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태 “상대 악마화로 거저먹으려 해… 6共 정치체제 수술해야”[파워인터뷰]《국민의힘이 대선 승리 1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 ‘직할 체제’를 완성했다. 당정 일체의 기치 아래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 이행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개혁 과제는 세대와 계층 그리고 여야 간에 첨예한 갈등이 불가피한 사안이 대부분이다. “관철하겠다”는 여당과 “막겠다”는 야당은 각각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며 세 싸움에 돌입했다. 대화와 타협, 협치에 대한 기대는 요원하다. 오히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 한 해 여야 관계는 더욱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해 온 유인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75)은 이 같은 극단적 대립 정치에 대해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며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의원들이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민주당 3선 의원을 지낸 유 전 의원을 만나 정치 양극화와 팬덤 정치의 문제점, 그리고 그가 구상하는 해법을 들었다.》●“대통령 일일이 개입하면 협치 멀어져”―국민의힘이 ‘윤석열 당’으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다. 여당 전대 어떻게 봤나. “21세기 들어와서 이런 전대는 처음 봤다. 대통령실이 나서서 경쟁 후보들 주저앉히고 억지 춘향으로 만든 당 대표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고 반대로 가는 여당은 없다. 여당은 당연히 자신들이 만든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대통령실이 국회와 당의 사안에 대해 일일이 판단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참모 중 누가 더 정치를 잘 알겠나. 여야가 합의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개입하는 순간 협치가 깨진다. 그럼 국회는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닌가.” ―국정 성과를 위해 당정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지 않나. “5년 임기 대통령제에서 집권 2년 반이 지나면 새로운 동력이 안 생긴다. 윤 대통령에게는 지금이 국정 성과를 내기 위한 황금기다. ‘3대 개혁’ 얘기하는데, 국회와 민심의 협조 없이는 하나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한 것이다. 설령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해 과반 의석을 가져간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민주당도 그랬다. 민심이라는 게 있다.”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을 얻을 수 있을까. “민주당은 윤 대통령만 믿고 있다. 지금처럼 하면 국민의힘은 어렵다. 강성 지지층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다양성이 보장되는 정당이 건강한 정당이다. 국민의힘이 잘되려면, 개혁보수도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 그들의 의견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얘기 하면 쫓아내고, 내부 총질로 규정하는 정당은 잘될 수 없다.”●“이재명 대표 리더십이 근본 문제”―민주당도 위기 아닌가.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나. “역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다. 대선 패배 직후 당 안팎의 만류에도 인천에서 출마하고, 불체포특권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뒤 말을 바꿨다. 리더십이 생길 수가 없다. 비명계도 검찰이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친명계가 ‘오랑캐가 쳐들어온다’며 모두가 단합해서 싸워야 한다고만 주장할 건 아니다. 유능한 검사들이 저렇게 오래 수사하고도 아직 기소를 못 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따져볼 만한 부분이 꽤 있다. (체포동의안이 또 들어오면)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다. 약간 모험을 하더라도 사법 리스크를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도 생기는 것 아니냐. 설령 구속되더라도 지금 처지보다는 명분이 있을 것이다.” ―개딸 등 극단적 지지층에 민주당이 지나치게 휘둘리는 것 아닌가. “강성 팬덤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 극단적 목소리에 당이 이끌려 가면 필패다. 국민의힘도 황교안 대표 때 태극기부대에 당이 끌려갔기 때문에 어려워졌다. 민주당이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등 소장파 의원 모임)를 수용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무서운 정당이 됐을 것이다.” ―친명과 비명 계파 갈등이 심각하다. 해법은 없을까. “개딸도, 수박으로 찍힌 그룹도 헤어질 결심하고 각자 깃발 들고 민심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각자 당을 하면 된다. 지금은 기호 1, 2번 공천을 받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우니까 공천받겠다고, 주도권 쥐겠다고 서로 싸우는 것 아닌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와 소위 태극기부대와 영합하는 사람들하고 같은 당 동지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유 전 의원, ‘조금박해’ 같은 의원들이 당을 달리해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이 안 돼도 당을 나가 독자세력을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어렵다고 본다. 지금은 당에서 벗어나는 순간 생존이 안 된다. 그래서 다당제로 갈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중도 친화적인 인사들과, 개딸로 통칭되는 강성 인사들과 각각 의석을 나눌 수 있다. 국민의힘의 개혁적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정치 생태계를 먼저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 없으면 나라 미래 없어”―다당제가 되면 정치 문화가 바뀐다는 근거가 있나. “1990년 3당 합당 이전 노태우 정부 때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합의 처리가 많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협치가 이뤄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이 정치적으로는 경합했지만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첨예한 국민적 갈등을 국회가 앞장서서 해결했다. 5공 청문회가 대표적인 예다. 국회에 대한 열화와 같은 국민의 지지가 있었다. 국민이 국회를 혐오하는 지금과는 달랐다. 