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 받은 ‘그림자 아이들’… 품어주는 시설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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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지대 놓인 불법체류 아동
장애아 가을이… 성추행 피해 유정이, 기초수급자도 건보혜택도 못받아
‘보호조치’ 규정 있지만 강제성 없어 복지시설측 “치료비 등 감당 안돼”
전문가 “사회 안전망 구축 시급”

17일 경기 안산시의 한 그룹홈에서 1주년 기념 케이크로 손을 뻗는 가을이(가운데)를 둘러싸고 사회복지사와 입소 아동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들어와 1주년을 맞은 ‘그림자 아동’ 가을이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어려움을 겪었다. 
안산=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7일 경기 안산시의 한 그룹홈에서 1주년 기념 케이크로 손을 뻗는 가을이(가운데)를 둘러싸고 사회복지사와 입소 아동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들어와 1주년을 맞은 ‘그림자 아동’ 가을이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어려움을 겪었다. 안산=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가을이(가명)는 한 번도 부모의 품에 안겨보질 못했다.

현재 23개월 남아인 가을이는 2019년 2월 경기 안산에 있는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중국인 엄마는 임신 6개월 만에 홀로 가을이를 낳았다. 당시 아이는 몸무게가 830g인 초미숙아. 게다가 손가락이 6개인 장애에다 뇌출혈과 장파열, 비뇨기 질환까지 심각했다.

그런데 가을이가 두 번 수술을 받는 동안 엄마는 중국으로 떠나 버렸다. 그는 “죽은 애라 여기겠다”며 자식을 홀로 내버려뒀다고 한다. 그렇게 가을이는 걸음도 걷기 전에 ‘미등록(불법체류) 이주 아동’이 돼 버렸다.

일명 ‘그림자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 가운데 유기나 학대 등을 당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지만 관련 대책이 없어 적절한 보호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보니 아동복지법 등이 적용되지 않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중학교 3학년인 유정이(가명)도 학대에 시달렸던 그림자 아이였다. 중국인 아빠와 새엄마, 이복동생과 살았던 유정이는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젤리를 훔쳐 먹다가 붙잡힌 전력이 있을 정도로 가정의 돌봄을 받지 못했다.

최악은 지난해 벌어졌다. 밤에 “잠을 재워주겠다”며 방에 들어온 아빠가 친딸 유정이를 성추행한 것이다. 충격을 받은 유정이는 결국 아빠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불구속 수사를 받던 아빠는 중국으로 도망쳐 버렸다. 이때 유정이의 여권 등 관련 서류까지 가져간 데다, 새엄마 역시 보호자가 되길 거부해 유정이는 그림자 아이가 돼 버렸다.

가을이와 유정이 앞에 놓인 이후의 현실은 더 고단했다. 그림자 아이들을 돌봐주겠단 시설이나 기관이 없었다. 경기 지역의 거의 모든 아동복지시설에 연락을 취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전국 사설 시설까지 뒤져도 받아주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시설에서 아이들을 기피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현행 제도라면 미등록 이주 아동의 양육, 치료 등에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해당 시설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학대 등으로 보호 조치가 필요한 아동은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그림자 아이들은 이런 혜택을 받을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주민센터친구’의 이진혜 변호사는 “기초생활수급자도 될 수 없고, 건강보험 혜택도 없다 보니 생활비까지 모두 시설이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규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2020 아동분야 사업안내’에서 “보호 조치가 필요한 무국적 및 외국국적, 불법체류, 출생신고 미등록, 무연고 상태인 피해 아동에 대해 아동복지법 시행령에 의한 적절한 보호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강제성도 없어 실효성이 미미하다.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학대받는 그림자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주민지원 시민단체 ‘아시아의 창’의 이영아 소장은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로 어떤 아동이라도 생존권과 보호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을이와 유정이는 오랜 수소문 끝에 안산에 있는 ‘아이들 세상 함박웃음’의 그룹홈(group home·취약계층이 공동 생활하는 시설이나 가정)에 머물고 있다. 해당 시설의 오창종 대표는 “긴급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누구라도 안전하게 지낼 최소한의 공간을 우리 사회가 제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안산=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그림자 아이들#불법체류 아동#아동학대#복지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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