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은 나갔지만 질문은 남았다[오늘과 내일/허진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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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있을 때만 문제되는 다주택… ‘1주택만 소유’는 틀렸다는 얘기

허진석 산업2부장
허진석 산업2부장
대통령비서실의 민정수석비서관이 2주택을 소유한 문제로 청와대를 떠났다. 공직을 떠난 뒤 그가 주택을 처분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공직자라면 1주택만 소유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정책 책임자인 대통령의 뜻이자 이 정권의 의지라고 국민들은 안다.

정부는 시장 수요를 옥죄는 정책을 쏟아내다가 급기야 무주택자가 평생의 꿈인 내 집 마련을 할 때도 대출을 제대로 못 받게 했다. 그 와중에 대통령 주변 공직자들이 다주택자인데 정책이 작동하겠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1주택만 남기고 처분하라는 얘기가 나왔다. 수순이 뒤바뀐 것이었고, 비판의 핵심도 잘못 짚었다. 내 집 마련이라는 욕구까지 억제하는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지 다 같이 무주택자가 되거나 1주택만 갖자는 얘기가 아니다.

때 묻지 않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한번 물어보자. 1주택만 가지는 것이 정책적으로 옳다면 청와대를 나왔다고 다주택을 유지하는 것은 옳은가. 다주택자가 공직에 들어가기 직전 1주택자가 되기만 하면 괜찮은 건가. 공직에 있을 때는 무주택이다가 공직을 떠나서는 다주택자가 되는 것은 놔둬도 되는 건가. 공직에 있을 때만 1주택이면 된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다.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 분노보다는 조롱을 더 많이 보내는 배경이다.

비서실장은 2채 중 남겨야 할 집을 선택할 때 강남을 택함으로써 코미디는 극에 달했다(나중에 2채 다 처분은 했다). 비서실장의 개별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성인이 된 자식이 서울에서 생활하는 집이라고 밝혔으니 그러려니 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일본의 1채를 포함해 3채라고 해서 시부모가 거주하던 오피스텔을 처분했다. 원래 본가 외에 일본에서 일하는 배우자가 거주하는 집과 시부모가 거주하는 집은 실질적 필요성이 있어 보이는데도 1채를 판 것이다. 자승자박이 빚은 촌극이라고 본다.

많은 국민도 그들처럼 사정이 있다. 원래 집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살 수 있는 재화다. 전원생활을 즐기려고 시골에 움막 같은 작은 집을 하나 사도,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식을 위해 작은 집을 하나 사도 다주택자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다. 정부 말 믿고 평생 모은 돈 털어 다세대·연립 사서 생계비 충당하던 퇴직자들의 황당함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1주택만 소유하는 것이 옳은 것인 양 계속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새로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의 ‘제1덕목’이 ‘1주택 혹은 무주택’으로 보일 정도로 그런 인물만 뽑는다. 1주택자는 유능함의 상징도 아니고 도덕적 선함의 증거도 아니다. 경기도에서는 4급 이상 공무원에게도 1주택 이상은 처분하라고 하고, 여권에서는 1주택만 소유토록 법으로 정하자는 얼토당토않은 발상까지 나온다.

정부는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 목적은 국민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쌀값이 폭등하면 비축미를 풀어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도 국민들이 쌀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 쌀값 안정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물론 정부 입장에선 고충이 있다. 집은 비축 물량이 없으니 공급을 하려 해도 시차가 발생하고 그 때문에 시장의 심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노력을 하던 와중에 청와대에서 1주택 촌극이 빚어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런데 시장의 심리를 관리하려면 상식과 원칙에 기반한 목표와 방향이 중요하다. 그래야 조롱 대신 신뢰를 얻는다. 민정수석은 ‘대한민국은 무주택자와 1주택자만 살아야 하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정권은 그 답을 생각해 볼 때다.

허진석 산업2부장 jameshuh@donga.com
#민정수석#다주택자#1주택자#무주택자#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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