가 모두 어른거린다. 위상이 달라진 그가 나랏돈 13조 원을 쓰자면서 어떤 책무감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김승련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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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길진균]“진짜 개××들”… 합의 요구 국회의장 향해 욕설한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이 1일 김진표 국회의장 등을 향해 “개××들”이라고 폭언을 했다. 채 상병 특검법을 2일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압박에도 김 의장이 여야 합의가 있어야 본회의를 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박 당선인은 “그러니까 박병석, 김진표 똑같은 놈들”이라고 했다. 진행자가 ‘똑같은 놈들이라뇨’라고 하자 박 당선인은 “놈이지. 윤석열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받았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아! 개××들이에요. 진짜”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 당선인은 방송이 끝난 뒤 페이스북에 “방송 시작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적절치 못한 내용을 얘기했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 그는 30초 넘게 인터뷰를 이어가던 중 불쑥 “지금 방송 나가고 있는 거냐”고 물은 뒤 “아이고, 내가 너무 세게 얘기했구나”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아무튼 나는 소신껏 얘기했다”고 했다. 방송 출연이 잦은 노회한 정치인이 카메라가 켜진 것을 정말 몰랐을지 의문이다. ▷국회의장을 향한 민주당의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박 당선인과 같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 의장을 언급하며 “환장하겠다”고 했다. 우원식 의원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삶에 결코 중립은 없다”고 했다. ‘국회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 조항을 통해 중립의 필요성을 강조한 국회법의 취지를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민주당의 국회의장 압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1년에도 박병석 당시 의장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직권 상정을 거부하자 초선 의원인 김승원 의원은 박 의장을 향해 “역사에 남을 겁니다. GSGG”라고 적었다가 욕설 논란이 일었다. ▷정치인이 비상식적 표현이나 막말을 하면 과거엔 거센 질타와 불이익을 받았다. 공개 사과로 부족해서 당직을 내놓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박 당선인의 페이스북은 “잘하셨다” “시원했다” 등의 지지층들의 찬사 댓글로 도배가 됐다. ‘GSGG’를 썼던 김 의원은 징계를 당하기는커녕 멀쩡히 공천을 받아 재선 의원이 됐다. 이를 벤치마킹해 윤 대통령과 여당 의원을 겨냥해 복수형의 의미인 ‘D(들)’를 덧붙여 ‘GSGGD’라고 쓴 민형배 의원 역시 재선과 함께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오히려 이익을 본 셈이다. ▷극렬 지지층은 막말에 환호하고 당 지도부는 이들 눈치를 본다. 무례함을 용기로 포장하는 의원이 늘어나고, 막말이 더 격해진 이유다. 제대로 된 징계 없이 어물쩍 넘긴다면 차기 국회의장이 누가 돼도 민주당 의원들의 압박은 더 거칠어질 것이다. 의사당은 지지층을 자극하는 막말로 더럽혀지고, 협치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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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쇠몽둥이 심판… 尹 이제라도 ‘통 큰 리더’ 모습 제대로 보여야”

    《집권 여당 참패라는 선거사상 초유의 결과를 낸 이번 4·10총선은 충청의 영향이 컸다. 2년 전 대선과 지방선거 때의 승리와 달리 국민의힘은 충남·충북에서 역대급 패배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친은 충남 공주가 고향이다. 국민의힘은 총선 직전 충청권 판세를 박빙으로 분석했었지만 대전·천안·아산·청주 등 도시권 16석 중 단 1석도 건지지 못했고, 그나마 농촌과 중소도시에서 12석 중 절반인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24일 충남 홍성군 충남도청에서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인 김태흠 충남도지사를 만났다. 그는 여당의 충청 참패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고향이라도…” 24만7077표로 승부가 갈린 지난 대선에서 충남과 충북은 각각 8만292표와 5만6068표 차로 윤 대통령이 승리한 지역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안겨줬던 대전 역시 더불어민주당으로 다시 돌아섰다. 김 지사에게 충청 민심 변화의 원인에 대해 먼저 물었다. “영남과 호남은 다 자기편들이 있습니다. 충청 지역 유권자들은 우리 민심이 곧 대한민국 민심이란 프라이드를 가진 분들입니다. 정치적 변곡점 때마다 정치적 명분을 쥔 쪽을 지지해 왔습니다. 이번 선거에선 정부·여당을 지지해줄 명분이 없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충청 민심의 수도권화’를 강조했다. “충청권 도시들은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로 외지 주민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멜팅폿(Melting pot·여러 문화가 하나로 동화되는 것)이 이뤄졌고, 표심도 수도권을 따라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호남처럼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은 지역이다 보니 정권심판론이 먹혔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의 고향’을 언급하자 그는 “(대통령 고향이라고) 무조건 편들어 주는 곳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는 “충청이 윤 대통령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이를 도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지 못했고, 내각이나 요직에 충청인 발탁이 미흡해 피부에 와닿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미 명분에서 다 진 상태인데 충청으로 와서 표를 달라고 한들 도민들이 무조건 찍어줄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명분에서 졌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 문제만 해도 임명 자체로 말할 나위 없이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한테 전화해서 자진 사퇴시키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사퇴시켜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사퇴까지) 8일이 걸렸습니다. 민심에 둔감했던 것이죠.” 그는 김건희 여사 문제의 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은 맞게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윤 대통령을 뽑을 때 기대했던 것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실망한 것입니다.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으로서 핍박을 받으면서 공정과 상식을 지키는 리더가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또 남자답고 화통하고 스케일이 큰 리더일 것이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 여사나 장모 문제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공정과 상식을 기대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힘 못 쓴 ‘국회 완전 이전’ 공약” 그가 진단한 충청의 민심은 ‘정권 심판론’이 크게 작용했던 총선 전체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원인은 없었을까. ―총선 직전 나온 ‘국회의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국회는 이미 본회의장 등 일부 기능을 제외하고 11개 상임위원회와 대부분의 기능을 세종시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완전 이전이란 국민의힘의 공약은 파급력이 약할 수밖에요. 또 선거를 목전에 두고 발표했는데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세종은 공무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1대 총선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세종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세종에서의 계속되는 국민의힘의 패배에 대해 김 지사는 ‘38.6세’라는 숫자를 제시했다. “세종시는 2002년 16대 대선 공약 이후 위헌 논란과 수정안 등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젊은 도시’입니다. 