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외면 ‘외눈박이 대책’ 되풀이

서울의 한 민간 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 연구원 A 씨는 “집값 급등은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등의 시장 외적 요인과 양질의 주거 환경 선호 및 공급 애로 등의 시장 내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원인과 다른 세금 중과, 재건축 규제, 아파트 분양가 규제, 수급 문제를 주거 복지로 연결, 수도권 신도시 개발 규제 등 5가지 오류를 저질렀다는 비판이었다.
그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특징을 ‘수요를 투기세력으로 인식한다’ ‘부동산 이익에 대한 거부감으로 세금을 중과한다’ ‘부동산을 양극화의 시각으로 본다’는 3가지로 요약했다. 통치이념이 분배여서 부동산 정책 기조도 지역 간 계층 간 형평성을 중시하고, 정책 수단도 조세에 의존해 양극화 해소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가 부동산이란 ‘역린’을 건드리자 일부 참석자들은 발끈했다. “정부 대책이 최선은 못 돼도 차선은 되지 않느냐” “세금이 너무 올랐다고 하는데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이다. 전남 해남의 집과 서울 강남 집의 재산세가 별로 차이가 없는 게 말이 되나”라는 반박이 나왔다. 누군가는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대책을 내놓았더니 이제는 문제가 많다고 하니 어떡하란 말인가” “언론은 일관성, 합리성 있는 보도를 해왔는가”라며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문재인 정부 4년 차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노무현 정부 4년 차인 2006년 6월 세미나 현장에 대한 취재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14년 전엔 강남 분당 등 일부 지역만 들썩거렸는데 지금은 규제가 없는 곳이라면 지방까지 들썩거린다. 그때는 저금리에 국토균형개발 사업으로 지방에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풀렸는데 지금은 위기 극복을 위해 유동성이 풀린 건 다르다.
하지만 저금리가 문제가 아니라 저금리로 시장에 ‘유동성’이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무모하게 규제와 세금으로 막겠다고 덤빈 게 문제라거나 수요를 잠재울 ‘공급 확대’ 카드를 외면해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비판은 지금도 나온다. 전 정부의 규제 완화, 언론 탓을 하는 건 그때도 그랬다. 14년 전처럼 수요를 투기로 간주하면 살 집이 없어 못 살겠다는 시민에게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동문서답을 할 법도 하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 14년간 같은 논쟁과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시장에서 조용히 도태될 것이다. 과오를 잘 아는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파수를 맞추고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 틀어대니 시민들만 죽을 맛이고,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비웃는 게 아닌가. 부동산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지 정쟁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부동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서서히 바뀔 것이다. 14년 후 취재 수첩을 뒤지며 오늘을 복기하는 일이 다신 없었으면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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