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사나이[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67〉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입력 2020-11-18 03:00수정 2020-11-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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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나 전설은 비극적인 사건을 은폐하거나 때로는 미화한다. 그림 형제의 ‘독일설화집’과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얼룩무늬 옷을 입은,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전설도 그러하다.

독일의 작은 도시 하멜른 주민들은 쥐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쥐들은 음식을 먹어치우고 모든 것을 갉아먹었다. 쥐들은 고양이들도 물어 죽였고, 쥐들이 찍찍대는 소리에 사람들은 제대로 얘기도 못 할 정도였다. 그때 얼룩무늬 옷을 입은 떠돌이 악사가 나타나 돈을 주면 쥐를 없애주겠다고 했다. 시장과 시의원들은 대가를 약속했다. 악사는 피리를 불어 쥐들을 강으로 유인해 죽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악사는 화가 나서 거리로 나가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피리 소리에 홀려 그를 따라 어딘가로 사라졌다.

브라우닝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한 교훈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비극적인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1284년 6월 26일에 130명의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수많은 아이들이 무슨 이유에선가 죽거나 어딘가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전설은 그 사건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아이들이 피리 소리에 홀려 어딘가로 사라졌다고만 말한다. 비극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그것의 흔적만 살짝 남기고 견딜 만한 이야기로 바꿔놓으면서 사람들의 슬픔과 죄의식을 다독였다고나 할까. 이것이 전설이 비극적 사건을 수용하는 방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고통스러울 테니까.

한국의 방탄소년단은 그 전설을 비극이나 슬픔으로부터 한층 더 떼어놓았다. 그들의 노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얼룩무늬 옷을 입은 악사는 방탄소년단 자신이고 그들의 노래에 홀린 이들은 열성 팬들이다. “넌 나 없인 못 사니까.” 그래서 그들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가수와 팬 사이에 생성되는 홀림과 끌림을 예찬하는 찬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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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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