평균 연령이 2023년 말 기준 38.6세입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늘 어려운 지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 건립이 지금까지 속도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정책의 구체성을 따져보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여당의 약속이 곧이곧대로 전달되기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민심의 쇠몽둥이 맞은 여권” 김 지사는 총선 직후 페이스북에 자신이 느낀 충격에 대해 “국민은 집권 여당을 향해 회초리가 아닌 쇠몽둥이를 들었다”고 표현했다. ‘여권의 위기’를 강조한 것이다. “회초리라고 하면 과반 150석 중에 130∼140석 정도 받았을 때 회초리를 들었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100석 갓 넘기는 의석을 받았다면 그건 쇠몽둥이 아니겠습니까.” ―뭐가 달랐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윤 대통령이 장모가 감옥에 갔을 때 가족으로서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작은 문제들을 진솔하게 털고 가지 않아 더 큰 문제로 쌓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디올백 문제 때도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다’ ‘사과드린다’ 그렇게 인정하고 털고 갈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런 게 잘 안 되다 보니 국민 마음속에 불만이 누적됐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는 여론이 많습니다. “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오만과 불통에 대한 인식이 1이라면 국민의 생각은 9, 10인 것 같아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국민에게 비치는 문제점 중 대부분은 국정 운영 때문이라기보다는 장모 또는 김건희 여사 관련 리스크에서 온 게 사실입니다.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가진 부정적 이미지는 실제보다 과장돼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첫째는 듣는 사람이 바뀌어야” 그렇지만 김 지사는 “지금도 여권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이러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인적 쇄신에 나섰습니다. 앞으로 달라질까요.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직언을 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설득하려면 상당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방향이 있으면 그 자리에선 동의한다고 해도 하루 이틀 지나 좀 더 의견을 정리하고 보완 방향을 판단해서 바꿀 건 바꾸자고 말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물론 첫째는 듣는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참모가 되면 대통령의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습니까. “윤 대통령이 화통하고 스케일이 큰 리더의 모습을 이제라도 제대로 보여줬으면 합니다. 시대마다 원하는 리더가 있습니다. 지금은 자기 소신이 있으면서 통 크게 포용하는 리더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내각의 인적 쇄신 작업은 잘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총선 후 인적 쇄신은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인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집권 여당으로서 3년 남은 기간에, 그리고 이런 정치 구도 아래에서 어떤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 것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갈 것인가 방향 설정을 먼저 해야 합니다. 지금 사람 구하는 데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총리 인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번에 이재명 대표 회담 때 야당에 ‘총리로 좋은 분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부 장관직도 민주당이 추천해주면 그분 모시고 국정 같이 잘 해볼 테니 좋은 의견을 달라고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통 큰 윤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반성’과 ‘미래’를 수차례 언급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처절한 반성, 그리고 앞으로 3년을 어떻게 가겠다고 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의 부재”가 ‘위기의 여권’을 진단하는 그의 핵심 키워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집권 2년이 됐으니까 이번 선거는 심판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라도 받아들일 것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여당이 보여줄 수 있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 동력 상실은 국가와 국민에게 큰 손실입니다. 앞으로 더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홍성=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신광영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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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길진균]해마다 수백억… ‘먹튀’ 논란 끊이지 않는 정당보조금

    《2012년 대선 직후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선 후보는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그가 투표일을 사흘 남겨 놓고 갑자기 사퇴하면서 선거보조금 27억여 원을 한 푼도 반납하지 않고 고스란히 가져갔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지만 ‘먹튀’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와 더불어민주연합을 만들고, ‘의원 꿔주기’ 꼼수로 각각 28억여 원의 선거보조금을 배분받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정당을 보호·육성한다는 취지로 많게는 한 해 1000억 원 넘게 지급되는 정당 국고보조금. 유용, 먹튀 논란이 일 때마다 정치권은 “감시를 강화하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아예 없애자는 선거 공약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국고보조금 제도가 생긴 지 44년 되도록 제도 개선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개점휴업’인데 4년간 40억 원 넘게 지원 선거 때마다 세금으로 지원하는 돈, 선거보조금이다. 중앙선관위는 4·10총선을 위한 선거보조금 501억9700만 원을 25일 각 당에 배분했다. 돈을 받은 정당은 11곳.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188억 원과 177억 원으로 가장 많이 받았고, 원외 정당인 기후민생당(민생당의 후신)도 10억400만 원을 받았다. 기후민생당은 현재 의석은 없지만 정치자금법에 따라 21대 총선 당시 2% 이상(2.08%)의 표를 받았기 때문에 보조금 총액의 2%를 배분받았다. 기후민생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1명씩 후보를 냈다. 그런데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 출마한 김정기 전 민생당 대표의 주소지는 경기 부천이다. 출마한 지역구로 주소지도 옮기지 않은 것이다. “선거보조금을 받기 위해 후보를 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전 대표에게 공약 등 출마의 변을 들으려 했으나 민생당 사무처는 “연락처를 주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민생당은 2022년 지방선거 때도 단 1명의 후보를 내고 9억3000만 원의 선거보조금을 받아갔다. 당시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A 씨가 받은 최종 득표 수는 386표. A 씨는 통화에서 “자의 반 타의 반 출마였다”고 했다. 당의 선거지원금 수령도 염두에 둔 출마였다는 점을 내비친 것. 그는 “유세차량이 있어야 하고 싶은 말을 유권자에게 충분히 할 수가 있는데 그런 것을 전혀 못 했다”며 “사비로 2500만 원 가까이 썼다”고 했다. 