의원들이 거리에 나가면 사인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같은 제도인데 왜 이렇게 달라졌나. “1987년 이후 36년이 지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윤 대통령까지 8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그사이에 소선거구제와 양당제의 폐해가 쌓였다. 정치 혐오가 낳은 포퓰리즘인 반(反)정치주의에 진보와 보수 모두 찌들어 있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아침마다 하는 회의 공개 발언도 거칠고 저질스럽기 그지없다. 각자 잘하기 경쟁을 해야 하는데 상대를 망가뜨리고 악마화해서 거저먹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비해 의원 개인들의 수준은 높아졌는데 정치 불신은 더 심해졌다. 국회는 국민의 갈등과 갈증을 풀어주고 해법을 도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경제가 잘되더라도 정치가 안 되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있겠나.” ―선거제도가 바뀌면 문제가 해결될까. “근본 원인은 선거제도다. 제도가 바뀌면 ‘정치 교체’가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됐는데, 정치는 여전히 4류다. 다당제가 대통령 중심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6공화국 정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온 거다. 윤 대통령도 현행 소선거구제는 답이 아니라고 했다. 국회를 다당제로 바꾸는 정치 개혁을 이뤄낸다면 윤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 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가 양당의 기득권을 고착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꼭 중대선거구제로 못 박을 필요는 없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로 들자면 서울을 4개 권역으로 나눠서 의석 일부는 중대선거구제로, 나머지는 소선거구제로 뽑자는 의견도 있다. 경우의 수는 수백 가지가 나올 수 있다. 다당제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지역구가 없어지는 의원들이 생긴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결국 국회의원들이 결심할 수밖에 없다.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제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가 구성되고 27일부터 전원위가 열린다. 다수가 선택한 안에 따르겠다는 선언을 하고, 최소공배수를 찾아야 한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가 왔다. 선거제도 개혁에 국회가 사활을 걸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의원들의 애국심이 필요하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2023-03-15 03:00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 저마다 동상이몽[수요논점]《선거제도는 정치 지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거대 양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양분하는 정치 현실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3당과 4당에게도 당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생 정당,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높아지면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정치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거대 정당 중진들을 위한 제도로 전락할 것”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 등 반론도 적지 않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둘러싼 쟁점과 도입 가능성을 살펴본다.》● 민주화의 산물 소선거구제 현행 소선거구제는 198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그해 3월 ‘국회의원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지만 당시엔 반대로 중대선거구제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유신 시절부터 전두환 정권 때까지 9∼12대 총선에서 실시된 중대선거구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당의 안정적인 의석 확보를 위해 도입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87년 체제’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은 13대 총선부터 부활한 소선거구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30년 넘게 유지되면서 소선거구제도 폐해가 쌓였다. 승자독식으로 유권자의 표심이 국회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대표성 문제가 제기됐고, 지역감정과 진영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많다. 실제 2020년 21대 총선에 참여한 2874만여 명의 유권자 10명 중 4명(43.7%·1256만7432표)이 던진 표는 ‘사표’가 됐다. 국민의힘은 영남지역에서 55.9%를 득표하고도 영남 65석 가운데 56석(86.2%)을 차지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68.5% 득표율로 호남 28석 가운데 27석(96.4%)을 쓸어 담았다.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니면 당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 환경이 됐다. ‘공천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각 당에선 공천을 좌우하는 몇몇 실세나 극단적 지지층의 눈치만 살피는 기류가 확산됐다. 일각에선 그 근원적 요인으로 소선거구제를 지목하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두 거대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번 국회에선 95%까지 갔다. 정당이 양극화되면서 사회도 양극화됐다”며 “중대선거구제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양당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중대선거구제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가 모범답안? 2012년 19대 총선에서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정운천 후보는 35.8%를 얻고 민주통합당(민주당의 전신) 이상직 후보(47.0%)에게 밀려 낙선했다. 20대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지역주의에 부담을 느낀 그는 2020년 21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가정이지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현재 3개의 소선거구로 나눠져 있는 전주를 3인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했다면 민주당의 ‘텃밭’에서도 보수정당 의원이 다시 배출됐을 수 있다. 