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복지를 넘어 공간복지로”[기고/김수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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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김수현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세계 곳곳에서 최근 7∼8년 사이 집값이 크게 올랐다. 스웨덴, 네덜란드도 예외는 아니다. 스웨덴은 경기 부양을 위한 마이너스 금리가 거꾸로 자산시장을 자극하면서 2013년부터 전국 집값이 평균 70% 이상 올라 버렸다. 네덜란드도 같은 기간 약 50% 올랐고, 주택담보대출 빚이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을 만큼 커졌다.

그런데도 이 나라 서민들이 견딜 수 있는 것은 공공임대주택이 각각 18%, 30%나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가장 높다는 홍콩도 전체 가구의 29%가 공공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 주택시장이 불안하더라도 튼튼한 주거 안전망이 있다면 그나마 서민에게 힘이 된다.

남들보다 뒤늦게, 더 급격한 도시화와 경제성장을 경험한 우리나라도 심각한 주거 문제를 겪어왔다. 서울에는 한때 판자촌이 난립할 정도였다. 그만큼 안전망으로서의 주거복지가 절실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역대 많은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주거복지를 달성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의 하나로 삼아 왔다. 지금도 해마다 13만 채의 공공임대주택을 추가 공급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덕분에 공공임대주택도 빠르게 늘어, 전체 가구의 8% 가까이 될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 지어진 공공임대주택의 주거환경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한참 뒤떨어진다. 30년 전 시 외곽에 급하게 지었던 공공임대주택 단지는 인근 일반 아파트보다 환경이 열악하다. 은근한 차별도 받고 있다. 기존 주택을 활용한 매입임대주택 등은 놀이터나 작은 공원조차 없는 곳이 허다하다. 주차공간도 없어서 차를 세우려면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아야 한다.

임대주택이 놓인 동네까지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주거복지가 체감될 수 있다. 초기 단지들은 재건축을 빨리 해서라도 환경을 개선하고 더 많은 신혼부부용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주거복지를 넘어 공간복지를 우리의 사회적 과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다.

공간복지는 집이 놓인 동네를, 도시를 바꾸는 일이다. 골목길을 고치고, 주차공간을 만들며 쌈지공원도 만드는 사업이다. 걸어서 10분 이내에 어린이집, 노인정, 도서관 등 필수 생활 인프라를 확보하려는 ‘10분 동네’ 사업과 결합하면 더욱 좋다. 공간복지는 이 과정에서 일자리까지 늘린다. 골목길과 담장을 다듬고 허술한 집을 고쳐 짓는 토목사업이 수반되지만, 이것은 ‘착한 토건’이다.

공간복지는 주거복지를 보완하는 일이기도 하다. 생활권 주변에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동네와 집을 쓸 만하게 고쳐 쓰는 것이 현실적이면서도 유용한 전략이다. 지금도 서울시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 단지가 아닌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곳을 편리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이미 지하철이 늘어나 교통이 편리해진 곳이 많기도 하다. 공공임대주택 확대와 기존 주거지 개선을 병행할 때 서민 주거도 더 빨리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김수현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주거복지#공간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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