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바꿔놓은 사진기자의 동선[사진기자의 ‘사談진談’]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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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전까지는 좋은 각도를 잡기 위한 몸싸움과 밀집 취재는 사진기자의 숙명이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에는 사라져야 할 풍경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좋은 각도를 잡기 위한 몸싸움과 밀집 취재는 사진기자의 숙명이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에는 사라져야 할 풍경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장승윤 사진부 차장
장승윤 사진부 차장
나는 사진기자로 국회를 출입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최근 국회가 세 번 폐쇄되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두 번째 폐쇄 때는 사진기자실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이 확진자는 휴가 때 집에서 친척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감염됐고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3시간가량 마스크를 착용하고 취재했다. 이 기자는 친척의 확진 소식을 듣자마자 검사를 받았다. 그날 오후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기자실에 있었던 십수 명의 기자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등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 참석자들도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모두 음성이 나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루 평균 5000여 명이 국회 본청, 의원회관 등을 드나든다. 국회는 건물마다 불특정 다수의 방문자들이 얽혀 있어 코로나19 감염에 매우 취약하고 확진자가 나오면 추적도 어렵다. 또 국회의원과 기자들은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다양하고 많아 언제든 집단감염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국회는 감염의 시한폭탄 같은 곳인 셈이다.

각 정당의 활동을 기록하는 사진기자들 역시 위험에 노출돼 있다. 글 쓰는 취재기자들은 전쟁터나 재난지역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도 상황을 기록할 수 있지만 사진기자들은 현장 가까이 가야만 한다. 위험한 줄 알지만 현장에 있어야만 기록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이 직업의 숙명이다. 그래서 코로나19 확진에 대한 공포감이 더 컸다. 현장을 옮겨 다니는 일의 특성상, 만약 나 자신이나 바로 옆 동료가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 역학조사가 우리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대통령부터 노숙인까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기록하는 일이 사진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코로나 정국에서는 그런 동선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광복절 집회, 사랑제일교회 사태 취재 등 코로나19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현장은 가고 싶지 않아도 기록해야 하는 취재거리였다.

앞서 언급한 사진기자 1호 확진자는 ‘룰렛 게임’의 희생자가 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2주간의 격리를 마친 사진기자들은 이달 10일 국회에 복귀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 기자 때문에 자가 격리를 한 것이 아니라 그 기자 덕분에 코로나를 피해 갈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는 누구나 확진자가 될 수 있는 확률 게임 속에 있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 뒤로도 두 명의 확진자가 더 나왔지만 모두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서 국회에서 코로나19가 더 확산되지는 않았다.

코로나19가 인류를 공격한 지 이제 10개월이 지나가지만 마스크 외에 다른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할 때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했다. 전 국민이 노력 중이지만 사진기자들도 별도의 거리 두기 방역책을 쓰고 있다. 몸싸움을 해야만 찍을 수 있는 단독 사진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진기자들은 코로나19를 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사진기자들의 책상 위에는 살균소독제와 항균 물티슈가 놓여 있다. 근무시간을 최대한 유연하게 배치해 러시아워를 피해서 움직였고, 예정된 취재는 가장 근처에 사는 사진기자가 현장으로 직접 출근했다가 현장에서 퇴근했다. 부득이하게 취재 인원이 몰리는 현장에서는 공동(풀) 취재 형식으로 밀도를 낮추는 방식을 활용하기도 했다. 코로나 감염 위험 지역이나 발생 지역을 취재한 기자들은 자가 격리를 서로 권고하고 그 기간엔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사진기자들이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밀집 취재는 당분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의 내용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추석 무렵 황금 들녘과 정겨운 고향 풍경을 기록하는 데 공을 들였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위생 수칙을 강화하면서 급증한 일회용 용기 플라스틱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 사진이 지면에 실렸다.

코로나19는 눈에 보이지 않아 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앞으로 사진기자들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아닌지.

현장에 최대한 근접해야 하는 직업이 사진기자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 새로운 사진 소재가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승윤 사진부 차장 tomato99@donga.com
#사진기자#국회#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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