이처럼 중대선거구제는 △사표 방지 △지역주의 타파 △다양성 보장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중대선거구제가 선거제도의 ‘모범답안’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안착한 다수의 국가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1928년 중의원 선거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던 일본도 1996년 소선거구제로 전환했다. 거대 정당의 복수 공천으로 같은 당 후보자 사이에 경쟁이 과열되며 파벌정치, 계파정치, 정치권 부정부패 등의 원인 중 하나로 중대선거구제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또 현행 지역구 2∼5개를 하나로 합치게 되면 필연적으로 선거구 면적이 넓어지고, 유권자 수가 많아진다. 벽보, 공보물, 유세차량 등 더 많은 선거비용이 필요하다. 유권자들 입장에선 후보자 수가 크게 늘면서 후보들의 면면을 상세히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인지도가 높은 유명 정치인, 조직을 동원하고 유지할 역량이 있는 중진 또는 거대 양당 후보에게 더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선거구제로 치르는 기초의원 선거 결과를 봐도 지역 구도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실시된 6·1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 지역구 1030개 가운데 30개 선거구에서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다. 기존 2∼4인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가 다양성과 정치적 대표성 확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30개 구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국민의힘과 민주당 소속 당선자가 105명으로 96.3%를 차지했다. 소수 정당 소속은 4명에 불과했다. 복수 공천된 거대 양당 후보들을 향한 몰표 때문이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중대선거구제는 양당 독식 체제를 타파하기는커녕 양당의 동반 부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오히려 의회로 진입한 소수의 극단적 정치세력이 연정을 구실로 큰 정당을 좌지우지하면서 정국을 혼미에 빠뜨릴 수 있다”고 했다. 또 “지금 한국 정치의 당면 과제는 제도 개혁보다 인적 쇄신”이라고 말했다.● 與野 “선거제 개혁” 원론적 동의만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 초 “선거가 너무 치열해져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며 그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했지만 여당의 반응조차 미온적이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절감하고 있지만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며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여당 내에선 “중대선거구제 논의는 지금 시작하되 도입은 23대 총선부터 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촉발시킨 중대선거구제 논의에 대해 신중론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시스템이 바람직하고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22대 총선은 내년 4월 10일 실시된다. 현행법상 선거 1년 전인 4월 10일까지 선거구 획정 등 게임의 룰을 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 모두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와 선거제 개편에 따른 득실 계산이 엇갈리면서 논의는 “정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동의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선거제도를 크게 흔들 경우 자신의 선거구가 통합되거나 사라지는 현역 의원들이 대거 나오게 된다. 결국 핵심은 현 제도의 수혜자인 현역 의원들의 동의 여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다들 동상이몽이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위성정당 논란을 빚었던 대목을 수정하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양당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 개편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의 찬반 논란만 벌이는 것은 2차원적이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과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지방의 대표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행정구역과의 일치 문제는 어떻게 조정할지, 갈수록 심해지는 세대 및 계층 갈등 문제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수렴할지 등 보다 입체적이고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선거법에 규정된 선거구획정위원회처럼 선거제도 개편 작업을 의원들이 아닌 외부 위원회에 위임하자는 의견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의원들이 선거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에 대해 의원들은 찬반 표결권만 행사하게 하자는 것. 분명한 건 그 정도로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게 선거제도 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이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2023-01-18 03:00 
[오늘과 내일/길진균]尹의 오랜 ‘스푸트니크 모멘트’ 구상“10년 후인 2032년 달에 착륙하여 자원 채굴을 시작할 것입니다.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에서 제시한 대한민국의 미래다. 이 발표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1년 미 의회에서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던 장면을 떠오르게 만든다. 냉전 시기, 소련이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이어 1961년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발사까지 잇따라 성공시키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이에 케네디 대통령은 10년을 내다보고 미국의 국방, 산업, 과학, 연구, 교육 등 국가 역량을 집중해 유인우주선을 개발하는 ‘아폴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는 쾌거를 이룩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진보에 치우쳤던 학교 현장의 교육사조(思潮), 교육사상의 흐름까지 확 바꿨고 이는 미국 번영의 새로운 밑거름이 됐다. 위기를 드라마틱한 도약의 기회로 전환시킨 사례를 ‘스푸트니크 모멘트’로 부르는 이유다. 