그럼 민생당이 받은 9억3000만 원의 선거보조금은 어디로 간 걸까. A 씨는 선거가 끝난 뒤 당으로부터 150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나머지 선거보조금의 용처에 대해서는 “당이 알아서 처리했을 것”이라며 “모른다”고 말했다. 복수의 민생당 관계자들도 통화에서 “답변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했다. 현역 의원 20명, 제3교섭단체로 출발한 민생당은 2020년 총선 참패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고 주요 인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단 한 명의 국회의원 광역의원 기초의원도 없고, 이렇다 할 의정활동도 찾기 힘든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지만 지난 4년간 받은 정당보조금은 40억 원을 훌쩍 넘는다.●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정당보조금 민생당의 계속된 국고보조금 수령은 제도상의 허점과 감시의 허술함이 동시에 드러난 극단적 사례지만, 기존 원내 정당의 국고보조금 사용 역시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은 2013년 국고보조금 6668만 원을 당직자들에게 상여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회계 처리를 했다. 그리고 이를 차명계좌로 반환받아 불법 선거 자금으로 썼다가 적발됐다.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역시 2012년 정책개발비로 6500만 원을 썼다고 회계 신고를 했는데, 몇 건의 짜깁기한 보고서가 전부였던 것으로 드러나 선관위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국고보조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하는 건 선관위 역할이다.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 집행을 치밀하게 감시하기는 쉽지 않다. 동아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검찰이나 경찰에 고발이나 수사의뢰를 한 경우는 6건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관위는 위법 사항을 발견하고 조치를 취한 뒤에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나마 당내 갈등 끝에 한 번씩 외부로 비위 사실이 알려지는 정도다. 유권자의 감시의 눈에서 벗어난 이런 ‘깜깜이 회계 감사’는 드러나지 않은 보조금의 유용이나 위법 행위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의심을 키우고 있다.● 1980년 국보위가 도입한 정당보조금 이 같은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는 언제 왜 도입됐을까. 전두환 군사정권의 산물이다. 1980년 5월에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가 추진한 5공화국 개헌에 보조금 관련 규정이 헌법에 들어갔다. 당시 헌법 제7조 제3항엔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정당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라고 명시됐다. 이에 따라 그해 12월 정치자금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보조금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당시 속기록에 나타난 개정안에 대한 제안 설명이다. “보조금의 지급 대상과 배분 비율 등을 건전한 정당의 보호 육성이라는 차원에서 새로 정하고…정치자금을 양성화함으로써 정치활동의 공명화를 촉진하고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광복 이후 우리 정당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에 의존해 운영돼 왔고, 그렇다 보니 정치 자금을 둘러싼 부정부패가 극심했다. 검은돈의 정치권 유통과 정당 정치의 보호를 위해 정당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보조’하기 위해 정당 국고보조금이 도입됐지만, 수차례의 법 개정을 거쳐 규모가 막대해진 정당 보조금은 이제 각 당의 주요 수입원으로 변질된 것이 사실이다. 민생당 같은 ‘개점휴업’ 정당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정부는 정치자금법상 선거보조금과 별개로,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 비용도 보전해주고 있다. 선거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 비용을 줄이고 공명선거를 실현한다는 선거공영제에 따른 것이다. 정치자금법상 선거보조금은 정당으로, 공직선거법상 선거 비용 보전금은 후보자에게로 각각 지급된다. 이렇게 보면 선거와 관련해 ‘이중으로’ 지원되는 셈이다.● “투명한 감시 필요”…정치권 개정 논의는 뒷전 정치권 일각에선 폐지론도 일고 있지만 헌법에 명시된 정당 국고보조금을 아예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입법권을 쥔 각 정당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낮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고보조금에 대한 감시 기능 강화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당의 보조금 사용 내역을 일반인이 확인하려면 항목 총액 정도만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고, 세부 증빙 자료는 선관위를 찾아가 열람해야 한다. 그나마 3년 전까지는 자료 열람 가능 기간이 3개월로 제한됐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2021년 유권자의 평가에 필요한 자료에 대한 접근 제한은 최소한이어야 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고서야 올해 2월 겨우 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렇지만 자료 열람 가능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된 것이 전부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등에선 보조금 사용 내역의 투명한 공개를 위한 법 개정을 꾸준하게 요구하고 있다. 선관위도 2021년을 비롯해 세 차례에 걸쳐 정당의 수입·지출 내역을 인터넷에 상시 공개하도록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치권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20대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또 자동 폐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오유진 간사는 “정당이 어떤 장난을 해도 알 수 없는 시스템”이라며 “유권자들의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감시를 피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당보조금이 필요하다면 회계감사 규정 강화 등 제도적 개선을 통해 정당보조금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당보조금이 많다고 더 좋은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감시받지 않은 거액의 보조금 지급은 정당에 대한 국민 불신만 높일 뿐만 아니라 정당 스스로의 자생력마저 잃게 만들 수 있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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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권의 강경 질주, 희미해진 중도확장론 [오늘과 내일/길진균]

    ‘중도층’은 과거 거의 모든 정당의 타깃이었다. 적어도 양당제 국가에선 그렇다. 양쪽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율에 큰 차이가 없다면 승패는 중도층의 손에 맡겨진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중도 확장’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강조하며 ‘중도 개혁’을 설파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등 최근 야권의 태도는 다르다. 강경 일변도로 비친다. ‘2찍’ ‘집에서 쉬라’ 등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발언은 당 대표의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저속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다. 혐오와 증오의 발언에 환호하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아예 “윤석열 정권 조기 종식”을 당의 목표로 제시했다. 2년 전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출범한 정부를 향해 사실상 ‘탄핵’을 공개 거론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 대표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엔 중도층의 표심을 의식해 의원들도 극단적인 언행은 자제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은 마치 중도 확장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듯 행동한다. 