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과 동맹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약탈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 제로섬(zero-sum) 관계지만 동맹은 함께 이익을 보는 ‘윈윈(win-win)’ 관계가 기본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쳐 패권국이 된 미국의 대외정책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약탈적 패권(predatory hegemony)’과 달랐다. 동맹 네트워크, 시장 개방, 달러화, 막강한 소프트파워로 국제 질서를 구축했다. 동맹국의 번영이 미국의 안보를 강화한다는 믿음이 깔렸다.
하지만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약탈적 패권으로 규정했다. 세계를 약탈자와 피해자로 이분하며 동맹과 적을 구분하지 않고 착취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이유에서다.
관세 합의 스스로 뒤집은 美
트럼프 행정부는 윈윈보다 상대가 손해 보는 거래를 선호한다. 전체 이익이 100이라면 미국과 상대국이 50씩 나누는 합의보다, 미국이 60을 얻고 상대가 ―50의 손해를 보는 거래를 택한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패배, 무역흑자는 승리로 보는 흑백 논리 때문이다.
동맹엔 더욱 가혹하다. 관세를 무기로 쓰는 것은 적대국이나 동맹국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동맹국에겐 안보 청구서가 더해진다. 스스로 구축한 규범과 제도, 기존 합의를 뒤집어 만든 혼란을 지렛대로 삼는다는 점도 미국이 약탈적 패권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근거로 지적된다.
위기를 맞고 있는 한미 관세 합의는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시하고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무역적자를 수입액으로 나눈 비율로 산출된 관세율 계산법은 73년 동맹 한국이나 적대국이나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협상 기간 “한국은 (주한미군) 방위비를 거의 내지 않는다”며 안보 문제를 경제적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노골적으로 활용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은 미국 산업 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에 기여한다. 양측 모두 이익을 보는 구조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적자를 패배로 규정하고 한국에 일방적 양보를 요구했다.
더 심각한 것은 합의의 불안정성이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JFS)를 통해 한국이 대미투자특별법을 발의하면 미국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정부는 관련 법을 발의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두 달도 안 돼 관세 재부과 방침을 밝혔다. 스스로 서명한 합의를 뒤집었다.
원인 진단도 대응 방향도 갈라진 정부
미국의 관세 재부과 원인과 대응을 두고 정부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100% 국회의 대미무역투자특별법 처리 지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측에선 “미국이 비관세 장벽 완화에 진척이 없으면 관세를 올린다고 했다”고 한다. “관세와 안보 협의는 별개”라는 주장과 “관세와 안보 분야는 별개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충돌한다.
위기의 원인과 영향에 대한 진단이 다르니 대응 방향도 엇갈린다. 일각에선 기존 합의를 고수하며 원칙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착한 동맹에서 벗어나 까다로운 비즈니스 상대가 돼야 정상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안보 협력과 핵잠수함 건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 등 숙원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외면하기 어렵다.
전례 없는 동맹 관계를 두고 국익을 지키기 위한 이견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견이 분열로 이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약탈적 패권은 분열된 상대에게 더 가혹한 대가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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