윤 대통령의 우주경제 구상은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다. 2020년 10월 검찰총장 재직 당시 그는 대구고검·지검 직원 간담회에 참석했을 때 “예전에는 ‘평등한 교육’이 교육 개혁이었다면, 소련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이후에는 ‘과학영재 육성’이 교육 개혁이 됐다”고 말하며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언급했다.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한국판 NASA 설립’을 발표했을 때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우주개발을 통한 한국의 산업, 연구, 교육 시스템 개혁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대선 전,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그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치고 나가는 데 타고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시대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능력과 이를 추진할 리더십을 갖췄다는 얘기였다. 기대에 부응하듯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때와 출범 초 연금 개혁, 입학연령 5세 하향 등 미래 지향적 정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와 동시에 사실상 폐기되거나, 동력을 얻지 못하고 일회성 발표에 그치는 경우가 잦았다. 정교한 계획과 사전 준비 부족 탓이었다. 이번 ‘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대통령의 오랜 구상을 참모들은 어떻게 현실화시켰을지 궁금했다. 비슷했다. 10년 후 달 착륙, 23년 후 화성 착륙까지 어떤 프로세스를 밟아 나가겠다는 건지, 그 과정에서 산업과 교육, 연구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찾기 힘들었다. 보도자료를 샅샅이 살펴봐도 화성 착륙까지 왜 23년이 걸리는지에 대한 근거는 “2045년이 광복 100주년”이라는 정치적 레토릭뿐이었다. 국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23년간 우주개발 사업’을 발표하면서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야당과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겠다는 건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임기 초 윤석열 정부는 대단히 불운한 환경에 처해 있다. 야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고, 나라 안팎으로 경제 환경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각 분야에서 개혁에 대한 저항도 거세다. 그렇지만 ‘스푸트니크 모멘트’의 핵심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 ‘아폴로 계획’의 달성은 케네디 대통령의 리더십과 그를 뒷받침하는 참모들의 정교한 실행계획, 국민의 전폭적 신뢰라는 3박자가 맞춰진 합작품이었다. 여권 모두 더 절박해져야 한다. 정부 출범 6개월 남짓 지났지만 12월이 지나면 ‘2년 차 정권’이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2022-12-03 03:00 
[오늘과 내일/길진균]똑같은 ‘오만의 위기’가 아니다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게 531만 표 차이로 압승했다. 이어진 2008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153석)과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 등 범보수 세력은 국회 185석을 차지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여권은 ‘고소영’ 인사,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등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25개 구청장 중 4곳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민심이 가장 싫어하는 게 오만이다. 역대 대선과 정권 5년을 보면, 오만한 태도 때문에 대선에 승리하고도 짧은 시간 만에 집권세력이 스스로 미래를 걷어차는 일이 반복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폐족(廢族)’이라고 했던 친노(친노무현) 진영은 10년 만에 문 대통령 당선이라는 반전을 이뤄냈다. 그냥 집권한 게 아니라 557만 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승리했다. 이어진 2020년 총선에서도 대승했다. 내부에서 ‘20년 집권’이라는 오만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캠코더’ 인사, 임대차 3법 통과 등 독주가 이어졌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기로에 섰다.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다짐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지만 취임 100일 만에 민심은 등을 돌리려 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민생 살리기, 미래를 다시 세우는 정책 수립을 위해 온 나라가 힘을 모아도 불안한 시기에 집권세력이 염치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 탓이 크다. 급기야 직전 여당 대표는 대통령을 향해 공개 비난을 시작했고, 자당과의 법적 투쟁에 돌입했다. 대통령실의 인사 참사와 정책 혼선도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을 선택했던 지지자들조차 “이런 사람들을 계속 믿어도 되나” 하는 신뢰의 위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늘 요동치는 게 민심이라지만 윤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 때와 크게 다르다.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 압도적 총선 승리로 여의도 세력을 대거 물갈이 시킬 수 있었다. 정적(政敵)과 비토 세력이 힘을 잃었고, 새로 공천을 받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단단한 다수파 친위세력을 구축했다. 불통 속 정책 추진과 무리한 인사를 감행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그런 정치적 조건이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지지층 구조도 다르다. 이념적 지역적 성향이 강했던 과거 정부와 달리 서울 출신인 윤 대통령을 선택한 유권자들 가운데에는 비판적 지지가 상대적으로 많다. 지지층 이동이 쉽다는 뜻이다. 하루빨리 민심을 되찾지 못할 경우 어느 순간 정권 중반부터 고립무원에 처할 수 있다. 여의도 세력이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뜻을 배제한 정계 개편, 개헌 등에 나서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현실화될 경우 윤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국정 장악 능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내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집권 초 불안정한 민심을 반전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국민은 그래도 최소 연말까지, 적어도 1년은 지켜볼 것이다. 연말 전당대회를 통해 당을 정비하고, 대통령실과 내각을 보강하면서 낮은 자세로 소통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는 단순하다. 민심을 잡고 지지 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이제 윤 대통령 자신에게 달렸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2022-08-20 03:00 