왜 그럴까. 한동안 민주당은 위기였다. 핵심 지지층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화 조사를 하건, ARS 조사를 하건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런데 민주당 지지율은 부동층의 증감에 따라 변동 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지지 정당 없음’ 답변이 많은 조사에선 민주당의 지지율이 더 낮게 나타나는 식이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에 반감을 느끼는 일부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부동층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공천 과정에서 빚어진 이 대표의 독선적인 행태 그리고 종북세력인 통진당 후신인 진보당 인사들을 대거 당선권에 배치한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반감은 조국혁신당 지지율로 옮겨 갔다. 조국혁신당의 지지층은 뚜렷하다. 진보 성향, 4050세대, 수도권과 호남에서 20% 안팎의 견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제3신당의 지지율은 크게 통상 무당파를 흡수하는 확장과 기존 정당 지지자들이 옮겨 오는 이동으로 나뉘는데, 조국혁신당의 경우 현재까지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이동이 크게 나타난다. 조국혁신당이 부동층으로 이동했던 민주당 지지층의 야권 이탈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야권은 복원되기 시작한 전통적 지지층을 더욱 단단히 결속시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모양새다. 진보 결집론자들은 야권의 단결이 이번 총선 승리의 핵심 과제라고 본다. 이들은 네거티브 공세를 중시한다. 믿는 구석은 오직 하나, 정권 견제 심리다. 야권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팬덤’에 휘둘린다는 비판에도 이재명·조국 대표가 직접 강성 지지층이 듣고 싶어하는 이른바 ‘사이다’ 발언과 행동, 공약을 쏟아내는 이유다. 정권심판론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괜찮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셈법이다. 야권 전반에 강경 목소리가 득세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중도 표심을 외면하는 선거가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 민주당은 선거 판세를 이끌 만한 새 인물도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권심판론에 의지하는 반사이익만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3, 4%의 격차로 승부가 갈리는 수도권 선거를 생각하면 더욱 의문이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갈라치기’의 ‘플랜 A’로 계속 갈 것인지, 중도층 끌어안기를 위한 ‘플랜 B’로 전략을 틀 것인지 민주당이 결단해야 할 때다. 강경으로 질주하는 민주당의 전략이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판명 나기까지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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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길진균]끊임없는 대통령들의 ‘선거 개입’ 논란

    《2000년대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은 모두 선거개입 시비에 휘말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에 소추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크고 작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말’로 인해 탄핵 사건에 휘말린 후,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여권의 전략이 바뀌었다. 일부 접전 지역구 방문에 머물렀던 대통령의 ‘선거 지원성’ 행보가 문 전 대통령의 재난지원금 지급, 윤석열 대통령의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 등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는 차이도 있다. “정당한 국정 운영”이라는 여당과 “선거 개입”이라는 야당. 선거 앞 대통령과 정부의 ‘선거 중립 의무’ 논란을 짚어봤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2004년 5월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한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7대 4·15총선을 앞두고 각종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특히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나온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정말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습니다”라는 발언은 큰 논란이 됐다. 야당은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위한 불법적 사전 선거운동을 계속해 왔다”며 탄핵을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헌재는 탄핵소추안을 기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은 인정했다. 탄핵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위반’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게 헌재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이후 대통령들은 선거 중립을 지켜 왔을까.● 尹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 논란 윤 대통령은 올 들어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지역 민심을 겨냥한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1월 4일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겸해 시작된 민생토론회는 2월부터 지방으로 무대가 옮겨갔다. 윤 대통령은 설 연휴 직후인 13일 부산을 찾았다. 총선을 57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16일 대전, 21일 울산, 22일 경남, 25일 충남에서 민생토론회를 연이어 열었다. 수도권에서도 10차례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해당 지역 전통시장도 5번 방문했다. 부산에서 윤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을 차례로 언급하며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또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직야구장 재건축, 센텀2지구 도심융합특구 조성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여야 후보들의 반응은 바로 엇갈렸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통령께서 우리 부산을 서울과 함께 양대 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발전의 열쇠라고 보고 계신다”며 ‘대통령님의 부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반면 야당에서는 “승부처를 찾아다니며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건 노골적으로 총선에 영향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말’은 자제하되 ‘행동’은 더 강하게 공직선거법 9조 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선거법 9조의 ‘공무원’에는 대통령 등 선출직 공무원은 물론이고 국무총리 등 정무직 공무원도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대통령은 대상이 누구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 이후에도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은 계속 불거졌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이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을 지칭한 부분을 헌재가 명시적으로 ‘선거법 위반’으로 적시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6년 4·13 20대 총선을 28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붉은 옷을 입고 부산을 방문한 것이 한 예다. 그는 총선 격전지인 부산을 찾아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둘러봤다. 이보다 6일 전에는 역시 붉은 옷을 입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방문했다. 