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두는 것도 애정[이재국의 우당탕탕]〈46〉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입력 2020-11-17 03:00수정 2020-11-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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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집 근처에 버려둔 화분을 처음 본 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경기로 카페가 폐업을 하면서 가게 앞에 내버려 둔 화분 같았다.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이 금전수인 걸로 봐서, 아마도 개업식 때 누군가 ‘돈 많이 벌라’고 선물한 것 같은데 그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처량하게 거리로 나앉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완전히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탱탱하게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하게 연명하고 있는 금전수가 자라고 있는 화분. 며칠 지나면 누군가 가져가거나, 쓰레기차가 청소해 가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화분이었지만 난 그 화분의 안부가 궁금해서 늘 그 길로 지나갔다. 그러다 비가 너무 안 와서 화분의 흙이 메말라 있다 싶으면 나는 생수 한 병을 사서 화분이랑 반반씩 나눠 마셨고,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가 꽂혀 있는 날이면 그 꽁초를 빼주는 게 내가 금전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애정의 전부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금방 죽을 것 같던 금전수는 줄기가 더 단단해지고 잎사귀에는 윤기가 줄줄 흐르는 튼튼한 식물이 되어 있었다. 괜히 뿌듯한 마음에 금전수 앞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됐다.

나는 길거리의 주인 없는 금전수에 애정을 주는 만큼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선인장에도 많은 관심을 줬다. 평소보다 더 자주 살펴보고 흙 상태를 보면서 물도 더 자주 주고, 평소보다 더 애정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여름 내내 상태가 좋지 않던 선인장은 결국 밑동이 썩었는지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죽어버렸다. 아, 길거리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금전수도 잘 버티는데 거실에서 안전하게 자란다고 생각했던 선인장이 먼저 죽다니, 식물에게 ‘안전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게 저들에게는 안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고 올겨울은 예년보다 추울 거라는 일기예보를 들을 때마다 난 그 녀석이 걱정됐다. 집으로 가져와야 하나? 아니다. 내 소유도 아닌데 내 맘대로 집으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며칠 바짝 추웠던 추위가 가고 다시 햇살 좋은 가을의 나날들이 계속됐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 녀석 곁을 지날 때마다 금전수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지나갔다. 그런데 며칠 전 금전수 앞에 할머니 한 분이 고개를 숙이고 계시길래 유심히 쳐다봤더니 할머니께서 은색으로 된 방한용 스펀지를 화분에 둘러주고 계셨다. 끈 묶는 걸 도와달라고 하셔서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방한용 스펀지를 바닥까지 잘 감싸서 끈으로 튼튼하게 묶어 줬다. “고마워요. 그냥 두면 얼어 죽을 거 같아서요.” 아, 나 말고도 애정을 갖고 이 녀석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또 있었다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겨울을 버티든 못 버티든 그건 이 녀석의 몫이었다. 억지로 안전을 제공하는 것보다, 그대로 두고 지켜봐주는 게 이 녀석을 위한 애정일 수도 있으니까. 올겨울을 꼭 이겨내길 바라본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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