[오늘과 내일/길진균]‘문제는 경제’, 기로에 선 민심‘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30년 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등장했던 슬로건이 최근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된다. 1992년 미국 대선, 걸프전 승리에 안주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경제위기론을 앞세운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배하며 재선에 실패했다. 3월 대선 승리와 6월 지방선거 완승을 이끌어낸 윤석열 대통령도 경제 위기 속에선 민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뒤따른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사방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넘쳐난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를 기록했다. 전기요금 억제, 유류세 할인 등 그동안 억눌러온 물가 정책을 고려할 때 앞으로 더 오를 일만 남았다. 여기에 경기 침체 우려에도 금융위기 때처럼 돈을 풀어 대처하기도 어렵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오히려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할 판이다. 우리 경제가 미증유의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에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경제 위기 수습책을 제시하면서 비상경제정부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연일 민생 현장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경제 위기 극복의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대응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공개적인 다짐과 그들의 행태가 딴판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제 위기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대책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 경제 위기는 상수(常數)다. 변수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이끄는 대통령과 여권의 리더십, 즉 정치다. 그런데 여권은 넋이 나간 듯하다. 인사 파문에 이어 이준석 당 대표 ‘궐위’, 대통령과 원내대표 간 문자메시지 논란까지 국민은 여권의 어이없는 행태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 사이 국정동력을 뒷받침하는 대통령 지지율도 악화 일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80일 만에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한국갤럽).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윤 대통령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지율이 하락한 사례는 없었다. 위기 상황일수록 지도자는 국민에게 자신을 믿고 따르면 무난히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지금의 혼란은 일시적인 상황이고, 위기는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민심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여당은 이 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국민이 화가 난 것은 위기 속에서도 ‘자기 정치’에만 몰두하는 대통령과 여당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었다. 매끄럽지 않은 해명으로 잡음이 이어지곤 했다.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국민과의 허니문 기간을 갖지 않은 정권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 두 달 남짓 지났을 뿐이다.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사적 채용 논란, 메시지 관리 미흡, 여당 내분 등 정치의 위기는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침 여당은 새 리더십 구축에 나섰다. 대통령도 필요하다면 도어스테핑이 아닌 정식 기자회견을 열어야 한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더 절박한 자세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2022-07-30 03:00 
[오늘과 내일/길진균]3860명, 우리가 뽑는 지방의원 알고 계십니까3750명. 4년 전인 2018년 6월 13일 우리가 뽑은 민선 7기 지방의원 수다.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이 각각 824명, 2926명이다. 직접 투표로 선출된 지역 일꾼들이지만 정작 내가 사는 곳의 지방의원이 누구인지,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투표는 했지만 그 결과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상당수다. 4년 전 선거에서 서울시의회는 비례대표를 포함한 전체 110석 가운데 102석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92.7%를 가져간 셈이다. 야당은 자유한국당 6석, 바른미래당 1석, 정의당 1석에 불과했다. 경기도의원 142석 가운데 민주당 소속은 135명이 뽑혔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시의회 의장, 부의장 2명은 물론이고 11개 상임위원장 모두를 민주당이 독식했다. 민주당 의원들로만 구성된 상임위도 생겼다. 야당은 의석수 부족으로 협상을 위한 교섭단체조차 꾸리지 못했다. 모든 의사 진행과 의결이 사실상 ‘민주당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경기도의회도 사정이 비슷했다. 지방의회의 ‘1당 독주’ 문제는 막연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서울시의회만 보면 110명의 시의원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을 합쳐 한 해 44조 원에 이르는 살림을 심의 및 감시한다. 1인당 평균 4000억 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셈이다. ‘감시와 견제’라는 의회 본연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기 어렵다. 