당시 청와대는 경제 행보일 뿐 정치적 의미는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으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상징색인 붉은 옷을 입고 지방을 연이어 방문했다는 점에서 ‘노골적 선거 지원’이란 논란에 휩싸였다. 박 전 대통령은 붉은 옷을 입고 투표소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말보다 행동’ 전략은 지지층에게 명확한 메시지는 전하면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 위한 노림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이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한 헌재 결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선거 보름 前 재난지원금 지급 발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2월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부지를 직접 찾아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가덕도를 찾은 시점은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40여 일 전이었다. 문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2020년 4·15총선을 약 보름 앞두고 ‘100만 원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을 내렸을 때도 선거 개입 논란이 거셌다. 당시 청와대는 “야당 논리대로라면 대통령과 정부는 선거 기간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고 반박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발표를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정치권 인사도 동의한다. 전직 선관위 고위 간부는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다분했다”며 “선거 중립 의무를 좀 더 엄격하게 고려했다면 선거가 끝난 뒤 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는 게 옳았다”고 말했다. ● 국정 운영? 선거 개입? 모호한 선거법 전문가들은 여권이 헌재의 결정을 애써 축소 해석하고 있다는 점과 공직선거법 자체가 모호한 것을 문제점으로 들고 있다. “선거 때라 하여 국정 운영을 중단할 수는 없으나 선거가 임박한 시기(통상 투표일 3개월 전부터)에 ○○○한 행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므로 공명선거를 위해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선거 이후에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정책 발표 또는 지방 행보로 인해 선거 개입 논란이 일 때 선관위는 종종 이 같은 협조 공문을 청와대로 보냈다. 선관위에 따르면 대통령 또는 정부의 정당한 정책 집행이라고 해도 반드시 총선 전에 시행해야 할 만큼 시급하지 않거나, 선거 홍보성 성격이 짙은 행사일 경우 자제해 줄 것으로 요청했다. 헌재 역시 “대통령은 평소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선거에 임박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노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대통령의 지방 행보나 정책 발표에 대해 논란이 일 때마다 “특정 정당이나 선거 관련 발언이 없었기 때문에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선관위의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주문하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선거법 위반 소지’라는 선관위의 판단 자체가 선거 민심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여당도 선거 개입 논란을 빚을 수 있는 행보를 자제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전례로 볼 때 선관위가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많다. 그렇지만 민생토론회를 놓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 취지와 충돌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매번 논란이 반복되는 대통령의 선거 중립 논란에 대해 공직선거법 개정 또는 대통령의 당적 이탈 의무 명시 등을 통해 명확히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헌재는 탄핵소추사건 결정문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선거 중립으로 인해 얻게 될 ‘선거의 공정성’은 매우 크고 중요한 반면에 대통령이 감수해야 할 ‘표현의 자유 제한’은 상당히 한정적”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스스로 선거개입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행보를 자제하는 게 공명선거의 첫걸음일 것이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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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난무하는 ‘심판론’, 누구를 심판할 것인가

    집권 중반기에 치러지는 총선은 대개 정권 심판이냐 아니냐의 싸움, 즉 중간평가의 프레임(구도) 속에 치러졌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전통적 프레임인 야당의 정권 심판론(창)과 여당의 국정 안정론(방패)의 대결은 없다. 모두 ‘창 대 창’의 충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심판’, ‘검찰 독재 심판’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윤석열 정권의 독단과 무능”을 강조하는 것은 그 연장선상이다. 국민의힘은 ‘야당 심판론’을 외친다. 더 구체적으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기득권 386 청산”을 주장한다. 운동권 심판론도 야당을 운동권이란 틀에 가둬 고립시키겠다는 프레임 전략의 일환이다. ‘정권 대 운동권’, 쌍심판론으로 선거 구도가 굳어지면 정권 심판론이 희석되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여기에 설 연휴 시작과 동시에 이낙연, 이준석 공동대표 체제의 ‘개혁신당’이 출범했다. 신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잠시 접어두자. 주목할 점은 개혁신당의 출현으로 쌍심판론에 더해 ‘양당 심판론’이 또 하나의 프레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신당은 신당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기득권 양당 체제를 그대로 방치해선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밝혔다. 나라를 위해 양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논리다. 얽히고설킨 3당 3색의 ‘심판론’이 난무하면서, 각 당이 꼬리를 물며 서로를 심판해 달라고 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앞다퉈 상대의 패배를 위해 투표해 달라는 ‘부정적 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총선에선 한동훈 이재명 이준석 등 여야의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대부분 전면에 섰다. 패배한 쪽은 치명상을 입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승리에 도움이 되는 전략이라면 뭐라도 쓸 태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당은 대의보다는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며 끊임없이 주판알을 튕긴다. 대다수 후보들도 그에 맞춰 줄서기와 이합집산만 고민한다. 1년 전에 끝냈어야 할 선거구 획정이 감감무소식인 것도 이들의 손익계산 탓이다. 선거판이 “저쪽을 심판해야 한다”는 외침으로 가득 차면서 청년, 여성,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참신한 인사들의 목소리는 공명을 일으킬 공간을 잃고 있다. 거기다 복잡한 프레임 속에 유권자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하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놓고 또 고민해야 한다. 누구나 총선 때가 되면 멋지게 선의의 경쟁을 하는 정당과 후보들 가운데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상황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희망은 이뤄지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누가 더 비호감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선거가 펼쳐지고 있다. 설 연휴 기간 발표된 한 언론의 패널조사에 따르면 ‘정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79%, ‘정치 이야기가 피곤하고 피하고 싶다’ 61% 등으로 나타났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가 깊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총선 결과에 따라 ‘내 삶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내 가정의 경제, 내 아이에게 물려줄 나라의 앞날이 달려 있다. 선택의 기준은 간단할 수 있다. 먼저 정치를 잘한 정당이 있다고 판단하면 두 표 다 행사하면 된다. 다음으로 정치를 못했거나 못할 것같이 생각되는 정당이 있다면 그 당을 뺀 정당에 두 표를 찍거나 한 표씩 나눠 찍으면 된다. 잘 못하는 정당을 키워주는 것만큼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에 해가 되는 선택은 없다. 정치혐오에 빠지는 대신 유권자 한 명이 던지는 표가 얼마나 아픈지 알려줘야 할 때다. 아울러 최악의 정치를 만든 장본인들은 상대 심판을 유권자들에게 요구하기 전에 반성하는 모습부터 보이는 것이 옳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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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길진균]“초선도 예외 없다” 역대급 물갈이 경쟁, ‘새 얼굴’이 관건

