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 찾아 갔는데 기계실… 주민 2명 화마 못피해

군포=김태성 기자 , 신지환 기자 입력 2020-12-03 03:00수정 2020-12-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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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아파트 ‘비상구 찾기힘든 구조’
옥상 비상구, 최상층 한층 아래 위치… 평소 안내-교육 안돼 주민들 잘몰라
“탈출동선-비상구표시 안돼 큰 피해”
하루휴가 간호사-예비신랑 등 참변… 경찰 “난로옆 우레탄폼에 불꽃 튄 듯”
경찰-소방관계자 합동감식 4명이 목숨을 잃고 7명이 다치는 등 11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군포시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2일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감식 당국은 12층 창문 교체 작업 중 사용된 전기난로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군포=뉴시스
“피해 주민들이 비상구 위치만 알고 있었더라면….”

1일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군포시 백두한양아파트 화재는 건물 내 비상구 안내가 미흡해 희생을 키운 ‘예고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아파트는 화재 대피 공간인 옥상으로 가려면 꼭대기 층으로 가서는 안 되는 구조였다. 그보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쪽문을 통해서만 옥상으로 나갈 수 있다. 비상구 위치가 상식적인 예상과 달랐지만 그에 대한 안내는 거의 없었다. 검은 연기가 가득 들어찬 복도를 헤치며 옥상으로 향하던 주민들은 ‘한 층 아래 쪽문’을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주민 2명이 숨을 거둔 곳은 아파트 꼭대기 층이었다. 그곳에는 퇴로 없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이 있었다. 불길을 피해 올라온 주민들에겐 막다른 골목과 다를 바 없었다.

○ 비상구 위치 크고 명확하게 표시했어야

경찰에 따르면 이 아파트 13층 주민 김모 씨(35·여)와 15층 주민 홍모 씨(51·여)는 꼭대기 층(17층) 엘리베이터 기계실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중상을 입은 우모 씨(22)도 같은 곳에서 구조됐다. 비상구는 16층에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고 옥상으로 대피하려다가 비상구를 찾지 못하고 질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일 비상구 위치 안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화재가 난 아파트 내부를 둘러본 결과 뚜렷한 안내 표지를 찾을 수 없었다. 각 층 사이 계단마다 작게 설치된 비상구 표시에는 양옆에 위·아래쪽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을 뿐 정확히 몇 층에 비상구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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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 군포시 백두한양아파트 비상구 앞 모습(왼쪽 사진). 주민들은 옥상으로 나가기 위해 검은 연기를 뚫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지만 옥상으로 통하는 비상구는 꼭대기 층보다 한층 아래에 있었다. 주민들이 꼭대기 층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는 퇴로가 없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오른쪽 사진)이 있었다. 이곳에서 주민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주민들은 “아파트 내 비상구가 어딘지 안내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군포=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꼭대기 층 바로 아래층에 가보니 계단에서 3, 4m 떨어진 곳에 비스듬하게 회색 문이 보였다. 문 위에 비상구등이 어렴풋이 보였다. 비상구 글씨를 보려면 문 앞까지 걸어가야 했다. 다급히 대피하는 주민들이 계단을 지나며 비상구 표시를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인이 화재를 만나면 패닉에 빠져 본능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최상층까지 올라가려고 하게 된다”며 “비상구 위치를 크고 명확하게 표시하거나 비상구 쪽으로 동선을 돌리도록 하는 물리적 구조물이 설치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아파트에서 15년간 거주한 주민 A 씨(54·여)는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 안내를 전혀 들은 적이 없고 구조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이모 씨(48)도 “옥상에 올라갈 일이 없다 보니 비상구 위치와 구조를 몰랐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주민들 스스로 평소 비상구 위치를 숙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16층에 비상구라고 쓰여 있고 비상등도 들어온다. 주민들 입주 때 그런 안내 문구를 한 번씩 제공한다”며 “비상문과 (꼭대기 층) 기계실 문을 혼동하지 말라고까지는 안내를 안 했다. 그건 상식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 하루 휴가 낸 간호사, 결혼 앞둔 예비신랑 참변

비상구를 못 찾고 끝내 숨진 김 씨는 인근 종합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화재 당일 몸이 좋지 않아 휴가를 내고 집에 머물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발견된 사망자 홍 씨와 부상자 우 씨는 모자 관계로 함께 대피하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들 우 씨는 연기를 많이 마셔 현재 중태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화재가 시작된 집에서 인테리어 작업을 하다가 화재 발생 직후 베란다 난간에서 추락해 사망한 박모 씨(31)는 결혼을 두 달가량 앞둔 예비신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 박모 씨(62)는 “코로나19 때문에 11월 초로 예정됐던 결혼을 미룬 상태였다. 착하고 순해 서른이 넘었지만 ‘아가’라고 부르던 외아들인데 이제 무슨 낙으로 사느냐”며 울먹였다.

2일 화재 현장 합동감식을 벌인 경찰과 소방은 “집 거실에서 발화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작업 현장 주변에 전기난로가 있었고 여기서 튄 불꽃이 가연성 물질인 우레탄폼에 옮겨 붙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감식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창호 작업에 사용되는 우레탄폼은 5도에서 32도 사이에서 발포가 잘된다. 요즘 기온이 떨어지다 보니 인부들이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우레탄폼을 전기난로 근처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군포=김태성 kts5710@donga.com·신지환 기자
#군포아파트 화재#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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