지방의회 선거에 대한 무관심 속에 유권자들이 첫 번째 투표용지부터 끝까지 내리 ‘줄투표’로 선택해 낳은 결과다. 2008년 출범한 민선 4기 때도 한나라당이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모두 석권하고 시의회 106석 중 102석을 차지한 사례가 있다. ‘1당 독주’ 속에선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1일 의장 또는 위원장이 시장의 발언 중지와 퇴장을 명할 수 있고, 사과 뒤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서울시의회 기본 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로 비유하자면 국무총리가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과 언쟁을 벌였을 때 국회의장이 총리에게 퇴장을 명할 수 있고, 이후 ‘공개사과’를 한 뒤에야 다시 국회에 나올 수 있게 규정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지난해 9월 시정질문 도중 오세훈 서울시장이 중도 퇴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오 시장은 민주당 소속 이경선 시의원이 사회주택 문제와 관련해 ‘오세훈TV’ 내용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에게는 발언 기회를 주지 않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퇴장했다. 시의회의 ‘오세훈 길들이기’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이 조례안이 상임위를 통과한 것은 90%가 넘는 절대 다수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 조례안은 ‘시의회의 과도한 입법권 남용’ 비판에 휩싸였고, 올해 2월 ‘사과 명령’ 조항은 삭제된 채로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선 4기 때는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의원 28명이 후반기 의장 선거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무더기로 기소되는 등 ‘1당 독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기 일쑤였다. 해법은 있다. “지방자치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주민들의 자질에 달렸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각 가정에 배달되는 선거공보물이나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경력·재산·병역·납세·전과기록 등 후보자의 개인정보를 살펴보며 도덕적 흠결은 없는지, 공복(公僕)으로서의 준비는 돼 있는지 꼼꼼히 따져 부적격 후보를 가려내면 된다. 3860명. 6월 1일 우리가 새로 뽑는 민선 8기 지방의원 수다. 좀 더 나은 인물, 좀 더 나은 지방자치의 출발은 유권자들의 작은 관심에서 시작한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2022-05-28 03:00 
정치교체 대 정권교체, 더 거세진 ‘바꿔 열풍’[오늘과 내일/길진균]‘정치교체’냐 ‘정권교체’냐를 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이 격돌했다. 여권 후보가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외쳤다. 그러자 야당 후보는 “정치교체는 정권교체로만 가능하다”고 맞섰다. 지금 얘기가 아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선두를 다퉜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목소리다. 2017년엔 정권교체론이 승리했다. 반면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교체’를 앞세워 대권을 거머쥐었다. 유권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선거에 으레 등장하는 ‘교체’ 프레임의 연장선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바꿔 열풍’이 거세다. “저 후보는 바꿀 자격조차 없다”는 네거티브까지 더해졌다. 비호감 대선이라는 혹평 속에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가 늘어날 듯한데, 실상은 반대다. 이달 1, 2일 조사한 동아일보 대선 4차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90.2%로 집계됐다. 지난달 중순 3차 여론조사 때 86.8%, 지난달 초순 2차 여론조사 때 84.5%보다 오히려 많아졌다. 5년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답변이 90%에 이르지 못했다. “찍을 후보가 없다”는 대선 레이스가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예년보다 더 뜨거워지고 있다. 새 시대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도 없지 않겠지만, 박빙의 승부 속에 “반드시 ○○○ 당선을 막겠다”는 지지층의 결기는 더 강해진 모양새다. 한쪽 진영을 적극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선 “누가 대통령이 돼도 나라가 불행해질 것”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민주당은 2016년 총선부터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 이어 다시 2022년 대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내리 5연승이라는 민주화 이후 전례가 없던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금은 선거 때니까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낮추고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가 옳았다” “민심은 역시 우리 편”이라며 다시 오만과 무소불위의 옛 민주당의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돼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여당은 172석이라는 절대 다수 의석을 확보한 제1야당을 상대로 한 혹독한 대결 정국을 돌파해야 한다. 민주당이 반대할 경우 새 정부는 정부조직개편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각 구성조차 어렵다. 신구 권력의 극한 대립 속에 적폐청산을 앞세운 검찰발(發) 사정 정국이 열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민통합과 협치는 다시 멀어질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1년 넘게 치열한 대선 레이스를 거치며 각 당은 물론이고 보수-진보 진영으로 나뉜 국민들 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누가 당선되든 40% 남짓 득표가 최대다. 당선된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절반의 국민은 환호하는 상대 진영을 바라보며 열패감에 시달릴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골목상권 불황, 일자리 없는 청년, 북한의 새로운 도발 위기까지…. 말 그대로 나라 안팎이 암울한 상태다. 대선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 줄 새로운 리더의 탄생을 여는 장이다. ‘교체’는 목적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이대로라면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1950년대의 정치구호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누가 되든 당선 후 새 대통령의 첫 국정 과제는 그동안 쌓인 분노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다.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2022-03-05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