    《총선을 앞두고 이뤄지는 현역 국회의원 ‘물갈이’는 통계로만 따져 봐도 어느 정도 선거 승리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최근 20년간 치러진 5차례의 총선을 살펴보면, 신생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2004년 17대 총선을 제외하고 18대부터 21대까지 4번의 총선 중 3번의 총선에서 물갈이 비율이 높은 정당이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현역 의원들이 더 많이 물러나고, ‘새 얼굴’을 더 많이 내세운 정당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특히 이번 4월 총선에선 여야 내부 상황과 맞물려 ‘역대급 물갈이’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점점 짧아지는 현역 의원 ‘유통기한’ 총선 공천 때가 되면 여야 정치권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되는 화두가 있다. ‘현역 의원 교체론’이다. 기득권의 상징으로 비치는 현역들을 대거 교체해야 혁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얻은 여론의 지지가 총선 승리의 동력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경기, 인천 모두 4월 총선 지역구 선거에서 “현역 의원을 뽑겠다”는 응답보다 “다른 인물을 뽑겠다”는 응답이 더 높게 나타난 것(동아일보사 신년 여론조사) 등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현역 의원에 대한 비토가 높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총선 앞 인적쇄신은 이제 전략의 차원을 넘어 상수가 되고 있다. 실제 현역 의원 교체율, 즉 초선 비율도 18대 44.8%, 19대 49.3%, 20대 42.3%였는데, 21대에는 50.3%로 높아지는 추세다. 국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1차적인 원인이다. 그렇지만 의원 개개인의 의정 활동을 유권자들이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된 미디어 환경의 변화, 다양해진 유권자의 요구 등 과거와 달라진 정치환경도 현역 의원들의 ‘유통기한’을 짧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의도의 한 인사는 “현역들의 교체 주기가 빨라지고 폭이 넓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라며 “10년 전만 해도 ‘물갈이’라고 하면 중진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초·재선 의원들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도 당과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면 언제든 교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번 총선에선 각 당의 내부 상황도 큰 폭의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여당의 신뢰 구축을 공고화하기 위한 ‘대통령의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중심 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한 현역 의원 교체가 필요하다. 이에 ‘세대교체론’을 앞세운 국민의힘은 789세대(70·80·90년대생)를 중심으로 새 얼굴을 대거 영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친명과 비명 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에서도 결과적으로 절반에 가까운 현역 의원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유권자들은 기득권의 상징처럼 비치는 현역 의원들에 대한 물갈이를 혁신으로 보는 성향이 있다”며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 각 당의 내부 사정에 양당의 쇄신 경쟁까지 더해지면 이번 총선에선 물갈이 폭이 역대급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與, 15·17대 총선 공천 주목 여권 내부에선 15대(1996년)와 17대(2004년) 총선 공천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대대적인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세대교체’(15대), ‘중진 20여 명의 불출마 선언을 통한 당의 기사회생’(17대)을 이뤄낸 당시 전략을 참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신한국당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권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켜 반전을 이뤄냈다. 김영삼 정부 집권 4년 차, 직전 지방선거 패배로 인한 지방정치의 여소야대 상황 등으로 정권 심판론이 확산됐을 때다. 이춘구 당시 당 대표를 비롯한 중진들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데 이어 이회창 전 총리, 박찬종 전 의원의 입당으로 당의 구심점이 바뀌었다. 공천에선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등 당시로선 개혁 성향의 신인들을 대거 영입해 쇄신 분위기를 조성했다. 신한국당은 과반에 육박하는 140석을 얻었다. 예상을 넘어선 선전이었다. ‘탄핵 역풍’ 속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 때도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대대적 물갈이 공천으로 ‘기사회생’했다는 평가다. 최병렬 오세훈 전 의원 등 불출마자 20여 명과 공천 탈락자까지 합쳐 148명 현역 의원 중 총 60명이 교체됐다. 40.5%에 이르는 현역 의원 교체율은 121석 확보라는 최악의 위기를 면하는 데 한몫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희생론’에 이어진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총선 불출마’는 대대적 물갈이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며 “현역 의원들의 2선 후퇴와 세대교체가 이번 공천 전략의 주요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野, 집안싸움 속 물갈이 ‘기준’ 고심 민주당도 인적쇄신에 시동을 걸었지만 당내 사정이 복잡하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21석이 달린 수도권에서만 103석을 얻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사실상 정치신인이 노려볼 만한 적지(敵地)가 거의 없다 보니 같은 당 안에서 현역 의원의 ‘수성’과 원외 인사의 ‘도전’ 경쟁이 치열하다. 그간 민주당은 하위 20%에 든 현역 의원의 경선 득표를 일괄적으로 20% 감산했지만 총선기획단은 이번 총선에서는 하위 10% 이하 의원들에 대해선 감산 비율을 30%로 강화했다. 경선 과정에서 여성, 청년일 경우 25% 가산점을 받는데 하위 20% 이하 현역의원에게 득표 감산 비율 20∼30%를 적용하면 사실상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최소 30명 이상의 현역 의원들이 교체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친명계 원외 모임으로 불리는 더민주전국혁신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가 민주당이 선제적으로 ‘현역 의원 50% 물갈이’를 제도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당내 중진들에 대한 ‘용퇴론’도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 안에서는 이미 대표적 ‘86세대’ 정치인들과 전임 정부에서 장관, 청와대 핵심 참모 등 주요 직위를 맡았던 인사들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쇄신 대상으로 거론하는 인사들은 대부분 비명 진영에 속한다. 치열한 계파갈등 속에서 인적쇄신이 자칫 ‘공천학살’로 비치거나 비주류 신당 출현이라는 적전분열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역 교체율보다 내용이 중요” 그렇다면 대대적인 물갈이는 우리나라의 정치와 각 정당을 더 나아지게 했을까. 21대 국회에선 300명의 국회의원 중 절반이 넘는 151명의 초선 의원이 원내에 입성했다. 재·보궐선거와 비례대표 승계를 거치면서 그 수가 더 늘어 현재는 155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를 개혁하는 동력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21대 국회를 부끄럽게 만드는 데 일조한 면이 크다.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나 실세들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정치인’ ‘생계형 정치인’ ‘홍위병’ 등의 비판도 이어졌다. 물론 서로가 극단적으로 맞서는 양극화된 진영정치가 구조적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초선 홍성국 의원은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제로섬 법칙이 지배하는 정치현실에 한계를 느꼈다”며 “객관적인 주장마저도 당리당략을 이유로 폄하받기도 했다”고 말한 것도 현역 의원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직 양당의 공천이 가시화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까진 여야 모두 유권자 기대에는 못 미치는 상황이라는 평을 내놓는다. 국민의힘에선 한 비대위원장이 등판한 이후 오히려 ‘찐윤핵관’만 대거 공천받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민주당에서도 중진이 다수 포진한 친명 그룹 및 지도부 내에서 희생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친명계 후보들의 ‘자객 출마’ 논란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편이 이기는 것이 목표’인 선거에서 각 당은 정치공학적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에서라도 현역 의원 물갈이 과정이 보다 투명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단순한 교체비율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심과 동떨어진 계파의 이익을 우선시한 사천(私薦)의 결과는 정치의 후퇴라는 것을 역대 선거가 보여줬다. 물갈이가 시대의 흐름이라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을 적극 발굴하고 발탁하는 것이 공당의 의무다. 그것이 당과 정치가 사는 길일 것이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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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들쑥날쑥 여론조사와 ‘하우스 이펙트’

    총선을 약 4개월 앞두고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조사 기관에 따라 정당 지지율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12월 2주 차 여론조사(전화면접)에서 여야 지지율은 국민의힘 35%, 더불어민주당 34%로 오차범위 내에서 비등한 구도를 보였다. 양당의 지지율이 최근 몇 달간 30%대 초중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엇비슷하게 이어진 것이 갤럽의 결과다. 전화면접으로 진행되는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정당 지지율 흐름도 유사하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민주당 지지를 천명해 온 한 유튜버가 만든 여론조사 업체의 12월 2주 차 조사(ARS)에선 민주당 지지율 51.6%, 국민의힘 37.0%로 그 격차가 오차범위 밖인 14.6%포인트로 벌어졌다. 이 업체가 최근 6개월간 실시한 27번의 정례 지지율 조사(ARS)에서 민주당은 21차례나 50%가 넘는 지지율을 얻었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은 단 한 차례(40.1%)를 제외하곤 줄곧 30%대를 유지했다. 격차가 18.7%포인트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대체 왜 이런 현격한 차이가 나는 걸까.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라는 말이 있다. 여론조사를 의뢰·수행하는 기관의 성향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편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질문 문항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고 한다. 이 유튜버가 만든 여론조사 업체가 정당 지지율 조사 때 함께 물어보는 질문 내용을 들여다봤더니 편향적으로 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검찰은 헌정사상 최초로 야당 대표의 3번 연속 검찰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차기 대권 주자를 제거하려는 표적 수사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2월 12, 13일 조사)라고 질문하는 식이다. 질문에 ‘헌정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들어갔다. 여론조사 설문에 ‘이례적’ ‘반드시’ ‘꼭’과 같은 부사를 집어넣으면, 그것은 응답자들이 부정적으로 응답하기를 기대하고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거’ ‘표적 수사’ 등 가치 판단이 포함된 단어도 응답자의 답변을 한쪽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설문 작성 과정에서 피해야 할 표현들이다. 이런 질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응답자들은 중간에 전화를 끊거나 이 같은 질문을 한 여론조사 기관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이런 질문에 우호적인 응답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여론조사 결과는 민주당 지도부의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고, 의원총회에서 자료로 배포되기도 한다. 민주당이 자당에 우호적인 여론조사에 의지하거나 정세 판단 근거로 삼고 총선 전략을 짜는 것은 그들 몫이다. 이 업체는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고 자신들이 맞다고 주장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조사가 전체 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여론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다수의 의견에 편승하는 ‘밴드왜건 효과’다. 총선에 임박할수록 각종 여론조사가 난무할 것이다.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문항을 설계한 뒤 편향된 여론조사 결과를 SNS 등을 통해 대거 유포하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려는 시도가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 여든 야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의 객관성을 단번에 따져볼 수 있는 인공지능(AI)이라도 개발돼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조사 샘플과 설문 문항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엄격한 사전 사후 관리, 조사기관 운영자의 자격 요건 강화가 필요하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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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총선 ‘게임의 룰’ 수싸움 본격화… 위성정당 봉쇄가 핵심[수요논점/길진균]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 ‘게임의 룰’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예비후보 등록일인 12월 12일 전까지도 관련 법안 처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최대 쟁점인 비례대표제 논의에서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출현을 막기 위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국민의힘은 전국 단위의 병립형 비례제를 최우선으로 하되, 야당이 3개 권역별(수도권·중부·남부) 병립형 비례제를 들고 나올 경우 논의를 해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동형 유지를 주장해 온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당내에서 위성정당 창당을 막기 위해 병립형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권역별 ‘병립형 vs 연동형’ 막판 쟁점 선거제도를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마지막 회의는 7월 13일이었다. 이후 4개월간 ‘2+2협의체’(국민의힘·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정개특위 간사)의 물밑 협상이 이어졌다. 이들은 소선거구제 유지와 3개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제에 대해선 큰 틀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를 병립형으로 선출할지, 연동형으로 선출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를 따로 한 뒤 과거처럼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먼저 정한 뒤 지역구 당선자가 정해진 의석수에 미치지 못하면 비례대표로 이를 일정 부분 채우는 연동형을 공식 주장한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선 그간 반대해 온 병립형에 대한 기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위성정당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병립형으로 돌아가더라도 타협할 수 있는 안을 만들자는 방안이 내부에서 거론 중”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등 소수정당은 병립형 회귀는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비례대표제 뭐가 문제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253개 지역구에서 1명씩 253명, 비례대표로 47명을 선출해 모두 300명이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현행 선거제가 표심을 정확하게 의석수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정당의 득표율이 10%이면 원칙적으로 300석의 10%인 30석의 의석을 얻어야 하는데 현실은 다르다. 지역구 의석 대부분을 휩쓰는 거대 양당은 표심에 비해 과다 대표되는 반면, 소수정당은 과소 대표되는 ‘불공정한’ 의석 배분이 발생한다. 위성정당 창당으로 선거제 개편의 취지와 다른 결과가 나왔던 21대 총선이 아닌, 2016년 20대 총선 결과를 보자. 의석 점유는 민주당 123석(41.0%),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122석(40.67%), 국민의당 38석(12.67%), 정의당 6석(2.0%)이었다. 그러나 후보가 아닌 지지 정당에 투표하는 정당득표율로만 계산했을 때 산출되는 의석수는 민주당 25.54%(76석), 새누리당 33.5%(100석), 국민의당 26.74%(80석), 정의당 7.23%(21석)다. 지역구 따로, 정당 따로인 ‘교차 투표’ 변수를 제쳐놓고 산술적으로만 보면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각 47석, 22석이 과다 대표된 반면, 소수정당인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과소 대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야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선거제 개편에 착수했다. 하지만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의석수를 배분하게 되면 거대 양당이 기존보다 의석을 잃기 때문에 양당은 연동형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2020년 총선을 4개월 남짓 앞두고 여야는 의원 정수를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유지하면서, 이 가운데 30석은 ‘준연동형’, 나머지 17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 방식의 선거제를 도입했다. ● 위성정당이 망친 선거제 개편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연동형의 절반(연동률 50%)만 적용하기 때문에 ‘준’자를 붙였다. 지역구 253석 중 특정 정당이 얻은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에 이르지 못하면 비례대표에서 부족한 의석 중 50%를 채워주는 제도다. 준연동형 비례제는 정당득표율에 따른 비례성을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에 반대했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은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창당했다. 민주당도 이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더불어시민당을 만들면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무력화했다. 결과는 민주당(163석)이 더불어시민당(17석)을 포함해 180석, 미래통합당(84석)과 미래한국당(19석)은 103석, 정의당은 6석 등으로 나타났다.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다면 선거 결과는 어땠을까. 한국정치학회가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은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비례대표 후보를 직접 낸 것으로 가정한 선거 결과를 시뮬레이션했다. 결과는 민주당 169석(실제 의석수 180석), 미래통합당 99석(103석), 정의당 13석(6석), 국민의당 8석(3석), 열린민주당 6석(3석)으로 나왔다. 기존 제도보다 비례성이 개선되는 결과가 나왔다. ‘꼼수 위성정당’ 효과로 양당(더불어시민당 +11석, 미래한국당 +4석)이 소수정당(정의당 ―7석, 국민의당 ―5석, 열린민주당 ―3석)에 돌아갈 비례 의석이자, 준연동형 배분 의석 30석 중 절반인 15석을 가져간 셈이다.● “현실적으로 위성정당 막기 어려워”정치권에서는 이대로라면 21대 총선처럼 ‘위성정당 꼼수’가 또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 속에 ‘위성정당방지법’이 여러 건 발의된 상황이다. 그러나 이 법들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을 막기 어렵다는 것이 정개특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제 개혁은 양당의 합의하에 추진하는 게 관행이었지만, 준연동형 비례제의 경우 민주당, 정의당, 바른미래당, 평화당 등 4당이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을 배제하고 통과시킨 법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애초부터 연동형을 찬성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또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럼 민주당도 맞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도 결국 병립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권역별 비례대표 자체도 개선”여야는 일단 권역별 비례제라는 절충안엔 도달했다.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선출할 경우 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당선자를 배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자체로 정치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4월 국회 전원위에 오른 여야의 개선안에도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당시 민주당은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준연동형 비례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국회의장도 6개 권역을 제안했지만 이를 현실화하려면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의석수를 늘리기 어렵기 때문에 권역을 3개로 줄이는 안이 나왔다”며 “전국을 수도권·중부·남부의 3개 권역으로 나눈 것은 지난 3번의 총선 결과를 시뮬레이션했을 때 특정 당에 유리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권역별 비례제를 병립형으로 운영할 경우 지역주의가 완화되는 측면은 있지만 지금처럼 양당제가 유지되고 소수정당의 국회 진입이 어려워지는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병립형을 도입하되 거대 양당이 차지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에 제한을 두는 방법으로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의 기회를 보장하는 안을 검토 중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여야 간 협상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양당제의 폐해를 줄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연동형제하에선 현실적으로 위성정당을 막기 어렵다. 양당이 공식적으로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더라도, ‘태극기 부대’와 ‘개딸’(개혁의 딸) 등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은 ‘친국민의힘 호소 정당’ ‘친민주당 호소 정당’ 등 ‘참칭정당’ ‘자매정당’이 선거 전 급조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선거제에는 장단점이 있다. 이번 선거제 개편의 최우선 과제는 위성정당 창당 봉쇄다. 정치와 선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 키우는 일은 막아야 한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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